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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에 학살된 동학농민군 통계 나왔다

한부울 2007. 10. 25. 13:02
 

일제에 학살된 동학농민군 통계 나왔다

[연합뉴스] 2007년 10월 25일(목) 오전 11:21


충북대 신영우 교수 "2만-5만명 희생"(대전=연합뉴스) 정윤덕 기자 = 일제에 의해 학살된 동학농민군의 규모가 구체적인 통계로 나왔다.
그동안 동학농민군 희생자는 최대 30만명까지 추산됐으나 기록을 근거로 한 통계로 나오기는 처음이다.

25일 충남대 충청문화연구소(소장 김상기 국사학과 교수)에 따르면 충북대 신영우 교수는 '1894년 일본군의 동학농민군 학살'이라는 논문을 통해 일본군 보고문서 '주한일본공사관기록'(駐韓日本公使館記錄)과 관군의 기록 '순무선봉진등록'(巡撫先鋒陳謄錄) 등을 근거로 일본군 책임 아래 2만-5만명에 이르는 동학농민군이 학살됐다고 추산했다.

신 교수는 일단 일본군 보고문서에 구체적인 숫자로 기록된 동학농민군 희생자 3천94명에 관군의 기록과 차이가 나는 3천730명을 더했다.
또 숫자로 환산이 불가능한 기록인 수백명과 수십명, 우금치전투 희생자 2천-3천명, 대부분 처형됐을 포로 319명과 수십-수백명을 합했다.

신 교수는 논문에서 "일본군의 학살자 수는 기록에 따라 2배에서 10배까지 관군의 통계에 비해 줄여져 있고 시기적으로는 1894년 12월 초부터 학살자의 수를 현저히 축소하고 있다"며 "실제로 전남 장흥에서 조사된 학살자는 일본군은 300명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실명이 확인된 희생자가 345명이고 미확인된 희생자는 1천265명이나 된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이어 "이런 비율과 보고되지 않은 수를 포함하면 2만명에서 5만명에 이르는 대학살이 일본군의 책임 아래 자행됐다"며 "전체 학살규모는 추산하기조차 어렵지만 1894년에서 1895년 초에 이르는 동학농민군에 대한 학살과 그 이후에도 계속된 수색과 체포과정에서 벌어진 학살, 체포된 동학농민군 참여자를 사법형식을 거쳐 살해한 것까지 포함하면 전체의 수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또 "일본군의 전투보고서를 보면 처음에는 전과를 정확하게 밝히려고 시도하는 것이 눈에 띄었으나 뒤로 갈수록 30명 또는 200명으로 대충 기록해서 정확한 희생자 파악에 관심이 적고 살육에 대해 무감각해진 것이 드러난다"고 덧붙였다.

신 교수는 이 같은 내용을 26일 충청문화연구소 주최로 열리는 '항일민족운동과 일제의 한인학살'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