집옥재는 마지막 남아있는 현 중국풍의 조선건축물이다
[증거사진]
집옥재는 대조선 경복궁 내에 있는 고종황제의 서재라 한다. 두 사진은 한반도서울의 집옥재를 찍은 것인데 몇 가지 의혹이 남는다.
1) 좌측사진은 마당에 잡초가 무성하다. 이는 사람이 산 흔적이 없다는 증거이다.
1900년대 초면 여러 사건도 많고, 황제의 대궐일 텐데 어찌 이리 관리를 허술하게 한단 말인가?
2) 우측사진은 잡초를 잘 정리했다. 그런데 문제는 황제의 서재이고, 황제가 기거하는 곳인데, 흰옷의 양반네가 두 명이나, 돌난간 옆에 걸터앉아 있다.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황제친위대나, 보초, 경호원이 있어 제재를 해야 하는데 아무도 없다. 겉보기엔 건물사진을 찍기 위해서 사람흔적을 보이기 위해서 일부러 조선인복장차림의 사람을 앉혀 놓은 것처럼 보인다.
3) 결국, 두 사진 모두 대조선의 집옥재라 보기에 너무나도 맞지 않는다. 그리고 간과할 수 없는 것이 가운데 집옥재란 건물이 중국풍이란 점이다. 한반도 서울에 황궁들은 모두가 중국풍의 건축물과 거리가 멀다. 한반도에만 존재하는 중국과 동떨어진 건물형상이다. 그러나 대조선이 중국, 특히 대륙중원 섬서성, 하남성 인근에 있다고 한다면 대조선 황궁은 반드시 현 중국풍으로 지어져야 한다.
[대조선 건축물의 진실 혹은 거짓]
이 점에서 대조선의 건물유형의 진실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1) 한 가지는 대륙에 있던 조선의 중국풍황궁들 을 모두 한반도의 별다른 풍으로 변경 시공했는데 유일하게 집옥재만 그대로 두었다. 옥의 티이다.
2) 다른 한 가지는 원래 대륙에 현 한반도풍의 건축물이 원래 대륙풍이었는데, 현 중국에서 다른 지방풍의 다른 건물모양으로 모두 수정하여 옛 조선의 흔적을 없애려 했다는 것이다. (조선의 건축물그림을 보면 거의 모두 한반도풍으로 그려졌다. 물론 위작으로 그릴 수도 있다.)
3) 그런데 전자가 맞다는 물증이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1893년 미국 시카고 박람회의 대조선 출품작인 조선 전시관이다. 이 조선전시관은 분명 중국풍의 대조선 건축물이었다.
1893년 미국 시카고박람회의 조선전시관
*특징*
① 기와의 모양과 처마형태가 중국풍이다.
② 벽체의 상부의 엑스문양의 모양이 중국풍이다.
③ 기둥에 배흘림이 없는 것이 중국풍이다.
4) 결국 대조선의 황궁, 일반건축물은 그당시 현중국풍으로 지어졌다고 본다.
[조선이 중국에 있었다는 최후의 건축물]
대조선이 현중국에 있었다는 최후의 증거물이 바로 한반도 서울에 일제때 만들어 놓은 경복궁내의 집옥재이다.
이 건물이 대조선의 건물형태라고 감히 결론을 내린다.
기와와 벽의 모양이 중국풍이다
기와등,처마선에 포물선이 없다.
기둥에 배흘림이 없다.
경복궁내 집옥재
[참고 비교건축물]
현중국 북경의 자금성내의 현중국풍 건축물-> 한반도 집옥재와 건물형태가 같다.
한류의 근원지는 대한민국[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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