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는 창녀" 가세, 1944년 미얀마 위안부 기록 왜곡
[연합뉴스] 2007년 03월 29일(목) 오후 01:30
[가세 히데아키]
미군 기록,"부상 일본군 붕대 갈아 주는 일이라며 기만"(워싱턴=연합뉴스) 박노황 특파원= 최근 뉴스위크에 "미 육군 기록에 종군 위안부는 창녀로 명시돼 있다"고 기고한 일본의 극우 역사학자 가세 히데아키는 지난 1944년 미군이 미얀마의 일본군 점령 지역을 탈환할 당시 함께 포로로 붙잡혔던 한국 여성들에 대한 미군의 조사 기록을 왜곡한 것으로 27일 확인됐다.
고문서국이 지난 1998년 비밀 해제한 1944년 10월 미전시정보국심리작전반의 포로 심문 보고서는 지난 1942년 5월 일본인 요원(agents)들이 업무 내용도 명시하지 않은 채 "싱가포르에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으며 가족들의 빚도 갚을 수 있다"며 800명의 한국 여성들을 꾀어 그해 8월 미얀마의 랭군으로 데려간 뒤 성 노예로 삼은 사실을 적나라하게 기술하고 있다.
1944년 8월 20명의 한국인 여성들을 조사한 이 보고서는 "일본군이 전투를 벌이는 곳에는 어디나 한국인 위안부(comfort girl)들이 있다"면서 "위안부라는 것은 일본 군인들을 위해 일본군에 배속된 '창녀'(prostitute) 내지는 '전문적인 군부대 종사자'(professional camp follower)에 지나지 않는다."고 적고 있다.
보고서는 그러나 당시 피해 여성들이 '창녀'가 되려고 위안부로 징발됐던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보고서는 일제가 새로 점령한 동남아시아에서의 '위안 서비스'를 목적으로 한국 여성들을 징발하면서 이 '서비스'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면서 단지 "입원중인 부상 군인들을 방문하거나, 붕대를 갈아주는 등 대체로 일본 군인들을 기쁘게 해주는 일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됐었다"고 적고 있다.
보고서는 특히 대부분의 한국 여성들이 무지하거나 교육을 받지 못했으며,극소수만이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과 연관이 있었을 뿐"이라고 지적, 당시 한국 여성 거의 대부분이 성 노예의 피해자임을 명시했다.
가세는 보고서의 전체적인 내용을 도외시한 채 마치 한국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위해 위안부로 나선 것처럼 왜곡한 것이다. 그는 뉴스위크 최신호 국제판에서 "미 육군 기록에 종군 위안부는 창녀로 명시돼 있으며, 일본 당국에 의해 그들이 납치됐다는 사례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억지 주장을 폈었다.
한편 지난 1945년 5월 미전략사무국(OSS)의 중국 쿤밍 지부 보고서는 당시 쿤밍에서 일본 부대를 탈출, 중국군에 투항한 한국 여성 25명 전원이 "분명히 강요와 사기에 의해"(apparently under compulsion and misrepresentation)위안부가 됐다고 명시, 가세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이들 여성 중 15명은 1943년 7월 싱가포르의 일본공장에서 여성을 위한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한국어 신문 광고를 통해 징발됐다"고 말하고 "이들이 있던 남쪽 지역에는 최소한 300명의 소녀들이 마찬가지로 기만을 당했다"고 적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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