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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고난의 근대사…서방도 '군침'

한부울 2008. 3. 17. 19:49
 

티베트 고난의 근대사…서방도 '군침'

[연합뉴스] 2008년 03월 17일(월) 오후 02:50


(홍콩=연합뉴스) 정주호 특파원 = 중국과 인도, 동남아 사이에 놓인 세계의 지붕 '티베트'는 그 특별한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중국 뿐 아니라 서구 국가들도 군침을 흘렸던 곳이다.


20세기 들어 영국은 티베트를 장악하면 남아시아 전 지역을 틀어쥘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 하에 티베트를 침공했었고 냉전 시기 미국은 반공 거점 확보를 위해 티베트 독립을 지원했었다. 영국은 1888년 청나라의 느슨한 지배를 받고 있던 티베트를 침공, 룽투르 전투에 승리한 뒤 나탕 지역을 장악한데 이어 1903년 2차 침공전을 벌여 라싸 등 여러 요지를 점령했었다.


영국의 티베트 침공은 군사적 전략고지 확보가 주목적이었으나 영국은 그 후 티베트 독립 지지로 입장을 선회했다.


결국 청나라 군대가 1913년 티베트에서 완전히 물러나고 티베트는 독립을 선포했다. 장제스(蔣介石)가 1929년 제13대 달라이 라마에게 티베트가 '중화민국'에 편입토록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으나 영국의 지원을 받은 티베트 정부는 이를 거부했다.


신중국 성립 이듬해인 1950년 인민해방군이 티베트에 진주해 들어오고서 부터는 미국이 티베트 독립을 지원하는 주된 세력으로 바뀌었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티베트에 반공산 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티베트 무장독립 운동을 직접적으로 지원하면서 무장 세력을 훈련시키고 티베트인들에게 무기와 장비를 제공했다.


티베트 상인 안드러창 곤포 타시의 주도로 무장독립군이 조직되자 달라이 라마의 큰형이 CIA 요원과 접촉하기도 했으며 1957년엔 독립군 요원 6명이 미국령 사이판에서 비밀 특수훈련을 받기도 했다. 1959년 발생한 티베트인들의 무장 항쟁도 미국이 막후에서 지원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그후 봉기 실패로 달라이 라마가 추종세력을 이끌고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인도로 넘어갈 당시 미국의 특수요원이 이들 난민을 국경까지 인도했으며 음식과 무기, 탄약을 공수 지원해주기도 했다.


당초 티베트의 군사전략적 가치에 주목했던 중국은 우라늄, 마그네슘, 철, 석탄, 구리 등 엄청난 지하자원이 잇따라 발견되고 티베트의 환경, 문화적 가치도 높아짐에 따라 절대 놓칠 수 없는 '영토'로 받아들이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