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제 2분단 노리는 美·中 밀약설의 진실
[뉴스메이커] 2006년 12월 21일(목) 오후 03:17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를 놓고 빅딜을 한다는 소문이 국내외에 심심치 않게 돌고 있다. 그래서 일까. 중국은 북핵문제에 적극 개입하고 있으며 미국은 때로 놀랄 정도로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 도대체 중국과 미국은 한국을 따돌리고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일까. 미·중밀약설의 진실을 파헤쳐본다. <편집자 주>
미·중 밀약설의 주요 내용
● 북 붕괴할 경우 중국의 평양~원산 이북 진주 허용
● 북 소요사태 발생시 미국 무기점령 용인·핵시설 접수
● 북정권 붕괴시 미·중 신탁통치 하기로
중국과 미국 사이가 수상하다. 6자회담 재개과정에 중국이 보여준 노력이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 채택 이후 중국이 실질적으로 취한 대북 압박 조치는 미국 사람들조차 ‘상상 이상’이라고 입을 모을 정도다. 중국은 공식적으로는 북한에 대해 직접적 경제압박을 가하는 것이 없다고 밝히면서도 제재가 아닌 다른 방법을 동원해 실질적으로 북한에 대한 지원을 줄이고 있다. 그래서 미·중 ‘밀약설’ 또는 ‘빅딜설’이 국내외에 심심치 않게 나돌고 있다. 도대체 중국과 미국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상황을 짚어 보는 것이 필요할 듯하다. 한국 정부는 지난 10월 29일 미국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의 소재를 찾아 한바탕 난리를 쳤다. 미국이 이날 베이징에서 곧 북·미·중 3자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는 통보를 해왔기 때문이다. 한국은 4일 전 중국으로부터 같은 내용을 전달받았을 때만 해도 미심쩍어 했다. 그러나 미국으로부터 연락받자 이번에는 진짜라는 느낌을 가지면서 확인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한국의 ‘왕따 외교’는 밀약설의 근거
문제는 우리가 힐 차관보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아시아 순방을 수행했던 힐 차관보가 우리나라 외교통상부의 안테나에서 사라졌다. 미국에도 없고 라이스 장관을 수행도 하지 않고 어디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다음날인 30일 힐 차관보가 베이징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베이징 주재 한국 대사관을 통해 알려지면서 한국 정부는 그가 그동안 피지에서 중국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만큼 한·미간의 거리가 멀어져 있다는 얘기다.
정부 당국자들은 한결같이 "내용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렇지만 사석에서 만난 당국자들은 "미국이나 중국이 충분히 설명해주지 않는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않는다. 한반도 문제에서 우리가 북한 미국 중국 모두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이른바 ‘왕따 외교’의 현실이다. 미·중 밀약설의 중요한 근거가 되는 부분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무슨 일이 있기에 한국을 따돌리고 두 나라가 그렇게 긴밀히 공조하고 있을까. 한국 정부가 ‘주도권’ 운운하며 말의 ‘성찬’을 즐기는 사이에 미국과 중국이 자신들의 이해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아냈다는 얘기 외에는 다른 방법으로 설명될 수 없다.
지난 해 8월 초 미국과 중국 사이에 있었던 고위급 전략 대화가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데는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이 없다. 당시 미국측 대표였던 로버트 죌릭 국무부 부장관은 중국 측에게 핵 해결을 전제로 중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시사했다고 한다. 이후 중국은 북핵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으며 때로는 미국이 놀랄 정도로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
도대체 미국이 중국에 약속한 ‘중국이 원하는 방향’은 무엇일까. 바꿔 말해 미국과 중국이 맺은 밀약은 무엇일까. 일부 전문가들은 이를 ‘미중 빅딜’이라고 부른다.
밀약설 중 우리의 관심을 가장 크게 끄는 대목은 북한 정권이 붕괴할 경우 중국이 평양과 원산 사이까지 진주하는 것을 미국이 허용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중국으로서는 미국과 직접 맞닿는 것이 싫은 만큼 완충지대로 평양-원산 이북을 확보하면 불만이 없다. 또 중국은 한국과 일본의 핵개발을 저지하는 데 미국의 한반도 주둔이 가장 효과적 수단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한국민의 뜻이 중요하겠지만 북한이 붕괴한다면 중국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미국의 존재를 필요로 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는 ‘평양-원산 합의설’의 근거에는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의 이른바 실용외교가 자리잡고 있다고 소개했다. 키신저는 여전히 공화당 원로로서 외교에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특히 네오콘 퇴장 이후 그의 발언은 위력은 세어지고 있다.
키신저는 명실공히 세계 외교관들의 교과서로 자리잡은 저서 ‘외교’(Diplomacy·1995)에서 한반도 문제를 장황하게 언급했다. 그는 ‘봉쇄의 딜레마:한국전’이라는 장에서 "정치 분석에는 솜씨가 없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예상 밖으로 인천 상륙작전에서 대성공을 거두는 바람에 그냥 북으로 밀고 올라갔다며 그가 ‘잘록한 목(narrow neck)’에서 멈추는 것이 바람직했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됐다면 지금 155마일 휴전선보다 방어선이 훨씬 줄어들어 미국의 방어부담이 훨씬 줄고 평양을 포함해 한국 인구의 90%가 자유진영에 살 수 있었을 것
1970년대 미국 외교의 대명사였던 헨리 키신저 전 국무부 장관.
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트루먼 정권도 한반도를 단순히 공산주의 확산을 저지하는 방어선 정도로 인식했다고 키신저는 비판했다. 키신저가 언급한 ‘잘록한 목’은 원산과 청천강을 연결하는 선을 상정한 것으로 보지만 지금 관점에서 보면 평양-원산선이 될 수밖에 없다.
키신저의 실용외교는 공화당 뿐만 아니라 민주당의 실용주의 외교론자들도 교과서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미국의 정권이 어떻게 바뀌더라도 미국의 정책이 될 공산이 크다.
중국, 한국 핵개발 저지 위해 미국 필요'
‘평양-원산 밀약설’은 중국의 동북 공정과 바로 맞닿아 있다. 중국은 최근 고구려를 중국의 변경국가로 규정, 중국 역사에 편입시키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 붕괴 후 중국이 만주에 대한 영토 분쟁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동북 공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만약 ‘평양-원산 밀약설’이 사실이라면 평양-원산 이북에 대한 연고권 확보에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과거와 달리 한반도가 공산주의 방어선이라는 당초 의미가 사라졌다는 점에서 미국은 중국의 이러한 계산을 거부할 이유가 없어졌다. 이런 점에서 ‘평양-원산 밀약설’은 상당히 일리가 있어 보인다.
동북공정은 고대사를 연구하는 기초 연구분야와 응용연구 분야로 나뉘는데 동북아 정세변화와 중국의 동북아 전략을 다루는 응용연구 분야는 비공개로 진행되고 있다. 동북아 연구재단의 윤휘탁 박사는 "동북공정의 핵심은 바로 응용연구 분야”라며 북한 급변 사태에 대비한 작업으로 보인다고 최근 ‘뉴스위크’ 한글판에서 밝힌 바 있다.
또 다른 밀약설의 주인공은 북한 핵이다. 중국은 북한에 소요사태와 같은 통제 불능 사태가 도래했을 때 미국이 먼저 이들 시설의 무기를 점령하는 것을 용인했다는 것이다. 일부는 미·중이 이 문제에 대해 논의 필요성을 느끼고 검토하기 시작한 정도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미국의 북한 핵시설 접수 인정은 미국이 평양-원산을 받아들인 데 대한 일종의 반대 급부성 성격이 강하지만 중국의 국익과도 맞아 떨어진다는 점에서 개연성이 충분하다.
정부 당국자는 "중국이 북한 핵문제를 얘기할 때 한반도 핵문제라고 얘기하지 절대 북핵 문제라고 말한 적이 없다”라면서 "중국도 북핵 시설이나 핵무기가 한국의 수중으로 들어가는 것을 가장 두려워 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미국은 북한 핵무기가 외부로 가는 것도 우려하지만 한국의 보유 가능성을 걱정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미국은 당초 북한 급변 사태에 대비해 한국 정부와 이른바 ‘작전계획 5029’을 논의했으나 ‘내정간섭’ 시비로 비화되어 논의가 중단되자 사실상 한국 정부의 협조를 포기했다고 한다. 지난 10월 워싱턴에서 열린 제28차 한·미 안보협의회(SCM)에서 ‘개념계획(CONPLAN) 5029’라는 이름으로 내년부터 북한 급변사태를 논의하기로 했지만 핵 문제는 예외라는 게 미국 한반도 전문가들의 공통된 얘기다.
다른 미국 한반도 전문가는 "북한이 혼란상태에 빠지면 미국은 한국의 합의 여부와 상관없이 무조건 영변을 비롯한 핵시설 점령에 나설 것”이라고 단언했다. 내년부터 논의될 ‘개념계획 5029’도 핵문제에 관한 한 한국이 협조하는 것 외에는 중국도 인정한 만큼 다른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이 전문가는 덧붙였다. 자칫 한국 정부의 계획대로 내년 말 개념계획 5029가 완성되더라도 ‘속 빈 강정’이 될 수 있다.
육군 무적태풍부대와 미군 2사단 병사들이 경기 연천군 일대에서 한·미연합 도하훈련을 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중국이 동북공정을 하는 근본 이유
‘개념계획 5029’는 북한의 다양한 급변 사태에 대비해 한·미가 취할 공동 대응책을 다루지만 작전계획과는 달리 작전부대 편성 등 군사력 운용 계획은 포함하지 않은, 말 그대로의 개념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은 당초 미국의 핵 시설 점령 계획에 부정적이었으나 현실적 능력이나 향후 한·일·대만의 핵 개발 가능성을 감안했을 때 미국의 개입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중국 소식통의 설명이다. 중국은 핵 물질이나 무기가 외부로 나가지 않도록 국경수비를 강화하기로 미국과 약속했다는 설도 나온다.
이 밖에 미국과 중국이 북한이 붕괴할 경우 신탁통치를 하기로 했다는 설도 있다. 신탁통치설은 ‘평양-원산 합의설’과 미국의 핵 점령 합의설과 양립할 수 있는 방안이다. 다만 한국 정부의 다른 문제와 달리 한국 정부의 발언권이 어느 정도 행사될 수 있는 부분으로 여러 가지 설 중에서 근거가 약한 편에 속한다.
‘미·중 밀약설’은 갈수록 힘을 얻는 형국이다. 그 배경에는 미중이 한국과 달리 북한 정권의 장래를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한국 정부는 물론 미국 중국 등 관련국들은 한결같이 미국과 중국의 밀약설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 관련 당사국 중 한국 정부를 빼 놓고는 대부분 북한 비상사태 가능성을 상당히 높게 보고 대비를 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미 미중이 밀약을 맺었든, 또는 ‘설’ 단계에 있든 우리 머리 위에서 이러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불쾌한 일이다. 그렇지만 한반도 문제가 갖는 국제적 성격 때문에 우리 역할이 갖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선택의 순간이 벌써 지나가 버리지나 않았는지 걱정스러운 부분이다.
김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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