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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도 감탄한 한복의 아름다움

한부울 2006. 12. 25. 00:58
 

힐러리도 감탄한 한복의 아름다움

[조선일보] 2006년 12월 24일(일) 오전 10:38


한국의 유명한 한복 디자이너인 이영희씨와 배영진씨가 세계 패션의 중심지 뉴욕에서 한판 ‘한복 승부’를 벌이고 있다. 뉴욕에 먼저 진출한 이씨가 세를 확장해가고 있는 상황에서 업계 후배인 배씨가 도전장을 내는 형태다.

40만여명의 동포가 사는 뉴욕 한복업계는 이씨가 선점한 상태다. 이씨는 2004년 9월에 뉴욕에 한복박물관을 개장하고 한복가게를 내는 등 뉴욕 공략에 나서고 있다.

이씨는 “세계 패션 중심지인 뉴욕에서 성공해야 한복이 세계적 의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매년 뉴욕에서 한복 패션쇼를 열고 미국 박물관에 한복을 기증하는 활동도 하고 있다.

이씨는 지난 9월 맨해튼 32가의 한복박물관에서 ‘한국의 바람’을 주제로 개관 2주년 기념 패션쇼를 열었다. 미국 현지와 한국에서 온 모델 20여명이 참가, 전통한복과 모던한복 등 총 80여점을 소개했다.  모시, 실크, 면, 마 등 전통적인 한복 소재뿐 아니라 한지와 천연섬유를 가공해 짠 자연친화적인 새섬유와 대나무 숯이나 쪽, 소목, 오배자 등의 자연물로 염색한 섬유들을 다양하게 활용해 한국 전통 질감과 색감을 현대적으로 재현해 냈다. 12년간 파리 컬렉션을 통해 다듬어진 이씨 특유의 감각으로 한복의 우아한 멋을 격조 높은 패션으로 표현했다는 평가다.

이씨는 “전통한복의 조형미를 해체하고 다시 조합해서 전통적 평면 구성과 현대 패션의 입체적 표현이 조화를 이루게 해 한복의 세계화를 이루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이에 맞서 드라마 ‘궁’으로 명성을 얻은 한복 디자이너 배영진씨는 재미사업가 김기씨와 손을 잡고 지난 11월 24일 맨해튼 인근 뉴저지 포트리 메인스트리트에 한복전문점 ‘코세르’를 개장했다. 30여평 크기의 가게에는 나비 수백 마리를 수놓은 붉은색 한복 치마를 비롯, 400여점의 전통한복과 궁중의상, 개량한복, 전통침구, 액세서리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전통한복의 혼례복은 한 점당 350~3000달러에 이를 정도로 고가의 제품이지만 개점 2주일 만에 30여점이나 팔려나갔다. 코세르 매장 안에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인사동을 방문했을 때 배씨의 가게에 들러 한복을 감상하던 모습의 사진이 걸려 있다. 또 붉은색·핑크색·검은색·황금색 드레스와 색동저고리, 양털 재킷, 베개, 스카프, 핸드백, 한복 노리개, 쿠션 등이 고풍의 가구들과 함께 멋지게 조화되어 있다.

코세르 측은 개점 한 달 전인 10월 15일에는 재미동포 사업가와 정치인, 언론인 등 400여명을 초청해 한복 패션쇼를 개최했다. 특히 직업모델을 동원하는 전통적인 방식 대신 뉴욕의 재미동포가 직접 모델로 등장해 한복을 입고 출연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한복 대중화를 위해 ‘동네 패션쇼’를 개최했던 셈이다.

배씨는 “서울 인사동 가게까지 옷을 찾아오는 재미동포들을 보고 미국에 점포를 내고 싶었다”며 “단순히 혼례용품뿐 아니라 다양한 한국적인 옷을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배씨는 한복을 활용한 혼례복과 파티복 등이 한국적인 것을 추구하는 2세에게 크게 어필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뉴욕동포가 40만명이나 되고 결혼 적령기의 인구가 많기 때문에 시장성도 충분하다는 판단이다. 실제로 외국인과 결혼하는 동포는 한복 저고리와 치마, 바지 등 한국적인 것을 더욱 찾는 경향이 있다. 친구와 즐기는 파티에서도 한복 소재를 살린 파티복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서울 가게를 찾던 재미동포는 개점 후에 이곳 가게로 몰려 오고 있다고 한다. 고객은 주로 중장년층 주부다. 이들은 드라마 ‘궁’에 출연한 탤런트가 입었던 옷에도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코세르 측은 한인 외에 외국인을 상대로도 적극적인 판촉 활동을 벌일 예정이다. 코세르가 위치한 포트리 메인스트리트 인근에는 최근 대규모 주택 개발작업이 진행 중이며, 개발이 완료되면 경제력이 있는 부유한 외국인이 대거 입주할 전망이다. 벌써부터 코세르 앞을 지나가던 외국인들은 페티코트 위에 아름답게 걸쳐 있는 나비가 수놓인 붉은 한복 치마에 호기심을 느끼고 가게에 들러 옷을 살펴보곤 한다. 외국인은 한복의 아름다운 재질과 색깔이 이브닝 파티 복장으로 매우 적합하다고 보고 있다.

이영희
씨와 배영진씨는 디자인의 주력 스타일에서 약간 차이를 보인다. 이씨는 한국 박물관을 운영하며 한국의 전통미를 보다 강조하는 반면, 배씨는 서구인의 입맛에 맞는 보다 개량된 스타일을 추구한다. 그래서 한복 요소를 가미한 파티복과 혼례복도 적극 개발 중이다. 배씨는 “뉴욕에서 한복이 널리 퍼지기 위해서는 일상생활에서 편하게 입을 수 있도록 개량되어야 한다”며 “개량한복을 통해 뉴욕 패션과 한복 패션의 접합점을 찾아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두 사람의 대결을 더욱 관심있게 만드는 것은 차기 미국의 유력한 대선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과의 연관 때문이다. 이씨는 지난 9월 뉴욕에서 패션쇼를 열고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한복박물관에 초청해 정치자금 모금행사를 열었다. 점점 커가는 뉴욕의 한인 정치세력을 한복 홍보의 한 힘으로 활용하겠다는 생각이다. 이를 위해서는 힐러리 클린턴과 같은 주류사회 유명인사의 인정이나 도움을 받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당시 힐러리 의원은 맨해튼 코리아타운에 위치한 한복박물관에서 100여명의 한국인·외국인 참석자와 정치자금 모금 행사를 가지면서 “한복 원더풀”을 외쳤다. 행사에는 한인권익신장위원회 박윤용 회장과 뉴욕한인청과협회 김영해 회장 등 재미동포뿐 아니라 가수 아트 가펑클의 아들인 제임스 가펑클 부부 등이 참석했다. 힐러리 의원은 50여평 크기의 한복 전시장을 둘러보고 “의상과 자수가 너무 아름답다”며 “한국인이 한국의 전통문화에 자부심을 가질 것 같다”고 말했다. 한복 저고리와 바지를 입고 나타난 가펑클은 “이씨의 한복이 너무 멋지다”며 탄성을 연발하기도 했다.

이에 반해 배씨는 든든한 동업자를 갖고 있다. ‘코세르 뉴욕’의 사업을 맡고 있는 김기씨는 재미동포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힐러리 클린턴 의원의 후원자 중 한 사람이다. 김씨는 최근 힐러리 의원이 감사의 표시로 초청한 뉴욕주 후원자 모임에서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초대되어 헤드테이블에서 힐러리 의원과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다. 김씨가 비록 내색은 하지 않고 있지만, 힐러리 의원과의 친분 관계는 향후 미국 주류사회 진출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씨와 배씨는 모두 앞으로 뉴욕에서 가게를 더욱 확장하고, 주류사회에 한복의 인식을 확산시키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배씨는 포트리 사업이 궤도에 오르면 맨해튼에도 매장을 낼 계획이다. 국내에서 명성을 얻은 두 한복 디자이너가 뉴욕에서 본격적인 한판 승부에 돌입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