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도부

일본의 위험한 국수주의

한부울 2007. 3. 30. 00:19
 

[시론] 일본의 위험한 국수주의

[중앙일보] 2007년 03월 28일(수) 오후 08:27


[중앙일보 프랜시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아시아에서 분노를 일으키고, 주요 동맹국인 미국에서조차 착잡한 느낌을 낳고 있다. 미국 부시 정부는 아베 총리가 선동적 행동에서 한 발짝 물러나도록 압력을 넣을 것인가.

전임자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는 기존 체제를 깨며 일본 경제를 회생시킨 지도자였다. 우정 개혁을 단행했고, 자민당의 파벌주의를 깨뜨렸다. 그러나 고이즈미 전 총리도 한국과 중국의 반발을 무릅쓰고 매년 신사참배를 하면서 일본의 신민족주의를 정당화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베 총리가 독단적이고 사과하지 않는 일본을 만드는 데 훨씬 더 매달린다는 점이다. 야스쿠니 신사 논란과 관련, 문제는 신사에 있는 12명의 A급 전범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바로 옆에 있는 유슈칸(遊就館)이다. 여기 전시돼 있는 전투기와 탱크.기관총을 보면 '일본 현대사의 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태평양전쟁의 역사를 발견하게 된다. 유럽 제국주의의 희생자인 일본이 단지 그들로부터 아시아를 보호하고자 했다는 설명이 나온다. 예를 들어 한국 식민지 점유에 대해선 '협력관계'였다고 설명한다. 중국 난징(南京)이나 필리핀 마닐라에서 일본 군국주의에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그 어떤 설명도 찾을 수 없다.

혹자는 유슈칸을 다원적 민주주의에서 나타나는 여러 현상 가운데 한 가지라며 옹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는 20세기 일본사에 대해 다른 견해를 보여주는 박물관이 없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유슈칸이 민간 종교단체에 의해 운영된다며 발뺌해 왔다. 이는 설득력이 없다. 독일과 달리 일본은 태평양전쟁에서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1995년 당시 사회당 출신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가 중국에 태평양전쟁을 공식적으로 사과했지만, 일본은 책임 수위에 대해 진짜 내부 토론을 하지 않았다.

내가 일본 우익을 처음 접한 것은 90년대 초 '역사의 종언'을 일본어로 번역하기 위해 출판사 측이 선정한 몇몇 패널들을 만났을 때였다. 패널 중에는 소피아대 교수인 와타나베 쇼이치도 있었는데 그는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의 저자인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의 동료였다. 몇 번 만나는 동안 나는 그가 많은 청중 앞에서 만주를 점령했던 관동군이 철수할 때 만주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으며, 일본에 얼마나 감사했는지 설명하는 걸 들었다. 와타나베에 따르면 태평양전쟁은 미국이 유색인종들을 억압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촉발된 것이다. 결국 와타나베는 홀로코스트 부인자와 한 패인 것이다. 그러나 독일인 동료들과 달리 그는 그에 동조하는 대규모 청중을 쉽게 끌어들일 수 있다.(나는 난징 대학살이 거대한 사기극이라고 설명하는 일본 작가들의 책을 줄기차게 받고 있다.)

게다가 최근 민족주의자들이 고이즈미의 야스쿠니 신사 방문을 비난하는 사람들에 대해 물리적 위협을 행사하는 사건이 몇 차례 있었다. 가토 고이치 전 총리 후보의 자택에 대한 화염병 공격처럼 말이다.

이는 미국을 곤란하게 만든다. 다수의 미국 전략가들은 미. 일 상호방위조약 외에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같은 방어망을 구축해 중국을 포위하길 갈망한다. 냉전 이후 미국은 일본의 재무장을 부추겼고 일본의 군대 보유나 전쟁 수행을 금지한 전후헌법 제9조의 개정을 공식적으로 지원했다.

그러나 미국은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신민족주의적 배경을 무시하고 헌법 제9조를 일방적으로 개정한다면 전 아시아에서 일본의 고립을 초래할 것이다.

제9조의 개정은 오래전부터 아베 총리의 어젠다 중 하나였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전쟁에 대해 일본의 지원을 받은 대가로 '좋은 친구 고이즈미'에게 일본의 신민족주의 발흥을 지적하길 꺼려 왔다. 하지만 이제 일본은 파견 부대를 철수했고 부시는 아베에게 솔직하게 말할 것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장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아메리칸 인터레스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