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

고려봉(高麗棒)

한부울 2008. 9. 21. 16:23

고려봉(高麗棒)

[중앙일보] 2008년 08월 28일(목) 오전 00:35


낯선 사람, 특히 잦은 접촉이 없었던 외국인에게는 혐오감이 따를 수 있다. 이방인에 대한 모호한 상태의 적개심은 흔히 제노포비아(Xenophobia)라는 용어로 설명할 수 있다. 외부 사람이라는 뜻의 ‘제노’와 싫어한다는 의미의 ‘포비아’를 합성한 단어다.


이웃 나라 사람에게는 특히 이런 혐오증이 자주 생기게 마련이다. 한국인들은 한반도를 집어삼켰던 일본인을 ‘쪽발이’라 부르고, 조공과 책봉이라는 틀로 상국 행세를 일삼았던 중국인에게는 ‘뙤(혹은 때, 떼)’라는 앞글자를 붙여 대상을 비하한다.


한반도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일본인으로부터는 경멸의 뜻이 담긴 ‘조센징’으로 불린다. 중국에서 한국인을 폄하해 부르는 단어는 ‘고려봉(高麗棒)’이다. 뒤에 접미사 격인 자(子)라는 글자를 붙여 ‘고려봉자’라기도 한다. 중국어 독음으로는 ‘가오리방쯔’다.


이 말은 우리가 일본인이나 중국인을 폄하해 부르는 경우처럼 그 어원이 분명치 않다. 왜 막대기라는 뜻의 봉(棒)이라는 글자를 붙였는지는 더 석연치 않다. 우선은 수(隋)나라가 고구려를 범했을 때 한반도의 남녀노소 모두가 뛰쳐나와 몽둥이를 들고 거세게 저항한 데서 나왔다는 설이 있다.


이는 좋은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어서 지금의 비칭과는 맞지 않는다. 그보다는 일본이 한반도를 침탈한 뒤 만주를 거쳐 중국을 본격적으로 점령하는 시기의 것과 관련 있어 보인다. 일제(日帝)의 앞잡이로 나서 몽둥이를 들고 설치면서 중국인을 괴롭혔던 한국 사람들이란 얘기다.


중국인이 당시 자국을 침략한 일본인에게는 ‘일본 귀신(日鬼子)’, 그 앞잡이였던 일부 한국인에게는 ‘둘째 귀신(二鬼子)’이라는 칭호를 붙였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 가오리방쯔의 어원이 이와 유관하리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어쨌거나 우리에게는 씁쓸할 수밖에 없지만.


요즘 중국에서 반한(反韓) 감정이 춤을 춘다. 올림픽 입장식과 경기에서 한국 선수들에게 보였던 중국인의 차가운 시선과 야유가 화제다. 네티즌 사이에서는 그런 감정이 도를 넘어 번지고 있다. 가오리방쯔가 중국 사회에서 다시 유행할 조짐이다.


거기에는 적잖은 오해와 편견이 있을 게다. 그렇다 해도 한국의 자세는 달라야 한다. 맞대거리로 나서 중국을 깔보는 행동은 삼가자. 말은 때로 사람의 생각을 통제한다. 폄하와 야유에 몰두한다면 상대의 장점과 다양한 면모를 제대로 살필 수 없다. 비칭에 기댄 감정의 발설보다는 상대에 대한 정확하고 깊은 이해가 우선이다.


유광종 국제부문 차장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