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교류 메신저된 백범의 자손
中国网 2008-02-06
김구
1932년 1월 일본군은 상하이(上海)에서 1.28사변을 일으켰으며 같은 해 5월 중국에서 항일 운동을 벌이던 한국 독립운동가 조직 ‘한국 임시정부’는 황급히 상하이에서 자싱(嘉兴)으로 그 거처를 옮겼다. 또한 1935년 10월 난후(南湖)의 한 여객선 위에서 한 차례 특별한 회의가 진행됐으며 ‘한국의 국부’ 김구를 한국 독립운동의 지도자로 추대했다. 이 회의는 한국 독립운동의 중요한 전환점이 됐으며 김구는 자싱에서 가장 힘든 26년 망명생활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김구의 백범일지에는 일본 식민통치 반대, 민족 독립 쟁취 과정 중 한중 양국의 상호 이해 및 후원의 진실한 감정이 잘 드러나있다. 그는 한국의 각 항일 당파가 단결하여 반드시 함께 일본을 대적해야 한다고 여겼으며 일본 군국주의가 한중 양국 국민의 공통 적군임을 알고 있었다. 이로 인해 그는 한중 양국 국민이 함께 단결하면 능히 일본 침략자를 대적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김구의 아들이자 한국 공군참모장, 교통부 장관 등 요직을 지낸 김신은 자싱을 방문할 당시 자신이 개인적으로 중국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중국에서 학업을 마친 관계로 동창들이 모두 중국에 있다고 말했다. 또한 가족 3대가 살았던 땅인 만큼 자신은 절반의 중국인이며 중국이 마치 고향처럼 느껴진다고 밝혔다. 그는 이후 한중 양국 수교의 민간 대사로 활약하며 정식 수교 건립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한국 독립운동 역사의 중요한 획을 긋고 한중 양국 국민의 공통 항일 운동의 증거가 되고 있는 자싱의 김구(金九) 선생 피난처 및 한국임시정부는 1997년 개방된 이후 한국에 미치는 영향이 날로 커지고 있으며, 점점 많은 한국인들이 그들의 흔적을 찾기 위해 방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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