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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사관

한부울 2008. 12. 7. 19:22

대한민국 역사 긍정적으로 재조명한 ‘한국 현대사’ 출간

http://blog.daum.net/han0114/17044738

 

식민사관


식민사관(植民史觀)은 민족사관과 대비되는 말로서 일제강점기 한국 지배를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일본에 의해 조작된 역사관을 말한다. 대체로, 한민족은 역사적으로 다른 나라에 지배되어 왔고 스스로 자립할 능력이 없는 정체된 사회이기 때문에 일본이 한국을 도와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근 일부 재야사학자(在野史學者)나 대륙사관 신봉자들은 현재 역사학자들(강단사학자[講壇史學者])의 사관을 식민사관이라고 주장하며 비난하기도 한다.


역사

1887년 동경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에서 사학과를 설치하고 식민사관에 입각한 한국사 연구가 진행되면서부터 식민사관이 시작되었으며, 1908년에는 남만주 철도주식회사에서 만선지리역사조사실(滿鮮地理歷史調査室)을 만듦으로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식민사관의 연구는 더욱 심화되고 체계화되었다. 조선총독부는 합방을 정당화 하고 저항을 무마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조선사 편수회 등을 통해 《조선사(朝鮮史)》,《조선사료집진(朝鮮史料集眞)》, 《조선사료총간(朝鮮史料叢刊)》 등의 식민사관적 역사서를 편찬하였다. 1923년에는 조선사학회(朝鮮史學會)를 조직하여 학술활동을 함으로서 식민사관을 확산시켰다. 식민사관은 1924년 설립된 경성제국대학 에서도 이어져 식민사관의 골조를 다져나갔다.


주요이론


식민사관은 여러 분야로 나눌 수 있으나 크게 일선동조론, 타율성론, 정체성론의 세 방향으로 확립되었다.


일선동조론

이 부분의 본문은 일선동조론입니다.

한민족은 일본인에게서 갈라진 민족이기 때문에 일본이 한국을 보호하고 도와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한동조론'(日韓同祖論), '동조동근론'(同祖同根論)이라고도 한다. 이 주장으로 인해 일제의 한일합방을 일본의 한국을 위한 배려와 도움인 것으로 꾸몄다. 일선동조론은 1930년대 일제가 내세운 내선일체 사상의 근거가 되었으며 독립운동은 한일 관계를 제대로 알지 못해 생긴 일이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되었다.


타율성론

한민족은 자율적인 역사를 이루어내지 못하고 외세에게 지배와 영향을 받아왔다는 주장이다. 한국사 내의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부분은 최대한 줄이고, 타율적이고 종속적인 역사만을 강조한 것이다. 이것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단군과 고조선을 부정하고 한국의 역사는 한나라의 식민지인 한사군으로부터 시작했으며 한반도 남부는 일본에게 지배를 받았다는 이른바 임나일본부설을 실제 역사인 듯이 조작했다. 그러나 임나일본부설의 유일한 근거사료인 일본서기(日本書記)는 많은 조작과 왜곡이 가해진 사서로 사료적 가치가 거의 없어 믿기 어려우며 한국 남부에서는 일본식 유물이 거의 출토되지 않고, 다만 일본에서는 삼국의 영향을 받은 유물이나 유적이 다수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볼 때 오히려 한국이 일본에 직접적인 지배나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정체성론

한국이 역사적으로 많은 사회적, 정치적 변동을 겪었음에도 사회질서나 경제가 전혀 발전하지 못했으며 근대로의 발전에 필요한 봉건사회가 이룩되지 못하여, 19세기 조선의 사회, 경제 체제는 10세기 후지와라(藤原) 시대의 일본 사회보다도 못하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낙후되고 후진 한국을 일본은 반드시 도울 의무가 있다는 주장과 연결된다. 그러나 1960년 이후 학자들의 연구에 따라 한국은 외국과는 다른 형태의 봉건사회가 발달했으며 이 안에서도 계속되는 사회적 정치적 변동으로 조선 후기에는 자본주의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 밝혀졌다.


당파성론

한민족의 민족성은 분열성이 강하여 항상 내분하여 싸웠다는 주장이다.

그 예로 조선시대 위정자들의 붕당을 들고 있으나, 정치집단의 형성은 어느 나라에서나 있어온 것이며 현재 알려진 사실도 식민사학자에 의해 과장되고 왜곡된 점이 많다. 한때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조선이 망하게 된 원인이 붕당이라며 강하게 질타를 받기도 했으나, 현재는 나름의 정치적 이념과 여론을 형성하여 독자적인 입장을 가진 정치집단임이 밝혀졌다.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