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0년 견딘 중국의 자존심, 처참한 몰골로
[조선일보] 2008년 05월 16일(금) 오전 00:12
중국 쓰촨(四川)성을 강타한 원촨(汶川) 강진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문화유적이 파괴됐다. 15일 진앙인 원촨과 쓰촨성 성도(省都)인 청두(成都) 사이에 있는 두장옌(都江堰) 시내에서 민강(岷江)을 5㎞ 거슬러 올라간 지점에 있는 '두장옌 유적'을 찾아 갔다.
2264년 전인 기원전(BC) 256년, 진(秦)나라 태수였던 이빙(李氷)이 양쯔강 지류인 민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만든 두장옌 제방(金剛堤·금강제)을 중심으로, 이빙 부자(父子) 등 건설에 참여한 사람들의 묘지와 사당인 이왕묘(二王廟), 도교사당인 복룡관(伏龍觀) 등의 고(古)건축들을 아우르는 이 일대는 지난 2000년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두장옌 유적은 매표소 입구부터 처참한 몰골로 무너져 있었다. 진(秦)의 전국통일 이후 세워져 역대 왕조를 거치며 증·건축됐던 이왕묘는 주(主) 전각과 부속 전각들이 대부분 크게 손상됐다. 유적지로 들어가는 매표소와 기념품가게, 케이블카가 설치된 건물, 전망대인 태언루(泰堰樓)의 지붕 기와들은 산산이 부서져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복구작업은 아직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유적지 관리인들은 매표소 앞에서 비닐 천막을 치고 노숙을 하고 있었다. 한 관리인은 "산사태와 진동으로 인해 민강을 막은 제방 등 수리시설로 접근이 불가능한 것은 물론 눈으로 관람할 수도 없게 됐다"며 "중국인의 자부심과 역사가 서린 이곳이 이렇게 변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고 탄식했다. 유적지 관계자들은 그러나, 이 유적의 핵심인 제방과 물길(보병구·寶甁口) 등 수리시설은 지진 피해를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부속 건축물들과 수려한 경관은 옛 모습이 온데간데없게 됐지만, 핵심인 수리시설이 온전한 것은 그나마 위안거리라는 것이다. 두장옌 수리시설은 지금도 이 일대 5300여㎡의 농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한다.
지진은 두장옌 유적을 할퀴고, 두장옌시 주민들의 생업과 자긍심에도 큰 상처를 입혔다. 주민 캉쥔(康軍·36·여행가이드)씨는 "시 이름까지 유적 이름에서 따올 정도로 두장옌 유적은 이곳 주민들의 자랑이었다"고 말했다.
'2000년 역사'를 앗아간 지진은 2006년 준공된 현대식 댐인 쯔핑푸(紫坪鋪) 댐에도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이날 찾아간 156m 높이 댐 정상의 도로변은 난간들이 90% 이상 박살이 나 있었고, 폭 6m의 도로는 가장자리 부근이 최대 50㎝ 이상 갈라져 있었다. 중국 당국이 14일부터 댐 붕괴로 인한 '쓰나미'가 두장옌시를 휩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수문을 완전히 열어젖혔다.
이 댐에서 2㎞ 아래에 있는 마을인 쯔핑푸진(鎭)에 있는 칭청산(靑城山)중학교의 한 여학생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댐이 무너질지 모른다며 댐 근처엔 절대 가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쯔핑푸진 당국은 "균열은 있지만 이미 대부분의 저수지 물을 방류했기 때문에 붕괴위험은 거의 없다"며 주민들을 안심시키고 있다.
두장옌(쓰촨성)=이명진 특파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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