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

계양산성 논어 목간은 400년대 백제 작품

한부울 2008. 11. 24. 18:36

계양산성 논어 목간은 400년대 백제 작품

[연합뉴스] 2008년 11월 12일(수) 오전 10:25

 

 

선문대 발굴보고서 간행..50㎝ 목간도 추가 공개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지난 2006년 인천 계양산성(桂陽山城) 안쪽 집수정(集水井.일종의 저수시설)에서 출토된 '논어 목간'(論語木簡)은 서기 400년대 백제시대 때 제작돼 유통된 것이라는 견해를 담은 발굴보고서가 공식 제출됐다.


선문대 고고연구소(소장 이형구)는 2004년부터 2006년까지 3차에 걸쳐 실시한 인천 계양구 계산동 10-1번지 일원 계양산성(둘레 1천184m) 발굴성과를 담은 '계양산성' 보고서를 통해 성곽 축조방식이나 출토유물 등을 종합분석한 결과, 논어 제5장 공야장(公冶長)의 일부가 묵글씨로 쓰여진 5각형 목간은 한성 백제시대 작품이라고 결론내렸다.


윗부분 일부, 혹은 아래와 윗부분이 각각 잘려나갔을 것으로 생각되는 이 목간은 지난 2006년 조사한 제1 집수정 출토품으로 현존길이 13.8㎝이며, 소나무를 5각으로 다듬고 그 각각의 면에다가 공야장의 문장을 붓으로 썼다.


조사단은 당시 이 목간과 같은 층위에서 출토된 밑이 편평하고 목이 짧은 '원저단경호'(圓底短頸壺)라는 항아리가 한성백제시대의 전형적인 토기임을 근거로 삼아 한성백제시대 작품이자 국내 최고(最古) 목간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후 문헌사학계, 특히 한국과 일본의 목간 연구자들은 이 목간을 신라시대 작품으로 단정하는 글을 발표해 왔다.


이형구 교수는 "일부 연구자는 물론이고 학생들까지 아직 정식 보고서가 제출되지 않은 상태에서 (목간의) '시대를 운운'하는 행태는 바른 자세라고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 한성백제시대 왕성임이 확실한 풍납토성을 1997년 이후 줄곧 발굴 중인 국립문화재연구소 유적조사실 신희권 학예연구관은 "목간이 출토된 것과 같은 층위, 혹은 그 부근에서 나온 원저단경호를 비롯한 연질(軟質) 토기류는 한성백제 토기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인다는 사실은 의심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나아가 이 목간과 같은 층위에서 출토된 목재 시료 2점을 서울대 기초과학공동기기원에 의뢰해 AMS(탄소연대 측정방식의 일종) 연대를 측정한 결과 각각 BP 1640±60(보정연대 AD 400년)과 BP1580±60(보정연대 AD 480년)으로 나온 점도 이 목간이 제작된 연대가 서기 400년대 무렵 한성백제시대임을 입증한다고 이 교수는 강조했다. 이번 보고서는 또 제1 집수정에서 출토된 다른 한 점의 목간을 추가로 공개했다.


보고서에 의하면 이 목간Ⅱ는 2006년 3차 발굴조사 당시 집수정 내부 Ⅶ 바닥 층위 중앙에서 대형 목재와 함께 수습된 것으로 나중에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보존처리 일환으로 적외선 촬영을 한 결과 묵서(墨書)가 발견됨으로써 목간으로 밝혀졌다.


총길이 49.3㎝나 되는 이 목간은 상단부 4분의 3 정도는 둥글게 깎은 반면, 하단부 4분의 1 정도는 목간Ⅰ과 마찬가지로 5각형으로 다듬은 것으로 밝혀졌다. 묵글씨는 이 하단부 중 한 면에서만 7자 정도가 확인되나, 이 중 한복판 글자가 '子'라는 사실 외에 다른 글자는 읽을 수가 없다.


이 교수는 "필체로 보아 목간Ⅰ처럼 같은 논어를 필사했다고 여겨진다"면서 "목간Ⅱ는 일부가 훼손되고 없는 목간Ⅰ의 원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고 말했다.


이 목간들이 출토된 집수정은 깬 돌을 잘 다듬어 '品' 자 모양으로 벽면을 쌓았으며, 위쪽은 원형인 반면 아래로 내려갈수록 사각형인 이른바 상원하방형(上圓下方形)이었다. 규모는 윗부분 원형이 지름 약 13m에 바닥 폭은 약 6m이며, 깊이는 약 5m다.


그 바닥에서는 마치 용을 형상화한 것과 같은 모습으로 큰 목재를 가로질러 놓은 것이 발견됐는가 하면, 고대 동아시아 사회에서는 점을 치는 데 주로 사용한 대형 거북 1마리가 화석 형태로 출토됐다. 따라서 이 집수정은 기우제와 같은 모종의 제의(祭儀)를 행하던 무대였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점쳐진다.


보고서는 나아가 성벽조사 결과로도 계양산성은 포천 반월산성이나 이천 설봉산성ㆍ설성산성, 안성 죽주산성, 충주 장미산성 등과 같은 4-5세기 한성백제시대 산성에서 보이는 특징을 공유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곳에서 출토된 일부 기와에서는 지금의 인천 일대를 지칭하던 삼국시대 지명인 '主夫吐'(주부토)를 지칭할 공산이 큰 명문이 확인됐다.


(끝)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2006년 인천 계양산성 제1 집수정에서 출토한 논어목간. 이 목간은 한성백제시대 작품이라는 조사단 발표가 있었음에도 학계에서는 신라시대 작품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압도적이었다. 선문대 고고연구소는 최근 그 발굴보고서인 '계양산성'을 내고 이것이 한성백제시대에 속하는 것은 틀림없다는 견해를 제출했다.

 

제2목간. 길이 49.3㎝에 이르는 이 목간은 중간에 '子'라는 한 글자만 판독되지만 그 필체로 보아 같은 논어목간일 것으로 짐작된다.

 

 

원저단경호(圓底短頸壺)라는 토기. 이를 신라토기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선문대 고고연구소는 최근 그 발굴보고서인 '계양산성'을 내고 한성백제시대 토기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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