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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증 동국여지승람] 은 과연 조선을 한반도로 가리키는가?

한부울 2009. 2. 17. 21:49
 

[신증 동국여지승람]은 과연 조선을 한반도로 가리키는가? 

[대륙조선사연구회 : 최두환] 05.06.09 17:53


우리의 지리를 설명한 것 가운데서 많은 책들이 있지만, 그래도 상당히 신뢰하며 찾아보는 것이《신증 동국여지승람》이다. 그 책이 설명한 조선의 지리를 과연 한반도를 가리키는가?


나는 단연코 "아니다."고 말한다.


상당한 내용은 이미 언급했지만, 론리의 전개를 위하여 중복돼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그대로 싣기로 한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무슨 근거를 가지고《신증 동국여지승람》가 한반도의 지리를 말하는 것이 아닌지를 설명하겠다.


맨 먼저, 이 책의 서문에 서거정(徐居正: 1420~1488년)의 글이 적혀있다. 거기에 “사방(四方)의 한복판에 자리한 것이 경기도이며, 그 서남쪽을 충청(忠淸), 동남쪽을 경상(慶尙), 남쪽으로 치우쳐 있는 곳을 전라(全羅), 정동쪽을 강원(江原), 정서쪽을 황해(黃海), 동북쪽을 영안(永安), 서북쪽을 평안(平安)도(道)라고 한다.”고 했다.


[徐居正,「東國與地勝覽 序」『新增 東國與地勝覽』3面, (明文堂, 1994 重版), p.11 및 魏嵩山,『三千里江山回顧』(上海: 人民出版社, 1997), p.1 “八道 處四方之中曰京畿 西南曰忠淸 東南曰慶尙 偏南曰全羅 正東曰江原 正西曰黃海 東北曰永安 西北曰平安.”]


사방의 한가운데라면, 한반도로써는 성립이 되지 않는 표현이다. 극서쪽에 있는 경기도를 사방의 중심에 있다고 표현할 정도로 무식한 사람이라면, 상식적으로도 그런 중요한 지리지의 서문을 글을 써넣을 수는 없는 것이다.


둘째, “생각건대, 천자가 있었던 곳을 고을로 한, 전주(全州)는 산천의 좋은 기운이 얽히고 서린 왕업(王業)의 기초를 창립하였으니, 실로 우리 조선(朝鮮)의 근본이 되는 땅이며, 주(周)나라의 태(邰) 지역과 빈(豳)지역이다.”고 하였다.


[『新增 東國與地勝覽』卷33「全州府」<祀廟> “拱北亭: 惟全爲州 山川淑氣 渾渝磅礴 肇基王迹 實我朝鮮根本之地 周之邰豳是也.” 및 이 책, <形勝> “國家之豐沛 山川靈秀. … 周之邰豳 一道之首.]


이것은 한때의 전주는 평양이요, 장안(長安)이었고, 그곳은 주(周)나라의 시조 공류(公劉)가 세웠던 나라였다는 말이다. “근본되는 땅”이라면, 주나라가 태빈(邰豳)에서 나라를 세웠고, 한나라가 풍패(豐沛)에서 나라를 세웠듯이, 조선은 바로 그곳에서 나라의 세웠기 때문에 나라의 근본이 되는 땅이란 말이 가능한 것이다. 한반도의 전주(全州)란 곳으로써 결코 “조선의 근본되는 땅”이라고 할 수 없다.


조선의 근본이란 “그 땅에서 나라를 세웠다[建國(건국): 肇國(조국)]”는 말이다. 곧 그곳에서 리성계가 임금 - 천자가 되었다는 말이며, 왕적(王迹), 즉 왕업(王業)으로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는 대업(大業)의 기초를 다진 곳이다.


셋째, “나주(羅州)의 금성산(錦城山)은 바다 남쪽의 주(周)나라 문왕(文王)의 왕비 태사(太姒)의 고장 500년이다. 1척의 배로 견훤왕(甄萱王)이 귀순한 길이요, 1만 깃발로 현종(顯宗)이 군사를 일으켰던 곳이다.”고 했다.


[『新增 東國與地勝覽』卷35「羅州府」<山川> “錦城山: …尹紹宗詩 錦城山在海南邊 太姒家邦五百年. 一葦甄王皈命路 萬旟顯廟誓師天.”]


바로 이 나주가 주나라 문왕의 왕비 태사의 고향이라고 했으니, 한반도로서는 성립될 수 없는 말이다. 비록 고려 태조 왕건의 맏아들 왕무(王武)의 어머니 장화왕후(莊和王后) 오씨[吳氏: 오다련(吳多憐)의 딸]가 나주에서 났으므로 그렇게 말한 것이라고 이석호 번역,『신증 동국여지승람』권35「나주부」, (민족문화추진회, 1976), p.514


해설을 붙여놓았지만, 중국대륙으로 보면, 바로 그곳에 문왕의 왕비 태사의 고향이요, 고려 태조 왕후의 고향이 되는 것이다.


넷째, “경주는 낙읍(洛邑)”이라고 했다. 이를『新增 東國與地勝覽』卷21「慶州府」<山川>에 보면, “史等伊川: 一云荒川 在府東二十四里,… 蚊川: 在府南五里 史等伊川下流. …祓禊詩 … 洛邑諸生十萬指臨有祓禊肩相…”[이천(伊川) 하류에 문천(蚊川)이 있다. … 불계[3월 초사일(初巳日)에 지내는 제사]를 읊은 시에, … 낙읍의 모든 선비 10만 명이 몰려와 물에서 불계하니 어깨가 서로 닿았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여기 나온 낙읍(洛邑)은 낙양(洛陽)이요, 곧 경주(慶州)이다.


이 낙읍은 하남성 낙수(洛水)․이천(伊川)이 만나는 곳의 북쪽에 있는 낙양(洛陽)이요, 동경(東京)이요, 동도(東都)요, 경주(慶州)요, 서라벌이다. 한반도에서는 단 한번도 낙읍이니, 낙양이니, 하는 지명을 붙인 적이 있을까? 다른 우리의 역사책에는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식민사학자들이《신증 동국여지승람》을 그들의 의도대로 고치다가 빠뜨린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리고 리중환(李重煥)이 지은『택리지』에서도 “상주가 낙양이다”고 하였다.

[李重煥,『擇里志』「慶尙道」. “尙州一名洛陽”]


다섯째, 외국인이 기록한 책에서 보면, “연(燕)나라 마지막 임금 희왕(喜王)이 곧 조선(朝鮮)의 임금”일[P. Du Halde, The General History of China, (London : K. Watts, 1741), p. 388 “Hi vang, King of Yen and of Corea”] 뿐 아니라, 한(漢)나라 제2대 임금인 “혜제(Hoei ti: 惠帝)의 어머니 려후[Liu heou: 呂后]는 혜제의 이름으로 섭정하였으며, 전에 료동(遼東)을 다스렸던 제후와 협력하여 혜제를 조선(朝鮮)의 임금으로 만들었다.”


[P. Du Halde, The General History of China, (London : K. Watts, 1741), p. 398 “Hoei ti… and Liu heou his Mother, who governed under his Name, created him King of Tchaossien.”]는 것이다.


중국사의 중심국가라는 임금․황제가 곧 “조선의 임금(King of Tchaossien)”이라는 말이 무엇보다도 우리의 상식을 충격으로 몰아붙인다. 물론 이런 사례 이외에도 중국대륙이 조선이라는 내용에 관해서는 그 동안 상당히 많이 언급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그러므로《신증 동국여지승람》은 조선을 반드시 한반도로 가리키고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상당한 내용이 비록 한반도에서 찾아지기는 하지만, 그것은 대륙조선사를 한반도로 이식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일 뿐이다.


여기서 다시 필요충분조건을 생각해보면, 조선의 거시적 력사해석이 쉽게 다가올 것이다. 


[대륙조선사연구회]최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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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1530년(중종 25) 이행(李荇)·윤은보(尹殷輔)·신공제(申公濟)·홍언필(洪彦弼)·이사균(李思鈞) 등이 ≪동국여지승람≫을 증수, 편찬한 책. 55권 25책.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관찬지리서이다. 이 책은 세 차례의 수교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다. 원래 ≪동국여지승람≫은 1481년(성종 12) 50권으로 편찬되었다.


내용은 1477년에 편찬한 ≪팔도지리지≫에 ≪동문선≫에 수록된 동국문사(東國文士)의 시문을 첨가하였으며, 체재는 남송(南宋) 축목(祝穆)의 ≪방여승람 方輿勝覽≫과 명나라의 대표적 통지인 ≪대명일통지 大明一統志≫를 참고하였다. ≪동국여지승람≫의 1차 수교는 1485년 김종직(金宗直) 등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이 때 시문에 대한 정리와 연혁·풍속·인물편목에 대한 교정, 그리고 ≪대명일통지≫의 예에 따라 고적편목이 신설되었으며, 중국의 지리지에는 없는 성씨·봉수(烽燧)의 양조도 신설되었다.


그 뒤 1499년에 임사홍(任士洪)·성현(成俔) 등이 부분적인 교정과 보충을 가하였으나 내용상의 큰 변동은 없었다. 제3차 수정은 증보를 위한 것으로서 1528년(중종 23)에 착수하였다.


1530년에 속편 5권을 합쳐 전 55권으로 완성, 이에 ‘신증(新增)’의 두자를 삽입하여 간행하였다. 임진왜란을 겪은 뒤 이 책은 더욱 희귀해져 일본 경도대학소장본이 유일하며, 1611년(광해군 3)에 복간한 목판본이 규장각도서 등 국내에 소장되어 있다. 1455년(단종 3)의 을해자로 인쇄된 ≪동국여지승람≫의 초간본 중 권37·38은 김두종(金斗鍾)이 소장하고 있다.


책머리에는 이행의 진전문(進箋文)·서문·교수관원직명과 구본 ≪동국여지승람≫의 노사신(盧思愼)의 진전문, 서거정(徐居正)의 서문 및 교수관직명·찬수관직명·목록이 수록되어 있다. 책의 끝에는 홍언필·임사홍·김종직의 발문이 실려 있어 간행 과정과 의도를 살펴볼 수 있다.


권1에 경도(京都) 상, 권2 경도 하, 권3 한성부, 권4·5 개성부, 권6∼13 경기도, 권14∼20 충청도, 권21∼32 경상도, 권33∼40 전라도, 권41∼43 황해도, 권44∼47 강원도, 권48∼50 함경도, 권51∼55 평안도 등이 수록되었다.


각 권마다 여러 개의 군현이 수록되어 있으나, 경기도의 광주목과 여주목, 경상도의 경주부, 평안도의 평양부 등 큰 읍은 1개 행정구역만 수록되었다.


경도 앞에 조선 전도인 팔도 총도가 실려 있으며, 각 도 첫머리에는 도별 지도가 삽입되었다. 이 지도들은 실측 지도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지극히 단순한 형태를 나타낸다.


이 지도는 동서의 폭이 지나치게 넓은 반면 남북의 길이가 짧기 때문에 한반도의 모양이 기형적이며, 주요 하천의 유로가 부정확하고, 강폭이 과장되어 있으며, 서남해의 섬과 반도들이 적당히 그려져 있는 등 문제점이 많다.


그러나 이 지도는 본래 지지를 읽는 데 참고가 되도록 첨부한 안내도였으므로 지도학적 가치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지도에 표시된 내용도 산과 하천이 중심이 되어 있는데, 이는 산천에 대한 제사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서 순수한 자연현상을 표현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지리지에 지도를 첨부함으로써 지리지에 수록된 내용의 공간적 파악과 정확한 인식을 달성하려 한 점은 이전의 지리지에서 한 걸음 발전한 것이다.


내용은 각 도의 연혁과 총론·관원을 적은 후, 목·부·군·현의 연혁, 관원·군명·성씨·풍속·형승·산천·토산성곽·관방(關防)·봉수·누정·학교·역원·교량위치·불우·사묘·능묘·고적·명환(名宦)·인물·시인의 제영(題詠) 등의 순서로 기재되어 있으며 ≪동국여지승람≫ 이후에 증보된 것은 신증으로 밝혀져 있다. 인물 속에는 효자·열녀가 포함되어 있다.


군현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으나, 특히 강조된 내용은 연혁·성씨·산천·역원·고적·인물 등이다. 연혁에서는 시대에 따른 각 군현의 지명 변화, 행정구역의 변천 과정 등을 밝히고 있다. 성씨는 토성(土姓)·내성(來姓)·속성(續姓) 등으로 구분하여 기록하였으며, 역사상 유명한 학자·고승·충신·무장·효자·열녀 등을 다룬 인물조와 관계가 깊다.


산천조는 명산·하천·바다·호소·나루터 등의 위치를 읍을 기준으로 거리와 방향을 기록하였으며, 시문으로 과거의 경관을 묘사하였다. 역원제와 봉수제는 왕명의 전달, 긴급 군사 정보의 송부, 공무 여행자와 관물 수송 등 봉건 전제군주제 하에서 행정상의 중추신경 구실을 했던만큼 매우 중요시되었다.


봉수와 역원의 위치는 읍을 중심으로 방위와 거리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역은 찰방역과 일반역으로 나누었다. 찰방역의 경우 그 소속 역명을 열거하였으며, 주요 역원은 그 시설과 연혁 등이 기술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조선 전기 지리지의 집성편(集成編)으로 속에 실린 지도와 함께 조선 말기까지 큰 영향을 끼친 지리지이다.


이 책은 지리적인 면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역사·행정·군사·사회·민속·예술·인물 등 지방 사회의 모든 방면에 걸친 종합적 성격을 지닌 백과전서식 서적이다. 따라서 조선 전기 사회의 여러 측면을 이해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자료로서 여러 학문에서도 중요한 고전으로 꼽고 있다.


그러나 세종 때의 지리지가 지녔던 장점인 토지의 면적·조세·인구 등 경제·군사·행정적인 측면이 약화되고, 인물·예속·시문 등이 강화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일본인들의 관심을 끌어, 1906년 후지가미(淵上貞助)가 활판본 A5판으로 인쇄하였고, 1912년 조선고서간행회에서 활판본으로 간행한 바 있다.


1960년대에는 서울대학교소장본을 바탕으로 한 영인본이 동국문화사에서 나왔으며, 1969년 민족문화추진회에서 최초로 한글로 번역한 ≪신증동국여지승람≫이 간행되었다.


≪참고문헌≫ 民俗誌로서의 輿地勝覽(金烈圭, 震檀學報 46·47,1979)

 

《동국여지승람》을 편찬한 관원의 직(職)과 이름


총재(總裁)


추충정난익대순성명량좌리공신 보국숭록대부 선성부원군 겸 영경연사(推忠定難翊戴純誠明亮佐理功臣輔國崇祿大夫宣城府院君兼領經筵事) 신 노사신(盧思愼)

추충정난익대순성명량좌리공신 숭정대부 의정부 우찬성 겸 지경연사 오위도총부 도총관 신 강희맹(姜希孟)

순성명량좌리공신 숭정대부 달성군 겸 홍문관대제학 예문관대제학 지경연 춘추관 성균관사 오위도총부 도총관 신 서거정(徐居正)

정헌대부 지중주부사 신 성임(成任)

순성명량좌리공신 자헌대부 전 공조판서 겸 지춘추관사 홍문관대제학 남원군 신 양성지(梁誠之)


찬집(纂集)


통정대부 성균관대사성 신 정효항(鄭孝恒)

통정대부 예조참의 신 김자정(金自貞)

통훈대부 승문원판교 지제교 신 이숙함(李淑瑊)

통훈대부 통례원 좌통례 신 박숭질(朴崇質)

어모장군 행 충무위 호군 신 박미(朴楣)

통훈대부 내자시 정(內資侍正) 겸 승문원참교 한학교수(漢學敎授) 신 정효종(鄭孝終)

통훈대부 행 성균관사예 신 박제순(朴悌順)

통훈대부 행 승문원교감 신 안처량(安處良)

통훈대부 행 승문원교검 신 이맹지(李孟智)

어모장군 행 오위도총부도사 신 김화(金澕)

봉렬대부 행 성균관전적(典籍) 겸 서학교수 신 조평(趙枰)

봉직랑 승문원교리 신 김석원(金錫元)

봉훈랑 행 성균관전적 겸 동학교수 승문원교검 신 조형문(趙亨門)

선교랑 수 이조좌랑 신 이복선(李復善)

선무랑 수 사헌부감찰 겸 승문원교검 신 박문효(朴文孝)

선무랑 수 성균관전적 겸 승문원교검 신 이의무(李宜茂)

선무랑 행 승문원박사 신 황린(黃璘)

계공랑 행 승문원저작(著作) 신 최한원(崔漢源)

종사랑 승문원 정자(正字) 신 이승건(李承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