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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톈안먼 사태 19주년...잊혀져 가는 그날의 기억

한부울 2008. 6. 6. 16:07
 

中톈안먼 사태 19주년...잊혀져 가는 그날의 기억

[아시아경제 2008.06.05 10:24:17]


'톈안먼(天安門) 사태' 19주년을 맞은 4일 중국 베이징의 톈안먼 광장은 고요했다.


이날 오후 톈안먼 광장에서는 외국인 관광객과 중국인 방문객들이 평화롭게 관광을 즐기고 있었다. 19년 전 이곳에서 탱크에 맞서 죽음을 각오한 민주화 투쟁이 일어났다는 사실조차 믿어지지 않았다.


1989년 6월 4일 톈안먼 광장에서는 100만여명의 대학생ㆍ시민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하다 정부의 무력 진압으로 수백명이 희생됐다. 이날 별다른 움직임이 포착되지는 않았다. 공안 차량이 순찰을 돌고 공안원들이 광장으로 통하는 지하철 역 등지에서 삼엄한 경비를 펼치는 정도가 눈에 띌 뿐이었다.


광장이 조용했던 것은 경찰의 검문ㆍ검색 때문만이 아니었다. 정부와 언론은 약속이라도 한 듯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인터넷 사이트에서도 톈안먼 사태와 관련된 내용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당국에서 관련 내용이 인터넷으로 표출되는 것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론 매체도 알아서 관련 내용을 차단하고 있었다.


포털 사이트에서 '톈안먼'을 검색어로 치면 '중국 파이팅, 광장에 메아리치다', '희생자 애도 물결' 등 쓰촨(四川) 대지진 희생자 애도 기간 당시의 광장 스케치 기사들만 잔뜩 올라온다. 베이징에서 발간되는 한 주요 일간지의 '오늘의 역사' 난에는 1970년대 이후 지금까지 발생한 주요 사건 기록에서 톈안먼 사태만 쏙 빠졌다.


톈안먼 사태가 중국인의 머리속에서 사라진 가장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는 젊은층의 무관심과 관련이 있다. 오늘날의 중국 대학생들과 청년층은 태어날 때부터 '중국적 사회주의의 길을 달려가자'는 공산당과 정부의 가르침을 충실히 받아온 애국세대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정치적 무관심층인데다 탄탄한 수입이 보장된 공무원 취업을 선호한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3일자에서 베이징대학은 지난해 학생들이 정치를 토론하던 교내 게시판을 철거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톈안먼사태 19주년을 맞았지만 중국 대학생들이 그 의미와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정부의 20년 가까운 톈안먼 사태에 대한 검열과 경제적 풍요가 80년대 대학생과 2000년대 대학생 간 세대 차이를 낳게 했다"고 지적했다.


중국인들에게 여전히 가장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경제발전'이다.


안에서는 조용한 톈안먼사태는 바깥에서는 떠들썩하다. 미국 국무부는 3일 중국이 톈안먼사태를 재평가하고 당시 구속돼 복역 중인 사람들을 석방하라고 촉구했다. 휴먼라이츠워치 등 국제 인권단체들도 성명을 내고 "중국 정부가 톈안먼 사태로 구금된 사람들을 석방함으로써 올림픽을 앞두고 인권을 개선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달라"고 촉구했다.


송화정 베이징특파원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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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톈안먼 사태’ 19주년

[문화일보] 2008년 06월 05일(목) 오후 02:59


“톈안먼(天安門)사태요. 그게 뭡니까….” 4일 오후 중국 베이징(北京) 톈안먼광장에서 만난 한 대학생은 ‘톈안먼사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되물었다. 관광 겸 데이트차 온 남녀 대학생 4명 가운데 톈안먼사태를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이들의 의식 속에 톈안먼사태는 없었다. (문화일보 6월3일자 27면 참조)


톈안먼사태는 19년 전인 1989년 6월4일 탱크를 앞세운 중국 정부의 무력 진압으로 민주화 시위를 벌이던 학생과 시민들 수백명이 희생됐던 사건이다. 하지만 오늘날 중국에 톈안먼사태는 존재하지 않는다. 광장에서도, 젊은층의 의식세계에서도, 역사 속에서도 톈안먼사태는 실종됐다. 톈안먼사태가 중국 역사에서 사라진 것은 정부, 언론, 지식인층 3자의 합작품이다. 정부는 중국식 사회주의 교육을 강화하면서 반체제 운동 관련 내용의 유포를 금하고 있고 언론은 일체의 보도를 하지 않으며 지식인들은 철저히 함구함으로써 오늘날의 역사 실종사건을 빚어낸 것이다.


지난 3일 오후 중국 외교부 정례 외신브리핑장에서는 톈안먼사태와 관련한 질의가 두 개 나왔다. 사망자 수 등 진상 공개와 함께 현재 구금 중인 시위 관련자에 대한 정부의 석방 의사를 묻는 질문이었다. 친강(秦剛) 대변인이 “이미 과거에 결론 난 문제”라며 답변을 피해가기도 했지만, 브리핑 내용을 그대로 전재해온 주요 언론과 외교부 홈페이지에서는 관련 질의응답이 모두 빠졌다.


언론에도 단 한 줄의 내용도 등장하지 않았다. 베이징에서 발행되는 일간 신경보(新京報)는 중국 대륙에선 찾아보기 힘든 비판적 정론지에 속한다. 하지만 매일 연재되는 ‘오늘의 역사’난에는 현대사의 주요 기록들 가운데 유독 톈안먼사태 내용만 쏙 빼놨다. 각종 포털 및 검색 사이트에도 관련 내용은 단 한 건도 올라오지 않았다.대신 인터넷 사이트에서 ‘톈안먼’을 검색어로 치면 지난달 쓰촨(四川)대지진 발생 직후 국가가 정한 애도기간에 광장에 모였던 시민과 학생들이 눈물로서 희생자를 애도하는 기사와 사진들만 잔뜩 올라와 있다.


허민 / 베이징 특파원-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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톈안먼사태 19주년/China Tiananmen <YONHAP NO-0909> (AP)

[연합AP] 2008년 06월 04일(수) 오후 04:25 

 

 

Ding Zilin, co-founder of the Tiananmen Mothers, a group representing families of those who died in the 1989 crackdown on pro-democracy demonstrations, points to photos of other parents of people who died in the crackdown, beside a photo of late communist party leader Zhao Ziyang, right, at her apartment in Beijing Wednesday June 4, 2008. Wednesday is the 19th anniversary of the military assault in which hundreds, possibly thousands, were killed as Chinese troops shot their way through the city to end weeks of protests in Tiananmen Square. Ding's 17-year-old son was killed in the assault. Zhao, who was purged after the crackdown, died in 2005 after spending his last 15 years under house arrest. (AP Photo/Greg Baker)/2008-06-04 15:40:02/


지난 1989년의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 유혈진압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유가족을 대표하는 '톈안먼 마마(천안문 엄마)'란 단체의 공동 창립자인 딩즈린이란 여성이 4일 베이징 시내 자기 아파트에서 톈안먼 유혈사태 희생자들의 다른 부모 사진을 가르키고 있다. 그 오른쪽 사진은 고(故) 자오즈양(趙紫陽) 전(前) 공산당 총서기의 사진이다. 이날은 톈안먼 광장에서 수주간 벌어진 시위를 종식시키기위해 중국군이 총기를 발포해 수백명, 어쩌면 수천명이 목숨을 잃은 톈안먼 사태 발발 19주년이다. 딩즈린 여인의 당시 17세였던 아들 장제리엔은 이때 목숨을 잃었다

(AP=연합뉴스).


 

Ding Zilin, co-founder of the Tiananmen Mothers, a group representing families of those who died in the 1989 crackdown on pro-democracy demonstrations, stands in front of a shrine to her son, Jiang Jielian, at her apartment in Beijing Wednesday June 4, 2008. Wednesday is the 19th anniversary of the military assault in which hundreds, possibly thousands, were killed as Chinese troops shot their way through the city to end weeks of protests in Tiananmen Square. (AP Photo/Greg Baker)/2008-06-04 15:42:40/


지난 1989년의 텐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 유혈진압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유가족을 대표하는 '톈안먼 마마(천안문 엄마)'란 단체의 공동 창립자인 딩즈린이란 여성이 4일 베이징 시내 자기 아파트에 마련한 아들 장제리엔의 간이 사당 앞에 서있다. 이날은 톈안먼 광장에서 수주간 벌어진 시위를 종식시키기위해 중국군이 총기를 발포해 수백명, 어쩌면 수천명이 목숨을 잃은 텐안먼 사태 발발 19주년이다. 당시 17세였던 장제리엔은 이때 목숨을 잃었다(AP=연합뉴스).

 

 

Ding Zilin, co-founder of the Tiananmen Mothers, a group representing families of those who died in the 1989 crackdown on pro-democracy demonstrations, arranges a photo of her son, Jiang Jielian, at her apartment in Beijing Wednesday June 4, 2008. Wednesday is the 19th anniversary of the military assault in which hundreds, possibly thousands, were killed as Chinese troops shot their way through the city to end weeks of protests in Tiananmen Square. Ding's 17-year-old son was killed in the assault. (AP Photo/Greg Baker)/2008-06-04 15:40:09/


지난 1989년의 텐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 유혈진압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유가족을 대표하는 '톈안먼 마마(천안문 엄마)'란 단체의 공동 창립자인 딩즈린이란 여성이 4일 베이징 시내 자기 아파트에서 아들 장제리엔의 사진을 정리하고 있다. 이날은 톈안먼 광장에서 수주간 벌어진 시위를 종식시키기위해 중국군이 총기를 발포해 수백명, 어쩌면 수천명이 목숨을 잃은 텐안먼 사태 발발 19주년이다. 당시 17세였던 장제리엔은 이때 목숨을 잃었다(AP=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