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

제사(祭祀) 유래. 의미. 상식

한부울 2009. 1. 30. 14:28
 

제사(祭祀)


차례음식의 의미


대 추

왕이 될 만한 후손이 나오라는 뜻이다.

대추가 지니고 있는 깊은 의미를 아는 집안은 ("왕" "도인" "성현")이 나올 수 있다. 대추는 태양이 속해있는 대 은하계 모형을 나타낸 것이므로 진설 상에 있어서 으뜸이다.

 

밤 

밤은 三 정승이 나오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밤은 3알이 한 밤송이가 된다. 가운데 있는 밤은 "영의정" 오른쪽에 있는 밤은 "우의정" 좌측에 있는 밤은 "좌의정" 이라는 의미가 되며 밤송이 1개(1석)속에 3톨(3극)에는 각기 특유의 기질을 가지는 5기가 들어 있으며 바로 그 五 氣는 인간의 성질을 나타낸다.

첫 째: 가시는 내유 외강의 성질(추진력)

둘 째: 껍질은 단단하고 강한 기질(방어력)

세 째: 껍질 속의 털은 포근함을 나타낸다.(보호력)

네 째: 속 껍질의 떫은맛은 인생살이의 떫은 맛(인내력)

다섯째: 속 알의 고소한 맛은 깨달음의 참 맛을 나타낸다.

(중화, 깨달음)

 

감 

감은 씨가 6개로 六조 판서의 서열을 의미한다.

집안에 육조판서 감이 나오는 정도를 점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씨가 6개인 것은 천부경의六생 七 八 九운의 육감세계를 나타낸 것으로 우리 몸의 물리적 몸의 작용 즉 오감세계를 벗어난 영적인 의미를 말한다.

 

사 과

사과는 자비, 사랑을 뜻하며 모양이 하트형으로 "사랑"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그 집안의 화목과 사랑의 정도를 알아보는 방법으로 쓰이기도 한다.

사과의 모양은 우주의 五기가 생성되어 돌아가는 모형이며 사랑하는 마음(+플러스) 발상 등이 영적 성장을 하는 의미이다.

 

배 

배는 색깔이 황금색으로 깨달음 집안의 정신적인 성장정도를 알아보는 측도이다. 배는 수분이 많으며 이 수분은 지혜를 의미한다.

지혜로운 삶을 살아서 깨달음의 정신으로 가라는 뜻으로 황금색은 깨달음의 색 오행의 土에 해당하고 숫자로는 5,10, 土, 중앙, 중용, 완성의 뜻이 있다.

 

호 두

우리의 뇌를 의미한다.

호두는 지혜가 발달되고 영특하며 뛰어난 자손이 되라는 의미이다.

머리가 영특해야 깨달음에 이르고 깨달음에 밝아야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 식

다식은 우주의 五 行을 의미하고 그 다식의 문양은 五 氣의 작용을 도식화 시킨 것으로 가정의 가족 간 합심. 이별, 파괴, 결합, 재물, 후손의 출산 등을 의미하고 이것이 작용하는 의미를 알아보고자 꿀물에 재료를 버무려 가지고 다식을 찍는데 그때 잘 만들어 지는 것과 부서지는 것을 가지고 한 해 동안 집안의 운세를 점치는데 사용하게 했던 것이다.

 

은 행

은행은 비행접시 우주선을 의미한다.

앞에서 말한 대로 머리가 영특하고 지혜로우면 그들이 과학을 발달시키게 되고 과학의 발전으로 우주세계를 향해 나아가게 된다는 인류(지구)역사를 알려 주고자 했던 성현들의 가르침이다.

 

포 도

조직을 의미한다. 한송이에 많은 열매 등이 달려 있어서 이것은 조직을 뜻한다.

집단, 조직, 국가 등을 의미하며 이런 문화를 알리기 위해서는 정비가 잘된 많은 조직들이 있어야 된다. (각 과일들도 각기 뜻이 있다.)

첫 번째 과일 줄이 개인의 성장과 조직구성을 의미한다면, 두 번째 줄은 운동으로 문화를 바꾸어가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시금치 

시금치는 道 를 구하는 마음을 지금 이 시간부터 주저하지 말고 행하라는 의미 입니다.

 

도라지 

도(道)를 알아라는 뜻이다.

도를 알지 -> 돌아지 -> 도라지道(도,도) 我(나,아) 知(알,지)(나를 알아가는 도를 말함)

고사리가 일이라면 도라지는 일의 목적을 나타낸다.

도를 알지 운동이다. (도를 알지=나를 알아가는 도)

 

콩나물 

콩은 깨달음을 의미한다.

한 알의 콩 속에 두 쪽으로 되어 있는 것은 도에는 음과 양이 있다는 뜻이고 이 콩에서 발이 나온 것은 도를 펼쳐지는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 콩나물에 잔발이 많이 달리면 道를 구하는 일심에서 다른 마음을 먹으면 안된다는 의미에서 콩나물에 잔발을 다듬어 주는 것이며 또한 콩나물에서 콩껍질을 벋기는 이유는 도의 본체가 어떻게 되어 있나를 살펴보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고사리 

이치에 닿는 높은 사고의식으로 일을 하라는 의미이다.

고사리는 하늘로 뻗어가는 기운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손의 모습과 흡사하다. 그래서 고사리손 즉 일의 시작을 의미한다.

고사리(高事理)는 높은 이치가 담긴 일을 한다는 뜻이며 고사리의 모양은 하늘 세계로 기운이 피어오르는 모습을 하고 있듯이 옛날 유물 또는 벽화에서 보아도 고사리 모양 문형이 많이 그려져 있다.

이것은 氣의 발생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숙주나물 

숙주나물은 음식이 빨리 변하는 대표적인 음식입니다. 道를 구하는 마음이 숙주나물처럼 변할까 염려되어 경각심을 주기 위함입니다. 하늘마음은 일시적이고 한순간 생각하는 작심에 불과할까 두려워 경계의 마음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도(道)는 일생을 바쳐서 얻어지는 것도 아니고 수많은 겁생을 통해 구해도 구해지기 힘들

정도의 인생사의 최고의 가치 기준입니다.

 

명 태

인류 진화를 의미함. (지구 최초의 생명은 바다에서 시작)

우리의 영은 하늘에서 왔고 우리의 육체는 땅에서 왔으며 땅에서 온 이 육체는 지구 최초에 기에서 미생물이 발전, 진화하여 어류, 육류로 진화 인간의 몸을 형성해 나왔음을 알려주는 성현들의 가르침이다.

 

문 어

도의 원리를 알려주는 것으로 깨달음 원을 닮은 머리와 문어발 10개는 천기의 흐름의 종류로서 천(天)간(干) 10干을 의미한다.

발에 달린 별 모양의 접착구(빨판)는 하늘의 별들을 의미하며 문어발을 칼로 오려주는 것은 기운의 흐름을 표현할 문양이며 구름 연기 같은 기운이 피어나는 모습을 형상화 한 것이다.

 

오징어 

원방각의 원리를 설명한다. (로켓을 의미함)

살아서 움직이고 먹물을 쏘면서 도망가는 오징어는 마치 로켓발사의 모습이며 발에 붙은 접착구(빨판) 역시 별을 의미한다.

 

탕 (天,地,人) 

3탕을 많이 쓴다. 탕은 기본 되는 三탕 또는 五탕을 두며 삼탕은 天, 地, 人을 의미하고 五탕은 오행(五行)을 의미한다. 옛 말에 빈곤함에 제사를 못 모실 경우라 하더라도 삼탕은 놓고 제를 올리라. 그래도 어려우면 정한수라도 떠올리라 하였다.

水는 하늘의 생명수이고 우주 근원의 초기 생명이다.

탕은 나열의 어, 육, 체로 되는데 우리 육체가 어류에서 진화하여 기류동물로 진화 발전하고, 농법을 이용하고 정착 농경 생활이 발달해 왔다는 간편한 우리의 역사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떡 

떡에는 종류가 상당히 많다. 먼저 설 명절의 대표적인 가래떡에 대해서만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가래떡이란 혼의 성장세월의 의미이며 혼이란 뿌연색을 지니게 되기 때문에 혼백을 모시는 지방을 쓸때에도 뿌연 문종이에 쓰듯이 이 색깔과 유사한 색깔이 쌀(곡기)이며 곡기란(기운을 저장하고 있다)라는 의미다. 우리는 흔히 허기진다, 라는 말을 많이 하듯이 허기란 기가 허하다 기가 없다라는 의미인데 기가 비어서 허하면 곡기로 배를 채워야 기운이 되살아난다. 가래떡은 혼의 세월이 긴 세월을 통해 성장한다는 의미를 전하기 위해 가래떡을 길게 뽑는 것이다. 세월 흐름을 하루 또는 한해를 표현한 것이 가래떡을 썰어서 만든 떡이며 이 떡꾹을 먹게 되면 나이를 먹는다고 하는데 나이란 세월을 뜻하는 것으로 그 세월은 혼의 성장 세월이다.


제사(祭祀) 풍습의 유래 및 역사 

글: 최병문


우리나라는 제사(祭祀) 문화의 본 고향이며, 제사(祭祀) 문화는 본래 우리 민족의 세시풍속 중 한 갈래였다. 우리 민족은 배달(倍達 BCE 3,897-2,333) 민족이다. 우리 민족의 천제(天祭) 및 제사(祭祀) 풍습은 배달(倍達 BCE 3,897-2,333), 고조선(古朝鮮 BCE 2,333-238) 시대부터 주로 왕족과 귀족들 사이에 봉행해 오다가 열국(列國,부여.옥저.동예.낙랑국.마한.변한.진한) 시대로 이어지고,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사국(四國) 시대로 이어진다.


그런 후, 고려(高麗) 말 공민왕 시대 정몽주 선생이 제정한 제례 규범이 최초로 나오면서 제사(祭祀) 풍습이 본격적으로 규범화 되었다. 그 내용에 의하면, 3품관이상은 증조부모까지, 6품관 이상은 조부모까지, 7품관 이하 서인들은 부모까지 제사지내라는 제사 규범이었다. 조선(朝鮮) 시대에 와서는 유교적 제사의식이 도입되었는데, 경국대전(성종.1470년 완성)에 3품관이상은 고조부모(4대조)까지, 6품관이상은 증조부모(3대조)까지, 7품관이하 양반은 조부모(2대조)까지만 제사지내라는 신분상의 차이를 두었었다. 이런 신분에 의한 제사를 조선말까지 유지해 오다가, 1894년 갑오경장(甲午更張)으로 신분제도가 없어지면서 신분상의 구별없이 고조부모(4대조)까지 제사 지내고 있는 것이다.


옛 중국 기록을 보면, '예(禮)를 잃어버렸다면, 동이(東夷) 풍습에게서 구한다. 라는 구절이 있을 정도로 동이(東夷) 민족인 우리나라는 오래 전부터 예(禮)를 중시한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이었다. 우리나라는 제사(祭祀) 문화의 본 고향이며, 제사(祭祀) 문화는 본래 우리 민족의 세시풍속 중 한 갈래였다. 우리 민족은 배달(倍達 BCE 3,897-2,333) 민족이다. 우리민족은 환국(桓國 BCE 7,197-3,897), 배달(倍達 BCE 3,897-2,333), 고조선(古朝鮮 BCE 2,333-238)을 건국하였고, 배달(倍達 BCE 3,897-2,333), 고조선(古朝鮮 BCE 2,333-238)의 풍습은 열국(列國,부여.옥저.동예.낙랑국.마한.변한.진한) 시대로 이어지고, 고구려. 백제.신라. 가야의 사국(四國)시대로 이어진다. 배달국(倍達國) 말엽 및 고조선(古朝鮮) 초기에는 중국 동부 지역에 요(堯), 순(舜), 하(夏), 은(殷). 주(周) 나라를 건국하였는데, 이들 나라에 우리 민족의 천제(天祭) 및 제사(祭祀) 풍습이 전해졌다. 그리하여 중국 지역에서는 요(堯), 순(舜) 시대에 천신(天神), 지기(地祇), 5악(嶽), 4독(瀆)을 제사한 기록이 있고, 조상 숭배가 크게 성행하여 조상에 대한 제례가 하(夏), 은(殷). 주(周) 나라에 걸쳐 이뤄지는 계기가 되었다.


우임금(하夏나라의 시조). 탕임금(은殷나라의 시조). 문왕(주周나라의 시조). 무왕(주周왕조 개창). 강태공(병법의 시조, 주周나라)도 역시 동이족(東夷族)이었는데, 중국의 역사 서적인 서경(書經), 예기(禮記), 사기(史記)에 보면, 이들은 일상생활이나 대사(大事)를 집행할 때 언제나 삼신 상제님께 천제(天祭)를 지내며 생활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배달국(倍達國) 말기와 고조선(古朝鮮) 초기의 문화가 중국으로 전파된 것인데 이런 흔적과 기록들은 훗날 중국에 의해 의도적으로 왜곡되거나 삭제되었다.


참고로, 중국의 건국(建國) 시조(始祖)인 삼황오제(三皇五帝)는 전부 동이족(東夷族)이었다. 삼황(三皇)은 태호복희(太昊伏羲). 염제신농(炎帝神農). 황제헌원(黃帝軒轅)을 말하고, 오제(五帝)는 소호금천. 전욱고양. 제곡고신. 요(堯)임금. 순(舜)임금을 말한다. 중국의 건국 시조의 8명 중에 우리민족이 8명으로 전부를 차지한다. 태호(太昊) 복희(伏羲)는 배달국(倍達國)의 5대 태우의 환웅(太虞儀, B.C 3,512년 즉위)의 12번째 아들이며, 주역(周易)의 처음 창시자이다. 염제(炎帝) 신농(神農)의 아버지는 배달국(倍達國)의 8대 안부연(安夫連) 환웅 때, 소전(少典,벼슬이름)으로 있었으며, 강수(姜水)의 감병관으로 임명받고 강수(姜水,중국 섬서성)에 정착한 사람이다. 황제헌원(黃帝軒轅)은 배달국(倍達國)의 8대 안부연(安夫連) 환웅 때, 강수(姜水,중국 섬서성)에서 소전(少典,벼슬이름)으로 있던 신농(神農) 아버지의 후손이 공손인데, 바로 공손의 후손이 황제헌원이다. 소호금천(少昊金天)은 배달국 시대에 산동 반도 지역에서 고도의 문명 국가를 통치했던 사람인데, 중국의 고사변(古史辯)을 보면, "소호씨는 동이계야(東夷系也)“”라고 하여 동이족(東夷族)임을 밝히고 있다. 전욱고양은 황제헌원의 손자이며, 제곡고신은 황제헌원의 증손자이다. 요(堯)임금은 황제헌원 및 제곡고신의 후손이다. 순(舜)임금은 고조선(古朝鮮) 단군 1세때, 고시(高矢)의 친형인 고수의 아들이다.


우리나라 열국(列國,부여.옥저.동예.낙랑국.마한.변한.진한)시대의 천제(天祭) 및 제사(祭祀) 풍습은 부여(夫餘)의 영고(迎鼓), 동예(東濊) 무천(舞天), 마한(馬韓)의 소도(蘇塗) 등등이다. 특히 마한(馬韓)에는 소도(蘇塗)라는 신역(神域)이 있어 솟대를 세우고 북과 방울을 달아 천군(天君)이 신에게 제사 지냈고, 고구려(高句麗)의 동맹(東盟)은 추수 감사절의 행사였고, 신라(新羅)에서는 남해왕(南解王) 때에 혁거세묘(赫居世廟)를 세우고 혜공왕(惠恭王) 때에 5묘(廟)의 제도를 정했으며 산천에도 제사 지냈다.


우리민족의 천제(天祭) 및 제사(祭祀) 풍습은 천지신명(天地神明)을 받들어 복(福)을 빌고자 하는 의례로서 자연숭배와 삼신 상제님에 대한 제천의식에서 비롯된다. 하늘과 땅, 해와 달, 성신(星辰)을 비롯하여 산천(山川)에 깃들여 있다고 생각한 신(神) 그리고 선조(先祖)와 선사(先師)의 가호로 재앙이 없는 안락한 생활을 기원하였는데, 이것이 제사(祭祀)의 기원이다. 삼국(三國)시대부터 자연신에 대한 제사가 자신의 조상에 대한 제사의례로 발전하였다. 우리나라의 제사 문화는 삼국시대에 들어선 후에야 자신의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례가 기초를 잡기 시작한 것이다.


고려(高麗) 시대에는 원구(窩丘). 방택(方澤). 사직(社稷). 종묘(宗廟). 능침(陵寢). 선농단(先農壇). 선잠단(先蠶壇). 문선왕묘(文宣王廟). 마조단(馬祖壇). 사한단(司寒壇) 등을 설치하고 예를 갖추어 제사 지냈고, 명산. 대천. 우사(雨師). 운사(雲師). 뇌사(雷師) 등에도 제사 지냈다.


참고로, 고려 시대에 '고려장(高麗葬)'이란 풍습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일제에 의해서 날조된 사실이다. 부모가 늙고 병들면 자식들이 지게에 엎고 갖다 버리고 매장했다는 고려장의 단어는 옛날 자료 그 어디에도 없다. 특히 고려시대에는 불효죄를 반역죄와 더불어 매우 엄하게 처벌하던 시대였기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고려장이란 말은 일제시대부터 처음 쓰이기 시작했는데, 일제가 전국을 뒤져 문화적 가치가 있어 보이는 물건은 닥치는 대로 일본으로 반출하더니, 급기야는 무덤의 부장품까지 노리게 되었다. 그들의 논리는 "고려시대부터 고려장이란 게 있었고, 부모를 산 채로 내다 버리는 못된 풍습에 의해 여기 묻힌 사람은 자기 부모를 생으로 고려장시킨 놈이므로, 그런 무덤들은 파헤쳐도 괜찮다." 라는 근거를 만들에 내어 팔도강산의 무덤을 파헤치게 된 것이다.


배달국(倍達國).고조선(古朝鮮)시대부터 내려오던 자연신에 대한 천제(天祭) 및 제사(祭祀) 풍습은 상류 집권층을 중심으로 자신의 조상에 대한 제사의례로 점점 확고하게 자리 잡혀 있었다. 그리고 유교적 형태의 제사 의식이 도입된 것은 고려 말엽부터였고, 신흥 사대부들의 등장과 조선 초기에 상류 집권층의 통치 이념으로써 성리학과 함께 도입되었다. 하지만, 일반 민중에게는 보급되지 않았다.


조선 초기의 제사 의식 역시 주로 집권 왕가나 사대부 집안을 중심으로 먼저 행해졌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불교의례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에, 성리학의 "주자가례(朱子家禮)"와 같은 유교의례가 사회전반에 쉽게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임진왜란(1592-1598)과 병자호란(1636-1637) 이후 사회민심 회복 차원에서 유교 이념을 민중에까지 퍼트리고, 상류층 위주로 퍼져있던 중국 풍습의 ‘주자가례(朱子家禮)’를 하층 민중에 보급하면서 우리 전통 가족문화도 많이 사라지게 되었다. 


조선 초기 적어도 성종(1457-1494) 때까지만 해도 제사를 딸, 아들 구별 없이 돌아가며 윤회봉사(輪廻奉祀)를 했으며, 제사에 드는 경비도 분담하는 분할제를 택하는 합리적인 방법으로 제사를 지냈다. 조상을 받드는 정신은 딸, 아들이 다를 수 없으며, 맏이나 그 외의 자녀들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제례를 통해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아들이 없어도 딸이나 사위, 외손이 제사를 지낼 수 있어서 대를 잇기 위해 양자를 들일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 중국에서 들어온 주자가례(朱子家禮)가 생활 깊숙이 자리 잡으면서, 조상의 제사를 주관한다는 명분으로 장자 중심으로 재산이 상속되었다. 또한 남존 여비, 재가 금지, 서얼 차별 등의 윤리적 조치들이 가부장 체제의 부산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와 같은 부계 친족 중심의 문중은 사회, 경제, 문화 전반을 지배하여 갔다. ‘주자가례(朱子家禮)’는 주자(朱子)가 직접 쓴 것이 아니라, 주자(朱子)의 제자들이 주자의 이름을 빙자하여 중국식 풍습에 근거하여 가례(家禮)를 마구 적어 놓은 책이다. 주자(朱子)는 원래 흠 잡을데 없는 인물이었으나, 그 제자들이 그의 명예를 훼손한 대목이다. 


중국의 문화는 매우 호전적이고 침략적 기질이 강해서, 중국의 가족 문화는 부계중심의 가부장적 차별적 가족문화였다. 그러나 한국의 전통 문화는 일단 모계 사회의 전통이 이어져 왔었고, 결혼을 하게 되면 남자는 일정기간 처가살이를 해야 했고, 애를 낳고 애가 성장하면 따로 분가 하는게 전통적인 결혼 문화였다. 한국인은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材)를 잘 받들고 사람을 존중하는 기질이 강해서, 한국의 전통 문화는 아들. 딸. 친가. 외가를 차별하지 않는 평등의 가족문화로서 특히 여자를 존중하는 문화를 지켜왔다. 그러한 전통은 배달국(倍達國), 고조선(古朝鮮),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 전기까지로 이어져 왔다.


하지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중국에서 들어온 성리학의 주자가례 이념이 확고하게 보급되면서 조선사회는 철저한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질서가 강요된 것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17세기 사림세력에 의해 성리학적 중국 문화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면서 부계 줌심(친가중심. 외가. 처가 차별), 장자. 아들중심(자녀간 차별) 문화로 변화해 간 것이다.


[다사랑]

******************

제사절차순서

(차례지내는 절차는 제사보다 간략합니다)


1.진설(祭饌陳設)(상차리기): 제사상에 음식을 차린다(아래의 제사상 차림표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신위봉안(神位奉安)지방 혹은 사진을 모신다.


2.강신(焚香降神)(조상님 모시기): 조상님께서 오시기를 청하는 절차이다. 모든 참석자는 제사상 앞에 선다. 제주(아들)가 제사상 앞 중앙 향로 앞에 꿇어 앉아 향(3개)을 피워 향로에 꽂은 후 제주만 두 번 절한다.(향로에는 쌀을 넣기도 한다) (향 피운 후 절은 생략하기도 한다) 제주가 다시 꿇어앉고 다른 사람이 상 위의 술잔(빈잔) 혹은 별도의 술잔을 제주에게 주고(잔 받침대까지) 술을 조금(30% 정도) 따라주면 향 위를 거쳐 퇴주그릇에(큰 빈 그릇) 조금씩 세 번 기울여 다 붓는다.(왼손으로 잔대를 잡고, 오른손으로 잔을 잡고) 상위의 잔으로 했으면 그 빈 잔을 아까 그 다른 사람(집사: 옆에 서서 제사 진행을 돕는 사람)을 통해 원 위치로 돌려보내고 다시 제주만 두 번 절(재배)한다.


3. 참신(參神)(조상님께 인사드리기): 조상님이 오셨으므로 조상님께 인사드리는 절차이다. 제주 및 참석자 전원이 절한다(남자는 두 번, 여자는 네 번)


4.진찬(進饌): 따뜻한 음식인 메(밥) 갱(국) 고기 생선 국수 등을 올리는 절차인데 요즘, 다 차려 놓고 시작하는 가정에서는 생략한다.


5.초헌(初獻)(첫 잔 올리기): 맨 처음 술잔을 올리는 절차이다. 제주(초헌관)가 다시 제사상 앞에 꿇어앉는다. 집사가 상위의 잔(잔 받침대까지)을 주고, 다른 집사가 술을 가득 부어주면. 먼저 집사가 받아서 신위 앞에(상 위에)올린다. (두 분(부부) 제사를 한 상에 지낼 때에는 같은 방법으로 여자 조상님 잔도 올린다) 제주는 두 번 절한 후 물러난다. 집사들은 술잔을 퇴주 그릇에 비운후 다시 그 자리(상 위에, 신위 앞에)에 놓는다.


6.독축(讀祝)(축문읽기): 참석자 일동 꿇어앉고 집사등 축관이나 제주가 축문을 읽는다. 다 읽고 나면 제주는 두 번 절한다.(전원이 절하는 가문도 있다) 요즘은 이웃집 등을 고려하여 축문 읽는 것은 생략하는 가정이 많다.


7.아헌(亞獻)(두 번째잔 올리기): 아헌관이(두 번째 술잔을 올리는 사람) 제사상 앞에 꿇어앉는다. 나머지 방법은 초헌 때와 같이 한다.


8.종헌(終獻)(세 번째잔 올리기): 종헌관이(세 번째로 술잔을 올리는 사람) 제사상 앞에 꿇어앉는다. 이때에는 잔에 술울 70% 정도만 채워서 올린다. 나머지 방법은 초헌 때와 같이 한다.


9.첨작(添酌)(술 더 드리기): 조금 더 드시기를 청하는 절차이다. 다시 제주(초헌관)가 제사상 앞에 꿇어앉는다. 집사가 다른 빈 잔(혹은 메 뚜껑)을 주고, 술을 조금 따라 주면 다른 집사가 그 잔을 받아 종헌때 덜 채웠던 잔에 조금씩 세 번 따라 가득 차도록 붓는다. 첨작자(제주)는 두 번절(재배)하고 물러난다. (첨작자(제주)가 술 주전자로 바로 상위의 잔에 세 번씩 따라 가득 채우기도 한다) (초헌, 아헌, 종헌 때처럼 상 위의 잔을 받아(덜 채워진 잔에) 가득 채워 올리기도 한다) (덜 채워지더라도 한번만 조금 따르는 가문(지방)도 있다) (첨작 후에는 절을 안 하고, 삽시 정저까지 한 다음에 절하는 가문도 많다)


10.삽시(啓飯揷匙) 정저(正箸)(숟가락, 젓가락 놓기): 집사들이(혹은 주부가) 밥그릇 뚜껑을 열어 밥그릇 옆에(상 바닥에) 내려놓는다. ('상례비요'라는 책에는 초헌 때 밥뚜껑을 연다고 되어 있다함) 집사들이(혹은 제주나 주부가) 숟가락을 밥 가운데에 꽂는다. 이때 숫가락의 안쪽이(패인 부분) 사람이 봐서 오른쪽으로 향하게 한다. (다른 방향으로 꽂는 가정도 있다) 집사들이(혹은 제주나 주부가) 젓가락을 세워 상 바닥에(또는 수저 접시에) 똑똑똑 세 번 가지런히 한 후 젓가락 끝(가는 쪽)이 사람이 봐서 오른쪽을 향하도록 하여 고기 생선등 음식위에 올려놓는다.(다른 방향으로 놓는 가정도 있다) (음식 위에 올리지 않고 그냥 시접에 가지런히 놓는 가문, 손잡이 쪽 끝이 상 바닥에 닿게 시접에 걸쳐놓는 가정도 있다) (삽시정저를 초헌 때, 술잔 올린 후 제주가 절하기 전에 하는 가정도 있다)


11.합문(闔門): 신위께서 음식을 드시도록 방문을 닫고 나오는 것을 말하며, 근래에는 제사상 앞에서 몇 분 정도 조용히(묵념하고) 기다린다. (뒤로 돌아 꿇어 앉아, 뒤로 돌아 서서, 마루, 다른 방 등에서 구식경(아홉 숟가락 드시는 시간) 정도 기다린다)


12.계문(桂門):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을 말하며, 새벽 첫 닭이 울 무렵에 제주(혹은 축관, 집사)가 앞에 서서 기침을 세 번하고 일동을 데리고 들어간다. 요즘은 몇 분후 들어간다.


13.헌다(獻茶)(숭늉 올리기).진숙수(進熟水): 갱(국)을 내리고 그 자리에 숭늉을 올린다. 메(밥)를 조금씩 세 번 떠서 숭늉에 말아 놓고 숟가락도 그대로 숭늉 그릇에 담가 놓는다. (숟가락 손잡이는 왼쪽을 향하게 한다. 메 그릇에 걸치게 놓는 가정도 있다) 참석자 모두 잠시 고개를 숙이고 기다린다.


14.철시복(합)반(撤匙復飯)(수저, 젓가락 거두기): 수저 젓가락을 거두어 시저 접시에 놓는다. 메(밥) 그릇을 덮는다. (하시 합 반개(下匙 闔飯蓋)라고도 한다)


15.사신(送神/辭神)(조상님께 환송 인사드리기): 제사를 다 끝 마쳤으므로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하는 절차이다. 모두 다 절한다(남자는 두 번, 여자는 네 번. 요즘은 여자도 두 번만 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제사 지낼 때 다 같이 절하는 것은 2회(참신, 사신) 뿐이나, 가문 지방에 따라서는 술잔 올릴 때마다 다 같이 절하기도 한다.)


16.분축(分祝)(분축): 축문과 지방을 불사른다. 요즘은 생략하기도 한다.


17.철상(撤床): 제사상을(음식) 치우고 식사 준비를 한다.(뒤에서부터 치우기도 한다)


18.음복(飮福)(식사): 조상께서 주시는 복된 음식이란 뜻으로 온 가족이 모여 시식(식사)을 하며 친척 및 이웃 어른께 대접하기도 한다.


제사의 종류


현대에는 매년 돌아가신 날에 지내는 '기제' 와설, 추석에 지내는 '명절차례' 만 장려되고 있습니다.(건전가정의례준칙)

기제(忌祭) :기제는 기일제사의 약칭으로써 기일 즉, 돌아가신 날에 해마다 한 번씩지내는 제사로서 오늘날 제사라 하면 보통 기제를 말한다.

차례(茶禮) :차례는 기제사보다 간략한 약식제사인데 요즘은 설과 추석에 지낸다. 한식에도 지내는 가정도 있다.

시제(時祭) :집에서 기제사를 지내지 않는 댓수가 높은 조상들에 대하여 지내는데 친척들이 모여 산소에 가서 지낸다. 요즘은 시사, 시향, 세향, 묘제, 묘사, 세일사, 세사, 세제라고도 한다.


설. 추석진설도

 

 

제사는 메(밥)을 추석에는 송편, 설에는 떡국을 쓰며 명절때 조상 여러분을 동시에 제사 드릴 때는 시저를 신위수대로 올리며 좌측을 고위(高位)로 하여 지방과 메, 혹은 송편이나 떡국을 차례순으로 올리며 그외는 다를것이 없다.

 

제찬도(祭饌圖)

 

                                            朱子家禮 祭饌圖 (주자가례 제찬도)

 

                                   陶岩 四禮便覽 祭饌圖 (도암 사례편람 제찬도)

 

 

                         栗谷 擊蒙要訣 祭饌圖 (율곡 격몽요결 제찬도) - 한 분을 모실 때

 

                         栗谷 擊蒙要訣 祭饌圖 (율곡 격몽요결 제찬도) - 두 분을 모실 때

 

                                                   경기도 지방의 제찬도

 

 

                                                     강원도 지방의 제찬도


[청산거사]

'한국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리투아니아에서 고사리를 캐다   (0) 2009.01.30
회심곡(回心曲)   (0) 2009.01.30
잊어져간 세시풍습   (0) 2009.01.25
설날 떡국 꼭 먹어야 돼?…설 먹을거리   (0) 2009.01.24
설날, 설화 조심   (0) 2009.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