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戰雲 감도는 대만해협
[위클리조선] 2007년 10월 23일(화) 오전 11:30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경제 및 군사대국으로 부상함에 따라 대만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중국의 전략은 대만을 국제사회에서 정치·외교적으로 고립시키고, 경제협력을 강화하면서 적당한 시기에 흡수 통일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의도를 잘 알고 있는 대만은 경제협력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되 정치·외교적으로 독립국가임을 천명하는 것이 흡수통일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보고 있다.
2004년 총통 선거에서 재선된 천수이볜총통은 내년 3월이면 임기가 끝나는데도 불구하고 강력하게 독립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집권 여당인 민진당이 지난 9월 30일 타이베이에서 전당대회를 열고 대만이 독립주권국가임을 천명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상국가 결의문’을 채택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결의문은 통칭인 ‘대만’으로 유엔과 세계보건기구(WHO) 등 국제기구에 가입을 신청하고, 신헌법 제정을 위해 적당한 시기에 국민투표를 실시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천 총통은 차기 총통 선거와 함께 대만이라는 이름으로 유엔 가입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도 실시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천 총통과 민진당은 이번 쌍십절(10월 10일)을 계기로 국호를 아예 대만으로 변경하려는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다. 야당인 국민당과 마잉주(馬英九) 대선 후보도 민진당이 대만 독립문제를 부각시키며 여론을 주도하자 이와 유사한 대만화 정책으로 돌아섰고 유엔 가입을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하는데 일단 지지 의사를 보이고 있다. 국민당은 그러나 ‘중화민국’이라는 현재의 국호로 할 것인지 아니면 ‘대만’ 명의로 할 것인지를 놓고 국민투표를 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대륙과의 통일을 중시하는 국민당과 마 후보가 이처럼 노선을 일부 수정한 것은 대만의 정치 현실을 감안하지 않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대만 국민 중 85%는 대륙과의 연고가 적은 대만 출신이다. 과거 대륙에서 망명해온 인사나 국민의 수는 세월이 갈수록 자연감소하고, 대신 대만에서 태어난 세대가 이미 사회의 주류가 된 지 오래다. 여당인 민진당은 물론 국민당에도 대만 출신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중국과의 관계를 강조하기는 어려운 분위기가 되고 있다. 대만의 잡지 ‘위안지엔(遠見)’이 실시한 여론조사(8월 23~24일) 결과에 따르면 독립 찬성이 57.2%였고, 통일을 지지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29%였다. 대만 명의의 유엔 가입에 대해 75.6%가 찬성했으며 반대는 18.1%뿐이었다. 영토에 대해서도 현재 관할 지역으로 국한해야 한다는 응답자가 74%였으며, 대륙 전체를 포괄해야 한다는 데 찬성한 사람은 10.8%였다.
중국 軍 움직임
인사도 ‘대만공격형’으로
중국은 대만의 이 같은 독립 움직임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중국으로선 대만 독립 문제는 공산당 정권의 정통성과 직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티베트와 신장위구르 등 다른 지역의 독립까지 부추길 수 있어 국가안보에도 위협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8월 중순 열린 공산당 내부 회의에서 “인민해방군의 유일한 과업은 (독립을 막기 위한) 대만과의 전쟁뿐”이라고 강조하는 등 강경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후 주석은 “군사행동은 5단계로 이뤄져야 한다”며 전쟁 준비 완료 → 군사 위협 → 대만해협 봉쇄 → 화력을 통한 타격 → 대만 상륙의 단계별 군사전략을 제시했다.(대만 롄허바오 2007년 8월 27일자) 차오강촨(曹剛川) 중국 국방부장 겸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은 인민해방군 창설 80주년 기념행사(7월 31일)에서 “대만 독립과 대만 독립을 초래할 ‘중대사변’을 억제할 결심과 능력, 준비가 돼 있다”며 대만의 독립 시도를 무력으로라도 저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중대사변이란 중국이 2005년 제정한 ‘반(反)국가분열법’ 8조에서 인민해방군이 무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 상태를 말한다. 장녠츠(章念馳) 중국 동아시아연구소 소장은 “대만의 유엔 가입 국민투표는 양안(兩岸)이 하나의 중국에 속해 있다는 법률적 관계를 뒤흔들고 평화통일의 원칙을 바꾸려는 개념”이라며 “이는 중국이 제정해놓은 반국가분열법의 근본 취지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대만의 독립을 저지하겠다는 의지를 말로 아닌 행동으로 보이고 있다. 중국은 특히 대만이 내년에 열리는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등 독립 행보를 강화할 것으로 보고, 이를 막기 위해 대만 공격용 군사훈련 재개를 포함한 군사·정치·경제적 압력 조치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홍콩 밍바오 10월 3일자)
중국이 재개할 대만 공격 훈련은 둥산다오(東山島) 상륙 작전이다. 매년 푸젠(福建)성 남단 둥산다오 앞바다에서 육·해·공군 3군 합동으로 유사시 대만 상륙 훈련을 해왔던 중국은 2005년부터 대만에 대한 유화책으로 이 훈련을 중단했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국회)는 폐회 기간에도 유사시 인민해방군이 대만을 즉시 점령할 수 있도록 군사지휘권을 국무원(행정부)에 위임하기로 했다. 중국 정부는 대만에 투자한 외국 자본이 빠져나가도록 경제적 압력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후 주석은 최근 군 고위 인사에서 대만도 관할하고 있는 난징(南京)군구 출신을 중용했다.(일본 산케이신문 10월 1일자) 이번 인사에 따르면 천빙더(陳炳德) 총장비부장이 총참모장에 임명되고, 량광례(梁光烈) 총참모장은 내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국방부장에 취임하는 것으로 내정됐다. 량 국방부장 내정자는 대만 공격을 위한 ‘도해상륙작전’을 저술한 대만 군사전문가다. 천 총참모장도 난징군구 사령관을 거친 야전통이다. 더욱 주목되는 점은 후 주석이 쉬치량(許其亮) 공군 부참모장을 공군사령관으로, 우성리(吳勝利) 해군 부참모장을 해군사령관으로 각각 승진시켰다는 것이다. 이들 신임 공·해군 사령관은 미국 항공모함을 저지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해온 인물들이다. 중국은 1996년 대만해협 사태에서 보듯이 유사시 대만군을 지원하기 위해 출동할 미 항공모함을 어떻게 하면 격침 또는 저지할 것이냐는 전략을 집중적으로 연구해왔다. 이들 두 장성은 지금까지 미 항모 격침을 목표로 한 가상 군사훈련인 암호명 ‘968공정’을 지휘해왔다. 때문에 이들이 공군과 해군의 최고 지휘관이 됐다는 것은 미국에 무언의 메시지를 보낸 셈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은 대만을 겨냥해 900기의 단거리 탄도미사일도 배치했으며, 매년 100기를 추가 배치하고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도 실전에 대비한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인민해방군 공군 Su(수호이)-27 전투기 편대는 지난 7월 중순 대만해협 중간선에 근접, 대만 공군 F-16 전투기 편대가 긴급 발진해 대치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인민해방군 해군도 지난 4~5월 동중국해에서 두 차례에 걸쳐 대규모 해상 봉쇄 훈련을 실시했다. 중국은 또 대만의 미사일 보복 공격에 대비해 지난 9월 15일 상하이(上海) 일원에서 대규모 방공훈련도 실시했다. 이번 훈련은 1949년 이래 상하이에서 실시된 최대 규모의 방공 군사훈련이다.
대만 軍 움직임
미사일·장거리포 대량 배치
대만도 중국의 위협에 맞대응하고 있다. 대만은 이번 쌍십절에 16년 만에 처음으로 육·해·공군을 총 동원해 대규모 열병식을 가졌다. 대만 정부는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 시절인 1991년 건국기념일 80주년을 맞아 열병식을 치른 이후 권위주의적 색채가 짙다는 이유로 행사를 갖지 않았다. 대만은 이번 열병식을 통해 중국에 대해 일종의 무력시위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만 공군은 지난 9월 14~19일 신주(新竹) 기지에서 미라지-2000, F-16 등 총 70여대의 전투기를 동원한 대규모 합동훈련을 실시했다. 대만은 또 중국 대륙에서 불과 10분 정도 떨어진 마쭈다오(馬祖島)에 크루즈 미사일 중대를 배치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리웨이이(李維一) 중국 국무원 대변인은 “대만군이 마쭈다오에 미사일 중대를 배치해서 푸젠성과 상하이 등을 위협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으며, 장거리 지대지 미사일 제조도 계획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지적한 미사일은 대만이 비밀리에 자체 개발한 슝펑(雄風)-2E형 지대지 크루즈 미사일이다. 이 미사일은 사정거리가 1000㎞로 상하이를 비롯한 중국 연안 도시들이 사정권에 들 수 있다.
이와 관련, 대만 정부는 오는 11월 1일부터 중국을 최전방에서 대치하고 있는 진먼다오(金門島)의 병력을 대폭 감축, 6000명 수준으로 낮출 계획이다. 진먼다오에서 병력을 감축한다는 것은 대륙 수복을 포기하고 대신 대만 독립의 의지를 현실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중·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한 마당에 대륙 쪽에서 200㎞ 떨어진 진먼다오가 큰 의미가 없어졌다는 뜻이다. 대신 중국의 침공을 막기 위한 억지력으로 슝펑-2E 등의 최신예 미사일과 1600여문의 장거리포를 대량 배치한다는 전략이다. 대만 해군은 지난 9월 남부 가오슝(高雄) 부근의 대만해협에서 동시에 여러 목표물을 공격할 수 있는 키드급 최신예 구축함을 처음 선보였다. 미국에서 도입, 실전 배치를 완료한 이 최신예 구축함들의 주요 임무는 중국의 잠수함을 저지하는 것이다.
외교·스포츠 분야
올림픽 성화봉송 놓고 대립
양안 관계는 외교와 스포츠 분야에서도 악화되고 있다. 대만과 부르키나파소 등 아프리카 5개 수교국은 지난 9월 9일 정상회의를 갖고 대만의 유엔 가입을 지지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타이베이 선언을 채택했다. 이번 회의는 중국이 지난해 11월 베이징에서 아프리카 48개국 정상들을 초청해 최초로 중국·아프리카 정상회의를 연 것에 대항해 열린 것이다. 대만은 이미 중남미·남태평양의 수교국들과는 정상회의를 정례화해왔는데 이번 아프리카 정상들과의 회동도 중국의 외교 공세를 차단하겠다는 속셈이다. 중국은 지난 6월 코스타리카와 수교하는 등 대만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들에 대규모 경제지원을 하면서 단교를 유도하고 있다. 대만과 수교한 나라는 전 세계에 24개국뿐이다. 중국과 대만은 베이징올림픽 성화봉송로를 놓고 줄다리기를 벌이다 결국 타협을 하지 못했다. 중국은 그동안 협상에서 대만의 성화봉송로 주변 24㎞ 내에서 대만 국기와 대만의 상징을 모두 철수하고 대만 국가를 연주하지 말 것을 요구해왔다. 대만 정부는 자국이 중국의 일개 성(省)으로 비쳐질 수 있다며 이를 거부했다.
중국과 대만이 이처럼 대립하면서 양안 관계가 동북아 국제질서에서 가장 주요한 현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특히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자칫 무력 충돌까지 벌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앞으로 양안 관계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도 주요 변수가 되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대만의 독립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면서도, 대만에 총 22억달러 규모의 무기 판매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판매 목록에는 잠수함을 격침하는 데 효과적인 최신예 P-3E 대잠초계기 12대가 포함되어 있다. 미국으로선 양안 관계가 현상유지를 하면서 어느 한쪽으로 균형이 기울어지는 것을 원치 않고 있다. 중국의 최대 약점이 대만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는 미국은 ‘대만 카드’를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
쌍십절과 대만의 국호
1949년 ‘중화민국’ 선포, 10월 10일 건국기념
국제사회에선 ‘대만’ ‘차이니즈 타이베이’ 혼용
쌍십절(雙十節). 흔히 대만(臺灣ㆍTaiwan)이라고 부르는 중화민국(中華民國ㆍRepublic Of China)의 건국기념일인 10월 10일은 10자가 두 번 나오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10월 10일은 또 신해혁명(辛亥革命) 기념일이기도 하다. 쑨원(孫文)을 중심으로 한 혁명파는 1911년 10월 10일 이민족 정권인 청조(淸朝)를 타도하고 한족(漢族)의 공화정을 수립하자고 봉기했다. 혁명파는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1912년 1월 1일 쑨원을 임시 대총통으로 추대, 난징(南京)에서 민주공화정을 지향하는 중화민국을 건국했다.
중화민국은 이후 군벌의 난립과 정권 다툼으로 혼란을 겪다 쑨원의 후계자인 장제스(蔣介石)가 1928년 대륙을 통일, 국민당 정부를 출범시키면서 안정을 찾는 듯했다. 하지만 일본과의 전쟁으로 대륙은 다시 위기에 빠졌고, 서로 적대 관계이던 국민당과 공산당은 힘을 합쳐 이에 대항했다. 이후 2차 대전이 끝난 후 국민당과 공산당은 내전을 벌였고, 패배한 국민당 정부는 대만으로 망명했다. 대륙을 차지한 공산당은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했다. 반면 장제스와 국민당은 대륙의 법통을 잇는다는 의미로 같은 해 12월 대만에서 중화민국 정부를 수립했다.
대만이 사용하는 중화민국이라는 국호는 1912년 건국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정통 정부’인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하지만 1971년 유엔에서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이 ‘정통 정부’로 승인된 이후, 국제사회에서 중화민국이 국호로 불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중화민국이 실효지배를 하고 있는 대만 섬의 이름을 딴 ‘대만’이 사실상 국호로 정착됐다. 특히 중국은 그동안 ‘하나의 중국(One China) 정책’을 강력하게 밀어붙여 ‘차이니즈 타이베이(Chinese Taipeiㆍ中華臺北)’라고 하는 명칭이 올림픽(1976년 대회 이후) 등 스포츠 대회나 각종 국제기구에서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세계무역기구(WTO)의 중화민국 가맹 명칭은 ‘타이완ㆍ펑후ㆍ진먼ㆍ마쭈 개별관세영역(臺灣ㆍ澎湖ㆍ金門ㆍ馬祖 個別關稅領域ㆍSeparate Customs Territory of Taiwan, Penghu, Kinmen and Matsu)이며, ‘차이니즈 타이베이’가 약칭(略稱)으로 쓰인다.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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