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최초 우주인 후보들의 우주인 훈련 소식
[가가린센터에서 온 편지 1]
[쿠키뉴스] 2007년 04월 04일(수) 오후 07:55
지난달 7일부터 러시아 가가린 우주인훈련센터에서 본격적인 우주인 훈련을 받고 있는 한국 최초의 우주인 후보 고산(30)씨와 이소연(여·28)씨가 러시아 현지에서의 느낀 점과 훈련에 임하는 자세 등을 이메일로 소식 전해왔다. 두 후주인 후보는 2008년 3월까지 약 1년간 우주인 훈련을 받은 뒤 4월 러시아 우주선 소유즈호를 타고 우주정거장으로 날아갈 예정이다. 두 사람이 보내오는 일기 형식의 러시아 훈련 소식을 과학기술부로부터 전해 받아 쿠키뉴스 ‘가가린우주인센터에서 보내온 편지’라는 코너를 통해 공개한다.
한국인 최초 우주인 이소연 씨가 보낸 편지
#러시아 도착
최종 우주인 후보로 선발되고 그 이후로 2개월 이상이 지났고, 또 그 동안 수많은 일들로 정신없이 지내왔지만 아직도 ‘이소연이 대한민국 최초 우주인 최종 후보 중 하나다’라는 사실을 실감하기는 힘든 것 같습니다. 흡사 대학교에 들어와서 몇 년 동안 고등학교를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착각을 하며 지내다가, 어느 정도 “나도 대학생이구나”라고 실감할 때쯤 졸업을 하고 대학원생이 되었던 것처럼, 러시아에서 훈련이 끝날 무렵이 되면 그때야 실감이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꾸준히 아주 열심히 공부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접했던 영어가 아직도 서투른 것을 생각하면, 몇 주 배웠다고 지난번 의학테스트를 위해 러시아에 왔을 때보다, ‘이번에는 아주 조금, 정말 아주 조금이라도 의사소통이 나아지지 않을까’ 했던 기대는 정말 터무니없는 욕심이었습니다. 그때 알았던 몇 마디 인사말인 “쓰바씨바(감사합니다)” 와 “즈드라스부이쩨(안녕하세요)”의 알파벳을 알고 발음을 조금 연습한 것에 “이즈비니쩨(죄송합니다)”와 “빠좔스타(부탁드립니다, 실례합니다, 별말씀을요.) 정도가 더해진 것 정도인데 말입니다. 워낙 처음에 알고 있었던 러시아어가 거의 없었던 지라, 그 동안 거의 배 이상이 된 것이긴 하지만…
의학테스트를 위해 러시아에 왔을 때부터, 이렇게 본격적인 훈련을 위해 러시아에 머물게 된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단 한 가지 생각은 “러시아어를 열심히 공부해서 의사소통을 좀 더 원활하게 해야겠다.” 라는 것입니다. 유인 우주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러시아에 파견 온 우주인 후보로서, 유인우주인 기술 터득이 가장 중요하다, 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 중요한 유인 우주 기술을 효과적으로 그리고 구석구석 빠짐없이, 필요한 것을 다 배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의사소통이 먼저라는 것을 날마다, 매시간, 아니 매초 실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의학위원회
3월 6일 일반의학위원회 때 떨리던 그 기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1월에 전문의학위원회 때도 논의와 확인이 있었기 때문에, 통과될 것이라고 서로 응원을 하면서도, 혹시 모를 변수가 생길 수도 있기에 맘이 놓이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통과되었다는 발표가 나자 안도와 기쁨이 교차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지난 전문의학위원회에서는 한국인 후보 둘 만이 대상이었기에, 우리만의 염려였고 우리만의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반의학위원회의 경우는 2008년 4월 우리와 함께 탑승할 러시아우주인 후보들과 한국최종 후보 2명에 더해 2007년 4월에 탑승하게 될, 미국 우주인과 러시아 우주인들의 최종 위원회까지 같이 이뤄지는 것이었습니다. 러시아 우주인들, 미국 우주인과 그의 담당의사, 그리고 저, 고산 씨, 정기영 항공우주의료원 원장님과 항공우주연구원 담당자분들 모두가 함께 긴장하면서 각자의 순서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매번 후보들 하나하나가 위원회에 들어가서 ‘통과’ 확인을 하고 나오게 되면 다 같이 축하하고 기뻐했습니다.
러시아우주인들, 그리고 미국 우주인 다음으로 우리가 가장 마지막 순서였기에 더욱 떨리고 긴장되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팽팽한 긴장과 떨림 이후에 온 큰 기쁨인 까닭에 더욱더 소중했었고, 호텔로 돌아와서 그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 다 같이 샴페인 한잔씩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입소식
일반의학위원회 통과의 기쁨도 잠시, 성대한 축하파티를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다음날 바로 시작되는 훈련 때문이었습니다. 3월 6일 일반의학위원회, 3월 7일 10시 입 소식에 이어 바로 11시부터 교육이 시작되었습니다. KAIST에 입학했던 당시, 입학식이 끝나자마자 시간표대로 강의가 시작되자 친구들과 함께 구시렁구시렁 넋두리를 했던 때가 생각났습니다. 만약 의사소통이 원활했다면, 그때 강의를 하러 들어오신 교수님께 “교수님 너무해요. 오늘 입학식이었는데 오늘부터 바로 강의를 다 하는 건 정말….”하며 왕왕거렸던 것 까지는 아니었더라도, 러시아어 선생님께 지나가듯 끝을 얼버무리는 한마디라도 살짝 했었을 것입니다.
훈련 입소식이 있던 3월 6일은 저희에게 중요한 날이기도 했지만, 러시아인들에게도 아주 중요한 날이었습니다. 최초 여성우주인의 생일이 바로 3월 6일이라 가가린센터에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한 행사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오후 4시부터 시작되어, 수업을 마치고 광장으로 나와 그 기념식을 멀리서나마 볼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는 가운데, 군악대의 음악에 맞춰 등장한 최초여성우주인은 가가린 동상에 헌화를 했고, 군악대를 선두로 우주인기념관에서 열리는 행사 참석을 위한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멀리서 조심스럽게 지켜봤지만, 역시나 최초 여성우주인다운 기품도 느껴졌었고,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바라보는 존경의 눈빛도 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최초 여성우주인을 꿈꾸는 저에게도 큰 의미가 되는 기념식이었습니다.
#미국우주인 숙소에서 열린 파티
훈련이 시작되고 바로 그 주 금요일에 미국 우주인 Michael의 생일파티가 있었습니다. 저희와 같은 건물에 머무는 말레이시아 우주인의 권유로 미국우주인들 숙소에서 열린 그 파티에 참석 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지 우주인들이 모여 저녁을 같이하는 것으로만 알고 따라갔었는데, 그 중 한 명의 생일파티였다는 것을 도착한 이후에 알 수 있었습니다. 미국우주인은 물론이고, 벨기에, 프랑스, 말레이시아, 러시아우주인까지 여러 나라의 우주인들이 다 같이 한자리에 모인 멋진 파티였습니다. 미처 생일파티인 것도 모르고 준비한 선물도 없이 참석한 것을 미안해하는 나에게 Michael이 했던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한국 우주인후보인 네가 참석해준 것만으로도 내겐 큰 선물이다. 비록 세계 여기저기서 전쟁을 하고 나라간의 정치적인 입장은 다를 수 있겠지만, 여기 있는 우리는 모두 같은 우주를 꿈꾸며 하나다. 그리고 우리를 보며 꿈꾸며 자란 아이들은 정말 하나를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 네가 우주인이 되고, 우주에 가게 됨으로써, 이제 한국의 어린 아이들도 우주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고, 우주과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라는 말과 함께 어깨를 두드렸던 그 격려가 도리어 저에게 아주 큰 선물이 되었습니다.
그날 만난 멋진 우주인들 중 유독 기억에 남는 또 한 명은 처음 만나 인사를 하고 이름을 주고받을 때부터 열정이 가득 담긴 눈빛에 압도될 수밖에 없었던 NASA 여성 우주인 Peggy. 몇 년 전엔 Commander로서 우주선에 탔었던 당찬 여성우주인이었고, 그 수많은 남자 우주인 사이에서 조금도 부족함 없는 카리스마를 과시하던 그 모습은 멋진 여성우주인을 꿈꾸는 저에겐 도전이 되었고, 또 꿈이 되었습니다.
#훈련에 임하며
처음 선발과정 중에 왔었던 이곳 Star City의 첫인상은 ‘최종 우주인 후보가 되어 1년 동안 여기에 머물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 정도로 오래된 느낌이 가득한 삭막한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느끼는 Star City는 엄청난 기회로 가득 찬 곳입니다. 50여 년의 유인 우주기술은 물론이고, 수많은 전 세계 우주인들을 만날 수 있고, 또 그들에게 배울 수 있는 것으로 넘쳐나는, 모스크바 지도에서는 찾기도 힘들만큼 아주 작은 곳이지만, 가능성 지도에서는 그 어디보다 커다랗게 그려질 그런 곳인 것 같습니다.
그런 이곳 ‘즈뵤즈늬 가라독(Star City)’에서 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얼른 러시아어를 공부해서 교육과 훈련도 잘 받아야 하고, 많은 우주인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호흡하며 한국도 알리고, 또 받은 것을 여러 사람들과 함께 나눠야 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에 미치지 못한다던 예전 중학교시절 한자 시간에 배웠던 말이 잠깐 머리를 스쳤습니다. 정말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기 위해서 여기서의 훈련과 삶을 즐기고 싶습니다. 조용하고 오래되어 고풍스러운 느낌까지 주는 이곳 풍경은 벌써 즐기고 있고, 맑은 공기와 높고 파란, 그리고 밤에는 수많은 별이 반짝이는 하늘도 즐기기엔 충분합니다. 아직은 입에 맞지 않는 것이 더 많은 러시아 음식도 곧 즐기게 될 것이고, 낯선 발음과 생김새의 알파벳과 엄청난 문법이 머리를 복잡하게 하는 러시아어로 수다를 즐길 날도 머지않아 올 것이라 기대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우연히 찾아오는 행운이 더욱 커지게 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피나는 노력이 필요함을 다시 한 번 명심해야겠습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정리=민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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