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동포

국제미아로 백년을 떠돈 고려인

한부울 2009. 1. 22. 20:14
 

국제미아로 백년을 떠돈 고려인

[SBS] 2007-03-26 17:21 

 

2007년은 고려인들이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에 따라 중앙아시아로 내쫓긴 '강제이주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동안 중앙아시아에 사는 동포들에게 암울한 시대에 당한 고초를 곁에서 직접 들을 수 있었다. 필자는 최초의 강제이주지이자 역사의 현장인 카자흐스탄의 우소토베가 늘 궁금했었다. 고려인들의 아픔이 서린 '우소토베 탐방기'와 고려인들의 이야기를 시리즈로 소개한다.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으로 카자흐스탄, 우즈베케스탄, 키르기즈스탄, 타지키스탄 등 중앙아시아로 추방됐다가 1989년 소비에트연방 해체 이후 러시아 연해주로 돌아온 고려인들이 무국적 상태의 국제미아로 떠돌고 있다.


최근 1990년대 이후 연해주로 돌아온 약 5만여 명의 고려인중 30% 이상이 러시아 국적을 갖지 못한 채 지금도 이지역을 떠돌고 있다. 이들은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 독립공화국들이 민족주의 바람을 타고 자국의 고유언어를 채택함에 따라 교육문제와 경제활동에 불편함을 느껴 불가피하게 옛 소련이나 중앙아시아 거주국 여권만을 갖고 연해주로 이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새롭게 러시아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전에 살던 국가에서 관광증, 무죄증명, 징세증명을 포함해 모두 16~30가지의 서류를 받아와야 한다.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어려워 복잡한 서류절차, 서류발급과 왕복교통 비용, 중앙아시아 공화국 쪽의 비협조적인 자세는 국적 취득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다.

 

                     ▲ 우즈벡에서 키르기즈의 할머니에게 온 고려인 후손 4대 가족들


이중에 할머니를 제외하고 거주여권이 없는 무국적자이다


국적이 없다보니 이들은 교육이나 의료보험, 연금 등의 혜택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땅이나 주택을 매매하는 등의 경제활동도 전혀 할 수 없다. 3개월짜리 거주등록증도 없는 경우 일반 통행에도 불편을 겪는다. 게다가 거주등록 및 국적법이 강화되면 신원증명이 전혀 없는 수천 명의 고려인들은 강제 추방당할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 없다.


2004년 우즈베키스탄에서 키르키스로 이주한 박/알렉산드로 씨(23)는 우즈베키스탄 여권도 분실, 임시 거주등록도 못 해 경찰에게 발각되면 강제로 추방당할 상황에 처한 것으로 조사됐다. 우즈베키스탄 출신인 노가이 샤샤 씨는 1998년 이민등록카드가 생기기 이전에 이주한 까닭에 아직까지 러시아 국적을 취득하지 못했지만 어려운 경제형편 때문에 각종 증명서를 떼기 위해 우즈베키스탄까지 갈 엄두도 못낸다고 한다.


예를들어서 우즈베키스탄의 경우, 우즈벡어를 국어로 법제화했기에 모든 관공서나 일반기업 및 단체에서는 러시아어를 사용할 수가 없게 되었는데 고려인들은 오랜 기간동안 러시아체제하에서 러시아어로 교육을 받아왔기에 러시아연방시절 고위공직에 있었다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우즈벡말과 글을 모르기 때문에 자연히 직장에서 물러나야 했다.


이러한 현상은 중앙아시아 CIS 국가들이 독립하고, 독립 국가 고유의 언어를 쓰는 정책과 소수 민족에 대한 회교 민족주의로 인하여 상당수의 고려인들이 CIS를 떠나고 있으며, 대부분 원거주지였던 극동 러시아로 가야하지만, 비싼 교통비를 들여 갈 수 없는 일부는 그 중간기착지로 그나마 아직은 개방적인 키르키즈로 오고 있는 실정이다.


언어의 경우 중앙아시아의 각 민족 공화국이 독립 이후 자기 민족의 언어를 러시아어 대신 공화국 내 공식 언어로 채택함에 따라 여타 소수 민족들은 러시아어와 공화국 민족어, 그리고 자기 민족어를 습득해야 하는 3중 언어의 부담을 안게 되었다.


이것은 단순히 언어의 차원을 넘어 사회, 경제적인 불평등을 야기하고 있다. 고려인과 같은 소수 민족은 거주국의 민족어를 배우지 않을 경우 모든 면에서 차별 대우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고려인이 공식 언어를 구사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일자리를 잃고 있다.

 

         ▲ 중앙아시아의 대표적인 언론인으로 2005년 레몬혁명의 도화선을 지핀 장본인으로


우즈벡고려인들의 문제에 심각성을 설명하고있다.


특히 고려인들은 대부분 공무원, 교사, 의사, 연구 종사자, 집단 농장장 등 사무직 또는 관리직에 종사하고 있어 사태는 더욱 심각한 지경이다. 이러한 실직자들이 단기간에 공식 언어를 습득하여 재취업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까닭에 상황은 비관적이다.

일자리를 잃은 이들은 자영업 또는 자영농에 종사하거나 단순 노동자 또는 도시 빈민으로 전락하고 있다. 일부 운 좋은 사람들만이 현지 진출 한국 기업에 취업할 기회를 얻고 있을 뿐이다. 민족어를 공식 언어로 채택하는 정책은 한 때 일보 후퇴했었으나 우즈베키스탄에서 다시 2007년부터 자국어만을 공식 언어로 채택하는 법을 시행하는 것을 필두로 구소련시절 말살된 자국민족어를 부활시키는 정책이 다시 시행되고 있으며 이것은 막을 수 없는 대세이다.


고려인들은 심정적으로 마음의 고향이 모두 원동, 즉 연해주라 불리는 러시아영토인  지금의 블라디보스톡지역이다. 대개의 고려인들은 아버지의 나라, 할아버지의 나라인 러시아의 원동에서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러시아로 이주하는 과정이란 쉽지가 않다. 항공료 또는 열차비용도 만만치않거니와 지금 당장움직일 형편이 되지않기 때문이다. 대개의 경우, 친인척이 있는 중앙아시아의 가까운 곳으로 점점 다가와 다시 재도약의 기회를 삼는 유입이 만연하고 있다.


한국가서 살라고 해도 살사람은 없다


중앙아시아 및 러시아에 거주하고 있는 고려인들에게 만약 한국정부가 와서 영원히 살으라고 해도 살사람은 별로 없을것이다

 

                                            ▲ 키르기스스탄의 고려인노인행사


고려인들의 크고 작은 행사에는 반드시 한복을 입고 흥에 겨워 춤추는 한민족문화정체성이 스며있다.


이유는 이미 몇 세대를 거치면서 그들의 뿌리깊은 사고의 중심에는 러시아국민의 일원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고려인4-5세의 경우, 한민족정체성이나 한민족공동체의 구성원이라는 의식은 아주 희박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이미 민족허무주의의 불합리성을 몸소 체험한 부류이기에 문화적으로나 사회심리학적으로 러시아화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족문화유전자의 놀라운 생명력으로 조상의 조국인 한민족문화에 대한 관심과민족의식만은 조국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귀소성이 빨리 회복될 수 있다. 지금은 한민족문화정체성이 거의 파괴된 상태이므로 문화정체성을 우선 회복하고 재구축하는 일이 정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러시아에서 태어나고 자란 많은 젊은 고려인에겐 한국은 우리나라가 아닌 외국의 하나인 게 현실이다. 밀려오는 한국 물품과 문화를 접하면서 핏줄 속을 면면히 흐르는 한국인의 정체성(正體性)을 인식하는 젊은이가 조금씩 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다만, 이들은 잘사는 조상의 나라인 고국에 가서 최소한 일하고 싶어 하며 고국의 이러한 경제적 바탕에 기인하여 경제적인자립을 하고 싶어 한다. 이곳 키르기즈에는 독일대사관이 있는데, 독일 역시 러시아로부터 강제이주당한 후손들이 이곳에 살고 있었다.


얼마 전 독일대사를 만나 이문제 관해 접근해보았다. 독일정부의 재외동포 이주문제는 극히 간단하다. 어느곳에 살더라도 독일민족이라는 근거만 있다면, 그들이 원하는 경우 즉각 귀환시키고 있다며 그것은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한국정부는 그렇지않다. 몇 해 전 이름있는 국가보훈처에서 공인한 독립운동가 후손을 한국에 한번 보내는데도 얼마나 까다로운 조건들이 붙었는지… 하물며 이름없는 고려인들이야 말해 무엇하랴….


다양한 방법으로 이들을 도와야…


중앙아시아지역 거주 고려인들과 합작을 통한 경제활동과 각종교류등이 증진되어야한다. 고려인들을 상대로 한 고국자본의 진출은 국가발전에도 기여할수있으며 현지고려인들에게모국에 대한 자부심으로 다가설 수 있고 진출기업들은 가급적 고려인들을 육성하고 활용하여 경제적인 자립도를 높여주는 것도 정부가 주도해야 할일이다.

 

      ▲ 고려인의 실상을 이곳에 와서 처음 알았다는 한국의 젊은 사업가 '허준'사장이 귀국후,


키르기즈에 거주하고있는 고려인할머니들에게 전해 준 전기장판선물로 받은 고려인할머니들


고려인에게는 대한민국이라는 조상의 나라가 있으며 이 나라가 경제적으로 활기있게 성장하고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이 큰 힘이 되고 그나마 자부심이다. 한국의 자본이 투자되고 많은 기업인들이 진출함으로써 현지의 고려인들은 일자리를 얻고 경영을 배우는 기회를 가지게 해야 한다. 또 많은 수의 고려인들이 한국에 와서 일하는 경험을 갖게 됨으로써 경제적으로도 성장하고 일하는 방식도 터득하게 하여야 한다.


이런 조치가 절실한 이유로는 최근 유전개발여파로 경제가 활성화되고 있는 카자흐스탄의 고려인이주실태를 보면 알 수 있다. 카자흐스탄의 고려인은 대략 12만 명으로 추정된다. 구소련 시절 마지막 인구 조사였던 1989년, 카자흐스탄의 고려인은 10만3천명이였는데, 우즈베키스탄이나 다른 중앙아시아 지역에 비해 인구 감소가 거의 없었던 셈이다.


소련 붕괴 이후 카자흐스탄에서 외국으로 떠난 고려인 이주자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고 일부 고려인이주자가 발생했으나 그 간극을 우즈베키스탄, 또는 타지키스탄 등 인근 중앙아시아 지역의 고려인들이 메웠다는 것이다. 즉 먹고 살기가 괜찮다면 안 간다는 것이다.


강제이주의 직접적인 당사국인 러시아정부는 강제이주 후 60여년이 지난 1993년 4월 강제이주의 불법성을 인정하고, 그동안 정치적 탄압, 민족차별을 받아야 했던 고려인들의 명예를 회복시킨다는 내용과 고려인들이 강제이주 전까지 거주하고 있던 원동지역으로의 귀향도 돕겠다는 결의안을 발표한 적이 있다.


그리고 2006년 6월 러시아정부는 러시아로 재이주를 원하는 재외동포 귀향에 관한 특별법을 만들어 신청을 받고 있다. 1999년 이래 6.7%의 연 평균 경제성장률을 구가하면서도 인구 감소로 골머리를 앓는 나라가 바로 러시아로서 특히, 연해주 등 극동러시아에선 기존 인구는 급감하고 중국인 이주가 늘면서 '중국이 극동러시아를 접수할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나온 조치라서 흥미롭다.


이에 지난 6월 말,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해외에 살고 있는 러시아 동포의 이주를 적극 지원하자는 지원 프로그램을 가동시킴과 동시에 연해주정부는 금년부터 2012년까지 10만명의 고려인들을 연해주로 재이주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러시아 해외동포의 범위에 대한 법규정도 최대한 관대하여 '러시아 문화와 전통 속에서 자랐고, 러시아어를 구사할 줄 알며, 러시아와의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사람들'로 옛 소련 연방국 사람들,즉 고려인들도 이부류에 대부분 속한다.


70년전 불모지로 그들을 몰아냈던 러시아가 극심한 인구 감소로 고민하며 적극적으로 구애의 손짓을 보내고 있는 아이러니칼한 현실이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이주조건이 여의치 않으므로 생활환경과 거주국가의 불리한 처우에도 부득이 남아있을수 밖에 없는 형편이지만, 이들은 언젠가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로 돌아갈 것이다.


강제이주에 항의한번못한 주권국가 대한민국, 1937년도에 강제 이주시킨 20여만명의 고려인 가운데 지금까지 생존한 사람들은 대략 3000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고 그들의 입을 통해 강제이주 당시의 참상이 이야기되고 있지만, 러시아정부 당시 정권의 폭압적인 강제이주로 빚어진 통한의 역사는 주권국가인 한국정부로서 아직 공식적인 항의 한 번 못한 현실이다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들의 모국인 한국정부가 러시아쪽에 이런 과거사문제를 아무런 언급조차 못하고있는 것은 잘못된 처사이다. 이들의 아픈 역사를 외면하는 것은 한국정부의 역사적책무를 져버리는 것이고 모국으로서의도덕적의무를 져버리는 일이다.


전상중 U포터[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