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북방 영토
[경향신문] 2008년 07월 15일(화) 오후 06:05
러시아 남(南) 쿠릴열도의 최남단에는 쿠나시르섬이 있다. 면적은 약 1500㎢로 제주도보다 약간 작다. 타원형인 제주도와는 달리 폭이 좁고 길지만 역시 높이 1822m 봉우리가 있는 화산섬이다. 해안 등에 펼쳐진 기기묘묘한 형태의 주상절리(柱狀節理)가 시야를 압도한다. 마그마가 지각을 뚫고 올라와 빚어진 다각형 기둥 다발들로, 화산섬에서만 볼 수 있는 장관이다. 주상절리뿐 아니다. 섬은 환상적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다. 근해 수산물로는 연어, 송어, 게, 가리비, 조개 등이 풍부하다.
이 섬의 일본 이름은 구나시리도(國後島)이다. 러시아어와 비슷하다. 그럴 만한 역사적 사연이 있다. 쿠릴열도의 원주민은 아이누 민족이었다. 아이누는 쿠릴, 홋카이도, 사할린 등지에 퍼져 살고 있었다. 17세기 이후 러시아의 남하가 본격화하자 일본 막부는 1855년 러시아와 시모다(下田) 조약을 맺고 남 쿠릴열도의 4개 섬을 일본령으로 하고, 사할린을 공유키로 합의했다. 이 4개 섬이 바로 구나시리를 비롯해 에토로후(러시아명 이투루프), 시코탄(色丹), 하보마이(齒舞)다. 일본은 태평양 전쟁에서 패할 때까지 90년 동안 이 4개 섬을 지배해 왔다. 이 섬들이 일본 입장에선 ‘북방 영토’가 된다.
1945년 소련이 쿠릴열도를 점령함으로써 북방 영토는 숙명적으로 되찾아야 할 땅으로 일본인들의 뇌리에 자리잡았다.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는 90년대 초 한국에서 만난 일본 유학생을 회고한 바 있다. 그는 자신이 소련에서 왔다는 말을 듣자마자 “북방 영토를 돌려 달라”는 말을 계속 했다고 한다. 실제로 일본은 하보마이, 시코탄 등 홋카이도에 가까운 2개 섬을 반환하겠다는 러시아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불법 점령한 영토, 곧 북방 4개섬을 모두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미 북방 4개섬을 자국 영토로 기술한 고교 교과서를 검정에 합격시켰다. 지난 주 홋카이도에서 열린 G8정상회의를 앞두고는 회담 홈페이지에 북방 4개섬을 일본 영토로 표기한 지도를 띄우기도 했다.
일본이 중학교 사회과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북방 영토가 우리나라 고유의 영토이지만 러시아에 의해 불법 점거돼 있다”며 독도 문제를 거론한 것은 교묘한 ‘끼워넣기’ 수법이었다. 이 집요함을 뿌리칠 방책은 무엇인가.
김철웅 논설위원 경향신문 & 경향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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