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중앙아시아( 8개국 및 지나 3개성)

한부울 2008. 9. 21. 23:07

중앙아시아( 8개국 및 지나 3개성)

 

중앙아시아(中央Asia, 중국조선말: 중아시아)는 아시아의 중부 지역이다. 중앙아시아의 정의는 일정하지가 않다. 일반적으로 중앙아시아에 포함되는 지역과 국가는 다음과 같다.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아프가니스탄의 북부

파키스탄의 북부

몽골 - ※ 동아시아로 분류될 때도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티베트 자치구, 신장 웨이우얼 자치구, 칭하이 성


역사

몽골과 중국령 지역을 제외한 중앙아시아는 1991년 해체된 소비에트 연방의 일부였다.


지리

중앙아시아는 톈산 산맥과 높은 고원 및 카라쿰, 키질 쿰, 타클라마칸의 넓은 사막, 나무가 없는 초원지대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분의 땅은 너무 건조하거나 거칠어 농사에 적합하지 않다. 인구 대부분이 목축으로 살아가며, 산업 중심지는 지역의 중심의 도시에 있다.

아무다리야 강, 시르다리야 강, 하리루드 강등의 강이 흐르며, 아랄 해, 발하슈 호등이 위치해 있다.


민족

중앙아시아를 가장 넓게 정의내리는 바에 따르면 총 8천만명, 대륙 총인구의 2%정도가 이 지역에 거주한다. 이 지역보다 더 낮은 인구를 가진 지역은 북아시아뿐이며, 인구밀도는 평방킬로미터당 9명이다. 언어는 각 민족 언어를 쓰나, 구소련의 영향으로 중앙아시아 5개국에서는 러시아어를 쓰며, 그밖에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약간의 러시아어가 쓰이며, 파키스탄은 영어, 이란은 페르시아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디시어가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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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카자흐스탄(카자흐어: Қазақстан 카작스탄, 러시아어: Казахстан 카자흐스탄[*], 문화어: 까자흐스딴)은 중앙아시아에서 영토가 가장 큰 나라이다. 공식 명칭은 카자흐스탄 공화국(카자흐어: Қазақстан Республикасы 카작스탄 레스푸블리카스, 러시아어: Республика Казахстан 레스푸블리카 카자흐스탄[*])이다.


러시아, 카스피해,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세계에서 아홉째로 큰 나라이자, 가장 큰 내륙국이다.


역사

이 부분의 본문은 카자흐스탄의 역사입니다. 카자흐인들이 15세기부터 이 땅에 민족을 이루어 살기 시작했는데, 주로 유목생활을 했다. 19세기에 제정 러시아가 영토를 확장하기 시작했는데, 볼셰비키 혁명 이전까지 러시아 차르의 지배하에 있었다. 제정 러시아의 몰락 후 잠시 독립국가로 있었으나, 1920년에 소비에트 연방(소련)에 편입되었다. 1936년에 소비에트 연방의 한 공화국이 되었다. 소비에트 연방(소련)이 해체되자 1991년에 독립을 선언하였다.

 


지리 

카자흐스탄 지도270만㎢의 면적을 가진 카자흐스탄은 세계에서 9번째로 큰 나라이다. 면적이 서유럽 전체와 비슷하다. 카자흐스탄은 대부분의 지역이 평야이며, 서쪽에는 카스피 해가 위치해 있다. 남쪽은 건조 기후에 속해 있다. 동쪽은 산악 지역에 속해 있다. 주요도시는 1998년에 새로 수도가 된 아스타나, 이전 수도였던 알마티, 카라간다, 침켄트, 세메이, 야시라고 불렸던 투르크스탄이 있다. (카자흐스탄의 도시 참조)


경제

카자흐스탄은 제조업보다는 수출의 90% 이상을 원유와 가스 등의 천연자원에 의존하고 있다. 현재 GDP는 1인당 8,000달러 정도다. 천연자원 개발 등으로 경제가 급성장하고 있다.


기후

계절변화가 뚜렷한 대륙성기후로서,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더우며, 특히 평원과 골짜기 지역에 그 특징이 심하게 나타난다. 연평균 강수량이 북부가 약 250㎜, 남부 산악지대가 450㎜에 이르지만 사막은 비가 훨씬 적게 내린다. 스텝과 사막이 대부분의 지역에 걸쳐 있다.


주민

 

 

아스타나 51°10′N, 71°30′E

공용어

카자흐어(국가어), 러시아어

정부 형태

대통령
총리

대통령제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림 마시모프

독립
     • 독립

소련으로부터 독립
1991년 12월 16일

면적 • 전체
     • 내수면 비율

2,724,900 km² (9위)
1.7%

인구 • 2006년 어림
     • 1999년 조사
     • 인구 밀도

15,217,700명 (62위)
14,953,100명
5.4명/km² (215위)

GDP (PPP)
     • 전체
     • 일인당

2005년 어림값
$1255억 (56위)
$8,318 (70위)

HDI • 2003년 조사

0.761 (80위)

 

카자흐인이 53.4%, 러시아인이 30%, 우크라이나인이 3.7%, 우즈베크인이 2.5%, 독일인이 2.4%, 위구르족이 1.4%, 고려인이 0.5%, 폴란드인, 불가리아인, 벨라루스인, 약간의 중국인, 기타 6.6%이다.(1999년)

 

                                                                  카자흐 군인


언어

카자흐어와 러시아어가 공용어이다. 도시지역의 카자흐인도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 우크라이나어, 벨라루스어, 독일어, 우즈벡어, 키르기스어, 페르시아어, 영어, 기타 등도 쓰인다.


종교

이슬람교가 47%, 러시아 정교회가 44%, 개신교가 2%, 기타 7%다.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이슬람교의 영향으로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문화

10세기에 철학·과학·수학에 관한 수많은 저술을 남긴 작가 아부 나스르 알 파라비가 역사적으로 유명한 문필가로서 알려져 있으며, 1904년에 사망한 아바이 이브라김 쿠난바예프가 있다. 현대에 뚜렷하게 나타나는 작가로는, 시인 잠불 자바예프와 극작가 무흐타르 아우에조프를 꼽을 수 있다. 아직도 카자흐스탄에는 서사적인 민요시와 서정시를 낭송하는 전통이 여전히 남아 있다. 이 때문에 카자흐스탄에는 많은 예술·연극 학교가 있으며, 알마티에는 국립 미술관이 있다.


대한 관계

2006년 9월 25일 대한민국(남한, 한국)의 기업들이 카자흐스탄에서 도로, 철도, 공항, 항만을 세우는 건설 분야에서의 협력을 증진하기로 합의하였음을 대한민국(남한, 한국)의 추병직 건설교통부장관이 발표하였다. 이 발표에 따르면, 카자흐스탄의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행정부는 4천㎞의 철도와 8천㎞의 고속도로를 오는 2015년까지 건설하여(Great Bridge 계획) 카스피 해 지역에 이르는 교통 인프라를 구축할 예정이다.[1]


자원

우라늄 매장량이 세계 2위, 석유 매장량 약 322억 배럴(세계 7위), 아연, 텅스텐 등 많은 광물자원을 보유한 자원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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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

 

 

 

우즈베키스탄 공화국(우즈베크어: O‘zbekiston Respublikasi/Ўзбекистон Республикаси 오즈베키스톤 레스푸블리카스 또는 O‘zbekiston Jumhuriyati 오즈베키스톤 줌후리야트, 문화어: 우즈베끼스딴)은 중앙아시아에 있는 공화국이다. 수도는 타슈켄트이고 우즈베크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으며 구 소련의 영향으로 러시아어도 소수 사용한다. 현재는 독립국가연합(CIS)의 일원이다.


역사

우즈베키스탄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우즈베크 족은 15세기까지 킵차크 한국의 지배를 받던 유목민이었으나 킵차크 한국이 붕괴되면서 남하하기 시작했다. 16세기 초, 무함마드 샤이바니 때에 크게 팽창하여 카자흐 족과 모굴리스탄 한국을 격파하고 티무르 왕조를 멸망시켜 트란속시아나(現 우즈베키스탄 일대)를 장악했으며 호라산 일대까지 진출했다. 1510년, 샤이바니 칸이 사파비 왕조와의 마르브 전투에서 패하여 영토 확장이 중단된 이후 우즈베크 족은 기존에 점령한 중앙아시아 일대에 정착하여 부하라 한국, 히바 한국을 세웠으며 약 200년 뒤인 1709년엔 코칸트 지역에 코칸트 한국도 건국되었다. 그러나 19세기 러시아 제국의 남하 정책에 의해 압박을 받아 러시아의 보호령이 되었고 소련이 탄생한 직후인 1920년에 완전히 합병되었다. 소련 지배 기간 동안 유목민과 무슬림들은 스탈린의 집단 농장 체제에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현재의 우즈베키스탄은 소련 붕괴 직후인 1991년 12월 8일에 독립하여 독립국가연합(CIS)에 가입하였다.


지리

 

 

동쪽은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 남쪽은 아프가니스탄, 남서쪽은 투르크메니스탄, 북쪽과 북서쪽은 카자흐스탄과 국경을 접한다. 북서 일부는 아랄 해에 면한다. 우즈베키스탄은 중앙아시아의 중부에 위치한 나라이다. 이곳도 사막성 기후의 특징이 잘 나타나는 곳이다. 아랄 해가 위치해 있지만, 구 소련 시절엔 강을 개간용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현재는 호수 면적이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행정 구역

 

 

이 부분의 본문은 우즈베키스탄의 행정 구역입니다.

수도는 타슈켄트이다. 우즈베키스탄은 12개의 주와 1개의 자치 공화국(카라칼파크 공화국), 1개 특별시(타슈켄트)로 구성되어 있다.


주 중심지 면적(km²) -인구- Key

안디잔 주 (Andijon viloyati) 안디잔 (Andijon) 4,200 - 1,899,000 - 2

부하라 주 (Buxoro viloyati) 부하라 (Buxoro) 39,400 - 1,384,700 - 3

페르가나 주 (Farg'ona viloyati) 페르가나 (Farg'ona) 6,800 - 2,597,000 - 4

지자흐 주 (Jizzax viloyati) 지자흐 (Jizzax) 20,500 - 910,500 - 5

호레즘 주 (Xorazm viloyati) 우르겐치 (Urganch) 6,300 - 1,200,000 - 13

나망간 주 (Namangan viloyati) 나망간 (Namangan) 7,900 - 1,862,000 - 6

나보이 주 (Navoiy viloyati) 나보이 (Navoiy) 110,800 - 767,500 - 7

카쉬카다리야 주 (Qashqadaryo viloyati) 카르쉬 (Qarshi) 28,400 - 2,029,000 - 8

카라칼팍스탄 공화국 (Qoraqalpog'iston Avtonom Respublikasi) 누쿠스 (Nukus) 160,000 -

1,200,000 - 14

사마르칸드 주 (Samarqand viloyati) 사마르칸드 (Samarqand) 16,400 - 2,322,000 - 9

시르다리야 주 (Sirdaryo viloyati) 굴리스탄 (Gulistion) 5,100 - 648,100 -10

수르한다리야 주 (Surxondaryo viloyati) 테르메즈 (Termez) 20,800 - 1,676,000 -11

타슈켄트 주 (Toshkent viloyati) 타슈켄트 (Toshkent) 15,300 - 4,450,000 -12

타슈켄트 시 (Toshkent shahri) 타슈켄트


기후

우즈베키스탄은 사막형 대륙성기후에 속하기 때문에 국토의 대부분이 연중 매우 건조하며 대체로 길게 지속되는 여름은 건기로서 열대공기의 영향으로 매우 뜨겁고 건조하며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다. 여름에는 하늘에서 비가 내리다가 미처 땅에 도달하기도 전에 말라버리는 마른비가 내린다. 반면 겨울에는 우기로 비와 눈이 자주 내리면서 비교적 습도가 높고 강수량이 많은 편이지만 바람이 없어 한국과 같은 매서운 추위는 드물고 그냥 차가운 날씨라고 보면 된다. 수도 타슈켄트는 우즈베키스탄 기후의 특성을 잘 나타내준다.


정치

우즈베키스탄은 1995년 12월부터 총리 제도를 만들었다. 총리는 대통령(현재는 이슬람 카리모프)이 임명한다.


주민

우즈벡인은 원래 타직크 주민과 15C에 그들을 정복한 몽골 민족의 혼혈이라고 한다.


몽골제국의 세력이 위축되던 시기인 1312년에서 1340년까지 시르다리야 강의 북부 스텝지역을 통치한 사람의 이름이 ‘우즈벡 칸’ 이었다. 우즈벡 칸이 이슬람을 강력히 전파하면서 우즈벡이라는 말이 무슬램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점차 이들의 세력이 점차 커지면서 우즈벡이라는 이름의 왕조와 국가의 명칭 그리고 민족명으로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14세기까지 이 지역 사람들을 ‘큽착인’이라 불렀으며 ‘우즈벡’이 민족명으로 사용된 것은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 무렵으로 추정된다. 14세기 중엽 이후 차가타이 칸국이, 14세기 말에는 큽착왕국이 쇠잔해짐으로써 중앙아시아의 힘에 공백상태가 나타났다. 15세기 중반에 이르자 투르크계 장군 압알하일 칸이 큽착초원에 강력한 국가를 건설함에 따라 그의 일족들과 그를 따르던 자들을 ‘우즈벡’이라고 부르게 되면서 이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우즈베크족이 80%를 차지한다. 5.5%의 러시아인 외에도 타지크족(5%), 카자흐인(3%), 카라칼파크족(2.5%) 등의 소수 민족이 거주한다. 소련 시대에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한 고려인이 인구의 1%에 해당하는 22만 명이다.


인구

2001년 통계를 기준으로 2,515만 명이 거주한다. 우즈베키스탄 인구는 28,18만 4,453명(2005년 통계)이며, 130개의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이다. 전체 인구 중 우즈벡 민족이 차지하는 비율은 80%로 가장 많으며 그 밖의 타지크인(5%), 러시아인(3,7%), 카자흐인(3.6%), 타타르인(0.61%), 고려인(0.6%)이 있다.


1937년에 스탈린에 의해 강제 이주하여 중앙 아시아에 정착한 고려인들도 약 15만 5900명이 살고 있다. 현재 우즈베키스탄에는 우즈벡 민족의 이슬람운동과 민족주의 운동으로 러시아 인들과 다른 소수 민족들의 입지에 대한 불안으로 그 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1989년 통계에서 러시아인들의 비율이 35%였으나, 2005년에는 3.7%로 대폭 감소하였다. 또한 고려인도 1990년대까지 약 22만 명이 거주하였으나 대부분 러시아로 이주하여 현재는 약 15만 명 정도만 살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인구는 동부지역, 특히 페르가나 분지에 집중되어 있다.


지역별로 보면 사마르칸트 주에 가장 많은 인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다음으로 페르가나 주 와타슈켄트 시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인구밀도 면에서 수도 타슈켄트를 제외하면 안디잔 주와 페르가나 주가 가장 높은 편이다. 참고로 인접국가인 카자흐스탄의 인구는 현재 1,518만 명이다.


언어

공식적으로 우즈벡어를 사용하며 민족 간의 소통언어로는 러시아어를 사용한다. 우즈베크어 등의 투르크제어가 중심이지만,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우즈베크어(74.3%), 러시아어(14.2%), 기타 언어(타지크어, 카자흐어, 투르크멘어)(4.4%) 순으로 되어 있다.


아직까지 러시아어만 알아도 의사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다만 지방으로 가면 러시아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꽤 많다. 최근에는 우즈벡 정부의 민족주의 노선에 따라 거리의 대부분 간판이나 공식서류가 거의 우즈벡어로 되어 있으며 2004년부터는 100% 우즈벡어로만 공식 서류가 발행되고 있다. 그래서 러시아계와 고려인 등 우즈벡어를 모르는 소수 민족들은 생활의 불편과 함께 그들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종교

이슬람교가 국교이자 대부분이 믿고 있다. 러시아 정교회도 소수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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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크메니스탄

 

투르크메니스탄(투르크멘어: Türkmenistan 튀르크메니스탄, 문화어: 뚜르크메니스딴)은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공화국이다. 이란, 아프가니스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스피해에 접해 있다.


역사

이 부분의 본문은 투르크메니스탄의 역사입니다.

인류 최초의 농경유적 가운데 하나인 아나우 유적(아슈가바드 교외).

기원전 2세기무렵의 파르티아왕국(중국명 안식국)의 발상지 니사 유적. 현재의 아슈가바드가 위치한 곳에 작은 취락이 있었다.

사산 제국.

6세기, 투르크계 유목민.

7세기~ 우마이야 왕조·압바스 왕조

9세기 사만 왕조.

셀주크 왕조, 가즈니 왕조,호라즘 왕국.

13세기 몽골 제국의 침공. 일 한국. 티무르 왕조.

16세기~ 히바 한국, 부하라 한국, 사파비 왕조 등이 침략한다.

1869년 러시아군, 카스피 해 동해안에 상륙.

1881년 제정 러시아군이 아슈가바트를 점령한다.(니콜라이 1세)

1882년 제정 러시아에 의해 카프카스 총독 관할구역내의 자카스피 주로 옮겨진다.

1880년~ 자카스피 철도 개통. 러시아를 위한 면화 재배의 확대.

1910년경~ 러시아 수공업의 역할지가 된다.(지금도 섬유 공업이나 면화 재배는 주요한 산업이 되고 있다)

1916년~ 1918년 반 러시아 대폭동

1924년 투르크멘 SSR로 소비에트 연방(소련) 구성국의 하나가 된다. 농업 집단화에 반발한 유목민의 저항이 36년까지 계속 되었다.

1990년 8월 22일에 주권 선언을 하면서, 10월 27일에는 직접 선거에 의한 대통령으로 단독 후보의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가 98.8%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1991년 10월 26일의 국민투표로 소련으로의 독립에서 94.1%가 찬성했고 다음해인 10월 27일에 독립했다.

1992년 5월 18일 최고 회의가 대통령 권한을 강화한 신헌법을 채택.

1992년 5월 러시아, CIS제국과의 집단안전보장조약서명을 거부.

1992년 6월 대통령 선거에서 니야조프 대통령이 99.5%의 지지로 재선.

1995년 12월 국제연합총회에 대해 영세중립국으로 승인된다(러시아의 영향력을 배제하는 목적이라고 여겨진다). 니야조프 대통령은 개인숭배에 의한 독재체제로, 2002년 8월에는 종신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국내에서 니야조프 대통령은 투르크멘바시(투르크멘인의 우두머리)를 성으로 하고 있다.

2002년 11월 25일 아슈하바트에서 대통령 행렬이 총격을 받았다. 경호원 1명이 중상.

2006년 12월 21일 니야조프 대통령이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2007년 2월 14일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가 새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지리

 

 

                                                            투르크메니스탄 지도

 

국토 면적의 90%는 카라쿰 사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쪽은 카스피 해에 접해 있다. 남부는 이란과의 국경 지대이고, 북쪽 우즈베키스탄과의 국경 지대는 강이 흐르고 있다.


행정구역

 

투르크메니스탄의 행정 구역투르크메니스탄은 주(welayatlar, 단수 welayat)와 1개의 특별시로 구성되어 있다.


중심지 면적 (sq. km) 인구 (1995년) Key

아스가바트  아스가바트   604,000 

아할 주 TM-A 안나우 95,000 36,680 722,800 1

발칸 주 TM-B 발카나바트  138,000 53,280 424,700 2

다쇼구즈 주 TM-D 다쇼구즈 74,000 28,570 1,059,800 3

레바프 주 TM-L 투르크메나바트 94,000  36,290 1,034,700 4

마리 주 TM-M 마리 87,000 33,590 1,146,800 5


기후

기후는 몹시 건조한 기후로 사막이 위치해 있는 곳이다. 그리고 사막성 기후의 특징이 잘 나타나는 곳이다.


주민

투르크멘인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러시아인이나 우즈벡족도 많다. 러시아인은 감소 경향에 있다. 투르크멘인(85%), 우즈베크인(5%), 러시아인(4%), 그 외(6%) (2003년)


언어

투르크멘어가 공용어이지만, 러시아어도 통용된다. 투르크멘인 가운데에서도 도시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이나 엘리트 가운데에는 러시아어만 알고 있고 투르크멘어를 모르는 사람도 있다. 페르시아어, 카자흐어도 사용되기도 한다.


종교

수니파 이슬람교가 다수이다. 무슬림이 다수인 투르크멘 족들은 종교적 의무를 엄격하게 수행하지는 않으나,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풍습만은 지킨다고 한다. 시아파 이슬람교와 러시아 정교회도 소수 존재한다.


그러나 한때 투르크메니스탄의 대통령이었던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는 자신을 숭배토록 유도했었으며, '루흐나마'라는 경전을 발간하여 학교에서 교육 시켰다. 수도에는 거대한 규모의 대통령 황금 동상이 세워져 있다.


국민건강

평균 수명은 60세이다.


문화

이 부분의 본문은 투르크메니스탄의 달 및 요일명 개칭입니다.

2002년 8월 10일 투르크메니스탄 정부는 종래에 써오던 러시아에서 유래한 달 이름및 요일이름을 개명하는 법률을 만들었다. 새 이름은 투르크메니스탄의 종신대통령(2006년 사망)인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가 저술한 루흐나마에 제시된 투르크메니스탄의 상징들에서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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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키스탄

 

타지키스탄 공화국(타지크어: Ҷумҳурии Тоҷикистон / جمهوری تاجیکستان 줌후리 토지키스톤, 문화어: 따쥐끼스딴)은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국가이다.


역사

본래 소비에트 연방의 15개 공화국 중 하나인 타지크 SSR이었는데, 1991년 독립하였다. 타지키스탄은 한 때 정치 불안으로 내전까지 발발했다.


지리

 

 

 

중화인민공화국, 아프가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과 국경을 접한다.


행정 구역

수도(首都)는 두샨베이다. 지방은 남부의 하토론 주 (주도는 쿠르간튜베), 북부 페르가나 분지 방면의 소그드 주(주도는 호젠트)의 2주로 구성되어 있고, 동부 파미르 고원의 고르노바다흐샨 자치주(주도는 호로크)로 나눌 수 있다. 그 외의 주요 도시는 판지켄트, 가름 등이 있다. 타지키스탄의 도시 참조.


주민

주된 민족은 이란계 민족인 타지크인이며, 우즈벡족, 페르시아인, 러시아인, 기타이다.


언어

타지크어가 공용어이다.

타지크인이 사용하는 타지크어는 페르시아어에 가까워서 민족적으로는 이란에 가깝다.

러시아어, 우즈베크어, 파미르 방언, 페르시아어도 사용된다.


종교

이 나라는 이슬람교 국가이다. 타지크인을 포함한 타지키스탄의 이슬람교는 수니파가 다수를 차지해 이란과 같은 시아파는 극히 소수이다. 동부의 파미르 고원에서는 이스마일파의 신도(信徒)가 적지 않으며 극소수의 러시아 정교회도 있다.


교육

이 나라는 문맹률이 상당히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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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스스탄

 

 

키르기스스탄(키르기스어: Кыргызстан, 러시아어: Киргизия 키르기시야[*], 문화어: 끼르기즈스딴)은 중앙아시아 내륙의 공화국으로 소련의 구성 공화국이었다가 1991년에 독립했다. 중국,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과 접해있다. 2005년까지는 혁명과 내전으로 정국이 불안하였다고 한다.

 

 

사람과 언어

이 부분의 본문은 키르기스스탄의 주민입니다.

Traditional roadside graves키르기스족들이 69.5%정도 차지하고, 유르트와 야크를 방목한다. 기타 소수민족은 러시아인 (9.0%), 남부의 우즈벡족 (14.5%)이다. 소수그룹을 차지하는 위구르족 (1.1%), 타지크족 (1.1%), 카자흐족 (0.7%), 둥간족 (1.2%)과 터키인 (0.9%), 고려인 (0.3%), 우크라이나인 (0.5%)이다.


키르기스어와 러시아어가 공용어이며, 키르기스어는 1991년 9월부터 공용어로 지정되었다. 이것은 신생국인 키르기스스탄에 거주하는 러시아인들이 대부분 떠나게 되는 원인중 하나였다. 러시아어는 2000년에 다시 공용어로 지정되었다. 키르기스어는 투르크어족에 속한 언어로 20세기까진 아랍 문자로 표기되었다. 1928년에서 1941년까진 로마자로 표기되다가, 41년부턴 키릴 문자로 표기되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러시아어를 이해할 줄 안다. 특히 비슈케크 주민들은 러시아어가 모국어이고, 사업과 정무에서 많이 사용된다. 소수 민족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문화

프랑스의 시인 루이 아라공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라고 평한 소설 자밀라를 쓴 칭기즈 아이트마토프가 바로 키르기스스탄인이다.


행정구역

키르기스스탄은 현재 7개의 주(주; 단수область 복수областтар)로 구분되어 있다. 수도는 비슈케크이다. 도시(Шаар)도 구분되어 있다.


현재 키르기스스탄의 주와 중심지를 보면

비슈케크 (Шаар)

바트켄 주 (바트켄)

추이 주 (토크마크)

이식쿨 주 (카라콜)

잘랄아바트 주 (잘랄아바트)

나린 주 (나린)

오시 주 (오시)

탈라스 주 (탈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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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북부-중앙아시아포함)

 

이 나라는 1919년에서 1973년까지는 아프가니스탄 왕국이었다. 지도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파슈토어: د افغانستان اسلامي جمهوریت, 다리어: جمهوری اسلامی افغانستان)는 서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나라이다. 북쪽은 투르크메니스탄·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 북동쪽은 중국, 동쪽과 남쪽은 파키스탄, 서쪽은 이란에 닿아 있다. 수도는 카불이다.


2007년 샘물교회소속 한인 선교봉사단체가 무장단체에 의해 인질로 억류되어 2명이 살해되는 극박한 상황이 전개되었고, 결국 협상의 타결로 나머지 일행들은 석방되었다. 그 후 현재 본국의 불안한 치안상황 등 여러 정황에 따라 국민의 신변안전을 위해 대한민국 정부는 허가없이 아프가니스탄으로 입국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역사

이 부분의 본문은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입니다. 현재의 아프가니스탄 지역은 오랫동안 역사적으로 페르시아 제국의 영역에 속해 있었고,많은 민족과 국가가 거쳐갔다. 18세기에 파슈툰 족인 아흐마드 샤 압달리가 두라니왕국을 세웠으며, 이것이 독립왕국으로서 아프가니스탄의 시초로 여겨진다. 19세기부터 아프가니스탄은 영국과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으나, 1919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첫 국명은 아프가니스탄 왕국).


1973년 군주제 폐지 이후 정치 불안, 내전, 소련군의 침략 등으로 국토와 민심이 황폐해졌고, 이로 인해 국기와 국가(國歌)가 바뀐 적도 있었다. 1996년부터 5년간 탈레반의 지배를 받았는데, 탈레반은 여성 학교를 폐교시켰고 외국의 매체들을 접하지 못하게 하는 등 엄청난 인권 탄압을 자행했다.


이 부분의 본문은 2007년 탈레반 한국인 납치 사건입니다.

2007년 2월 27일에는 폭탄 테러로 한국군 장병 1명이 사망했고, 그리고 2007년 7월 19일에 가즈니 주 카라바그 부근에서 독일인과 한국인 봉사단 23명이 탈레반에 의해 납치되어 한국인 2명 (목사 1명, 봉사자 1명)이 살해 당했다.


지리

이 나라는 중앙아시아의 십자로로 불리는 곳으로 북부와 동부는 산악지대이다. 그리고 서부와 남부는 사막이 위치해 있다. 기후가 몹시 추운 대륙성 기후의 특징이 많이 나타난다.

아무다리야 강이 북쪽 국경을 형성하고 있으며 힌두쿠시 산맥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국경을 형성하고 있다.


행정구역

이 부분의 본문은 아프가니스탄의 행정 구역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은 34개의 주(벨라야트)로 나뉘며, 주는 다시 군으로 나뉜다.


주민

주요 민족 (2003년 추계)

파슈툰족 44%

타지크족 25%

하자라족 10%

우즈베크인 8%

투르크멘인과 기타


언어

2004년에 제정한 현행 헌법 1부 16조는 “파슈토어, 다리어, 우즈베크어, 투르크멘어, 발루치어, 파샤이어, 누리스탄어 및 국내에서 말하는 다른 언어들 중에서 파슈토어와 다리어는 국가의 공용어다. 국가는 아프가니스탄의 모든 언어의 강화 및 발전을 위하여 효과적인 계획을 채택하며 이행한다.


출판과 라디오 및 텔레비전 방송은 국내에서 말하는 모든 다른 언어들로 자유롭게 한다.”고 했다. 공용어인 파슈토어는 35%, 다리어는 50% 정도가 사용한다. 투르크멘어는 11%를 차지하며, 기타(러시아어, 우즈베크어, 키르기스어, 타지크어, 힌디어, 우르두어 등)도 사용된다.


종교

이 나라는 이슬람교가 다수를 차지하는 나라이다. 시아파가 다수인 이란과는 달리 수니파가 다수이다.


수니파 85%

시아파 15%

힌두교, 기독교, 시크교, 불교도 존재하고 있다.

탈리반 정권 하에서는 불교 사원이 이슬람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파괴되기도 하였다.


교육

문해율은 남성 71%, 여성 57%이다. 탈레반 정권하에서는 여성의 교육 및 사회활동이 전면 금지되었으나, 탈레반 축출이후에 교육이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그러나 불안한 정세와 이로 인한 교육인프라 부재가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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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파키스탄 이슬람 공화국 (우르두어: اسلامی جمہوریۂ پاکستان 이슬라미 잠후리야 이 파키스탄)또는 파키스탄(우르두어: پاکستان 파키스탄)은 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에 있는 국가이다. 파키스탄은 전세계에서 6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이자, 전세계에서 6번째로 이슬람교도가 많은 나라이다. 수도는 이슬라마바드이며 주요도시로는 카라치, 라호르, 라왈핀디 등이 있다.


역사

이 부분의 본문은 파키스탄의 역사입니다. 1947년 8월 15일,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그 당시에는 인도와 합쳐져 있었으나 종교적 이유로 인도로 부터 분리 독립했다. 1971년에는 방글라데시 독립 전쟁으로 동파키스탄(현재의 방글라데시)가 분리 독립하고 서파키스탄(현재의 파키스탄)만이 남게 되었다. 2008년 8월 18일에 무샤라프 대통령은 사임되고, 베나지르 부토의 남편이었던 자르다리가 새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지리

 

파키스탄의 총면적은 803,940 km²로 세계에서 34번째로 넓은 면적을 가지고 있으며, 대한민국보다 약 8.2배 더 넓고, 남북한을 합친 면적보다도 3.7배나 더 넓다. 남쪽으로는 아라비아 해가 있어 바다를 접하고 있고, 동쪽으로는 인도, 북쪽으로는 중국, 북서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 서쪽으로는 이란과 각각 국경을 접하고 있다. 북쪽과 서쪽은 산악지대로 되어 있는데, 카슈미르 지역에는 세계에서 두번째로 높은 K2 등 세계에서도 높은 봉우리들이 많다.


서부 중앙의 발루치스탄 지역은 높은 사막 고원지대로 되어 있고, 중앙의 펀자브 지역은 인더스 강이 지나고 있어 파키스탄에서 가장 비옥한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다.


행정구역

 

 

1960년대에 파키스탄은 서파키스탄과 동파키스탄으로 단순하게 구분되어 있었으나, 동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로 독립한 이후에 현재의 파키스탄인 서파키스탄은 네 개의 주로 행정구역을 나누었다. 현재 파키스탄은 4개의 주요 지역(펀자브, 신드, 발루치스탄과 연방통치 북부지구)로 구성되어 있다.


발루치스탄 주

노스웨스트프런티어 주

펀자브 주

신드 주

특별행정구역:

이슬라마바드 수도권

연방통치 부족지구

파키스탄 령 카슈미르 지역(아자드 카슈미르):

아자드카슈미르

연방통치 북부지구


인구

파키스탄이 인구는 2005년 현재 162,419,946명 정도로 추산되며, 이는 세계에서 브라질에 이어 여섯번째로 많은 것이다. 1980년대에는 높은 인구증가율로 인해 2050년경에는 세번째로 많은 인구를 가질 것으로 예측되기도 하였으나, 1988년 이후 인구증가율이 급격히 낮아져 현재의 인구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언어

법적으로 우르두어를 국어라고 지정했을 뿐 공용어의 지위는 없다. 게다가 우르두어를 국어라고 한 조문에는 다음과 같은 단서가 있다. "공용어가 영어의 역할을 대체할 때까지는, 영어는 공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즉, 실제적으로는 영어가 공용어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방수준에서는, 신드주만이 신드어와 우르두어를 공용어로 사용할 뿐, 나머지 지역은 우르두어가 유일한 공용어다.


종교

파키스탄 인구의 대부분은 이슬람교을 믿고 있으며, 그 중에서 수니파가 75%, 시아파가 20%를 차지하고 있다. 무슬림 외에는 기독교인이 2.5%로 가장 많으며, 그 밖에도 소수의 힌두교도, 불교도, 조로아스터교도, 시크교도 등이 있다. 이 중 기독교는 이슬람 원리주의에 의해 탄압받는 종교이지만, 무샤라프 대통령에 의해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을 전망이다.


파키스탄의 종교인구의 구성은 영국령 인도의 분할에 의해 크게 바뀌었는데, 영국령 인도가 인도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으로 분할될 당시 7백만 명의 무슬림이 인디아에서 파키스탄으로 이동했고, 반대로 6백만 명의 힌두교도와 시크교도는 파키스탄에서 인디아로 이동하여 파키스탄에서 무슬림은 더욱 더 큰 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또한 파키스탄은 시크교와 대승 불교, 그리고 밀교의 발생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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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몽골(몽골어: Монгол Улс 몽골 울스, 통용: 몽고(蒙古))은 중앙아시아에 있는 나라이다. 카자흐스탄 다음으로 큰 내륙국이기도 하다. 북쪽은 러시아, 남쪽은 중국과 맞닿아 있다. 몽골의 면적은 156만 4116 평방킬로미터로, 아시아에서 6번째로 넓지만 인구는 290만명에 불과하다. 수도는 울란바타르로, 몽골 인구의 38퍼센트가 거주하고 있다. 이 나라의 국토 대부분은 황무지 및 농사를 짓기 힘든 스텝으로 덮여 있으며, 농지의 비율은 적다. 북쪽과 서쪽은 산악지대이며 남쪽에는 고비사막이 있다. 이 나라 인구의 30퍼센트 정도가 유목민 또는 준유목민으로 알려져 있다. 몽골인들이 가장 널리 믿는 종교는 티베트 불교이다. 몽골의 인구 구성은 대부분 몽골인이지만, 소수의 투바인과 카자흐족도 포함되어 있다. 기타 소수 민족들은 몽골의 서쪽 지대에 거주하고 있다.


역사

이 부분의 본문은 몽골의 역사입니다. 고대로부터 몽골 초원에는 흉노, 돌궐 등 여러 유력한 유목 민족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1206년 칭기즈 칸이 등장해 몽골 초원을 통일하고 역사상 최대의 대제국을 건설했다. 14세기 말에 몽골 제국이 몰락하자 몽골 초원에는 다시 여러 부족이 나타났다.


명나라에 이어 중국을 지배한 청나라의 강희제는 몽골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몽골을 내몽골과 외몽골로 분리시켰다. 이후 내몽골은 중국과 호흡을 같이하고 외몽골은 중국에서 신해 혁명이 일어난 1911년에 신정 군주제로 독립을 선언하였다.


1917년 이후 한때 러시아 내전의 여파에 휘말렸으나 1921년 수흐바토르 초이발산이 전란을 수습하고 1924년 국호를 몽골 인민 공화국이라 함에 따라 아시아의 두번째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다. 그 이후 소련의 영향력이 막강해졌으며, 중, 소분쟁이 발생할 때 옛 소련을 지원하였다(그에 힘입어 코메콘 가맹 국가도 몽골에게 경제적 지원을 해 주었다). 1992년에 복수정당제를 원칙으로 하는 자본주의 국가로 변화, 사회주의 체제를 버리고 자본주의 경제를 도입했다.


지리

몽골은 지리적으로 중앙아시아에 있으며 국토는 4가지 성격의 지대로 나뉜다. 서쪽은 알타이, 항가이라고 하는 큰 산맥 지대, 남쪽은 중앙아시아 고비사막 지대, 동쪽은 아무것도 없는 초원 지대, 그리고 북쪽은 시베리아 남쪽 살림 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고도는 평균 1500m 정도이다.


기후

고비사막의 영향을 받아 매우 건조하고 온도의 차가 심하다. 일년 평균강수량이 200mm 정도이다.


정치

이 나라는 1924년부터 1992년까지는 구소련의 지원을 매우 많이 받은 사회주의 국가였으나 1992년 선거로 민주화되었다. 1992년도에 민주공화제 채택하였고, 의원내각제의 성격이 강한 이원집권제 연임이 가능한 4년 임기의 대통령을 국민 직접선거를 통해 선출하며 바가반디 대통령에 이어 현재 2006년 선출된 남바린 엥흐바야르 대통령이 재임 중이다.


종교

몽골인의 주된 종교는 티베트 불교로 역사적으로는 티베트와의 관계가 깊다. 하지만 1992년 선거로 민주화된 이후 개신교가 선교사들에 의해 유입되고 있으며, 그 이전부터 러시아의 영향으로 정교회 신자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주민

대부분의 몽골인은 인종적으로는 한국인과 같은 황색인으로 몇 가지의 유전 형질의 경향이 일치하고, 몽골어와 한국어가 문법적으로 닮았다.


민족

서부의 바얀욀기 주는 카자흐족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학교 교육도 카자흐어로 행해진다. 투바인, 부랴트족(몽골인 후손), 중국인, 러시아인 등 소수 민족도 거주한다.


요리

이 부분의 본문은 몽골의 요리입니다.


언어

몽골어가 공용어이며 러시아어가 2언어로 많이 알려졌다. 또한 소수의 카자흐어, 중국어 사용자도 있다. 일본어, 한국어, 독일어, 영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몽골어는 알타이제어의 하나로 넓은 뜻으로는 몽골민족이 과거에 사용했고 또 현재 사용하고 있는 몽골계 언어 전반을 가리킨다. 좁은 뜻으로는 위구르계 몽골문자로 쓰인 몽골어 문어를 뜻한다.


현재 몽골어는 키릴 문자를 주로 사용한다.


몽골어를 쓰는 곳

사용지역은 네이멍구와 몽골을 중심으로 중국 변경지구 ·아프가니스탄 ·볼가강(江) 유역 등 광대한 지역에 미친다. 현대 몽골어는 동서의 대방언군(大方言群)으로 나뉘고 그 밖에 약간 고립된 방언이 있으나, 지역적 언어차는 별로 심하지 않다. 그러나 2,3개의 고립된 방언은 어형(語形) 변화가 심하여 다른 방언과의 차이가 크다.


몽골어를 대표하는 방언은 동(東)몽골방언군에 속하는 할하어 계(系)의 언어로 현재 몽골 전지역의 공통어 구실을 한다.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몽골어는 13세기부터 16세기 말에 이르는 중세 몽골어시대, 17세기부터 현대까지의 근세 몽골어시대 등 두 시기로 나뉜다.


교육

몽골의 초중등학교 과정은 현재 총 11년간이며, 12년으로 확장하려 하고 있다.


군대

이 나라는 건강한 남자라면 군대에 갈 의무가 있다(징병제 채택).


몽골군은 몽골 인민군 (육군)과 몽골 인민 공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8세에서 25세 사이의 모든 몽골의 인민은 병역의무가 있다. 이들 인력은 몽골 인민군 및 경찰 병력으로 편성되어 12개월간 복무한다. 양성 모두 의무적으로 군복무에 임해야 하나 여성은 몽골 인민군 규정상 해외파병에는 제외된다.


대외관계


한국과의 관계

이 나라는 현재 남북한 동시수교국이다. 대한민국과는 1990년 3월 26일 수교하였다.


중국과의 관계

몽골은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의 9번째 수교국이지만, 중화민국(대만)은 현재에도 몽골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어 중국 양안(兩岸) 정부의 몽골에 대한 태도가 정 반대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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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자치구

 

 

西藏自治区

Xīzàng Zìzhìqū 약자: 藏

행정 단위 자치구

청사 소재지 라싸 (ལྷ་ས་)

면적 1,228,400 km² (2위)

인구 (2002년) - 인구밀도 2,670,000 (31위)

2.2/km² (31위)


티베트 자치구(티베트어: Bod-rang-skyong-ljongs) 또는 시짱 자치구(서장 자치구. 중국어 간체: 西藏自治区, 정체: 西藏自治區, 병음: Xīzàng Zìzhìqū)는 중화인민공화국 서남부의 티베트에 있는 자치구이다. 1950년대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에 합병되었고, 문화대혁명의 여파로 많은 사찰들이 파괴되기도 했다. 오랫동안 독립 투쟁을 벌이고 있으나, 중화인민공화국의 탄압으로 인해 번번히 진압되고 말았다.


주민

주민의 대부분은 티베트족이다. 한족이 시짱 자치구에서 2번째로 많은 민족이며, 일부 몬파족, 로바족, 몽골족도 거주한다. 주민의 대부분이 티베트어를 사용한다. 대부분이 티베트 불교를 믿으며 본교도 일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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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 웨이우얼 자치구

행정 단위 자치구

청사 소재지 우루무치 (乌鲁木齐)

면적 1,660,000 km² (1위)

인구 (2004년) - 인구밀도 19,630,000 (24위)

11.8/km² (29위)


신장 웨이우얼 자치구(신강 유오이 자치구. 중국어 간체: 新疆维吾尔自治区, 정체: 新疆維吾爾自治區, 병음: Xīnjiāng Wéiwú'ěr Zìzhìqū, 위구르어: شىنجاڭ ئۇيغۇر ئاپتونوم رايونى 신장 위구르 압토놈 라이오니 / Shinjang Uyghur aptonom rayoni / Шинҗаң Уйғур Аптоном Райони) 또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는 중화인민공화국 북서쪽에 위치하는 자치구이다. 중앙아시아 위구르족의 자치구이며, 그 영역은 위구르족에게는 동투르키스탄(شەرقىي تۈركىستان, Sherqiy Türkistan) 지역으로 불리고 있다. 아울러, 신장(新疆 신강)은 '새로운(新 신) 영토(疆 강)'를 뜻하며, '위구르'(ئۇيغۇر 웨이우얼)의 뜻은 위구르어로 "단결"과 "연합"을 의미한다.


중국의 시간대는 베이징 시간(北京時間)으로 통일되어 있으므로 공식적인 국내의 시차는 존재하지 않지만, 신장 웨이우얼 자치구에서는 비공식적으로 베이징 시간보다 2시간 늦는 신강 시간(新疆時間)이 사용되고 있다. 규모는 작지만 일부에서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역사

18세기 이전

신장(新疆, 신강)은 고대 중국인들이 서역이라고 부르던 지역의 일부분으로 비단길이 이 지역을 지나간다.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 흉노족, 돌궐족, 몽골족 등 유목민족의 지배를 받았지만 한나라나 당나라 때와 같이 중국의 왕조가 강성했던 시기에는 관부를 설치해 직접 지배하기도 했으며 이 지역의 민족들과 나라들을 영향권 아래 두기도 했다.


당 왕조 이후 중국은 이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하였으며, 이 지역은 위구르 제국의 영역이 되었다. 위구르인들은 10세기에 이슬람교를 받아들였고 이후 차가타이한국의 지배하에서 급속히 이슬람화되었다.


청의 지배

1755년 몽골을 완전히 정복한 청 제국이 이 지역을 침략하였다. 위구르인들은 이에 저항하였으나 1759년 이 지역은 청의 군사적 지배하에 들어갔다. 그러나 위구르인들의 저항은 계속되었고, 19세기 중반 청 제국이 혼란에 빠지면서 통제력을 상실하게 되자 1864년 대대적인 반란이 일어나 청의 군대는 이 지역에서 철수하였다.


반란세력들 간의 내전 결과, 야꿉 벡이라는 인물이 통일 국가를 수립하였다. 그는 이슬람의 수호자를 자처하면서 근대식 소총과 화포를 구입하여 무력을 증강하였고, 영국과 러시아의 승인을 받기도 하였으나 1876년 청군과의 전투에서 패한 직후 급사하였다. 이후 청은 1884년 이 지역에 신강성을 설치하여 자국의 영토로 합병하였다.


동투르키스탄 공화국

이 부분의 본문은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 동투르키스탄 독립운동입니다.

1933년 11월 동투르키스탄이슬람공화국이 처음으로 건국되었으나 3개월 만에 소멸되었고, 1944년 다시 동투르키스탄공화국이 성립되었다. 그러나 공화국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에 병합되었고, 1955년 신장 웨이우얼 자치구가 되었다.


지리

신장은 남쪽은 티베트 자치구, 남동쪽은 칭하이 성과 간쑤 성, 동쪽은 몽골, 북쪽과 서쪽은 러시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에 접해 있다. 중앙은 분지와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주위는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홍산(紅山) 산에서 바라본 우루무치 시가지.


사람과 언어

10개가 넘는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 3분의 2는 위구르족이지만, 한족과 카자흐족이 그 다음을 차지하고, 그밖에 후이족 또는 둥간족[回族]·키르기스족·몽골족·타지크족·우즈베크족·타타르족·시버족·다우르족, 투르크멘족, 만주족 등도 있다. 이밖에도 18세기에 들어온 러시아인도 살고 있다. 종교는 대다수가 이슬람교를 믿으나 일부는 샤머니즘과 라마교를 믿으며, 러시아인은 대부분 정교회 신자이다. 공용어는 중국어지만 각 민족은 여러 언어를 쓴다


2000년의 신장의 민족 그룹

민족

주민

 %

위구르족

8,345,622

45.21

한족

7,489,919

40.58

카자흐족

1,245,023

6.74

후이족

839,837

4.55

키르기스족

158,775

0.86

몽골족

149,857

0.81

둥샹족

55,841

0.30

타지크족

39,493

0.21

시버족

34,566

0.19

만주족

19,493

0.11

투자족

15,787

0.086

우즈베크족

12,096

0.066

러시아인

8935

0.048

먀오족

7006

0.038

티베트족

6153

0.033

좡족

5642

0.031

다우르족

5541

0.030

타타르족

4501

0.024

살라르족

3762

0.020

 

2000년 신장의 주요 민족 분포도

 

위구르족

한족

카자흐족

기타

신장

45.2%

40.6%

6.7%

7.5%

우루무치

12.8%

75.3%

2.3%

9.6%

커라마이

13.8%

78.1%

3.7%

4.5%

투르판

70.0%

23.3%

<0.1%

6.6%

쿠물

18.4%

68.9%

8.8%

3.9%

창지 후이족 자치주

3.9%

75.1%

8.0%

13.0%

보얼타라 몽골 자치주

12.5%

67.2%

9.1%

11.1%

바잉궈렁 몽골 자치주

32.7%

57.5%

<0.1%

9.7%

아커쑤 지구+ 아라얼

71.9%

26.6%

<0.1%

1.4%

커쯔러쑤 키르기스 자치주

64.0%

6.4%

<0.1%

29.6%

카스 + 투무스커 DACLC

89.3%

9.2%

<0.1%

1.5%

호탄

96.4%

3.3%

<0.1%

0.2%

일리 카자크 자치주

16.1%

44.4%

25.6%

13.9%

- 쿠이툰

0.5%

94.6%

1.8%

3.1%

- 이리 예전 지구

27.2%

32.4%

22.6%

17.8%

- 타청

4.1%

58.6%

24.2%

13.1%

- 아얼타이

1.8%

40.9%

51.4%

5.9%

스허즈 DACLC

1.2%

94.5%

0.6%

3.7%


************************************************

칭하이 성

  

 

행정 단위 성

청사 소재지 시닝 (西宁)

면적 721,000 km² (4위)

인구 (2002년) - 인구밀도 5,290,000 (30위)

7.3/km² (30위)


칭하이 성(청해성. 중국어: 青海省, 병음: Qīnghǎi Shěng, 티베트어: མཚོ་སྔོན་, 몽골어: Köke Naγur, 만주어: Huhu Noor)은 중화인민공화국 서부의 성으로, 칭하이 호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 북동쪽에 간쑤 성, 북서쪽에 신장 웨이우얼 자치구, 남동쪽에 쓰촨 성, 남서쪽에 티베트 자치구가 접해 있다.


지리

칭하이 성은 찡창고원(靑藏高原)의 동북부에 위치하며, 황허(黃河), 란창강(瀾滄江)[메이궁허(湄公河)]의 수원지이다.

·인접한 성:쓰촨 성(四川省)、간쑤 성(甘肃省)、신장 웨이우얼 자치구(新疆维吾尔自治区)、시짱자치구(西藏自治区)·바옌카라산(巴颜喀拉山)은 장강과 황허의 분수령이다.

 

청장고원 해발 리스트


청해성

市/自治州

县/市/区

乡/镇/街道办事处

海拔高度meter

西宁市

城中区

2230

海北藏族自治州

海晏县

城关镇

3070

刚察县

沙柳河镇

3235

海西蒙古族藏族自治州

德令哈市

2945


서장자치구

市/自治州

县/市/区

乡/镇/街道办事处

海拔高度meter

拉萨市

城关区

3650

达孜县

德庆镇

墨竹工卡县

工卡镇

3830

当雄县

公塘镇

4302

当雄县

羊八井镇

4288

林芝地区

林芝县

八一镇

林芝县

林芝镇

3020

工布江达县

城关镇

3440

波密县

扎木镇

2750

波密县

排龙乡

2030

昌都地区

昌都县

城关镇

3238

八宿县

白玛镇

3280

八宿县

邦达镇

4120

八宿县

然乌

3960

左贡县

旺达镇

3877

那曲地区

那曲县

城关镇

4492


사천성

市/自治州

县/市/区

乡/镇/街道办事处

海拔高度meter

甘孜藏族自治州

康定县

炉城镇

2480

甘孜县

斯俄镇

泸定县

泸桥镇

1330

阿坝藏族羌族自治州

马尔康

城关镇


역사

약 2만년 전부터 사람이 거주했으며, 이 당시의 주민은 주로 강족(羌族)이다. 이들은 짱족의 조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기원전 61년에 한(漢)이 치앙족을 평정하고 7개의 현을 설치하였다. 이때부터 중원지방에서 칭하이 성으로 한족이 들어와 농사를 지으면서 한족과 치앙족이 함께 살게 되었다. 기원전 4세기에는 투위훈(吐谷浑)족이 들어와 한족, 치앙족과 섞여 살면서 경제를 발전시켰고 투위훈 국을 세웠다. 투위훈족은 약 300년동안 칭하이를 다스리면서 실크로드의 남쪽 부분을 개통하여, 서방과의 교통무역에 공언을 하였다. 수나라 양제(隋煬帝)[609년] 때 투위훈을 멸망시키고 칭하이의 동부와 남부를 지배하였다.


1911년 신해혁명(辛亥革命)으로 인해 청(淸)이 붕괴되고 칭하이 성은 북양(北洋)의 군벌지배 하에 있게 된다. 1929년 국민당 정부에 의해 칭하이는 성으로 승격했으며, 1949년 9월 5일 시닝에 공산군이 진군하고 8일에 시닝 인민정부를 세웠다.


인구와 민족

2004년 말 전체 성의 총 인구수는 5,386,000명이다. 한족은 2,610,000명으로 54.5%를 차지하고, 소수민족은 모두 2,360,000명으로 45.5%를 차지한다. 이것은 시짱과 신강의 인구비율과 비슷한 것으로 전국에서 세 번째로 소수민족이 많이 거주한다.


주요소수 민족

짱족 : 1,090,000명이며 전체 성 총 인구의 20.87%를 차지한다. 주로 위슈(玉树), 궈뤄(果洛), 하이난(海南), 황난(黃南), 하이베이(海北)와 다섯 개 짱족자치주와 하이쓰몽고족짱족자치주, 시녕시의 따통현(大通)과 하이동(海東)지구도 부분적으로 짱족 주거지가 있다. 칭하이의 짱족은 장기간 역사 발전 중에서 칭짱고원에 투판족을 받아들임으로써 각 민족이 점차 발전형성한 것이다. 짱족 언어 방언은 한짱어(汉藏)에 속하며 짱미엔어족 계열이다. 청해짱족은 위슈부분의 사람들의 말하는 캉바어를 제외하고 모두 안둬(安多)방언을 사용하고 짱어를 토용하고 있다. 짱족은 티베트가 전파한 불교를 신봉한다.


회족 : 750,000명으로 전체 성의 총 인구수의 14%를 차지한다. 주로 칭하이 동부지구에 분포한다.

투족 : 19,000명

싸라족 : 87,000명

몽고족 : 86,000명


행정 구역

현재 1곳의 지급 시, 1개의 지구, 6개의 자치구, 그리고 4개의 시․직할구, 2개 현급 시, 30개의 현, 7개의 자치현으로 관리된다.

·지급시 : 시닝시

·지구 : 하이동지구

·자치현 : 하이베이짱족치주, 하이난짱족자치주, 황난짱족자치주, 궈뤄짱족자치주, 위슈짱족자치주 하이시몽고족짱족자치주

·현급시 : 거얼무시 더링하시


경제

2004년 전체성의 생산총액은 46,573,000,000원으로 가격계산 비에 따라서 작년보다 12.3% 증가했다. 1인당 평균 생산총액은 1000달러를 돌파하였고, 8606인민폐를 달성하였으며, 작년에 비해 11.2%증가하였다.


2004 전체년도의 세관 수출입 총액은 576,000,000달러로 작년에 비해 69.7%증가했고, 그중에 수출액이 455,000,000달러로 66.0%증가하였다. 수입액은 121,000,000달러로 85.0%증가하였다. 수출액 중에서 일반무역수출은 260,000,000달러로 35.2%증가했고, 가공업무역의 수출은 194,000,000달러로 1.4배 증가하였다. 수출시장은 주로 일본 130,000,000달러, 한국 84,000,000달러 중국홍콩 51,000,000달러 미국 30,000,000달러이다.


에너지원

칭하이 성은 석유를 가지고 있으며 주로 차이다무(柴达木)분지에 있다. 차이다무분지의 석유탐사와 채굴은 1954년에 들어서 진행되었으며 1955년 제1유정굴착장치를 설치하였다. 오늘에 이르러서 칭하이 성 석유의 유전 연간 생산량은 495만 톤에 도달하였다.


문화

국가역사문화명성 : 통런

반찬어얼더니(班禅额尔德尼)

시라오지아춰(喜饶嘉措)

겅둔춴페이(更敦群培)


여행

타얼쓰

칭하이호


진귀한 동물

티베트야생당나귀

티베트영양

황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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