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옛 중동 지고 새 중동이 뜬다

한부울 2008. 5. 6. 14:01
 

옛 중동 지고 새 중동이 뜬다

[조선일보] 2008년 05월 06일(화) 오전 00:06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는 중동의 지역 질서가 변하고 있다. 소련 붕괴(1991년)로 시작된 중동 지역의 변화가 이라크 전쟁과 고(高)유가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중동'의 출현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요슈카 피셔(Fischer) 전 독일 외무장관(1998~2005년 재임)은 레바논 일간지 '데일리 스타' 5일자에 실린 기고문을 통해, '새로운 중동'과 '과거의 중동'을 구분한 뒤 중동 지역 국제정치를 분석·전망했다.


이에 따르면, '과거의 중동'은 1918년 오스만 제국의 붕괴 이후 유럽 제국주의가 중동 국가들의 국경과 정치적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면서 형성됐다. 세속주의를 추구한 아랍 민족주의자들은 소련의 지원하에 위로부터의 근대화를 추진했다. 이는 이집트에 나세르와 사다트 정권이 등장하고 아랍지역에 바트당(단일한 아랍 사회주의국가 건설을 목표로 한 정당)의 세력이 확산되는 양상으로 나타났다.


'아랍 사회주의'로 불린 이런 흐름은

▲소련 붕괴(1991년)

▲권위주의와 부패

▲군사 정권과 독재의 비효율성 등이 나타나면서 쇠퇴하기 시작한다. 피셔는 "아랍 민족주의 정권이 약화되면서 권력의 '진공 상태'가 나타났고, 비(非)국가 행위자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며 "사회적 이슈 및 혁명론이 결합한 정치적 이슬람주의와 반(反)서방주의가 세속주의를 대체했다"고 설명했다. 또 일부 산유국들은 '오일 달러'로 경제적 부(富)를 쌓아 새로운 지역 중심국으로 떠올랐다.


피셔는 '새로운 중동'의 주요 행위자로 두바이·이스라엘·이란·사우디아라비아 등 국가 행위자와, 헤즈볼라(레바논의 이슬람 무장·정치 세력)·하마스(팔레스타인의 강경 무장 정파)·지하드(聖戰) 테러조직 등 비(非)국가 행위자들을 꼽았다. 반면 시리아·이집트·알제리 등은 '과거의 중동'을 대표하는 국가로 적시했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은 '새로운 중동'의 지역 질서를 형성하는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개전 후 이라크에 시아파 정권이 들어서고 다수가 시아파인 이란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핵을 보유하려는 이란과 중동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의 패권 다툼이 '새로운 중동'의 핵심 이슈로 떠오른 것이다. 반면 '과거의 중동' 분쟁을 상징했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는 상대적으로 부차적인 문제가 됐다.


이석호 기자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