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

근래 중국어는 조선어의 방언

한부울 2007. 6. 30. 00:50
 

근래 중국어는 조선어의 방언

(대륙조선사 연구회 자료)


근래 국내에서는 한자를 사용해서 어문을 넓혀나가야 한다거나 동이의 문화를 발굴해 선조들의 기개 높았던 대륙문화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이중 특히 어문부문에 대한 주장이 이채롭다.

요컨대 한자는 지나(china,gina)의 글이 아닌 순수 우리글이라는 것이다.

한자는 한자 이전에 우리조상들이 천지만상을 관찰하여 상형해 만든 서글(書契)이며, 그것은 진(秦)나라 때에 전문(篆文)을 취합해 이룩한 소전이나 한(漢)(조선)의 허신이 만들었다는 설문, 청나라 때 만든 『강희자전(康熙字典)』을 살펴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즉 그러한 글자들을 보면 지금 지나인들이 쓰는 문자나 문자를 가지고 발음하는 체계가 그들만의 문자가 아님은 물론, 음운법에 비추어 보아도 한자는 조선의 글임이 확실하다는 주장이다.


나아가 이들은 19세기말 은허(殷墟)에서 발견된 문자(書契)도 고대조선의 문자이며, 은허라는 말이 은나라가 있었던 땅이라고 보면 은(殷)은 동이족이라고 했으므로 당연히 고조선 지역이며, 이제 이들이 마땅히 한글을 함께 씀으로써 완벽한 어문민족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보면 지금 중국 땅에서 쓰는 중국어와 한반도에서 쓰이는 조선어의 주인이 바뀌어야 한다는 객반위주(客反爲主)의 양상이 나타나는 현실이다.


이 말은 과연 옳은 것인가.


중국은 땅도 광활할 뿐 아니라 민족(족속이라는 개념이 더 옳다)도 수백 수천의 혈통 및 다양한 형태의 백성들이 모여 집합체를 이루어 살고 있다.


그와 함께 그들은 지역별·족속별 언어도 수십 수백 개의 각기 다른 말이 뒤섞여 상호 의사가 소통되지 않는 일이 흔하다.


가령 북경 쪽으로 여행을 하다가 남쪽으로 가면 그 지방의 안내원으로 교체되고, 서쪽의 서역(실크로드) 지방으로 가면 그곳의 가이드로 바뀐다.


이것은 비단 지리에 어두워서 그런 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언어소통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러한 지리적 언어소통별 구획을 다음과 같이 대별해서 묶고 있다.


첫째는 관화(官話)(표준어)라 하여 북경의 말을 표준어로 삼고는 있지만, 얼마 전까지 섬서·산서·감숙·산동·호북의 광활한 지역의 언어를 관화로 묶고 여기에다 다시 양자강(장강)의 중·하류 지방과 사천·운남·귀주·광서 지방을 서남관화(西南官話)라 하여 위의 표준어에다 포함시키고 있었다.


둘째는 오(吳) 지방 방언이라 하여 소주·상해 ·절강 지방의 말을 남방 사투리로 취급하고,


셋째는 민(閔)지방 방언이라 하여 복건·광동·온주·하문을 묶어 장강 남쪽의 사투리로 보고,


넷째는 월(越)지방 방언이라 하여 광주(廣州)를 비롯한 동강과 서강 지방을 또 하나의 색다른 방언 권역이라 지칭하고 있으며,


다섯째는 강서성과 안남 지역 그리고 상강(湘江) 줄기의 호남성 언어를 또 다른 방언권으로 묶어서 관리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것은 권역별로 대별한 것일 뿐이다. 실상은 성(省) 안에 있는 고을과 고을의 말도 다른 것이 비일비재하고, 도시와 농촌 간이 다르고 또 혈통과 족속에 의해 사투리는 수도 없이 존재하고 있다.


이것이 앞에서 이야기한 세종 때에 훈민정음이 나와야 할 수밖에 없었던 국가적 사명이었던 것이다


학계에서는 15세기 이후 화중(華中)(중원)과 화북(華北)(하북과 산서)지방에는 다른 지방에 비해 문자에 의한 공통어가 존재했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는데, 이를 중원아음(中原雅音)이라 하고 이것을 표준어격인 관화라 하여 그들의 공통어로 삼고 있다.


즉 정음, 세종의 훈민정음이 나온 이후(15세기 이후) 중원지방에서는 의사소통이 이루어졌다는 말과 상충되지 않는 말이다.


그 후 청이 무너지고 손문의 전국통일 이후에는 전 대륙의 중국화를 위해 절대적 공통어가 나와야 한다는 생각에서 ‘독음통일주비회(讀音統一籌備會)’를 설립, 그들만의 음법으로 중원 공용어를 만들어 쓸 계획을 세우고 1918년 주음자모(注音字母)를 만들어 공포하고 사용까지 해 보았으나 별 실효가 없자 1926년, 이번에는 ‘국어로마자’라하여 영어의 부호로서 부음표(符音表)를 작성한 일이 있으나 역시 실용에 실패하고 말았다.


1949년 중공 정권이 본토를 접수한 후에는 북경, 즉 화북지방의 언어를 표준으로 삼아 개편방안을 모색하던 중 1958년 병음방안이 제정되면서 아예 한자를 버리고 표음문자를 쓰려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마저 있던 글자를 없애고 외래 글자를 빌어쓴다는 것이 여의치 않자 다시 한자간화방안(漢字簡化方案)으로 개혁을 단행하고, 1964년 2천 4백자만을 가려 간화자총표(簡化字總表)에 담아 전국 인민들에게 사용토록 공표한 것이다.


이 글자가 지금까지 쓰고 있는 그들의 현행 문자 방식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자 즉 글자가 생겨난 곳이 자기네 땅 한복판인 황하유역이면서 왜 그토록 문자를 가지고 육갑을 떠는 것일까?


무릇 문자란 것은 인간이 수천 년 살아오는 동안 하나 둘씩, 정신과 얼이 상형으로 집약된 결집체이다.


그러한 것을 마음에 안 든다고 하루아침에 없애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거니와, 얼과 정신을 말살하고 역사와 문화도 송두리째 부정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지금 중국의 젊은이들은 간자를 가지고 고전을 읽지 못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은 문자 자체가 그들의 구미에 맞지도 않을 뿐 아니라 중원 대조선의 흔적을 지우려는데도 그 이유는 숨어 있었던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문자는 기형이 되어 버렸고, 언어는 어떠한 틀이 없이 혓바닥 굴러가는 대로 쓰게 되었으며, 북경어·남경어(南京語)·오어·월어 등 수백 가지 언어가 존재한다.


이런 언어에는 또 어떤 어법도 없어 중국어를 가리켜 흔히 아이들의 얼버무리는 소리 같다 하여 얼화(兒話)라 하고, 혀가 안 돌아가는 장애자의 말이라 하여 장애자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추운 지방 사람들이 입술이 얼어붙었을 때 나오는 말과 같다 하여 동설어(冬舌語)라고도 하고, 티베트 사람들의 말소리 같다 하여 한 장족어(漢藏族語)

(西南方語=Sino-Tibetan)라고도 한다.


원래 상형문자가 만들어지고 음은 제각기 붙여 오다가 문자를 정리하는 사람들에 의해 주음법(注音法)이 생겨난 것인데, 이 법에 의하면 사성법(四聲法)에 기초를 두고 있다.


즉 상성(上聲)·평성(平聲)·거성(去聲)·입성(入聲)이 그것인데, 조선인 이외의 부류들(타족속)은 바로 이 사성 중 입성의 발음을 하지 못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입성이란 혀끝을 짧게 그리고 빨리 거두어들이는 소리를 말하는데, 이때 자음받침이 있으면 혀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 예로 ‘국(國)’을 ‘꾸어’, ‘칠(七)’을 ‘치’, ‘답(答)’을 ‘다’ 라고 하는데, ‘국’에서 ‘ㄱ’을, ‘칠’에서 ‘ㄹ’을, ‘답’ 에서 ‘ㅂ’을 혀로 돌리지 못하는 것이 현재 중국인의 공통점이라 할수 있다.


그러다 보니 한국을 ‘한꾸어’, 출발을 ‘추바’, 답변을 다비엔’ 이라고 발음한다.


대체로 자음 받침으로 된 문자를 발음하지 못하고 있는데 즉 입성으로 내야 할 소리가 안 되는 글자는 자음 모두가 받침으로 갔을 때 그러하나, 그 중에서도 ‘ㄱ’과 ‘ㄹ’과 ‘ㅂ’의 경우가 심한 것을 보게 된다.


대략 몇 가지 뽑아보면 이렇다.


입성 ‘ㄱ’의 경우 입성 ‘ㄹ’의 경우 입성 ‘ㅂ’의 경우

각(各)→거(ge) 출(出)→추(chu) 납(納)→나(na)

륙(六)→리오우(liou) 일(一)→이(i) 십(十)→시(shi)

각(刻)→커(ke) 칠(七)→치(q) 입(入)→루(ru)


이처럼 입성 문자의 발음은 불가능할뿐더러 ‘입(入)’ 자가 ‘이’ 가 되는 것은 이해한다고 치더라도, ‘이’ 가 아니라 ‘루’ 로 발음하는 경우처럼 어느 하나 공통점이 없는 것은 현재 중국인 언어의 모순인 것이다.


이러한 모순은 1930년대까지만 해도 그리 심화되지 않았는데 손문 이후 북경어가 관화(표준어)가 되면서부터 사성 발음체계는 더욱더 허물어져 가는 양상이라고 한다.


문자는 언어가 있고 난 다음에 생겨난 것이어서 문자에 음을 붙여 소리를 내는 일이 각기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은 이해된다.


그래서 세종 때에 이르러, 문자는 같은데도 문자를 가지고 발음하는 소리가 사방팔방이 서로 달라 의사를 전하고자 해도 소통이 안 되어 뜻 있는 사람들의 걱정이 많아 28자로 된 정음(발음부호)을 창안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일음법(一音法)이라 하여 하나의 문자에는 하나의 음으로 나타내야 하는데도 ‘해(海)’를 ‘하이’로 ‘북(北)’을‘베이’로 읽는다.


이것은 절운의 법칙에도 어긋날 뿐만 아니라,


그들 선대가 만들었다는 『설문해자(說文解字)』·『옥편(玉篇)』·『강희자전(康熙字典)』에서도 ‘해’와 ‘북’으로 발음하도록 지시하고 있다.


‘해(海)’를 ‘해’로, ‘북(北)’을 ‘북’으로 발음하라고 한 것은 당초 훈민정음이었고, 뒷날 『강희자전(康熙字典)』에서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훈민정음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반절(反切)이라 하여 한자 2개의 음을 하나씩 취해서 만들어 놓고 사용했다.


‘해(海)’를 말할 때에 허해절(許亥切)이라 해놓고 ‘허(許)’에서 나오는 ‘ㅎ’과 ‘해(亥)’에서 나오는 ‘ㅐ’를 붙여 ‘해’로 하도록 한 것이다.


반절을 절음운(切音韻)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양나라 때인 543년에 고문자 자전(字典)의 절운(발음법) 자음 한국발음 중국발음 중국표기 대만표기


北 博墨切:박묵절(ㅂ+ =북) 북 북 베이 bey

京 居卿切:거경절(ㄱ+ =경) 경 경 징 ging

上 是掌切:시장절(ㅅ+ =상) 상 상 샹 shang

海 許亥切:허해절(ㅎ+ㅐ=해) 해 해 하이 hai

臺 堂來切:당래절(ㄷ+ㅐ=대) 대 대 타이 tai

北 博墨切:박묵절(ㅂ+ =북) 북 북 베이 bey

敎 居效切:거효절(ㄱ+ㅛ=교) 교 교 지아오 giao

室 式質切:식질절(ㅅ+ =실) 실 실 스 shi

甲 古狎切:고압절(ㄱ+ =갑) 갑 갑 지아 gia

骨 吉忽切:길홀절(ㄱ+ =골) 골 골 구 gu


△한자는 한자 이전에 우리 조상들이 천지만상을 관찰하여 상형해 만든 서글이다.


지금 중국인들이 쓰는 문자나 문자를 가지고 발음하는 체계가 그들만의 문자가 아님은 물론, 음운법에 비추어 보아도 한자는 조선의 글임이 확실하다.


야왕(519∼581)이 만들고 소개(蘇愷)가 정리했다고 하나 엄밀히 역사의 개념으로 말하면 양나라는 백제의 영역에 있었던 보잘것없던 왕조였으므로 백제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후 절운은 당의 손강, 송의 진팽년 등이 뒤따라 개수하고 1013년 송대에 『대광익회옥편(大廣益會玉篇)』에서 완성을 보기는 했으나, 절운은 문자를 해득하는 일부 계층에게만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쉬운 부호로 일반 백성에게 활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고전(古篆)을 수집·분해해 정음체제를 확립한 것이 훈민정음인 것이다.


『강희자전』은 청나라 때 강희제의 칙명으로 1716년에 30여 명의 태학(太學)들이 완성한 한자사전인데, 4만 7천여 자에 반절에 의한 음운(音韻)·훈고(訓 )·자해(字解)·속자(俗字)·통자(通字)를 풀이하고 설명해 놓았다.


다만 『설문』에 의한 절운을 따랐을 뿐 정음(훈민정음)의 음운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한자가 조선인의 음운에 맞도록 만들어지고 개수되고 발전하여 온 것은 한자를 정리했다는 양나라(산동성 서주 부근에 주전충이 세운 백제의 속국)나 명나라(조선의 변방 서남쪽 섬서 사천 지방에 왕조를 둔 조선의 속국)이나 청나라(산서 북쪽 내몽고에서 일어나 화북지방을 무대로 할거했던 조선 북변의 조정)이 모두 조선 강역에 있었던 조선의 변방 민족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세동점 시기에 이르러 이들 나라들은 중국사에 편입되고 조선이 한반도에 이식되면서 중국은 대국, 조선은 소국이라는 틀에 짜 맞추어져 서글(문자)은 한자라 하여 중국글이 되어버리고 한반도에는 세종 때의 문자에 음운을 위해 만들어 놓은 표음문자만 넘어와 한글 또는 조선어란 이름으로 바뀌어진 것이다.


이것은 모두가 열강을 등에 업은 일제에 의해 옮겨진 것이고, 미군정에 의해 더욱 가속화 되었다.


아득한 옛날, 대나무를 쪼개어 칼로 그어 문양을 새겨서 상대방과 의사를 전달하고 약속을 이루기 위한 방편이 바로 글(契)이란 것으로, 문자의 ‘문(文)’은 ‘무늬’를 뜻한다.


서당(書堂)·글방(契房)이 한글을 배우는 곳이 아닌, 한자를 배우는 곳의 대명사로 쓰이는 것만 보아도 한자 본래의 이름은 글이며 글은 대륙조선 문자의 통칭인 동시에 전 동아시아의 보편화된 하나의 동방문자인 것이다.


장명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