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saram(고려사람)
(Russian: Корё сарам, Korean: 고려인/고려사람, Hanja: 高麗人)
이미 광개토대왕, 장수왕, 문자왕3대에 걸쳐 고구려 또는 고려가 유라시아를 평정한 7세기에 영역이 킵챠크(쿠만)까지였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라면 원주민과 공존한 고구려, 고려 사람들이 어느 곳에 한정된 것이 아닌 넓게 퍼져 다수가 존재했을 것이라고 본다.
영어표기에서 고려 사람이라고 대명사 지칭을 부여한 것은 무슨 연유일까?
한국인과 구분하려고 한 것은 아닐까?
고려인(高麗人, 러시아어: Корё сарам (고려사람)), 또는 고려 사람은 구소련 붕괴 후의 독립국가연합 전체에 거주하는 한민족을 이르는 말이다. 이들 국가에는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스탄, 우크라이나, 몰도바 등이 포함된다. 약 50만 명의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거주하였으며, 남부 러시아의 볼고그라드 부근, 코카서스, 남부 우크라이나에도 많은 고려인들의 공동체가 존재한다. 이들 공동체는 19세기말의 극동 러시아에 거주하던 고려인에 기원한다.
사할린 섬에도 독립된 한민족 사회가 있다.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의 이주민으로 구성된 러시아 본토의 공동체와는 달리, 사할린의 한민족은 주로 1930년대와 1940년대에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이주하였다.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의 노동력의 부족을 메우기 위해 제국주의 일본에 의해 강제로 사할린의 탄광에 끌려가 노역하였다.
역사
극동 러시아와 시베리아 이주
1800년대의 조선은 국정이 혼란하여 소수의 양반들이 대다수의 토지를 독점하게 된다. 가난한 농민들은 고향을 떠나 북쪽으로 이주하였는데, 청나라가 국경을 막고 있어서 러시아로 이주하게 되었다. 많은 농민들이 시베리아로 이주하였고, 1800년대 말에는 그 수가 급증하여 1869년에는 조선인이 프리몰스키 크라이의 전체 인구의 20%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완성되기 이전에 극동 러시아의 조선인은 러시아인보다 많았으며, 지방 관리는 그들에게 귀화를 종용하였다. 1897년의 러시아 제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러시아 전체에서 조선말을 하는 사람들이 26,005명(남자 16,225, 여자 9,780)이었고[2], 1902년에는 32,000명을 넘었다. 여러 도시에 고려인 마을과 고려인 농장이 있었다.
1900년대 초에는 러시아와 조선 모두 일본과 대립하였다. 하지만, 1907년 러일 전쟁이 종료되면서 일본의 요청에 의해 조선인을 배척하는 법을 제정하였고, 이로부터 조선인의 농장은 몰수되고 조선인 노동자는 해고되었다. 동시에, 러시아는 조선의 독립운동을 위한 피난처가 되었다. 조선의 민족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은 시베리아와 극동 러시아, 만주로 피신하였다. 10월 혁명과 동아시아에서의 공산주의의 성장과 함께, 시베리아는 재소련 조선인의 일본에 대항하기 위한 독립군 양성의 터전이 되었다. 1919년,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에 모인 조선의 지도자들이 3.1운동을 지원하였다. 이 마을은 군대의 보충을 비롯한 민족주의자들의 근거지가 되었고, 1920년 4월 4일에는 일본군이 이곳을 공격하여 수백 명이 사망하였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이주한 조선인들은 기독교(러시아 정교회)를 받아들이는 등 러시아 문화에 상당한 적응을 한다.[3] 무엇보다도 그들의 땅에서 수탈 없이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이주의 가장 큰 이유였다.
강제 이주
1937년에서 1939년 사이, 스탈린은 172,000명의 고려인들을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고려인이 일본의 첩자가 될 수 있다는 명목이었다. 여러 공동체의 지도자들은 추방되고 사형되었고, 이주 도중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고려인이 중앙아시아를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은 그로부터 십수년이 지난 후였다. 글라스노스트 이전까지는 이주에 대해 발언하는 것조차 금지되었다.
이주민들은 협력하여 관개시설을 설치하였고, 벼농사를 시작하였다. 3년이 채 지나지 않아 그들은 그들의 삶의 방식을 회복하였다. 하지만, 수십 년간 한국어가 금지되었기 때문에, 그 다음 세대는 한국어를 잘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이주 후
척박한 중앙아시아의 환경을 열렬한 교육열과 억척스러운 삶으로 극복, 러시아 소수민족 중 유대인과 더불어 돈과 학식이 있는 민족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옛 소련 붕괴 이후 고려인들은 무국적자 문제라는 어려운 숙제를 풀어야 한다. 옛 소련 시절 위성국가가 된 나라들이 러시아 국적을 인정하지 않아 국적을 다시 신청해야 하는데, 이를 몰라서 무국적자가 된 일부 고려인들이 교육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에 따르면, 2002년에 약 470,000명의 고려인이 독립국가연합에 거주하며, 그 중 198,000명이 우즈베키스탄에, 125,000명이 러시아, 105,000명이 카자흐스탄, 19,000명이 키르기즈스탄, 12,000명이 우크라이나, 6,000명이 타지키스탄, 3,000명이 투르크메니스탄, 5,000명이 기타 지역에 살고 있다.[1]
러시아
2002년의 인구조사에서는 148,556명의 고려인이 러시아에 거주하며, 남자가 75,835명, 여자가 72,721명이었다. 그 중 1/4 정도는 시베리아와 극동 러시아에 거주한다. 그 곳의 고려인들은 그 이주 경로가 다양하여, 1937년의 선대의 강제이주로부터 돌아온 독립국가연합 국적의 33,000명 외에, 약 4,000~12,000명의 북한 이민자도 이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한민국이나 중국 소수민족 출신의 고려인 또한 정착, 투자하며, 국경 무역에 참여하고 있다.
유럽 및 기타 지역
우크라이나의 2001년 인구조사에서 12,711명이 스스로 고려인으로 인식하였는데, 이는 1989년의 8,669명보다 증가한 것이다. 가장 인구가 집중되어 있는 곳은 카르코프, 키에프, 오데사, 니콜라에프, 체르카시, 르포프, 루간스크, 도네트스크,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 자포로지에, 크리미아 등이다.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한인사회는 카르코프에 위치하는데, 약 150명의 한인 가족들이 거주한다. 최초의 한국어 학교가 1996년 이들의 관리 하에 개교하였다.
중앙아시아
중앙아시아의 고려인은 대부분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에 거주한다. 카자흐스탄의 고려인 문화는 이전의 수도였던 알마티(Almaty)를 중심으로 하는데, 이 곳에서는 중앙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한국어 신문(고려 신문)과 한국어 극장이 운영된다. 카자흐스탄의 인구조사에서는 1939년 96,500명의 고려인이 기록되었고, 1959년에는 74,000명, 1970년에는 81,600명, 1989년에는 100,700명, 1999년에는 99,700명이었다.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들은 농촌 지역에 넓게 흩어져 있다.
한국에의 회귀
약 1만 명의 우즈베키스탄 고려인들이 대한민국에서 일하고 있다.
문화
중앙아시아로의 이주 후, 고려인들은 주변의 사람들과는 다른 양식의 삶을 살았다. 그들은 관개시설을 만들고 지역 일대의 쌀 재배 농가가 되었다. 주변의 유목민과는 거의 교류하지 않았으며, 교육에 중점을 두었다. 고려인들은 곧 한국의 전통 의상을 입지 않게 되었지만, 중앙아시아인들의 옷보다는 서구의 복식을 채택하였다.
사용언어
한국어를 쓰고 있다. 이들이 쓰는 한국어는 고려인들의 한국어나 중앙아시아 한국어를 사용하며, 러시아어와 중앙아시아의 민족언어, 우크라이나어까지 섞인 말을 쓴다. 2세대 후부터는 러시아어만 알고 한국어는 모르는 고려인들이 생겨났다.
고려인 중에도 일부는 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어를 쓰는 사람들도 있다.
고려인 중 유명인 리스트
게르만 킴
알렉산드르 민 - 소련의 영웅
발레리 강 - 러시아 우수리스크의 정치인
빅토르 초이 - 러시아의 가수
아니타 최 - 러시아의 가수
채 유리 - 카자흐스탄 기업가
뱌체슬라프 김 - 카자흐스탄 재벌
베라 보리소나 박 - 우즈베키스탄 상원의원
조 바실리 - 러시아 고려인 연합회 회장
김병화 - 러시아 김병화 콜호즈 소련 노력영웅
유리 안드레예비치 홍 -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시베리아지부 톰스크 과학센터 간부회 부의장
보리스 텐 - 노보시비르스크 고려인협회 회장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르비치 한 - 빨치산스크 고려인협회 회장, 2005년 해외 한민족청년상 수상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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