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연평해전 6주년 기념식 거행
[데일리안] 2008년 06월 29일(일) 오후 12:44
◇ 제2연평해전에서 순직한 6명의 해군 장병 ⓒ 데일리안강원
2002년 6월 29일 북한 경비정의 서해 NLL침범으로 발발한 제2연평해전 기념식이 29일 오전 11시 경기도 평택 해군제2함대사령부 충무공원내 제2연평해전 전적비앞에서 열렸다.
2002월드컵 열기에 휩싸여 있던 2002년 6월 29일, 1999년 6월 15일 제1연평해전에서 완패했던 북한 해군이 보복을 위해 의도적으로 서해NLL을 침범하여 31분간의 긴박한 교전에 의해 해군 고속정 참수리 357정은 기습공격을 당해 고 윤영하 소령 등 6명의 장병이 사망과 부상자가 발생했고 함정은 침몰까지 했던 해전이다.
북한해군 645정이 휴대용 로켓포까지 발사하여 함장 윤 소령이 사망하고 부장 이희완 대위는 부상을 당했으며, 조타장 한상국 중사, 병기사 조천형, 황도현 중사, 내연사 서후원 중사, 의무병 박동혁 병장 등이 사망하고 부상자가 발생했었다. 참수리 357정은 기관실이 공격을 받아 침몰했었고, 교전 후 83일만에 숱한 총탄의 자국과 함께 인양 되였으며, 실종되었던 한상국 중사는 41일만에 인양되기도 했었다.
2002년 해전당시 남북화해무드에 의해 김대중 정부는 해군의 선제공격을 자제하는 교전수칙을 제정, 선제타격을 하지 못해 우리 해군이 피해를 당했다는 여론이 일었으며, 노무현 정부까지 이들에 대한 예우를 제대로 하지 않아 유가족 및 부상자들의 불만을 자아내게 했다. 이날 6주년을 맞는 기념식은 그동안 서해교전을 제2연평해전으로 규정하고 정부주관으로 행사를 치렀으며, 한승수 국무총리가 참석했다.
한 국무총리는 기념사에서 “대한민국은 이들의 이름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라며 “지난 6년동안 말 할 수 없는 고통을 겪어 온 유가족과 부상자에게 머리 숙여 사죄한다. 그 높은 뜻을 받는 데 노력하겠다”고 정부의 의지를 천명했다.
기념식은 해전당시 참수리 357정의 부장으로 부상을 입고 현역에 복귀한 이희완 대위의 경과보고와 호국영령들이여, 조국찬가 등의 기념공연도 가졌다. 한편, 참수리 357정은 평택 제2함대사령부에 평택시와 해군이 9억6000만원으로 조성된 충무공원에 보존하고 있다.
또한 지난 15일 제1연평해전 승전기념 9주년을 맞아 당시 작전사령관이었던 서영길 예비역 중장, 2함대 사령관 박정성 예비역 소장, 2전투전단장 송영무 전 해군참모총장, 안지영 소령 등 참전 지휘관 등이 참석해 제1연평해전 전승비가 제막되였고, 제2연평해전 6명 용사의 흉상도 해군교육사령부와 해군사관학교에 각각 제막되기도 했었다. [데일리안 강원 전도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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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연평해전
제2연평해전은 2002. 6. 29. 오전 10시 25분경 서해 연평도 서쪽 14마일해상에서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측 경비정이 우리측 해군 고속정에 기습적인 포격을 가해 일어난 사건이다. 이로 인해 27명이 탑승했던 해군 고속정 참수리 357정이 침몰했고 윤영하소령, 조천형중사, 황도현중사, 서후원중사등 해군 4명이 현장에서 숨졌다. 사건당시 실종됐던 한상국중사는 침몰한 선체에 함께 시커먼 바다 깊숙히 가라앉자 41일 만에 시체로 발견되었다.
박동혁병장은 부상을 입고 투병중 9. 20. 끝내 숨졌다. 이들 사망자 외에 당시 남북한간 치열한 교전으로 인해 우리장병 19명이 부상했으며, 북한의 도발은 그들의 지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겨놓고 말았다. 이날 월드컵이 성공적으로 종료되기 하루전날이었고, 서울 상암 경기장에서는 한국과 터키와의 시합이 예정되어 있었다.
사건이 발생하기 전 3일전부터 북측이 NLL 침범행위가 반복적으로 이뤄져 우리 고속정의 퇴각 요구에 북측은 85mm함포와 기관총으로 선제공격을 했다. 이날 남북 해군의 교전은 1999. 6.의 ´제1연평해전´이후 3년만의 사건으로 두 교전은 김대중 전 대통령 정부의 ´햇볕정책에 찬물을 끼얹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제2연평해전(第二延坪海戰)은 2002년 6월 29일 연평도 근해 북방한계선에서 대한민국 해군과 북한 해군간에 일어난 전투이다. 교전 후 대한민국의 피해는 6명이 전사, 18명이 부상하고 참수리급 고속정 357호가 침몰하였다. 한편 북한의 피해는 약 30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1척의 함정이 반파되었다.
대한민국 국방부는 처음 서해 교전(西海交戰)이라고 부르던 것을 2008년 4월에 제2연평해전(第二延坪海戰)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제2연평해전 추모식을 국가급 추모행사로 승격시켰다.
대한민국 전사자 명단
윤영하 소령(정장, 당시 대위, 충무무공훈장 추서)
한상국 중사(조타장, 화랑무공훈장 추서)
조천형 중사(병기사, 당시 하사, 화랑무공훈장 추서)
황도현 중사(병기사, 당시 하사, 화랑무공훈장 추서)
서후원 중사(내연사, 당시 하사, 화랑무공훈장 추서)
박동혁 병장(의무병, 당시 상병, 충무무공훈장 추서)
대한민국 부상자 명단
(18명)
*상사 이해영
*중사 김현
*중사 김장남
*중사 황찬규
*상병 김면주
*상병 권지형
*일병 이재영
*일병 김상영
*병장 고경락
*상병 김용태
*일병 김택중
*하사 곽진성
*중사 이철규
*병장 김승환
*하사 전창성
*상병 조현진
*중위 조외건
*중위 이희완
관련 사건 일지
1999년 6월 15일 - 제1연평해전 발생
1999년 6월 7일부터 6월 15일까지 북한 경비정이 NLL을 최대 10 km 계속 넘어옴
대한민국 해군은 북한 경비정의 선체를 참수리급 고속정이 부딪쳐 막는 일명 "밀어내기 작전"으로 대응함.
15일, 북한 경비정 등산곶 684호가 선제공격하여 제1연평해전 발발. 등산곶 684호는 대한민국 해군의 참수리급 고속정, 초계함의의 반격으로 반파되어 퇴각함. 함장 전사 및 사상자가 많이 발생함.
참수리급 고속정 325호의 정장 안지영 대위 부상. "연평해전 영웅"으로 불림.
북한 피해 : 최소30명사망, 70명이상부상 , 한척 침몰, 한척 반파 (당일 CNN보도)
북한은 교전에서 생존해 돌아온 등산곶 684호의 갑판장을 새 함장으로 임명함.
2000년 6월 15일, 2000년 남북 정상 회담 개최. 6·15 남북 공동선언이 선언됨.
2002년 6월 29일 - 제2연평해전 발생.
대한민국 해군의 참수리 357호 침몰, 전사 6명, 부상 18명
당시는 2002년 FIFA 월드컵이 한창 진행 중이었음.
북한은 제1연평해전 당시 생존한 등산곶 684호의 갑판장을 새 함장으로 임명하여 다시 선제공격함.
대한민국 해군은 상부의 지시에 따라 교전수칙을 무시하고 "밀어내기" 전술을 사용함.
등산곶 684호의 85mm 함포의 선제공격에 한국군 참수리급 고속정 357호의 정장 윤영하 대위를 포함 6명이 전사.
대한민국 해군의 반격으로 등산곶 684호의 함장 사망. 영웅 칭호를 받음.
대한민국 해군은 연평해전을 계기로 교전규칙을 소극적 대응에서 적극적 응전 개념으로 수정함. "경고방송-시위기동-차단기동(밀어내기 작전)-경고사격-조준격파사격"의 5단계 대응에서 "시위기동-경고사격-조준격파사격"의 3단계 대응으로 개정됨
2004년 7월 - 등산곶 684호가 다시 NLL을 침범함. 대한민국 해군의 경고사격을 받고 퇴각함.
2002년 6월 29일 - 제2연평해전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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