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윈펑댐 고구려 고분 다시 수몰
[동아일보] 2006년 05월 15일(월) 오전 03:00
[동아일보]중국이 최근 지린(吉林) 성 바이산(白山) 시 윈펑(雲峰) 댐 수몰지구에서 2300여 기의 고구려 고분과 함께 발견된 성터를 발굴하지 않은 채 댐에 물을 채우기로 해 축조 왕조를 둘러싼 한국과 중국의 역사 및 고고학계의 논란이 장기화될 전망이다.
청스(城市)만보는 12일 “현재 최저수위 280m에 가까운 윈펑 댐의 수위가 다음 달 10일이면 정상수위인 318.75m까지 올라갈 것”이라며 “따라서 이번에 수면 위로 올라온 성터의 발굴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2일 발견 당시 대부분 물위로 올라와 있었던 성터가 11일 청스만보가 찍은 사진에서는 상당히 잠긴 점으로 미뤄 볼 때 윈펑 댐은 이미 물을 채우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한국은 현재 성곽의 축조 왕조를 놓고 크게 대립하고 있는 상태다.
이번에 성터 발굴을 주도한 지린 성 창바이산(長白山)문화연구회 장푸유(張福有) 회장은 9일 신화(新華)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고구려나 발해, 요·금나라의 것과 차이가 있다”며 “따라서 이 성은 당연히 한(漢)대(기원전 202년∼기원후 220년)에 건축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국 학자들은 “한대의 성은 토성(土城)인 데 반해 고구려의 성은 석성(石城)인 점으로 미뤄 볼 때 중국 측의 발표대로 성벽 양쪽에 돌을 쌓고 안쪽에 자갈과 흙을 섞어 넣었다면 고구려의 성일 가능성이 높다”고 반박하고 있다.
사단법인 고구려연구회 이사장인 서길수(徐吉洙) 서경대 교수는 “중국이 한나라가 축조한 성이라고 하지 않고 한대에 축조된 성이라고 발표한 점에 주목한다”며 “아직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중국 측 역시 한대에 고구려가 축조한 성으로 판단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하종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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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압록강변 고구려 고분 2360기 발견]
中 어떻게 나올까
[동아일보] 2006년 05월 11일(목) 오전 03:03
[동아일보]《북한과 중국 접경에서 발견된 고구려 고분은 지금까지 고구려 도읍지였던 지린(吉林) 성 지안(集安) 일대에서 확인된 고구려 고분의 40%에 가까운 방대한 분량이어서 고구려 역사 연구에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됐다는 평가다. 그러나 중국 당국이 42년 전 수력발전을 위해 별다른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댐을 쌓고 고분 지역을 수몰시킨 것으로 드러나 심각한 훼손이 빚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지안(集安)서 발견된 고분의 40% 규모=고분이 발견된 지역은 지안 시 칭스(靑石) 진의 압록강 동쪽 지대로 윈펑(雲峰) 댐 건설 당시 수몰됐던 곳이다.
고분은 42년간 수몰돼 있다가 댐 관리소가 시설 보수를 위해 댐 수위를 낮추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고분 수는 2360기로 그동안 지안 일대에서 발견된 고분 6000여 기의 40%에 육박한다. 고구려 고분은 북한에서 발견된 것까지 포함하면 1만3000개다.
그러나 이번에 발견된 고분과는 별도로 상당수 고분과 성터가 아직도 수심 30m 아래에 잠겨 있는 상태다.
이 일대 고분군에서는 댐 공사로 상류 지역이 수몰되기 직전인 1964년 5월에도 205기의 고분이 발견됐다.
당시엔 댐 공기를 맞춰야 한다는 이유로 고분 전체를 발굴하지 않은 채 비교적 보존 상태가 좋고 특징 있는 적석묘, 방단적석묘, 계단적석묘, 봉토석실묘 등 30여 기만 발굴했다.
▽42년 만의 발굴, 동북공정과 관련 있나=신화(新華)통신은 ‘지린에서 한(漢)대 고성(古城) 수면 위로 드러나’라는 제목으로 608자 분량의 기사를 보도하면서 새로 발견된 한의 고성 터에 관한 내용을 상세히 다뤘다. 반면 고구려 고분에 관해선 고작 3줄 66자로 짤막하게 보도했다.
신랑(新浪) 등 중국의 종합 검색사이트와 다른 언론들은 신화통신의 기사를 단 한 자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전했다. 기자의 현장 접근이나 자유로운 추가 취재가 전혀 허용되지 않은 것이다.
고분 발견 뉴스를 보도한 신화통신 기자는 고구려 고분에 대한 현장 상황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보도 내용 외에 더 해줄 말이 없다”며 냉랭하게 전화를 끊었다.
윈펑 댐은 1958년 12월에 착공해 1967년 9월에 준공됐다. 댐에서 북쪽 상류 쪽으로 3.5km 떨어진 곳에 량민 고분군 등이 있고, 20km 더 위쪽에 성터가 있다.
▽한(漢)대 추정 성터도 발견=신화통신은 고분군에서 남쪽으로 약 20km 떨어진 수몰지역에서 한대의 것으로 보이는 고성 터도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성터는 싼다오거우 진의 압록강 오른쪽 기슭, 해발 280m 되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전체적으로 직사각형이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의 높이는 1.5m, 너비는 4m가량이다.
발굴을 주도한 창바이산문화연구회의 장푸유 회장은 “성벽의 구조와 축성 형태 등으로 보아 고구려나 발해, 요나 금나라 때의 성과는 차이가 있다”며 “한나라(기원전 202∼기원후 220) 때 성을 쌓은 것 같다”고 추측했다.
그러나 서영수 단국대 교수(역사학)는 “고구려 11대 동천왕 때 관구검의 침략을 받아 환도성(국내성의 방어성)이 함락당한 뒤 247년 수도를 동황성(東黃城)으로 옮겼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무덤 떼의 규모로 봐서 이번에 발굴된 성이 동황성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하종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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