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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는 한국인의 땅이었다.

한부울 2008. 7. 14. 18:13
 

대마도는 한국인의 땅이었다.

글-안원전 

 


[환단고기]에 자고로 구주, 대마도는 삼한에서 나누어 다스린 삼한 분치지역으로 본래 왜인이 대대로 살던 지역이 아니었으며 임나가 나뉘어 3가라가 되었으며 좌호는 신라에 속하고, 인위 가라는 고구려, 계지 가라는 백제에 속한다 하였다.


대마도 출신 문장가 강수도 자신이 임나 출신이라 한 적이 있고, 성종 때의 청백리 황희 정승은 '대마도는 예로부터 우리 땅으로 고려말기에 국가기강이 크게 허물어져 도적의 침입을 막지 못해 왜구가 웅거하게 되었다'고 한 바 있다.


또 이 황은 조선과 대마도의 관계를 중국 역대왕조의 대 오랑캐 정책을 원용하면서 부자관계로 비유하고 해마다 정초에 내리는 세사미두(歲賜米豆)의 의미에 대해 대마도가 충성을 다해 바다를 든든하게 지키는 수고로운 공적을 가상히 여겨 해마다 하사하는 것이라고 했으며 안 정복은 '대마도는 우리의 부속도서로 신라, 고려 이래로 국초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속도로 대해왔다.


그리고 <여지승람>에는 옛날 경상도 계림 땅에 예속되었다고 하였으며, 태종이 기해년에 대마도를 정벌할 때 교서에도 대마도는 본래부터 우리나라 땅이었다고 하였고, 그 이외에도 수많은 증거물이 있다. 그리고 그 땅을 정벌한 알은 마땅히 속도를 꾸짖은 방책이었다'고 했다.


<증보동국문헌비고>에는 '지금 비록 일본의 폭력으로 그들의 땅에 강제 편제되었으나 본래는 우리나라 동래에 속했던 까닭에 이에 대한 기록들이 우리의 고사에 많이 있어 아울러 기록한다'고 하고 '섬 안의 남자들의 언어와 부녀자들의 의복이 조선과 같았다.


대마도인들이 왜를 칭할 때는 반드시 일본이라 하였고, 일본인들도 그들을 일본 왜와는 크게 차별하여 대우하였으므로 대마도민 자체가 일본에 예속된 왜로 자처하지 않았다.'고 했다.


조선말 국운이 쇠약한 틈을 타 1869년 소위 「판적 봉환」이라는 정책아래 이즈하라 번으로 편제되었다가 1877년 나가사키 현으로 편입된 대마도가 조선 영토임을 보여주는 지도로는 <소라동천(小羅洞天)>이라는 세계지도와 부속지도인 <동국 조선 총도>, <강원도도>, <경상도도>가 남아있어 역사의 진실을 고증하고 있다.


[안원전의 21세기 담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