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동북아역사문제 의견 조정에 우리 나라가 빠져야 하는가?
동북아시아역사 전체를 두고 보더라도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주도한 한민족인 대한민국은 제쳐두고 얼치기 사생아(지나, 왜)들만 모여 무슨 작당을 모의하겠다는 건지 ...그것은 진실일 수가 없다.
우리나라의 역사학자들을 포함시키지 않았다는 것은 우리나라에 숨길 것이 많다는 것이고 지나와 일본은 상방간 역사적 이득점을 서로 절충할 수도있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난징대학살등 심각한 논제가 있다고 하지만...실질적인 논의 주체는 그것만이 아니라고 생각이 든다.
분명 동북공정 프로젝트에 관한 협조가 많든 적든 있을 수 있는 자리이며 그것이 오히려 더 중요한 논제 거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나가 동북공정프로젝트에 일본협조를 구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보면 지나가 처음 동북공정범위 내에 왜를 직접적으로 포함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며 그러한 왜로 부터 동북공정에 많은 협조를 구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왜는 지나보다 더 많은 근세 역사적 중요 자료와 사증(역사사실근거물)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나스스로 부인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를 우리스스로 경계하고 주의하여야 할 문제가 아닐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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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의 정치적 의미 띤 중·일 공동 역사연구
[연합뉴스] 2006년 12월 27일(수) 오후 03:27
2008년 8월까지 큰 파동 예방하는 정치적 장치
난징대학살등 민감한 역사문제 논의 난항 예상(베이징=연합뉴스) 이돈관 특파원 = 지난 10월8일 아베 신조(安倍晉三) 일본 총리의 중국 방문을 계기로 지난 5년 동안 냉각됐던 중. 일 정치관계가 급속하게 해빙되면서 양국 간의 교류가 여러 방면에 걸쳐 봇물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베이징에서는 26,27일 이틀간 공동역사연구위원회 제1차 회의가 열렸다.
중. 일 양국의 공동 역사연구는 중국을 방문한 아베 총리와 후진타오(호금도)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에서 확정된 사안으로, 그 이후 중국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와 일본국제문제연구소가 실무작업 끝에 양측 학자 10명씩으로 중. 일 공동역사위원회를 구성하고 그 아래에 고대사분과위원회와 근현대사분과위원회를 두기로 결정했다.
한. 중. 일 3국이 공동으로 펴낸 '미래를 여는 역사' 편찬에 참여한 쑤즈량(蘇智良) 상하이사범대 역사학과 교수는 "양국 학자들 사이에 견해차이가 가장 큰 난징(南京)대학살 문제를 포함해 1895년의 청일전쟁, 1937년의 항일전쟁 등 100여년의 불행한 역사가 이번 연구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양측은 공동 역사연구를 순수한 학술적 각도에서 진행한다고 밝히고 있으나 두 나라 간의 역사인식 차이가 그동안 양국의 정치관계를 좌지우지해 왔다는 점에서 볼 때 이번에 개시된 공동 역사연구는 적지 않은 정치적. 외교적 함의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신화통신 등 중국 언론은 이번 회의에 대해 "양국 학자들이 중. 일 관계가 적극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촉진하는 무거운 임무를 짊어지고", 앞으로 중. 일 교류사와 근대 이래의 불행했던 역사 등의 과제에 관해 대화와 교류를 하게 된다고 논평했다.
중국 외교부 친강(秦剛) 대변인은 26일 정례 브리핑에서 양국 역사학자들이 중. 일관계와 중. 일관계사에 대해 대화를 진행하는 목적은 "2천여년에 걸친 양국 교류사와 근대사 및 이 시기의 불행했던 역사에 관한 연구와 교류를 통해 객관적인 역사인식과 상호 이해를 더욱 깊게 하는데 있다"고 밝혔다.
친 대변인은 또 역사문제의 정확한 처리가 중. 일관계의 중요한 기초라고 강조하고 "이 문제를 타당하고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을 때라야 중. 일관계 역시 건강하고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으며, 더욱 아름다운 중 .일관계 창조의 기초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공동 역사연구가 갖는 정치적 의미를 요약 설명했다.
양국 학자들은 특히 1972년 9월29일 외교관계 수립과 함께 발표된 '중. 일공동성명'을 비롯한 '중. 일 평화. 우호조약'(1978.8.12), 중. 일관계의 새로운 구상을 담은 '중. 일 공동선언'(1998.11.26) 등 3개 정치문건을 토대로 미래 지향적인 역사연구를 하기로 합의, 정치적 색채를 짙게 했다.
수교 이래 최악의 고비를 넘기고 새 전기를 마련한 중. 일 정치관계는 적어도 '중. 일 평화. 우호조약' 체결 30주년이 되는 2008년 8월 보고서가 발표될 때까지는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종전과 같은 큰 파동을 겪지 않아도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의 과정으로 보아 현재의 중. 일 정치관계는 역사인식의 차이가 가장 결정적인 인소로 작용하고 있는 만큼 양국 정상의 합의에 의해 공동연구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이 문제가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첫 회의를 비공개로 연 중.일 공동역사위원회의 가동은 국민감정까지를 고려해 가면서 양국의 정치관계는 물론 기타 영역의 교류. 협력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고 더욱 공고하게 다지는 방안을 모색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벌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장치로도 해석될 수 있다.
중국과 일본은 지난 5년 동안 고이즈미 준이치로(소천순일랑) 당시 총리를 비롯한 일본 정치인들의 잇단 야스쿠니(정국)신사 참배, 일본의 잘못된 역사인식, 역사 교과서 왜곡 등으로 인해 정치관계가 계속 교착상태에 빠졌었다.
양국 국민 상호 간의 감정도 나빠지고 경제관계에까지 적지 않은 악영향을 미친, 이런 상태는 두 나라 지도자들의 결단으로 일단 타개됐으나 중. 일 논쟁의 핵심주제 가운데 하나인 역사관 등 민감한 문제는 아직 원만하게 처리되지 않고 있는 상태여서 난징대학살 문제 등으로 난항이 예상되는 가운데 공동 역사연구의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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