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동포

[영상]러시아 록 전설 빅토르 최(Viktor Tsoi)

한부울 2009. 2. 5. 12:50

키질로르다 Kyzylorda http://blog.daum.net/han0114/17045853 

 

러시아 록 전설 빅토르 최 동상(銅像) 선다-Viktor Tsoi

[조선일보] 2008년 10월 28일(화) 오전 05:59

 

 

러시아 록음악의 '전설'로 불리는 고려인 빅토르 최(1962~90·사진)의 동상(銅像)이 내년 상트페테르부르크시(市)에 세워질 전망이다.


일간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 등 러시아 언론들은 27일 "상트페테르부르크시 문화위원회가 빅토르 최 동상 건립에 관한 팬들과 부모의 요청을 수용, 500만루블(약 2억5000만원)을 들여 2009년 8월 15일 빅토르 사망 19주기에 맞춰 동상을 건립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당초 빅토르가 이주해 살았던 곳으로 알려졌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최근 그의 출생지로 공식 확인됐으며, 빅토르가 1980년대를 풍미했던 록그룹 '키노(Kino)'를 결성한 곳이기도 하다. 시 문화위원회는 키노가 공연했던 루빈슈타인거리 등 빅토르와 관련이 있는 네 곳을 동상 건립 후보지로 선정하고, 내년 초 한 곳을 건립지로 확정할 예정이다.


1981년 키노를 이끌고 첫 공연을 한 이후 인기 절정에 있던 빅토르 최는 1990년 순회공연차 들른 라트비아 수도 리가에서 불의의 자동차 사고로 28살의 나이에 요절했다. 공산주의 소련에서 러시아 특유의 아름다운 선율에, 저항적이며 자유 지향적인 펑크록 스타일을 가미한 '그루파 크로비(혈액형)' 등 수많은 히트곡들로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모았다.


예술거리로 유명한 모스크바 아르바트에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추모의 벽이 생기기도 했고, 유명을 달리한 지 18년이나 됐지만 지금도 약 5만 명의 회원을 가진 빅토르의 팬클럽 '키노맨(Kinoman)'이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모스크바=권경복 특파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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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초이-Viktor Tsoi

 


빅토르 로베르토비치 초이(러시아어: Виктор Робертович Цой, 1962년 6월 21일 - 1990년 8월 15일)는 유명한 러시아의 록 가수이며, 전설적인 록 그룹 키노(КИНО)의 리더였다.


당시 소련 카자흐 공화국의 크질오르다에서 한국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 1962년 6월 21일 태어났다. 1990년 8월 15일 라트비아 리가에서 버스에 치여 요절했다. 빅토르 초이는 러시아 록의 선구자로 여겨지며, 아직까지도 구소련 국가의 많은 팬들이 그를 기억하고 있다.


키노의 노래 몇 곡은 한대수, 윤도현 밴드등에 의해 한국어로 번역되어 불려지기도 했다.


생애


데뷔 이전


빅토르 초이는 1962년 카자흐 공화국의 크질오르다에서 태어났다. 17세 때부터 노래를 작곡하기 시작했으며, 초기 곡들은 레닌그라드 거리에서의 삶, 사랑과 친구들과의 어울림 등을 다루고 있다. 노래의 주인공은 주로 한정된 기회만이 주어진 채 각박한 세상을 살아나가려는 젊은이였다. 이 시기에 록은 레닌그라드에서만 태동하고 있던 언더그라운드의 한 움직임이었으며, 음악차트등의 대중매체들은 모스크바의 팝스타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소련 정부는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가수들에게만 허가를 내 주었고, 집과 녹음실 등 성공이 필요한 많은 것들을 제공하여 길들였다. 그러나 록 음악은 소련 정부에게는 마땅치 않은 음악이었다. 록은 자본주의 진영의 록 그룹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 외에도 젊은이들을 반항적으로 만들었으며, 의사표현의 자유 등의 가치를 중시했다. 따라서 록 밴드들은 정부로부터 거의 원조를 받지 못했고, 정부의 영향력 아래 있는 관영 매체로는 전혀 소개될 수 없었으며, 마약 중독자나 부량자라는 편견으로 그려지는 수준이었다.


빅토르 초이는 18세 때 다니고 있던 세로프 예술 학교에서 성적부진을 이유로 쫓겨나게 된다. 그러나 퇴학에도 불구하고 그는 록 음악에 계속 열성적으로 참여한다. 이 시기에 이르러 그는 파티등의 장소에서 자신이 만든 곡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한 연주를 록 그룹 아쿠아리움의 멤버였던 보리스 그레벤시코프가 보게 되어, 그래벤시코프의 도움으로 그는 자신의 밴드를 시작하게 된다.


레닌그라드의 록 클럽은 록 밴드들이 연주할 수 있던 극소수의 장소에 속했다. 이곳의 연중 록 콘서트에서 빅토르 초이는 처음 무대에 데뷔하게 된다. 그는 두 명의 아쿠아리움의 멤버들이 연주를 맡은 가운데 솔로로 연주한다. 그의 혁신적인 가사와 음악은 청중을 사로잡았다. 그가 유명해지기 전에 그는 음악하는 사람들이 도전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도 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해 실험적으로 가사와 음악을 만들었다. 이런 시도는 성공을 거두고, 데뷰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멤버들을 모아 키노(러시아어 영화, 극장)를 결성한다. 그들은 빅토르 초이의 아파트에서 데모테입을 만들고, 이 테입은 처음엔 레닌그라드, 그리고 나중에는 전국의 록 매니아들에게 퍼지게 된다.


데뷔 초기


1982년 키노는 첫 앨범인 45(소록 피아트; 러시아어로 45라는 뜻)를 발표한다. 이 앨범의 이름이 45로 정해진 것은, 이 앨범의 재생시간이 총 45분이었기 때문이다. (후에 46(소록 쉐스트)라는 앨범도 냈다.) 이 앨범에서 빅토르 초이는 음악에 정치적 목소리를 내려는 의지를 내비친다. "외곽전철"이란 노래는 원치 않은 곳으로 가는 전차에 끼여 끌려가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런 가사는 분명히 당시의 소련에서의 삶을 은유한 것이었으며, 이 노래는 공연이 금지된다. 이 노래의 메시지로 노래는 반항운동을 하던 젊은이들 사이에 유명해지며 키노와 빅토르 초이는 그들의 우상으로 떠오른다. 제2회 레닌그라드 록 클럽 컨서트에서 키노는 자신의 정치색을 더욱 분명히 드러낸다. 키노는 빅토르의 반전음악인 "내 집을 비핵화지대로 선포한다."으로 1등을 차지하고, 이 노래는 당시 수만의 소련 젊은이들의 목숨을 빼았고 있던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더욱 더 유명해진다.


1987년은 키노의 해였다. 7집 앨범 "혈액형"은 "키노마니아"로까지 불리는 사회현상을 불러일으킨다. 글라스노스트로 조금 더 개방적이 된 정치상황은 그의 가장 정치색이 짙은 앨범인 "혈액형"을 만들 수 있게했다. 그러나 앨범의 메시지만이 청중을 사로잡은 것이 아니었고, 앨범에 담긴 음악또한 이전에는 듣지 못하던 것이었다. 대부분의 곡은 소련의 젊은이들을 향한 외침이었으며, 능동적으로 나가서 국가를 변화시키라고 호소했다. 몇 개의 노래는 소련을 옥죄고 있던 사회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이 앨범은 빅토르 초이와 키노를 러시아 젊은이들의 영웅으로 등극시켰다. 이후 몇년간 그는 몇 편의 성공적인 영화를 찍었으며 영화제에 그의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미국을 다녀오기도 했다.


이후 몇 개의 앨범이 더 나왔으며, 대부분이 정치적 메시지를 담았으며 밴드는 인기를 유지했다. 그는 소련 젊은이 모두의 우상이었지만, 그는 비교적 보통 수준의 삶을 살았다. 그는 계속 아파트 빌딩의 보일러 실에서 살며 일했다. 그는 자신의 직업을 즐기고 있으며 정부의 보조를 받지 못하고 있고, 자신들의 앨범은 공짜로 복제되어 퍼지기 때문에 밴드를 유지하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런 소박한 삶의 방식은 대중들이 그와 더욱 친밀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갑작스러운 사망

 

                                            모스크바 빅토르 초이 추모 그라피티 2


1990년 키노는 모스크바의 레닌 스타디움에서 컨서트를 열어 6만 2천의 팬들을 모았다. 1990년 8월 14일 다음 앨범의 녹음을 마쳤으며, 레닌그라드에서 다른 멤버들이 녹음을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15일 아침 리가 외곽에서 빅토르 초이가 운전하던 차가 마주오던 버스와 충돌하였다. 차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망가졌으며 타이어 하나는 결국 찾지 못했다. 8월 17일 소련의 유력 잡지인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는 다음과 같이 그의 의미를 간추린다.


빅토르 초이는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에게 다른 어떤 정치인들보다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는 한번도 거짓말하거나 자신을 팔아먹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빅토르 초이였고, 그렇게 기억될 것이다. 그를 믿지 않을 수 없다. 대중에게 보여지는 모습과 실제 삶의 모습이 다름없는 유일한 락커가 빅토르 초이이다. 그는 그가 노래부른 대로 살았다. 그는 록의 마지막 영웅이다.


놀랍게도 교통사고에서 온전하게 건질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은 다음 앨범에 쓰일 그의 목소리를 담은 테이프이었다. 목소리는 남은 멤버들의 나머지 녹음과 합쳐져 현재는 "블랙 앨범"으로 불리는 앨범으로 남아있다. 이 유작앨범은 밴드의 가장 인기있는 작품이며 러시아 록 역사에 있어서 키노의 자리를 확고하게 했으며, 빅토르 초이를 최고의 영웅이자 전설로 만들었다.


키노가 소비에트 음악과 사회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그들은 이전의 다른 어떤 그룹도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음악과 가사로 노래를 만들었다. 키노는 모던 러시아 록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키노는 아직도 러시아 전역에서 흔적을 남기고 있다. 레닌그라드 벽에는 그들에 대한 그라피티가 그려지고 있으며, 모스크바의 아르바트 가에는 한 벽 전체가 그들에게 헌정되었으며, 그곳에는 그를 기리기 위한 팬들이 모인다. 사망 10주기였던 2000년에는 러시아의 록 밴드들이 모여 빅토르 초이의 38번째 생일을 맞아 빅토르 초이의 헌정 음반을 만들었다.

 

                                 The Tsoi Wall in the Arbat District of Mosc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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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노Kino (band)

 

 

키노(러시아어: Кино́, 자주 대문자로 표기함.)는 빅토르 초이가 이끌었던 러시아 록 그룹이다. 1980년대 유명한 록 그룹이었다.


1981년 소련의 레닌그라드에서 밴드가 처음 결성되었다. 당시 이름은 Гарин и гиперболоиды였으며, 빅토르 초이, 알렉세이 루빈, 올렉 바린스키로 구성되었다. 몇 해 후 밴드 이름은 키노가 되었다. 록 음악이 반소비에트적인 것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에 지하 클럽에서 활동하였다.


1982년 여름, 키노의 첫 앨범 45 (이 앨범은 45분이다)가 녹음되었다. 이 앨범은 언더그라운드에서 퍼져 나갔으며 인기를 얻었다. 그 후로 Ночь 앨범이 1986년에 나와서 인기를 끌었다. 페레스트로이카 시대가 시작되면서 언더그라운드에서 벗어났으며 1988년 Группа Крови(러시아어: 혈액형) 앨범이 나와서 인기를 끌었다.


그 다음 해부터는 소련 밖으로 공연을 시작하였다. 1990년 8월 15일 빅토르 초이가 리가에서 교통 사고를 당하면서 앨범이 유실될 뻔했지만 데모 테이프는 살아 있었다. 이 앨범은 나머지 멤버에 의해서 복원되었으며 1991년 Чёрный Альбом으로 출시되었다. 앨범의 표지는 완전한 검은색이다.


소련에서의 인기는 이 밴드가 해체된 이후에도 지속되었으며, 많은 러시아의 벽과 담장 등이 Цой жив!(러시아어로 '초이는 살아 있다')와 КИНО 같은 문구로 뒤뎦혔다. 그러면서 그들은 이 밴드를 기억하게 되었다.


많은 키노의 노래는 빅토르 초이가 작업하였다. 노래의 주제는 자유와 민주주의, 삶에 관한 주제를 모두 포함한다. 또한 사회적인 것들도 주제가 되었다.


멤버

 


빅토르 초이 (Виктор Цой) - 리드 보컬, 기타

유리 카스파랸 (Юрий Каспарян) - 리드 기타

이고리 티호미로프 (Игорь Тихомиров) - 바스

게오르기 구리야노프 (Георгий Гурьянов) - 드럼


앨범


스튜디오 앨범 Studio albums


원본제목

번역제목

발매년도

45

 

1982

Начальник Камчатки

The Master of Kamchatka*

1984

Это не Любовь...

This is not Love...

1985

Ночь

Night

1986

Группа Крови

Blood Type

1988

Звезда по Имени Солнце

The Star Called the Sun

1989

Чёрный Альбом

The Black Album

1990

러시아어로 캄차카는 보일러실의 속어이다.


컴필레이션 Compilations and demos


원본 제목

번역 제목

발매년도

Неизвестные песни Виктора Цоя

The Unknown Songs of Viktor Tsoi

1982

46

 

1983

Последний Герой

The Last Hero

1989

История Этого Мира

The History of This World

2000


라이브 Live albums

원본제목

번역제목

발매년도

Концерт в Рок-Клубе

Live at the Rock Club

1985

Акустический Концерт

The Acoustic Concert

1987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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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자유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다." - 빅토르 최


빅토르 최는 1962년 6월 21일 카자흐스탄공화국 크질오르다에서 한국인 2세인 아버지 최동열과 우크라이나 출생인 어머니 발렌치나 바실예브나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5살 때 레닌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주하게 되는데, 후일 그의 사망 후 구소련연방에서 분리 독립한 카자흐스탄과 러시아 사이에서 빅토르 최의 국적논쟁이 벌어졌을 때, 카자흐스탄은 실질적인 출생지가 크질오르다 이므로 당연히 카자흐스탄이 그의 국적이라고 주장했고, 러시아에서는 그의 주 활동지가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였고, 그가 위대한 아티스트가 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곳이라는 주장을 펼치며 그의 국적은 당연히 러시아라고 주장했다. 이 논쟁은 결국 국적은 러시아로 하되, 출생지가 카자흐스탄임을 반드시 표시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지금도 카자흐스탄인들에게 빅토르 최가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어보면, 즉시 카자흐스탄인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리고 카자흐스탄을 대표하는 13인의 위인 중 한명으로 손꼽는다. 이 에피소드 하나만으로도 그의 존재가 얼마나 큰 것인지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


그림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져 세로브 미술학교에 입학, 1974년 막심 빠쉬코프와 함께 교내에서 "팔라타 세스토이 (제6병동)"라는 그룹을 결성하고, 빠쉬코프에게서 처음 기타를 배우고, 그의 집에서 비틀즈, 롤링 스톤즈의 음악을 접하며,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저항적이고 자유지향적인 록은 당시 소련의 공산당 체제하에서는 반국가적인 노래로 간주되어 록을 연주한다는 이유로 퇴교 당하고 말았다. 문학과 음악 쪽은 더욱 천재성을 보이는데, 이미 열다섯에 시를 쓰고, 그 시에 곡을 붙여 노래를 만들었다.


퇴교 후 방황 끝에 다시 시립 제61기술전문학교에 합격 목각을 전공하게 되었고, 재학 중 알렉세이 르빈이라는 친구를 만나, 1981년 알렉세이 르빈, 올레그 발리스키와 함께 그룹

Гарин и Гиперболоиды(가린과 쌍곡선) 결성하게 된다. 또 이시기에 아르까지나 라는 여학생과 사랑을 나누게 되는데, 아르까지나는 서로 사랑하면서도 평생 동안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의 아픔을 간직하게 한 여인이었다. 그의 노래 "8학년 여학생"은 아르까지나를 위해 만든 노래였다.


그룹을 결성하고, 거리 연주 등에 몰두하던 빅토르 최는 어느 날 우연히 당대 최고의 록그룹 "아크와륨"의 리더 보리스 그레벤쉬코프를 만나면서, 많은 영향을 받음과 동시에 그로인해서 록그룹협회에 가입하게 되고, 당대의 쟁쟁한 록그룹과의 교류를 통해서 더욱더 음악적 완성도를 높여갔다.


또, 보리스 그레벤쉬코프는 빅토르 최의 음반을 내주기 위해 그의 프로듀서가 되어주었고 빅토르 최는 올레그 발리스키가 탈퇴한 "가린과 쌍곡선"을 재편성하게 되는데, 그렇게 해서 탄생한 그룹이 바로 KINO("영화"라는 뜻)로써 구소련 역사상 가장 위대한 록그룹이다.


녹음을 마치기 한 달 전에 그는 마리안나와 동거하게 되는데, 마리안나는 초창기 KINO의 매니저 역할을 담당했다. 이 마리안나와의 동거도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그 이유는 당시 빅토르 최는 별 수입이 없었고, 인종차별 감정이 있는 구소련의 특성상 검은 머리에 노란피부를 가진 이 동양계 젊은이를 탐탁하게 보는 부모들은 없었다.


빅토르는 단칸방에서 마리안나와 동거를 시작했고, 생활고로 인해 많은 시련을 겪게 되었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마침내 녹음이 끝나고, KINO의 제 1집이 완성되었다.


KINO 1집, 빅토르 최의 최초의 앨범명은 "KINO 45"인데, 뒤의 45는 연주시간이 45분이라 즉흥적으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첫 번째 앨범이 나왔지만, 대중적인 지지를 아직 얻지 못하고 있던, 빅토르 최는 여전히 시련의 나날들이었다.


제61기술전문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수료로 마친 그는 미장공이 되어 일해야 했다. 그의 미래는 여전히 어두운 것만 같았다.


※ 시립 제61기술전문학교에 현관 앞 정면 기둥에는 가장 자랑스러운 졸업생으로 빅토르 최의 사진이 걸려 있고, 그의 작품이 학교를 장식하고 있다.


빅토르 최와 KINO는 첫 번째 앨범 발표후, 같은 해 두 번째 공식앨범인<유명하지 않은 노래들>을 발표했는데, 이 앨범 속에는 초기 빅토르 최의 히트곡 중하나인 "마지막 영웅"이 실려 있었다. 모스크바에서 열린 록그룹 경연대회에서 주최 측의 애매한 판정으로 참패당한 KINO는 이 일로 인해 내부분열이 생겨 알렉세이 르빈이 탈퇴해 버렸다.

 

                               Posledniy Geroi(The Last Hero)

빅토르 최는 심한 절망에 빠졌다. 그의 시련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1984년 그는 마리안나와 정식으로 결혼을 하게 되었다. 정식으로 결혼을 하게 되자. 빅토르 최는 노래말고, 실질적으로 돈이 생기는 일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음악 활동을 하면서, 일할 만한 직장은 그리많지 않았다. 힘들게 힘들게 구한 일자리는 캄차뜨가 보일러실의 화부였다.

 

                                               Kamchatka

그는 여기서 밤새워 일하며, 노래를 만들고 불렀다. 그의 세 번째 앨범 <캄차뜨가의 대장>이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훗날 그의 사후에 이 보일러실은 러시아의 자유와 저항을 상징하는 성지가 되었고, 이 작은 보일러실에서 열었던 그만의 작은 콘서트는 이후 레닌그라드 언더그라운드의 신화가 되었다.  힘든 삶 속에 하나의 위안이 있었다면 "나는 선언한다"라는 노래로 러시아 국제 평화재단의 반전가수상을 수상한 것 정도였다.


1985년 그의 평생에 가장 기쁜 일이 생겼는데, 마리안나와의 사이에 그를 빼어 닮은 아들 샤샤 최가 태어난 것이다.


같은 해, 레닌그라드 록그룹협회 주최의 콩쿨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그 실력을 입증 받았다. 그러나 시중에 나와 있던 KINO의 네장의 앨범 , <유명하지 않은 노래들>, ,<캄차뜨가의 대장>은 여전히 다수 대중들의 관심 밖에 있었다. 그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언더그라운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KINO멤버 빅토르 최, 유리 까스빠란, 찌토프, 구리야노프는 혼신의 힘을 다해 앨범 <Ночь 노치>에 녹음을 마쳤지만, 그 음반은 녹음기사와의 문제로 그해 출시되지 못했고, 대신 다섯 번째 앨범으로 <이것은 사랑이 아니다>를 발표했는데, 이 음반 역시 흥행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KINO는 다시 시름에 빠졌다.1986년 지난해 녹음기사와의 문제로 출반되지 못했던 앨범 <Ночь 노치(밤)>가 출반되었다. 정식으로 발매되었다면, 다섯 번째 앨범이 되었을<Ночь 노치(밤)>는 마치 서자처럼 KINO의 여섯 번째 앨범으로 세상에 발표되었다.


물론 누구도 성공하리라고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여섯 번째 앨범<Ночь 노치(밤)>는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내며, 발매 두 달 만에 50만장을 기록하더니 몇 달 지나지 않아 200만장이나 팔려나갔다. 그룹 KINO의 첫 번째 밀리언셀러가 탄생한 것이었고, 드디어 KINO가, 빅토르 최가 날개를 펴고 날아 오른것이었다.


소련연방 음악차트 1위를 달리던 KINO는 또 한 번의시련에 직면하게 되는데, 주력 멤버였던 찌토프가 탈퇴한 것이었다. 빅토르 최는 급거 찌호미로프를 영입하지만 초기에 멤버들 간의 호흡이 맞지 않아 조금 고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곧 정상궤도로 올라서자 1988년 천재감독 라시드 누그마노프와 손을 잡고, 영화 한편을 제작하게 되는데, 이 영화가 그 유명한 <이글라>("이글라"는 우리말로해석하면 "바늘"이라는 의미로 영화에서는 마약을 놓는 주사바늘을 뜻한다)였다.


이 영화 속의 배경음악으로 KINO의 일곱 번째 앨범<руппа Крови(끄루빠끄로위)>의 곡이 쓰여 졌다. 영화 <이글라>는 1988년 소련 역사상 최대인 무려1500만 명의 관중을 동원했고, 특히, 영화중 철길을 따라 걸으며 빅토르 최가 "끄루빠끄로위(혈액형)"를 부르는 장면은 아직도 소련영화 베스트 장면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이글라>는 그 해 오데샤에서 열린 황금의 쥬크영화제에서 빅토르 최를 최우수 배우로 우뚝 서게 해주었다. 이 한편의 영화와 그 O.S.T 성격이 강한 앨범<혈액형>으로 빅토르 최와 그의 그룹 KINO는 소련 전역에서 인정받는 최고의 록그룹으로 확고히 자리매김 하게 되었다.


두 번째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앨범<혈액형>에는 그를 대표하는 대표곡 중의 대표곡인 "끄루빠끄로위(혈액형)"가 실려 있는데, 그 노랫말을 한번 음미해 보자


어둡고 추운 곳, 그러나 그 거리는 우리의 발자국을 기다린다.

군화위엔 별빛의 먼지...

푹신한 소파, 십자나사,

제때에 당겨지지 않는 방아쇠

햇빛 비춰지던 시절이란 눈부신 꿈속에나 있을 뿐

치뤄야 할 댓 가가 아무리 크다 해도,

헐값의 승리는 바라지도 않는다.

전우의 가슴을 밟고 싶지 않기에...

너와 함께 있을 수 있다면

단지 너와 함께 있을 수 있다면

그러나 하늘 높이 솟은 별은 나를 전장으로 불러낸다.

내 소매 위에는 혈액형

내 소매 위에는 나의 군번전투로 향하는 내게 행운을 빌어주게

이 들판에 남게 되지 않기를

이 들판에 남게 되지 않기를

전투로 향하는 내게 행운을 빌어주게


젊은이들은 이 속에 숨어있는 의미를 곧 알게 되었다.


이 노랫말 속에 숨은 코드란 "이 세상은 바로 너희들의 것이다. 그 어떤 댓 가를 치룬다 해도 너희 자신이 스스로 바꿔야 한다. 싸워라! 황량한 들판에 눕지 말고, 힘껏 싸워라! 너희들과 함께 있겠다...전투에서의 승리와 행운을 빌며..." 집집마다 "끄루빠끄로위(혈액형)"가 흘러 나왔고, 젊은이들은 목청껏 이 노래를 부르며 거리를 활보했다.


소련 전역이 KINO의 노래 속에 파묻혔다. 그들의 인기를 말해주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KINO는 첼리아빈스크의 한 대학교에 초청공연을 가게 된 적이 있었다. 긴 기차여행 끝에 첼리아빈스크에 도착한 KINO일행은 역 대합실에서 검문을 받던 중 평소 그들이 부르는 노래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기관원등에게 체포되어 경찰서로 연행된다. 그 곳에서 그들은 체아빈스크를 떠나라는 통보와 함께 연금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분하지만 어쩔 수 없었던 빅토르 최가 창문으로 무심히 고개를 돌린 순간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손에손에 촛불을 든 대학생들이 경찰서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것도 계속해서 숫자가 불어나고 있었다. KINO가 공연하기로 했던 대학교의 학생들이 그들이 경찰서에 연금된 사실을 알고, 촛불 시위를 시작한 것이었다.


촛불 대열 중 한 여학생이 소리쳤다.


"우리에게 KINO를 돌려 달라!"

그러자 여기저기서 함성들이 들려왔다.

"우리에게 빅토르 최를 돌려 달라!""우리는 KINO를 원한다!"


처음에는 조그맣던 함성이 점점 불어나는 인원으로 엄청나게 메아리치기 시작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경찰서장은 계속되는 시위에 소요가날 것을 우려하여 결국, 공연을 허락하고 말았다. KINO멤버들과 빅토르 최가 경찰서 문을 나서자 촛불시위대는 순식간에 촛불호위대가 되어 KINO를 둘러싸고 대학운동장으로 향했다. 잠시 후 운동장에서는 KINO의 "혈액형"이 빅토르 최와 학생들의 합창 속에 울려 퍼졌다.


공연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KINO 아니 빅토르 최로 인하여, 젊은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경찰서라는 공권력에 당당히 맞서서 촛불시위와 촛불행렬로 그들의 영웅을 구출했고, 그들의 뜻을 관철시켰다. 변화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1989년 발매된 여덟 번째 앨범 <마지막 영웅>에서 빅토르최는 타이틀곡  "마지막 영웅"과 "혈액형"에 필적할 만한 또 다른 걸작 대표곡을 선보이는데, 이 노래는 대중음악으로나, 클래식 음악으로나 소련 역사상 유래가 없는 규모인 모스크바 올림픽 주경기장을 가득 메운10만이 넘는 대관 중속에서 열린 KINO 콘서트에서 울려 퍼져 당시 소련 젊은이들의 자유에 대한 의지를 강력하게 대변하는 가사로 열광적인 환영을 받는다.


그 가사내용 중 일부를 보면,


열기와 함께 녹색 유리가 불꽃과 함께 연기가

달력의 그물로부터 날들을 잡아 빼앗는다.

빨간 태양은 타오른다.

날들도 함께 타오른다.

활활 타오르는 도시에 그늘이 내린다.

우리의 가슴은 변화를 요구한다.

우리의 눈은 변화를 요구한다.

우리의 웃음에,

우리의 눈물에,

그리고 우리의 맥박에, 변화!

우리는 변화를 기다린다. ------중략


그렇다, 이곡이 바로 "혈액형"과 쌍벽을 이루는그 유명한 빅토르 최의 대표곡 "뻬레멘(변화)"이다. 이 노래는 그를 페레스트로이카의 전령사로 만들었고, 저항과 자유의 투사로 불리게 했다. 이 "변화"가 울려 퍼질 때마다 젊은이들의 가슴은 항상 이렇게 같이 노래했다.


우리의 심장이 변화를 원한다.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을 바꿔야만 한다.

그리고 싸워야만 한다.

우리가 바라는 소중한 그것!바로 새로운 "변화"를 위하여.....


같은 해 아홉 번째 앨범 <태양이라는 이름의 별>이출반 되었는데, 이 앨범은 무려 50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하였다. 공식 판매기록이 500만장이라면, 해적판이 넘쳐나던 소련의 상황을 볼 때 적어도 2000만장 이상의 앨범이 판매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빅토르 최와 KINO는 구소련의 젊은이들 사이에서저항과 자유를 상징하는 신으로까지 추앙받으며, 끝없는 날개 짓을 계속했다.

 

Zvezda Po Imeni Solntse  (A Star Called Sun)

1990년 6월 24일 구소련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 모스크바 올림픽 주경기장 루즈니끼 스타디움에서 일어났다. 올림픽이나 기타 체육관련 이벤트가 아닌 록그룹의 콘서트를 위해 성화가 타올랐다. 모스크바 올림픽 이후 10년 만에 타오른 성화는 이미 "빅토르 최"가 구소련연방에 신화가 되었음을 알리듯이 밝게 빛났다. 그 성화를 배경으로 큰 원을 만들고 있는 무려 10만여(구소련 역사상 최다관중) 대인파의 중심점에는 검은 머리와 검은 눈망울을 가진 빅토르 최와 그의 그룹 KINO가있었다.


드디어, 그들의 연주가 시작되고, 아직도 건재한 공산당체제 하에서 자유와 저항의 노래가 빅토르 최 특유의 펑크록과포크록의 형태로 루즈니키 스타디움을 가득 채웠다.


마지막 곡으로 빅토르 최는 그가 출연했던 4편의 영화 중 <이글라> 다음으로 널리 알려진, <아싸>의 삽입곡이자,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에 정치적 구호가 되기도 하였으며, 개혁의 물결 속에 휩쓸린 소련 전국 각지에서 울려 퍼졌고, 빅토르 최와 KINO의 콘서트에서 항상 불려졌던, 젊은이들의 여망 "뻬레멘(변화)"을 절규하듯 불러댔다.


스타디움은 빅토르 최와 팬들이 뿜어대는 열기 속에 곧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마침내 노래를 끝내고 빅토르 최는 팬들을 향해 마지막 멘트를 던졌다.


"여름에 새로운 앨범이 나옵니다. 그럼 다시 만날 때까지..."


하지만, 팬들은 다시는 빅토르 최의 콘서트를 볼 수 없었다. 한 달여 후, 그는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그가 약속했던 새로운 앨범은 유작이 되어 팬들의 곁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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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Странная Сказка (strange story)

 

                                       Печаль Pechal (슬픔)

 

                     The Black Album (Kino album) Звезда (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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Группа крови Grupa Krovi.(Blood Type)

 

 

Теплое место, но улицы ждут
Отпечатков наших ног.
Звездная пыль - на сапогах.
Мягкое кресло, клетчатый плед,
Не нажатый вовремя курок.
Солнечный день - в ослепительных снах.

Группа крови - на рукаве,
Мой порядковый номер - на рукаве,
Пожелай мне удачи в бою, пожелай мне:
Не остаться в этой траве,
Не остаться в этой траве.
Пожелай мне удачи, пожелай мне удачи!

И есть чем платить, но я не хочу
Победы любой ценой.
Я никому не хочу ставить ногу на грудь.
Я хотел бы остаться с тобой,
Просто остаться с тобой,
Но высокая в небе звезда зовет меня в путь.

Группа крови - на рукаве,
Мой порядковый номер - на рукаве,
Пожелай мне удачи в бою, пожелай мне:
Не остаться в этой траве,
Не остаться в этой траве.
Пожелай мне удачи, пожелай мне удач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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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chka Sigaret (Pack of Cigarettes)

 

 

Ya siju i smatryu v tchujoe niebo iz tchujóva akna
I ne viju ni adnói znakomói zviezde
Ya xadil pa vcem darogami i tuda i siuda,
Abernulcya i ne smog ,razglyadiet slyade

Na esli est' v karmane pachka, sigaret
znachit vció ne tak uj plóxa na cevódnyashnii den
I biliet na samalíót s serebristm krilóm
Chto svletaya os tavlyaet zemle lish ten'.

I nikto ne xatiél byt' vinavadom bez vina
I nikto ne xatíel rukami jar zagriebat
A biez muziki na miru smiért ne krasna
A biez muziki ne xótchetcya prapadat'.

Na esli est' v karmane pachka, sigaret
znachit vció ne tak uj plóxa na cevódnyashnii den
I biliet na samalíót s serebristm krilóm
Chto svletaya os tavlyaet zemle lish 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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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emen Перемен (Wind of Changes)
(변화)

 

 

Вместо тепла - зелень стекла,
Вместо огня - дым,
Из сетки календаря выхвачен день.
Красное солнце сгорает дотла,
День догорает с ним,
На пылающий город падает тень.
Перемен! - требуют наши сердца.
Перемен! - требуют наши глаза.
В нашем смехе и в наших слезах,
И в пульсации вен:
"Перемен!
Мы ждем перемен!"
Электрический свет продолжает наш день,
И коробка от спичек пуста,
Но на кухне синим цветком горит газ.
Сигареты в руках, чай на столе - эта схема проста,
И больше нет ничего, все находится в нас.
Перемен! - требуют наши сердца.
Перемен! - требуют наши глаза.
В нашем смехе и в наших слезах,
И в пульсации вен:
"Перемен!
Мы ждем перемен!"
Мы не можем похвастаться мудростью глаз
И умелыми жестами рук,
Нам не нужно все это, чтобы друг друга понять.
Сигареты в руках, чай на столе - так замыкается круг,
И вдруг нам становится страшно что-то менять.
Перемен! - требуют наши сердца.
Перемен! - требуют наши глаза.
В нашем смехе и в наших слезах,
И в пульсации вен:
"Перемен!
Мы ждем перемен!"

온기 대신 - 유리의 녹색빛
불 대신 - 연기
달력의 그물로부터 하루가 포착되었고
붉은 태양은 모든 것을 남김없이 불사르네
하루는 그와 함께 다 타버리고
불타는 도시에는 여름이 깔리네
활활 타오르는 도시에 그늘이 내린다.
우리의 가슴은 변화를 원한다.
우리의 눈은 변화를 요구한다.
우리의 웃음에, 우리의 눈물에, 그리고 우리의 맥박에는 변화!!
변화, 우리는 변화를 기다린다.

전기불이 우리의 하루를 연장시키고
성냥곽은 비어 있지만
부엌에는 푸른 불빛으로 가스가 타오르고, 손에는 담배,
식탁에는 차, 이 웃음은 단순하기만 해
그리고 더 이상은 아무것도 없네, 모든 것은 우리 안에 있다네..

우리는 눈의 현명함과 재주있는 손동작을 자랑할 수 있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는데 이 모든 것은 필요 없네
손에는 담배, 식탁위에 차
그리고 세상은 닫기어 가고
갑자기 우리는 무언가 바꾸기를 두려워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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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최가 죽고, KINO가 해체되었지만, 루즈니끼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그가 약속했던 새로운 앨범 Черний(쵸르늬)는 유작앨범이 되어 발표되었다.


The Black Album (Kino album)

                                      Завтра война (War begins tomorr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