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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혐중’의 뿌리는 조선 후기 소중화 의식

한부울 2008. 9. 4.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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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혐중’의 뿌리는 조선 후기 소중화 의식

[한겨레신문] 2008년 09월 03일(수) 오후 06:21

 


왕위안저우 베이징대 교수


중국의 ‘혐한’과 한국의 ‘혐중’은 동전의 양면이다. “더러운 중국인”이라는 편견이 “오만한 한국인”이라는 비난으로 이어진다. 그 역사적 배경을 살피는 중국 학자의 논문이 한국에서 발표된다. 4일부터 이틀간 동북아역사재단과 중국 베이징대가 공동으로 국제학술대회를 여는데, 이 자리에서 왕위안저우 베이징대 교수(역사학)가 ‘중국인에 대한 한국인의 부정적 인식의 역사적 근원’을 주제로 발표에 나선다.


그는 조선 후기의 ‘소중화(小中華) 의식’에서 혐중의 뿌리를 찾는다. 중국 문명을 표준으로 삼는 조선 초기의 소중화 의식은 조선 후기에 이르러 청나라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문명의 표준이 조선으로 넘어왔다는 인식으로 변화된다. 청이 지배하는 대륙을 “비리고 더러운 원수의 땅”(정조 시대 성리학자 김종후)으로 규정하고, 대외관계에서는 “오랑캐에게 머리를 숙일 수 없다”(대한제국 학부대신 신기선)고 선언한다. 조선 후기 사대부들의 ‘혐청’은 중국에 대한 일반 조선인들의 무지를 양산했고, 이는 다시 중국에 대한 우월의식으로 발전했다는 게 왕위안저우 교수의 생각이다.


문화적 우월의식은 곧이어 광활한 영토에 대한 꿈으로 이어졌다. ‘북벌론’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런 의식은 고구려와 발해의 옛 북방 영토를 회복하려는 강렬한 욕망을 만들어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조차 “서쪽으로는 요동을 얻고 동쪽으로는 여진을 평정하고 북으로 흑룡의 원류에 닿고 오른쪽으로 몽고와 다툰다면 이 또한 통쾌한 일”이라고 했다. 영조 시대 성리학자인 한원진은 “북벌의 기회를 이용해 조선이 천하를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 후기의 북벌론은 근대 이후 민족주의 사상가들에 의해 확대 발전됐다. 신채호·박은식·장지연 등은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과정에서 중국 대륙 대부분이 고조선의 옛 식민지였다고 주장했다. 개화기 애국계몽운동을 이끌었던 류인식은 만주족을 동족으로 보고 청조의 대륙 지배를 “단군의 후예가 중원을 통치한 것”이라고 여겼다. 왕위안저우 교수는 한국의 근대 민족주의 사상가들이 한-일 관계사를 통해 민족주의를 내세우지 못하고, 한-중 관계사에서 민족적 우월의식을 발굴하려 했다고 분석한다.


왕위안저우 교수는 “중국 문화를 부정하는 동시에 중국 고대 문화가 조선 문화에서 유래한다고 강조”하거나 “과거 조공·책봉 관계가 실질적 의미가 없는 (국제사회의) 예의 관계라고 설명을 하는 동시에 중국이 한국을 억압했던 대표적 사례로 조공·책봉 관계를 거론”하는 한국인의 이중적 역사 인식을 꼬집는다. 그가 보기에 “한국의 근대 민족주의는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부정에 기초”하고 있으며, 여기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는 “현실적 이익의 충돌이 아니라 (역사적) 인식상의 격차”다.


그의 논문에는 중국 민족주의의 배타성에 대한 성찰은 많지 않다. 그러나 최근 한-중 관계를 중국인의 시선에서 살필 수 있는 논문으로 평가할 수 있다. 동북아역사재단 회의실에서 열리는 이번 국제학술대회에서는 이 밖에도 루어신·리쯔성 베이징대 교수, 정하현 공주대 교수, 김당택 전남대 교수, 배경한 신라대 교수 등이 동북아 관계사의 성격을 밝히는 여러 논문을 발표한다.

 

안수찬 기자 한겨레신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