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말 서구세력이 주창하고 실제 행동한 황화론에 표적 대상은 곧 대륙조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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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 고개 드는 황화론(黃禍論)
1. 서론
(1) 중국 인구 유입
19 세기 말 제정 러시아는 만주지역에 철도를 부설하면서 중국을 속속 잠식했다.
직접적으로 영토를 획득하는 방법인 전쟁 대신, 철도를 통해 지역적 경제적으로 중국을 차지하려 한 것이다.
100년이 흐른 21세기 초, 이번에는 공산 중국이 러․ 중 국경지역으로 진출하고 있다.
철도부설 대신 13억 인구 중 상당수를 보내 러시아 상권을 장악하고 있다.
1세기 전과 반대 상황이 벌어지자 러시아는 황화론(黃禍論)을 들이밀기 시작했다.
지난달 말 극동의 관문 블라디보스토크항(港)에 10여대의 관광버스가 멈춰 섰고, 깃발을 든 안내인이 내렸다. 이어 내린 관광객은 모두 중국인이었다.
이들은 떼 지어 관광에 나섰다. 수산시장과 대형 아쿠아리움 박물관이 곧바로 중국인에게 장악됐다.
블라디보스토크 시내 중국인 시장. 의류․가재도구 등 없는 중국 물건이 없다.
최근 5년 동안 중국인들이 시장 전체를 점령했다는 표현대로 중국인이 가득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자동차로 3시간 거리에 있는 우수리스크시(市) 역시 중국인들이 상권을 장악한 지 오래다.
우수리강을 국경으로, 코앞이 중국 땅인 이곳도 다른 극동․시베리아 지역과 마찬가지로 중국인 식당과 중국인 시장이 한집 건너 보인다. 중국인은 거리를 활보했다.
시내 대형호텔에는 중국인 상인들이 장기 투숙하고 있어 외지인들은 방을 얻기 힘들다. 중국인들을 상대하는 술집과 여관․사우나 등도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극동에서 10년 동안 지내온 김대식(53) 블라디보스토크 현대호텔 고문은 중국인들의 진출은 무지막지할 정도라며 최근 2~3년 사이 소비재를 중심으로 러시아 시장 전역을 파고들고 있다고 말했다.
2. 본론
(1) 러시아 내의 중국인 현황
러시아 외무부는 최근 내무부 자료를 인용, 85만~100만명에 이르는 중국인들이 러시아로 몰려들었다고 밝혔다.
연해주․하바로프스크․치타․이르쿠츠크 등 러시아 시베리아 전 지역에서 중국인들이 상권을 형성하고 있으며, 아예 집단 거주지도 생겨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2010년까지 러시아 내 중국인의 수가 800만~1000만명에 달해 러시아민족 다음으로 최대 민족을 구성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2) 중국인 물결의 배경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긴 국경의 하나를 공유하고 있던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협력과 경쟁으로 점철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양국 간의 관계는 구소련의 붕괴를 분수령으로 더욱 밀접하게 되었는바, 이는 러시아 극동지역의 광대한 자연자원에 비해 이를 개발할 러시아 인력의 절대적인 부족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인력의 동원을 위해서 구소련시대에는 여러 가지 강제적인 수단의 사용이 가능하였으나 권위적인 소비에트체제의 붕괴로 이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
따라서 러시아 극동지역의 여러 공화국들은 자체적으로 이러한 노동력을 조달할 수밖에 없게 됨에 따라, 이 지역의 지정학적 특성으로 인해 인근 중국인 노동자들의 이용이 절박한 현실로 다가서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중국인 노동력의 이용은 중국으로부터의 러시아 극동지역에 대한 심각한 인구압력으로 나타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중국인들에 대한 극동 러시아인들의 인종편견을 자극하게 되었다.
이러한 인종편견은 최근 더욱 심하게 나타나는 조짐을 보이고 있으나, 이는 러시아가 극동지역을 처음 병합하면서 인근 중국 노동력을 이용하여 이 러시아 극동지역을 경영하였던 19세기말에도 이미 그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러시아 극동지역은 중국과는 떼어놓고 이야기 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밀접한 연관을 맺으며 형성된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가 아이훈(愛琿: 지금의 黑河(Хэйхэ))조약(1858)과 베이징(北京)조약(1860)을 통해 아무르지방과 우수리지역을 중국으로부터 획득한 이후, 많은 중국인들이 농업에서의 계절노동자 또는 산업 관련 노동자로써 러시아 극동지역으로 밀려들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대부분 국경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사슴을 사냥하거나, 인삼, 야생동물의 가죽, 사금 및 진주 등을 채취하고 있었는데, 새로이 건설된 러시아의 도시들에 있어서 이들이 제공하는 값싼 노동력에 대한 수요는 급증하였다.
특히 이들 중국인들과 한인(韓人)들은 유럽지역의 러시아인 노동자들보다 임금이 낮아, 이 지역 러시아인 고용주들이 선호하였다. 또한 산업노동자로서도 1905년에 완공된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건설과정에서 중국인 노동력이 큰 역할을 하였음은 잘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도 우수리철도를 완공하는데는 17,000명의 중국인 이주자들의 역할이 컸는데 이들의 일부는 귀국하고 일부분은 철도완공 이후에도 러시아 극동지역에 그대로 눌러 있었다. 따라서 19세기 말기에서 20세기 초기에 중국인들은 러시아 극동지역의 경영에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노동력 공급의 원천이었고, 러시아 극동지역의 발전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 존재였다.
예를 들어 연해주에서는 중국인들이 무역회사를 소유하여 이 지역의 상업 활동에 큰 역할을 하였는데, 1910년 중국인들은 러시아 극동지역의 블라디보스토크의 상권을 거의 지배하다시피 하여 러시아 상점의 수가 단지 181개였는데 반해서, 중국인들은 러시아인 상점수의 3배가 넘는 625개를 운영하고 있었고, 건설사업의 경우 80%를 중국인업자들이 경영하고 있었다.
러시아 극동지역에서의 이러한 상황은 러시아와 끊임없이 중국대륙을 놓고 경쟁하던 일본에 의한 대륙침략이 노골화되던 1930년대 중반, 정확히 말하자면 1938년, 러시아 극동지역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중국인들이 러시아군대에 의해 본국으로 쫓겨 갈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후 1970년대 후반까지 거의 반 세기동안 러시아 극동지역은 거의 중국인들에게는 닫혀진 지역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양국간의 화해분위기로 러시아 극동지역이 다시 중국인에게 문호를 개방한 계기가 된 것은 1985년 고르바초프의 등장이었다. 뒤이어 양국은 1988년 7월 공식비자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양국 국민들이 상호 방문할 수 있는 문호가 확대되었다.
중국의 경제발전이 가속화됨에 따라 동북3성의 중국인들은 만성적 소비재 상품의 부족을 겪고 있는 러시아 극동지역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러시아 극동지역의 주민들은 중국인들의 쇄도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지만, 이들은 이미 지구의 건너편에 있는 모스크바 중앙정부보다 인근의 중국 동북(東北)지방과의 경제적 관계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되었다.
최근의 자료에 의하면 러시아 극동지역은 대외무역의 80%를 중국의 동북부 지방에 의존하고 있고, 이 러시아 극동 지역에 대한 외국인 투자액의 절반이 중국에서 온 것으로 되어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 지역은 중국산 소비재와 식품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중국의 값싼 노동력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난 10년 동안, 특히 최근 5년 동안 중국인들은 극동~사할린에서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에 이르는 러시아 동서 전역에 더욱더 활발히 진출했다. 러시아와 중국 국경은 두만강 근처에서 시작돼 약 4500㎞에 이르지만 국경을 넘는데 별 어려움은 없다.
이는 지난 91년 체결된 중국․러시아 간 무비자 협정 때문이다.
단속이 깐깐했던 러시아 국경수비대도 요즘에는 중국인의 유입을 별로 제지하지 않는다. 극동 정부가 중국인 덕분에 경제적 이익을 얻고 있다는 현실이 국경수비대의 단속을 느슨하게 만들었다.
극동의 중국인들은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블라디보스토크~하바로프스크 구간. 중국인들은 객차마다 최소한 3~4명씩 있었다. 중국 내 대륙열차를 방불케 했다.
반샤오유이(34)씨는 한 달에 국경을 3~4번씩 건너지만 별 어려움이 없다며 중국제품은 러시아에서 값이 싸 아주 인기라고 말했다. 시장에서 만난 30대의 한 중국인 상인은 러시아는 우리들 없으면 굶어죽을 것이라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했다.
(3) 러시아의 우려
외무부측은 지역 경제 활성화 등 중국 상인들이 기여한 점도 있지만, 마약거래 등 심각한 범죄가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①러시아 인구 내 다수 민족으로 부상
러시아 사회학자들과 언론들은 중국인의 유입에 강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황(黃)의 대륙 점령이라는 표현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일간 네자비시마야 가제타는 현 추세라면 오는 2010년 중국인이 러시아 인구 중 다수민족 2위를 차지할 것이라며 큰 우려를 나타냈다.
이 신문은 중국인의 유입이 러시아 사회․정치적, 지정학적 판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 인구는 유럽국가들 중 최대인 1억4480만명(러국가통계위 통계)이지만, 92년부터 계속 감소했다. 1992~2000년 사이 인구감소율은 2.4%로, 심각한 수준이다.
모스크바국립대학 산하 아시아․아프리카연구소 빌 겔브라스 교수는 중국은 1억3000만~1억5000만명에 달하는 실업군단을 갖고 있으며, 향후 10년간 그 수는 2억명으로까지 늘어날 것이다. 엄청난 사회적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야만 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 극동, 시베리아 지역이 수백만 중국 실업군단의 공략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러시아가 이 지역을 잃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동시베리아와 극동 개발에 들어가야 한다고 경고했다.
러시아 상원 북방소수민족분과위 특별보고서는 연해주 인구밀도가 1㎡당 13.5명인 데 반해 국경에 접한 중국마을은 130명 수준이라며 중국 실업자가 월경할 경우, 러시아는 큰 위협에 직면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러시아 영토이지만 중국인이 상권을 장악하는 바람에 중국경제권에 속하게 된 도시들이 늘고 있는데 대표적인 지역이 러시아와 중국의 국경을 이루는 아무르강의 북쪽 도시 블라고베시첸스크다. 인구 20여만명인 블라고베시첸스크에 살고 있는 중국인의 숫자는 공식적으론 6천여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경찰은 실제 중국 체류자수가 2만명은 족히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 법률상 중국인은 이 지역에 정착할 수 없다. 하지만 30일간 방문은 무제한 허용한다는 허점을 이용해 블라고베시첸스크 건너편에 있는 중국측 국경도시 하이허(黑河)에서 넘어와 불법 체류하는 중국인이 10~20여년전부터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오죽하면 지난해 이곳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주민들에게 "뭔가 실용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수십년 내에 당신들(러시아 사람들)이 중국말을 사용하게 될 지도 모른다" 고 경고했을 정도다.
②러시아의 중국에 대한 동화(同化) 현상
러시아 입장에서 볼 때 가장 큰 문제는 단순한 중국인의 유입 자체가 아니라 이들이 미개척지나 다름없는 이 지역의 땅과 상권이 장악되고 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외부세계와는 단절되어 있었던 러시아 극동주민들은 이 지역을 압도하는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에 큰 우려를 나타냈다.
이런 우려는 사업 또는 방문 목적으로 이곳에 물밀 듯이 몰려드는 중국인들에 의해 더욱 악화되었다. 이렇게 급증하는 중국인에 대한 우려의 밑바닥에는 러시아 중앙정부와는 멀리 떨어진 러시아 극동지역이 경제적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인근 중국에 경제적으로 그리고 인종적으로 동화(同化)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9세기에 아무르강 북쪽에 정착한 러시아 초기 이주민들은 임금이 싼 중국인, 한국인을 고용해 땅을 개간했으나 지금은 정반대로 무역업을 하는 중국 상인들이 싼 임금의 러시아인을 고용하고 있다.
블라고베시첸스크는 모스크바에서 3천4백㎞나 떨어져 있으나 모스크바만큼 규모가 큰 중국 도시인 하얼빈과의 거리는 수백㎞에 불과할 뿐 아니라 교통편도 좋아 중국의 영향을 받기가 쉽다. 또 아무르강 북쪽의 러시아 인구는 1백만명에 불과하지만 강남쪽 헤이룽장(黑龍江)성의 중국 인구는 3천 8백만 명이나 된다.
지리적으로나 경제, 인구적으로 나 중국화의 가능성이 큰 것이다. 따라서 러시아는 이 지역의 통제권을 잃을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③ 첼노끼 문제
최근 들어 러시와 중국간의 관계는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실로 활기를 되찾고 있다. 과거 양국관계를 소원하게 만든 여러 요인 중 특히 이념적 요인이야말로 러시아와 중국 모두에게 심각한 해악을 끼쳤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속칭 중국인 “첼로끼”와 같은 자연발생적인 시장 또한 양국간의 정상적인 경제 협력을 저해했다. 러시아 상인들 또한 러시아 내수용으로 저질의 싸구려 중국 제품을 버젓이 대량 유통시켰다.
그 결과 러시아 소비자에게 '중국 제품' 하면 저질이라는 부정적 선입관이 확고하게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와 다르다. 우선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국 소비자를 상대로 한 저가 중국 제품의 수출만 해도 러시아의 10배 이상이다.
(4) 국경분쟁
중국인의 유입은 오래된 국경분쟁에서 근거했을 것이다.
러-中 해묵은 국경분쟁의 '씨앗' 인 아무르강 북쪽이 러시아땅이 된 것은 1858년 당시 중국 청나라와 러시아가 아이훈조약을 맺은 이후다. 중국은 이 협정이 일시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며 1960~80년대에 국경분쟁을 자주 일으켰다.
몽골 고원 북쪽 골짜기에서부터 흘러내리는 아무르강의 길이는 자그마치 4350㎞. 오브강(5570㎞)에 이어 러시아에서 두 번째로 긴 강이다.
공원 전망대에서 보면 왼쪽이 우수리강, 약간 오른쪽이 아무르강이다.
마주 보이는 섬 뒤쪽이 바로 중국 땅이다. 중-러 국경을 따라 동진하던 아무르강(중국이름 헤이룽강.黑龍江) 줄기는 여기서 우수리강과 만나면서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오호츠크해로 빠진다.
이곳에서 뱃길로 옛 소련 시절부터 중국과 국경분쟁을 빚어온 대우수리스크섬(중국이름 헤이�쯔섬)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땅덩어리를 가진 나라와 가장 많은 인구를 거느린 나라-두 사회주의 형제국끼리 30년이 넘도록 서로 '내 땅'이라고 다퉈왔다는 점이 흥미롭다. 여러 개의 섬으로 이뤄진 대우수리스크섬의 면적은 300㎢. 여의도의 35배 크기다.
러시아의 개혁-개방 노선 이후 두 나라가 화해와 협력의 길로 들어섰고 국경분쟁도 대부분 해결됐지만 이 섬의 영유권 문제는 아직 타결되지 못했다.
중국은 "강 주요 항로의 중심선이 섬 바깥쪽을 돌아 나가므로 이 섬은 중국 영토"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러시아는 다른 분쟁 지역과 달리 이 섬에 관한 한 중국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편전쟁 이후 국력이 기운 청나라는 1858년 아이훈(琿)조약에서 한반도 크기의 두배가 넘는 아무르강 이북 땅(45만㎢)을 러시아에 내주고 1860년 베이징조약에서는 연해주(30만㎢)와 서북쪽 신장(新疆)지구(85만㎢)까지 잃었다.
무력을 앞세운 러시아와 불평등조약으로 땅을 내준 중국으로서는 반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2차 대전 뒤 중국 대륙이 공산화하면서 우의가 두터웠던 두 나라는 사회주의 노선을 둘러싼 이념논쟁과 함께 국경분쟁을 벌인다.
1960년대 들어 중국은 소련에 대해 잇따라 경계선의 재검토와 교섭을 요구했다.
이 와중에 1969년 3월 우수리강의 다만스키섬(중국 이름 전바오섬.珍寶島)에서 두 나라 국경수비대가 충돌해 수백명의 사상자를 냈다.
하바로프스크에서 멀지 않은 코르진스키섬(중국이름 바차섬.八島)과 서쪽의 신장지구에서도 유혈충돌이 잇따랐다.
대립해온 두 나라는 1989년 30년만에 화해의 길로 들어선다. 개혁-개방의 '신사고'를 제창한 고르바초프가 국경분쟁과 관련해 "하천 국경은 주요 항로를 중심선으로 하자"는 중국 주장을 받아들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 후 국경회담을 벌인 두 나라는 1990년부터 국경에 배치된 군병력 수십만명씩을 줄였고 마침내 1997년 헤이룽장성 북부 대초원지역부터 지린(吉林)성의 두만강 유역에 이르는 동부지역 4330㎞의 국경선 가운데 하바로프스크 일대 약 50㎞만 남기고 획정작업을 마무리했다.
이로써 중국은 아무르강과 우수리강에 있는 크고 작은 섬 600여개 가운데 전바오섬(1㎢.1990년 7월 이양)등 잃었던 섬 수백개를 되찾았다.
대우수리스크섬은 러-중국간 국경분쟁의 한 단면이지만 보이지 않는 불안과 적대감의 '씨앗'으로 남아있다. 러시아로서는 아무래도 극동군 사령부가 있는 하바로프스크 턱밑의 이 섬을 그냥 내줄 수 없을 터이다.
13 억이라는 '거대한 인구'를 가진 중국, 거기에서 밀려드는 값싼 물자와 노동력을 필요로 하면서도 덥썩덥썩 받아들일 수만 없는 게 러시아 지도층의 고민인 듯하다.
역사적으로 제기돼온 황화론(黃禍論)과 '인해전술'의 불안감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5) 러시아의 대책
현재 부상하고 있는 황화 대책은 다음과 같다.
“우선 중국인에 대한 투명한 이민정책을 세운다. 이어 중국 이민자의 재산을 러시아 정부 통제하에 둔다고 규정한다.” 중국인 유입을 통해 러시아의 노동력 부족 사태를 해결하면서, 경제적 독립을 유지한 채 협력하고 발전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첫째, 중국인 포용 정책이다.
러시아 극동지역은 러시아연방 전체영토의 1/3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방대한 지역으로서 러시아 연방 11개 경제지역 중의 하나로서, 사하공화국, 연해주, 하바로프스크지방, 아무르주, 캄챠트카주, 마가단주, 사할린주를 포함하는 지역이다.
러시아 극동지역의 전체면적은 약 620만 평방킬로미터로서 러시아 전체영토의 36.4%를 차지하고 있으나, 인구는 약 8백만 정도로 러시아 전체인구 1억5천만여명의 5.4%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렇게 부족한 인력을 메우기 위해 구소련 시대에는 여러 가지 인력 유인(誘引)정책을 썼다. 예를 들어 이 극동지역의 농산물 등에 대한 면세정책, 아파트의 임대료를 비롯한 주거비의 인하, 이 지역으로의 이사비용을 무료로 하는 것 등이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이 지역 거주자에게 돌아가는 혜택의 범위를 넓힌다거나 추가소득을 지급하는 등의 정책이 사용되기도 했다(Мильнер, 1979). 그러나 구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의 탄생을 계기로 이러한 유인정책을 포기함에 따라 다시금 이 극동지역의 노동력 부족은 심각한 인구유출의 양상을 띠게 되었다.
따라서 극동지역의 자체노동력으로서는 이 지역개발에 필요한 인력을 더 이상 충당할 수 없게 됨에 따라 외국인 노동력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둘째, 경제 협력이다.
현재 양국간의 관계는 보다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아직까지도 러시아와 중국간의 대외 경제 관계가 첼노끼 수준에 머물러 있는 현실을 감안해 러시아 중국 무역 경제 협력센터가 모스크바에 설립되었다.
이 센터의 주요 과제 중 하나는 바로 양국간의 보다 문명화된 무역관계에 요구되는 전제조건을 창출하는 데 있다. 이 센터의 대표이사 세르게이 사니코예프는 실제로 중국인 첼노끼의 러시아 시장 내 진출과 사업 활동과 관련된 법률적 성격을 포함한 모든 문제를 이 센터가 전담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는 상인들을 위한 ‘지붕’이 아니다. 우리는 이들의 보조자이다”라고 그는 강조했다.
더욱이 러시아 중국 센터는 단지 소상인만을 바라보고 일하는 것이 아니다.
이 센터의 향후 계획에는 중국 내 지하철 건설도 들어 있다. 최근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룩한 중국이지만 현재 중국 내 지하철이 건설된 도시는 북경과 상해뿐인 형편이다.
사나코예프에 따르면 러시아 중국 센터의 중국 심양지 지하철 건설공사 수주는 거의 확정적인 단계이며 이는 러시아의 향후 대 중국 진출의 교두부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 외에는 센터는 자유무역지대의 창설 및 발전 프로그램도 구상중이다.
이 프로그램이 지향하는 목적은 잠정적인 실크로드로 불려지는 러시아를 경유해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가장 유리한 수송로를 수립하는데 있다.
(6)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
한동안 요원한 것처럼 보였던 철의 실크로드 구상이 최근 북한의 적극적 자세전환 이후 급격히 가시권에 들어오고 있다.
북-러 정상회담에서는 시베리아횡단철도와 한반도종단철도 연결을 위한 협력이 재확인됐고, 남북경제협력추진위 2차회의에서 경의선 단절구간에 대한 연결공사 완공시점이 확정됨으로써 올해 안에 반세기만의 남북한 철도 연결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본격적인 화물수송까지는 3~5년의 시간이 더 걸릴 것이지만, `대륙의 섬'으로 고립됐던 한반도 남쪽과 대륙 저편의 유럽이 철도로 연결되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17일 북-일정상회담에서 관계정상화와 북한의 경제개혁을 뒷받침할 배상문제에 대한 해결 실마리가 마련되어서 철의 실크로드를 따라 남북한과 러시아, 일본을 아우르는 동북아 경제지도가 더욱 구체화되었다.
북한의 적극적 태도 변화는 지난 7월 시행에 들어간 경제관리개선 조처를 빼고는 설명하기 힘들다. 북한은 이 조처의 성공을 위해 외부로부터의 원조와 물자수급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철도연결은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북-러 정상회담의 중심 의제도 경제협력, 그 중에서도 철도연결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모스크바 선언을 재확인하고 철도연결사업을 가속화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로서도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극동지역 발전을 위한 재원확보를 위해 러시아 주도의 철도연결이 중요하다. 푸틴 대통령이 중국보다 좋은 조건을 제시해 연결사업을 꼭 따내야 한다며 의욕을 보일 만큼 적극적이다.
러시아는 극동지역에 풍부한 석유, 천연가스, 전력 등 3수출과 이들 자원과 한국 일본의 통과화물을 실어 나를 1통과문제가 극동개발의 관건이라고 보고 있다.
러시아에게 철도연결은 단지 통행료 차원이 아니라 한․일의 자본․기술․시장을 연결해 시베리아의 석유․가스 등의 에너지를 개발․수출하고 극동지역을 개발함으로써 유라시아 대국으로 복귀하려는 장기구상의 토대가 된다.
북-일 관계가 호전되면 극동지역에 대한 일본의 투자협력 길도 열려 러-일 관계 개선에도 탄력이 붙을 것이라고 한 러시아 극동지역 전문가는 내다봤다. 기본적으로 대미 협조자세를 견지하면서도 이란․이라크와의 경협을 강화하고 중국과 동반자 관계를 추진하는 것 등에서 보듯 대미 견제자세도 강화하고 있는 러시아에게 북-일 접근은 호재다.
러시아의 대북․대일 접근은 러시아 극동지역이 장차 중국경제권에 흡수돼버릴지 모른다는 오랜 불안감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지적이 많다.
교통개발연구원의 안병민 동북아물류경제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철도 연결은 한국과 유럽을 잇는 단순한 수송로 확보 차원을 넘어 엄청난 정치경제적 효과를 갖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반도 평화안정과 평화통일을 앞당기는 정치적 효과 뿐 아니라, 한반도를 중심으로 일본 중국과 러시아 극동지역을 포함한 동북아 지역이 명실상부한 경제권을 형성하는 경제적 효과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극동지역의 지배권을 잃지 않기 위해 남한과 북한의 철도 연결사업을 이용하려고 하고 있다.
3.결론
(1) 전망
러시아 내에서는 러-중 관계를 놓고 두 가지 견해를 가지고 있다.
전문가들의 견해는 무엇보다 `미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가 세계의 3각축'이라는 러시아 지도부들의 내부 평가에 기초한 것으로,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 돈독한 협력관계를 구축해야한다는 의견과 중국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오히려 미국과 협력해야한다는 의견으로 대별된다.
알렉산드르 샤라빈 정치. 군사분석연구소 소장은 후자를 대변한다.
그는 14일 이즈베스티야지(紙) 기고문을 통해, "러시아 지도부는 현 세계에 지정학적으로 미국-중국-러시아의 3각축이 형성돼 있으며, 두 나라(러. 중)가 나머지 한나라(미국)의 확장을 견제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소개한 뒤, "그러나 사실상 러시아는 형성돼 있지도 않은 3각축을 구성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미-중간 경쟁의 장에 놓여있으며 이 경쟁에서의 승자는 중국"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전 세계를 자신의 생활방식과 가치관으로 얽매려는 미국의 카우보이식 방법은 종종 결별을 불러일으키며, 이 같은 미국식 사고방식은 현재 많은 부분에서 `낡은 민주주의 국가들'보다 훨씬 민주적인 모습을 보이는 러시아의 사고방식에 못지않게 허구적인 것"이라고 지적한 뒤, 반면 "민주주의라는 화장술조차도 도입하고 있지 않은 중국이야말로 `이른바 3각축 가운데' 유일하게 실용적이며 냉철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특히 "러시아의 일부 정객들이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가 러시아의 비극이 될 것이라고 부풀리고 있지만 미국의 러시아에 대한 위협은 순전히 허구일 뿐"이라고 지적하고 오히려 "중국의 위협은 분명한 것이지만 어떤 이유 때문에 러시아에서는 이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사실상 엄격히 금지돼 있다"고 지적했다.
샤 라빈 소장은 이어 지정학 ,경제, 정치, 역사 ,인구학 분야에서 러시아와 중국이 분쟁의 소지를 다분히 안고 있다고 전제한 뒤, 특히 두 나라가 엄청난 길이의 국경을 공유하고 있으며 연해주에서 전쟁이 터질 경우, 이 지역이 (중국에) 완전 노출돼 있을 뿐 만 아니라 나머지 러시아 지역과도 격리돼 있기 때문에 방어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블라디보스톡-하바로프스크간 고속도로 역시 중국 접경지역을 통과하기 때문에 중국이 이를 절단할 경우 연해주는 완전 고립된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는 또 시베리아와 극동지역 영토는 중국 전체 영토에 비해 3분의 1이 넓지만 중국의 인구는 이 지역 인구의 30배가 넘어서며, 만일 전쟁이 발생할 경우 통상 모든 국가들이 전 국민의 약 10%를 모병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은 러시아 전체 인구와 맞먹는 1억3천만명의 병력을 모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샤 라빈 소장은 이어 영토 및 자원 부족을 이유로 엄격한 산아제한 조치를 취하고 있으며 마천루와 고속도로로 대변되는 중국의 경제자유지역에는 전 인구 가운데 고작 2억~3억명 만 살고 있을 뿐, 나머지 10억 가량의 인구는 1인당 소득이 러시아의 절반인 극빈의 상태에 놓여있는 등 중국이 (러시아로의) 영토 확장을 위한 "논리적인 이유들을"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중국이 이미 19세기 때 제정 러시아가 병합한 120만㎢의 러시아 극동지역 영토에 대한 영유권을 줄기차게 주장해 오고 있지만, 일본이 주장하는 북방 4개 도서에 대해서는 러시아인 모두가 알고 있지만 중국의 영유권 주장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샤라빈 소장은 이어 러시아는 이미 자국군 조차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있는 무기들은 물론 그 기술까지 중국에 판매하고 있으며, 이 결과로 콤소몰스카-나-아무르의 수호이-27 전투기 생산공장은 이미 10년 전에 사실상 중국 기업이 된 상태라고 전하고, "미국의 행위가 아무리 우리를 노엽게 하더라도 군사, 정치적 측면에서 보면 러시아는 중국과의 항미(抗美) 동맹이 아니라, 미국과의 항중(抗中) 동맹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러시아내 국민들의 중국에 대한 관심은 우호적이다.
최근 한 여론조사 기관은 중국인 유입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환영한다는 대답이 59%, 반대한다가 26%,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가 15%를 차지했다. 중국인의 이미지를 묻는 질문에도 52%가 긍정적이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이것으로 당분간은 러시아내 중국인의 유입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그리고 러시아내 중국인 유입을 잘 이용하면 극동지역의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중국과의 긴밀한 협조와 중국인에 대한 철저한 통제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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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화론(黃禍論 Yellow peril)
청일전쟁 말기인 1895년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는 황색인종이 유럽 문명에 대하여 위협을 준다고 규정, 황색인종을 세계의 활동무대에서 몰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창했다. 빌헬름 2세의 이 같은 주장을 이른바 '황화론(黃禍論)'이라고 한다.
황화론의 밑바닥에는 인종차별 .인종편견이 깔려 있지만, 당시 일본의 국력과 국제적 발언권의 강화가 유럽 열강의 아시아에 대한 제국주의적 정책에 방해가 된 것이 근본 원인이다.
빌 헬름 2세에 의해 주창된 '황화론'이 110년 만에 미국에서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 제조업의 자존심이자 대명사인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의 회사채가 '투자부적격등급(정크본드)'으로 추락하는 등 위기에 처하자 미국 일각에서 이를 아시아 자동차업체의 약진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GM 본사가 있는 미시간 주 출신 의원을 중심으로 한 47명의 미 하원의원들은 지난 6일 "일본 정부가 환율을 조작하고 있으므로 중국과 함께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서한을 부시 대통령에게 보내는 등 미 자동차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일본을 압박하고 있다.
문제는 현대자동차도 '황화론'의 유탄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도요타 쇼이치로 도요타 명예회장이 최근 "현대차는 디자인과 성능이 뛰어나고 가격이 저렴해 일본시장에서도 승산이 있다"고 현대차를 치켜세우는 등 미국 내 '황화론' 여론에 현대차를 끌여 들이고 있다.
최근 미국 내에서 고개를 들고 있는 '황화론'은 글로벌 환경에서 우리 기업이 생존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실감케 하고 있다. 국제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체 경쟁력을 높여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업의 발목을 잡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바보가 아닌 바에야 발목을 묶어 놓고 경주에서 어찌 우승을 바라겠는가.
정재현 경제부장<광주일보>
※. 참고서적
1. 국제지역연구 제4권 제1호 (2000. 6. pp.73~108) “러시아 극동지역의 발전과정에서
나타난 황화론(黃禍論)에 관한 연구”
2. 아시아 태평양 2001/서울대학교 출판부/ 서울대 국제 지역원편
3. www.chosun.com(2002.9.10)
4. 세계 일보(2001.09.22)
5. 중앙 일보(200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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