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형의 삐라가 비극의 씨앗<제주4.3증언>
[연합뉴스] 2008년 03월 28일(금) 오후 05:08
희생자 유족 증언 본풀이마당
(제주=연합뉴스) 김호천 기자 = "삐라를 뿌리다 잡힌 어떤 사람이 큰형으로부터 삐라를 받았다고 실토한 게 고통의 시작이었다"28일 오후 (사)제주4.3연구소 주최로 제주도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열린 '제주 4.3 제60주년 기념 4.3증언 본풀이마당'에 나온 제주시 화북동의 김주전(74) 씨는 4.3사건 당시 겪은 참상을 담담하게 증언했다.
10남매 중 5번째로 태어난 김 씨는 "일본 해군에 지원 입대했다 제대한 큰형이 다시 일본으로 건너간 뒤 11살 때인 48년 4.3 사건이 일어났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경찰에 잡혀가 고문을 당하고 돌아오면서부터 고통의 나날을 보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삐라를 뿌리다 잡힌 어떤 사람이 일본으로 건너간 줄 알았던 큰형으로부터 삐라를 받았다고 실토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고 말했다. 그 뒤 집이 불에 타 이사를 다녀야 했고 5.10 선거를 전후해서는 김 씨의 할아버지, 할머니, 큰형수 등 3명이 군경에 의해 정뜨르비행장으로 끌려가 처형됐다.
그는 "당시 어머니와 1살난 여동생이 함께 끌려갔다가 트럭에 함께 타게 됐지만 트럭이 출발하는 순간 할아버지가 어머니와 여동생을 발로 차서 떨어뜨려 어머니와 여동생은 간신히 살아왔다"고 말했다. 김 씨 가족들의 고난은 계속해서 이어져 아버지와 큰형은 물론 둘째형과 막내 여동생 등 8명의 가족이 처형되거나 병에 걸려 죽었다.
그는 큰형으로 인해 시작된 가족의 불명예를 벗기 위해 1956년에 해군에 자원 입대한 뒤 월남전까지 참전하는 등 26년간 근무하며 보국훈장 광복장까지 받았으나 결국 연좌제에 걸려 준사관으로 진급하지도 못한채 상사로 제대해야 했다.
김 씨는 "오늘 무공수훈자회 모임에 갔다 왔는데 경우회 등 우익단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고, 여기 와서 4.3 당시 겪은 일을 생각하면 그렇고, 솔직히 지금도 헷갈린다"며 하루 사이에 이른바 좌.우익의 이데올로기가 대립하는 2곳의 행사에 참석한 소감을 밝혔다.
이날 열린 증언 본풀이마당에는 김 씨 이외에도 4.3 당시 아무 잘못도 없이 군경에 잡혀가 모진 고문을 당한 뒤 후유증으로 고생하다 숨진 남편과 함께 살아온 고순열(77.제주시 도남동) 할머니와, 아버지, 언니, 오빠, 올케, 조카 2명 등 6명을 잃고 총상의 후유증으로 고통스럽게 살다간 어머니를 모셨던 김인근(73.제주시 화북동) 할머니 등 3명의 증언이 이어졌다.
제주4.3연구소와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제주도지회는 2002년부터 매년 4.3을 겪은 2∼3명의 경험자를 초청해 증언본풀이 행사를 마련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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