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정명(正名)운동
[경향신문] 2007년 03월 23일(금) 오후 03:22
‘脫중국 이름부터’ 독립 깃발
1947년 2·28사태 때 국민당 정부의 강압통치에 항거한 대만인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
최근 대만에서는 한국 수도 서울의 중국어 표기를 ‘漢城(한청)’에서 ‘首爾(서우얼)’로 왜 바꾸었냐고 물어보곤 한다. 왜 그것이 그들에게 중요한 문제일까? 바로 이름을 바로잡는 정명(正名)운동 때문이다.
대만에서는 현재 정명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대만의 정명운동은 관공서의 이름에서 ‘중화’ 또는 ‘중국’이라는 이름을 지우는 것이다. 탈 중국 대만독립이라는 시각에서 돌아보면 이러한 시도가 가지고 있는 상징적 의미를 결코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정명운동을 통해 대만은 독립할 수 있을까? 독립과 통일이라는 정치 이분법 속에서 제3의 길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정명운동의 시작은 2006년 9월6일 장제스 국제공항을 현지 지역 이름을 사용하여 臺灣桃園(타이완타오위안) 국제공항으로 개명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이와 더불어 올 2월12일에는 中華郵政(중화우체국)을 臺灣郵政(대만우체국)으로 바꾸고 중국이 들어간 국영업체의 이름을 대만으로 바꾸었다. 이에 대해 중국은 재빨리 中國郵政(중국우체국) 웹사이트에 臺灣郵政을 삽입하여 대만은 중국의 한 지방일 뿐이라는 자신의 일관된 주장을 강조했다. 미국은 이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표명하면서 기본적으로 정명운동에 반대하고 있음을 밝혔다. 또한 이것이 국가 명칭을 바꾸는 독립운동의 시발점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야당인 국민당은 우체국 등 관공서 이름의 변경에는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만 민간의 반응일 것이다. TVBS가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는 약 55%의 응답자가 정명에 반대하고 21%만이 찬성하고 있다. 심지어 민진당의 지지자 중에서도 3분의 1이 반대한다고 대답, 이러한 정명운동이 실제 여론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은 이러한 정명운동에 반대하면서도 여권이나 관공서의 이름에 대만이 들어가는 것이 결국 대만이 중국의 한 지방에 불과하다는 일관된 자신의 정책에 부합되는 측면을 잘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대만 정부는 왜 정명운동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심층적 이해를 위해 우리는 대만이 중국과 미·일동맹의 대결선상에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대만은 중국과의 대결 구도를 통해 대만 독립의 가능성을 현실화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 중국제국주의와 미·일 제국주의 사이에서
최근 2·28 사태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히 일면서 대만 민족주의가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비록 중국이 평화적 굴기, 평화적 발전, 조화로운 사회 건설 등의 정치적 과제를 추진하고 있지만, 대만 문제를 통해 보면 오직 ‘하나의 중국’이라는 정책을 통해 통일이라는 일관된 목표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대만의 입장에서 중국과 마주했을 때에는 이른바 ‘무력사용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강압적인 중국, 확장주의적인 즉 제국주의적인 중국을 상대해야만 했던 것이다. 대만과 중국의 관계 개선 역시 오직 이러한 틀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었으며 대만에는 어떠한 선택권도 주어지지 않았다. 대만 독립이라는 선택권을 포기할 수 없다는 민진당 정부의 노선은 ‘하나의 중국’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았다. 경제적으로 절실한 중국시장 진출 및 협력과는 반대로 정치적으로 대립된 현실에서 민진당 정부는 더더욱 친미·친일 노선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가능한 한 미국과 일본의 대 중국 정책이 대만 독립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전환되도록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최근 미국과 일본의 우경화는 대만 독립을 기대하는 민진당 지지자들에게는 유일한 돌파구인 것으로 보였으며 미국 네오콘과 일본 우파의 연계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정책을 당면 과제로 여기게 되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시도 속에서 간과할 수 없는 몇 가지 문제점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실례로 지난해 7월11일 천수이볜 총통은 당시 일본차기 총리로 유력했던 아베 신조의 측근인 하기다 고니치 중의원을 접견하는 자리에서 1997년 중국이 대만 해협에 미사일을 발사한 것을 예로 들며 “북한이 일본 해역 근처에 미사일을 발사한 것이 자신의 일처럼 느껴진다”며 “대만해협의 문제도 미·일 공동 전략의 일환이 된 것에 지지를 표명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발언은 대만해협에서 전시 상황이 벌어지면 주일미군 등의 개입을 용인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었다. 또한 일본 문부성이 독도와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가 자국 영토라는 내용을 고교 교과서에 명기할 것을 지시한 검정 결과에 대해 한국이 독도 문제로 일본과 심각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대만 정부는 현재 이에 대한 공식 항의 성명조차 내놓지 않고 있다. 또한 2006년 3월과 8월대만 정부는 댜오위다오 일대에서 일본 자위대가 미군과 함께 군사훈련을 실행한 것을 묵인하고 있다. 이러한 태도 역시 대만해협이 미·일 공동 방어계획에 포함된 것을 대만이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일 연합을 통해 중국과의 대결구도를 대만 독립에 이용하려는 민진당 정부의 노선을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대만의 독립이라는 절대 과제를 위해 민진당 정부가 걷고 있는 친미·친일 노선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위안부·야스쿠니신사 문제 등 국제적 인권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도 맹목적으로 일본을 지지하는 대만을 보면서 조금은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하지만 현 민진당 정부가 맹목적 친미·친일노선을 걷고 있는 것 역시 어떤 면에서는 중국의 제국주의적 압박에 의해 야기된 상황적 인식을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 만약 중국이 진정한 평화를 갈망하고 있다면 왜 대만에 조그마한 국제적 생존권을 주려고 하지 않을까.
중국과 미국, 일본의 제국주의적 확장 노선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는 대만, 독립을 위해서라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민진당과 통일을 위해서라면 무력 사용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중국,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닮은 모습이 아닐까? 이렇게 극단으로 치닫는 강대국 간의 대결 구도를 평화적 구조로 되돌릴 수는 없을까? 이것이 우리가 왜 대만에서 동아시아 질서를 논해야 하는지를 설명해 주고 있다. 대만은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이 물음을 던지면서 같은 동아시아의 일원인 우리는 어떤 관점을 통해 깊이 있는 이해를 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있겠다.
양태근, 한림대 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원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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