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유해 매장 추정 지역 아파트 공사 중단, 중국 정부 밝혀
[중앙일보] 2008년 03월 11일(화) 오전 02:24
주중 한국 대사관은 10일 “중국 정부가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의 아파트 부지 토목 공사를 중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말했다.
한국 외교부가 최근 닝푸쿠이(寧賦魁) 주한 중국 대사를 불러 “안 의사의 유해가 묻혀 있을 가능성이 있는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시 뤼순(旅順) 옛 감옥터 주변의 아파트 공사를 중단해 달라”는 뜻을 전달한 데 대해 중국 외교부가 수용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로써 1909년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당시 일본 총리대신을 암살한 안 의사의 유해 매장 추정지의 추가 훼손은 일단 피할 수 있게 됐다. 대사관 관계자는 “국내에서 과학적인 장비를 들여와 앞으로 2~3개월 안에 유해를 발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공사 중단 조치는 어디까지나 잠정 조치일 뿐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베이징(北京)의 한 소식통은 “과거 북·중 관계가 좋을 때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직접 현장을 찾아가 유해 발굴을 요청했는데도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미 복잡한 토지 보상 절차를 거쳐 아파트 부지를 파는 단계까지 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마냥 공사를 중단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특히 현지에는 해군 군항이 있어 중국 군부를 설득하는 것도 문제다. 또 한국 정부가 구두 증언만을 토대로 유해 매장 추정 부지를 정부 예산으로 매입하는 것도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한 소식통은 “안 의사 유해 매장 추정지에서 아파트 공사가 예정됐다는 언론 보도가 지난해 나왔는데도 한국 정부가 수수방관하다가 뒤늦게 대책을 찾고 있지만 여전히 미봉책”이라고 꼬집었다.
한 역사학자는 “중국 정부가 동북공정(東北工程) 차원에서 만주 지역의 항일 유적지 복원에 소극적”이라며 “한국 정부가 중국 정부와 공식 협상을 벌여 중국에 산재해 있는 항일 독립운동 유적지를 체계적으로 정리·보존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 항일 유적지는 기념탑이 훼손된 채 방치돼 있고, 상하이(上海) 루쉰(魯迅)공원의 윤봉길 의사 유적지는 표시판조차 치워진 상태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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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아파트 공사판에 깔려버릴 '안중근 의사'
[조선일보] 2008년 03월 04일(화) 오전 00:16
중국측이 뤼순(旅順) 감옥 뒤편 야산에 있는 안중근(安重根) 의사 유해 발굴 예정지 일대를 아파트를 짓기 위해 땅을 파내는 등 땅 고르기 작업을 한 것으로 3일 밝혀졌다. 이에 따라 안 의사의 유해가 이 장소에 묻혀 있다면 "국권이 회복되거든 나를 고국 땅에 묻어 달라"는 안 의사의 유언이 지켜지기 어려워진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졌다. 안 의사는 1909년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하고 이듬해 3월 뤼순 감옥에서 순국했다.
◆발굴 예정지 일대 훼손
본지가 최근 확인한 결과 뤼순 감옥과 해군부대 바로 뒤편 야산의 발굴 예정지는 건물을 짓기 위해 평평하게 정지작업을 마친 상태로 전기선이 지나가는 철탑과 전봇대만 남아 있었다. 현장을 방문한 날 발굴 예정지 바로 옆 산기슭에선 포클레인이 산을 깎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철탑 지역과 그 서쪽 일대는 남북이 2006년 공동 조사를 거쳐 가장 유력한 안 의사 매장지로 추정한 곳이다.
공사현장 바로 옆 가게 주인 양위전(楊玉珍·65)씨는 "한 달 후부터 철탑 주변에는 10층짜리, 마을 쪽은 5층짜리 아파트 신축공사가 시작될 것이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가장 유력한 매장 추정지
그동안 남과 북은 각각 안 의사 유해 발굴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정확한 매장 위치를 몰랐기 때문이다. 남북은 2005년 공동으로 안 의사 유해 발굴을 추진키로 합의하고, 2006년 6월 공동 조사를 통해 감옥 뒤편 일대를 가장 유력한 매장지로 추정했다. 당시 형무소장 딸이 안 의사 사형 집행일 오후 뤼순 감옥 뒷산에서 사람들이 삽질하는 것을 보았다며 사진을 전해준 게 계기였다. 남북은 2007년 이 지역의 발굴을 추진했으나 중국측이 외부인에게는 이 지역을 개방하지 않고 있는데다 남북한과 중국 정부간의 협의도 잘 이뤄지지 않아 성사되지 못했다. 정부는 올해 봄 다시 발굴을 시도할 계획이었다.
우리측 관계자는 현장 소식을 전해 듣고 "조사단이 중국측에 현장을 보존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아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국가보훈처 당국자는 "공사 중이라는 얘기는 처음 듣는다"고 말했다.
다롄=김민철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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