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동포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

한부울 2009. 4. 4. 11:58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

[미주한국일보] 2009년 03월 25일(수) 오전 05:46


1년2개월 이라크 참전후 귀환한 이진호 병장

“어떤 고난, 역경이라도 극복할 자신감 생겨”


지난 2007년 12월 7일, 하와이 소재 ‘스코필드 버락스’부대 소속 의무병(Combat Medic)으로서 이라크로 파병됐던 글렌뷰 거주 이진호 병장(24)이 1년이 넘는 전장에서의 복무를 무사히 마치고 그리운 부모 형제가 있는 시카고로 돌아왔다.


중서부 ROTC 문무회 이재구 전 회장의 차남인 이 병장은 바그다드 인근에 주둔한 찰리컴퍼니 1-21 대대 산하 찰리 중대 소속으로 보직은 의무병. 그러나 말이 의무병이지 전쟁터라는 특성상 보병으로서의 임무도 수행해야 하는 1인 2역의 참전용사였다. "한번 출동할 때마다 챙겨야 하는 군 장비는 방탄조끼, 총, 탄창 7개(총 210발), 물 3리터, 헬멧 등 일반 보병들이 사용하는 장비가 있습니다. 여기에 저는 의무병이니까 주사기, 약품, 반창고, 간단한 수술 도구, 링거 등을 준비해야 하니 그 무게는 100파운드에 달합니다." 이 병장은 "화씨 130도가 넘는 뙤약볕에서 가만히 서 있는 것조차 힘든데 100파운드라는 무게를 온 몸에 쥐고 이리저리 임무 수행을 위해 뛰어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이 병장의 일과는 일반적으로 3일은 순찰, 3일 경계, 3일은 대기 등으로 이루어진다. 순찰을 나갈 때는 보통 7~8명이 탑승하는 전차 3대가 1개조를 구성해 나간다. 수상한 인물을 체포하기 위해 가정집이나 은신처 등을 급습하는 것 또한 순찰조가 수행해야 할 임무다. "위험한 인물을 체포하는 작전은, 흔히 영화에서나 나오는 것처럼 대개 자정 무렵에 전개됩니다. 눈에는 적외선 투시경을 쓰고 전차에서 재빨리 내려 표적 장소로 민첩하게 돌격해 들어가게 되지요. 1조 전차에 타고 있는 병사들은 습격을, 2조 전차에 타고 있는 병사들은 주로 주변의 상황을 감시하거나 도망가는 이들이 있는지 살피고, 만약 있다면 그들을 쫓는 임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이 병장은 "나는 주로 3조 전차에 탑승하게 된다. 1, 2조 병사들의 역할을 도와야 함은 물론 누군가 다치는 사람은 없는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예의주시 해야하기 때문에 그 긴장감과 책임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크다"고 설명했다.


전장이라는 특성상 드물지 않게 다치거나 죽는 병사가 나오는 것이 사실이며 실제 이 병장도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이 있다. "이라크 반군들이 때로는 폭탄을 던지기도 하구요, 초소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병사들을 향해 총을 쏩니다. 한 번은 제가 보초를 서고 있는데 제 바로 앞에 총알이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또 전차를 타고 순찰을 도는 도중 제가 탄 전차가 폭탄 위를 지나갔는데 다행히 기폭제만 터지고 폭탄 자체가 터지지는 않았습니다." 이 병장은 "폭탄 위를 지나갔었을 때는 참으로 살았다는 것이 기쁘고 흐뭇해 같은 전차에 탑승했던 전우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의무병으로서 이 병장의 활약도 대단했다. "지난해 4월 순찰을 나갔을 때 제 바로 앞에 있던 전차가 폭탄 공격을 받았습니다. 머리에 피 흘리는 병사, 발목이 꺾인 전우, 그리고 다리가 아예 완전히 날아간 병사가 있었어요. 우선 다리가 사라진 병사를 치료하기 위해 숨을 쉬나 살펴보고 링거를 놨습니다. 혈액이 빨리 순환하는 약을 투여하고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모르핀을 주사했지요. 다행이 응급 헬기가 15분만에 도착했습니다." 이 병장은 "당시 실제로 큰 부상을 당한 전우를 치료하는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정신은 멀쩡했지만 손이 떨려서 치료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오는 6월이면 전역하게 되는 이 병장은 제대 후 캘리포니아에서 간호사와 의사의 중간 역할을 하는 PA(Physician Assistant)가 되기 위해 학업에 매진할 예정이다.


이진호 병장은 “수시로 이라크 저격수들이 총을 쏘고, 폭탄이 곳곳에 숨겨져 있고, 샤워는커녕 제대로 된 음식 하나 변변한 것 없는 이라크에서 1년 2개월을 버텨 냈다. 전쟁을 경험해 보니 '지금 내가 살아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함을 느낀다. 이제 앞으로 내 삶에서 어떠한 고난과 역경이 닥쳐와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면서 "이 사회와 이웃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박웅진 기자>

 

사진1: 1년 2개월간의 이라크 복무를 무사히 마치고 귀환한 이진호 병장.

사진2: 바그다드 인근 주둔 찰리 중대 소속의 이 병장이 순찰중 짬을 내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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