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모 바닷가 신라神 모신 미호신사
[세계일보] 2007년 10월 17일(수) 오전 10:46
경북 경주와 가까운 일본 땅은 ‘이즈모’(出雲)라고 불린다. 이즈모의 ‘미호노세키’(美保關) 지역 주민들은 달걀을 절대 먹지 않는다. 미호노세키의 큰사당인 미호신사(美保神社)의 요코야마 나오키(橫山直材) 궁사는 지난 7월14일 필자에게 “우리 조상은 아득한 옛날 신라에서 이곳으로 건너온 왕손들”이라며 “조상 임금님은 큰알에서 태어났으며, 왕비는 입 모양이 닭의 부리처럼 생겼다는 전설 때문”이라고 조용히 말했다. 삼국유사 내용으로 미뤄 짐작하자면 이들의 조상이 다름아닌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이며, 왕비 또한 계룡(鷄龍)이 낳아 입 생김새가 닭 부리와 닮았다는 박혁거세의 왕비 알영(閼英)을 일컫는다. 이들은 달걀 대신 오리알을 먹는다.미호신사 경내 제사터에는 다양한 크기의 둥근 바다돌을 모셔놓고 금줄까지 둘러친 제단이 있다. 뿐만 아니라 이 고장 곳곳에는 신라인 후예를 상징하는 둥근 알 모양의 ‘돌신주’를 모신 소형 사당들이 있다. 미호신사에서 모시는 신주는 일본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신라계 신 ‘스쿠나히코나노카미’(少彦名神, 이하 소언명신)이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소언명신은 몸이 매우 작은 소인의 신이고 그의 아버지는 하늘나라인 다카아마가하라(高天原, 이하 고천원)의 천신 다카미무스비노미코토(高皇産靈尊, 이하 고황산영존/일명 高御産巢日神)이다.
신라계 큰 신 중 대표적인 오쿠니누시노카미(大國主神, 이하 대국주신)가 신라에서 동해를 건너 왜나라 이즈모를 정벌했다는 유명한 신화가 있다. 당시는 대국주신이 이즈모 미호노세키의 곶(岬)에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 시작할 때였다. 대국주신은 바다속에서 인간의 생김새를 한 새끼손가락만한 인물이 배를 저어 오는 것을 보았다. 그 소인은 산짐승 가죽으로 만든 배를 탔고, 굴뚝새의 깃털로 만든 옷을 걸치고 있었다. 대국주신은 그 모습이 하도 신기해 소언명신을 손으로 집어 제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놀았다. 소인의 출신이 궁금해진 대국주신은 신하를 천신 고황산영존에게 보냈다.
고황산영존은 “내가 낳은 자식은 모두 1500명쯤이나 된다네. 그 중의 한 아이는 말썽만 피우면서 가르침을 제대로 따르지 않았어. 그렇다면 내 손가락 사이에서 빠져나가 지상 세계로 떨어진 것은 어김없이 그 아이 소언명신일 것이야. 그러니 귀엽게 여기면서 대국주신이 나 대신 잘 보살펴 주었으면 하네”라고 말했다.
◇미호신사의 정문.
고쿠가쿠인대학 아베 마사미치(阿部正路) 교수는 “고황산영존은 대국주신에게 ‘소언명신은 틀림없는 내 자식이므로 지금부터는 대국주신은 소언명신과 형제가 되어 서로 협력하며 새로운 국가 건설에 힘쓰기 바라네’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명령으로 대국주신과 소언명신이 협력해 이즈모 국가 창건에 나섰다는 것. 그는 “소언명신은 몸집이 작은 데서 붙여진 신의 명칭이며, 또한 일본 동화의 소인 ‘잇쓴보시’(一寸法師)의 원형으로도 추찰된다”고 설명했다.
소언명신은 고대중국의 환술사(幻術師)와 같은 신통력을 가졌으며 그의 공헌으로 대국주신이 이즈모 땅에 새 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다고 아베 교수는 강조했다. 한때 대국주신이 병으로 쓰러지자 소언명신이 서둘러 온천물을 운반해다 목욕시켜 즉시 회복시켰다는 기록도 전해내려오는데 이 온천이 유명한 에히메현의 도고(道後)온천이다. 소언명신은 의학과 술 주조에도 능통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자녀 1500명을 낳았다는 고황산영존은 일부다처의 대표적 천신이다. 고황산영존 신화를 비롯해 일본의 대부분 고대 신화는 우리 단군, 가야 신화와 매우 유사하다.
가야 김수로왕 탄생 ‘구지봉’(龜旨峰) 신화(하늘에서 내려온 붉은 보자기에 싼 알로부터의 탄생설)와 ‘단군신화’를 뒤섞은 게 일본 개국신 니니기노미코토 신화이다. 일본 신화가 한국 신화를 모방한 뒷줄기라는 사실은 일본서기 개국 신화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하늘나라 ‘고천원’의 고황산영존이 황손인 니니기노미코토를 ‘보자기’에다 싸서 지상으로 내려 보냈다. 니니기노미코토가 내려간 곳은 ‘구시후루’의 ‘소호리 봉우리’(ソホリのみね, 添の峰·일본 규슈 미야자키현과 가고시마현 경계 지역으로 현 지명은 다카치호노미네)였다.”
◇소형 사당에 둥근 바다돌이 모셔져 있다.
구시후루의 소호리 봉우리 명칭은 일제 시기 다카치호노미네로 바뀌었다. 일본 사학자들은 구시후루라는 옛 지명은 김수로왕 탄생지인 경남 김해시 ‘구지봉’에서 따온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이어 일본서기는 “천고원이라는 하늘에서 니니기노미코토가 구시후루의 소호리 봉우리로 내려올 때, 그는 천조대신의 명을 받아 삼신기(옥, 구리거울, 검)를 지니고, 다섯 명의 신(神)인 5부신을 함께 거느리고 지상에 내렸다”고 기록했다.
가나자와대학 사학과 다무라 가쓰미(田村克己) 교수는 이 역사 기사에 관해 ‘일본 민족의 기원’(‘日本民族の起源’ 1958)으로 유명한 민족학자 오카 마사오(岡正雄, 1898∼1969)의 연구론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보충 설명했다.
“일본 역사책 ‘고사기’ 및 ‘일본서기’의 신화는 지배자의 기원과 계보를 말해주는 것으로, 지배의 정통성의 근거를 밝혀주는 성격을 갖고 있다. 이들 역사서의 핵심은 하늘 신의 자손이자 일본 왕가의 조상인 니니기노미코토가 보자기에 싸여서 고천원으로부터 지상으로 내려왔다고 하는 데에 있다.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신화가 조선(朝鮮)으로부터 내륙 아시아에 걸쳐 널리 분포되어 있다는 것은 이미 오카 교수에 의해 지적된 바 있다. 이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삼국유사’에서 전하고 있는 고조선의 ‘단군신화’이다.
여기서는 천신(환인, 필자주)이 아들(환웅, 필자주)에게 세 명의 신(풍백, 우사, 운사)를 붙여 산위의 단목(檀木)으로 내려오게 하여 ‘조선’을 개국시켰다고 한다. 니니기노미코토를 지상으로 내려보내는 일을 담당한 신의 별명이 다카키노카미(高木神, 고목신)인 것처럼 단군의 이름이 나무와 관련된 것과 니니기노미코토가 내려온 소호리 봉우리의 명칭인 ‘소호리’는 조선의 왕도(王都)인 ‘서울’(일본 사학자들이 경주인 서벌〈徐伐〉과 부여의 소부리〈所夫里〉를 지칭해 온 통설, 필자주)과 유사하며 니니기노미코토가 고천원에서 데리고 내려 온 다섯 명의 신은 조선과 내륙 아시아 유목민의 5조직과 연관되는 등 서로의 조상신이 일치한다는 것을 일컫는 것이다. 오카 교수는 일본 왕실의 조상에 관한 천손 강림 신화가 조선반도를 거쳐 들어온 것임을 지적했다.”(‘神話-支配者の神話と三機能體系’ 1983)
◇일 왕실 조상인 니니기노미코토가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일본 구시후루(구지봉)의 소호리 봉우리에 세워진 비석.
경북 고령 가야대학교 인근에는 ‘고천원고지’(高天原故地)라는 유적지가 있다. 이곳은 일본 왕실 조상 니니기노미코토가 하늘에서 강림했던 유서 깊은 연고지로 널리 알려져 오고 있으며, 1999년 6월 말 고천원고지 비석이 세워졌다. 당시 제막식에는 일본 사학계 인사 60여명을 포함해 5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제막식 때 일본 쓰쿠바대학 사학과 마부치 가즈오(馬淵和夫) 교수는 ‘고대 한일 교류에 관하여’라는 학술 강연문에서 “일본의 천손이 고천원에서 신라로 내려왔다고 하는 일본서기 기록이 있다”면서 “고천원은 신라 서쪽에 위치한 나라(가야)로서 산속 분지로 알려졌는데 그 조건에 맞는 곳이 바로 여기 고령땅밖에 없다”고 말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고령(高靈)이라는 지명이 ‘고황산영존’(高皇産靈尊)의 두 머리글자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각설하고, 다시 일본 개국 신화로 들어가보자. 고천원에서 소호리 봉우리로 내려온 니니기노미코토는 오야마쓰미노카미(大山津見神)의 딸인 고노하나사쿠야히메(木花之佐久夜毘賣)를 만났다. 니니기노미코토는 고노하나사쿠야히메를 보자마자 한눈에 반했다. 그는 그녀와 그날 밤 통정했다. 놀랍게도 그녀는 이튿날 즉시 배가 불러왔다. 천신의 자식을 단 하룻밤 사이에 임신했다는 데서 니니기노미코토는 고노하나사쿠야히메를 의심했다고 한다.
그는 그녀에게 “아무리 천신의 자식이라지만 어떻게 하룻밤 사이에 아기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오? 그 애가 내 자식이 아닌 것 아니오”라고 묻자 고노하나사쿠야히메는 낯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몹시 수치스러운 생각에 그녀는 문이 달려 있지 않은 조그만 판잣집을 짓고는 맹세했다.
그녀는 “제가 가진 아기가 만약 다른 신의 자식이라면 저는 불행하게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천신인 당신 니니기노미코토의 자식이면 아무 탈없이 아기가 태어날 것이니 지켜 보세요”라고 말하고는 판잣집에 불을 지르면서 그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었다. 불길 속에서 그들의 아기들은 “고고” 소리를 지르며 태어났다. 셋이었다. 맏이는 이름을 ‘호데리노미코토’(火照命), 둘째는 ‘호스세리노미코토(火須勢理命), 셋째는 호오리노미코토(火遠理命)로 불렸다.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기술 내용이 ‘가락국기’에서 전하는 6가야국 건국 신화와 단군신화의 핵심 내용과 대부분 일치한다는 점은 저명한 일본 신화학자 도시샤대학 사학과 미시나 아키히데(三品彰英·1902∼1971) 교수도 상세하게 논증한 바 있다.
미호신사에는 특히 우리의 눈길을 끄는 흥미로운 행사가 열린다. 신주 소언명신 제사 때면 이곳에서는 거의 어김없이 무녀(巫女)들의 내림굿이 펼쳐진다.
운두가 매우 높은 모자를 쓴 신관(神官) 2명이 고수(鼓手)로서 신전의 마룻바닥에 나란히 앉아서 소형의 세운 북을 치며 장단을 맞추면 흰 두루마기와 붉은 치마를 입은 무녀가 춤을 춘다. 미호신사 무녀는 머리에 관을 쓰고 오른손에는 잔방울들이 잔뜩 달린 방울대를 잡았고 왼손에는 삐주기나무(상록수)를 든 채 하늘로 추켜 흔들며 덩실덩실 춤춘다. 한국 무녀의 내림굿과 매우 흡사한 것이다.
[홍윤기의 역사기행 일본속의 한류를 찾아서]
한국외대 교수 세계일보&세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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