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話부터 이어져온 중화주의 해체해야”
[조선일보 2006-09-19 03:01]
①정재서 이대 중문과 교수
동북공정은 新중화주의
중국 역사왜곡 최근의 것 아냐 ‘황하문명 중심론’ 허구 지적을
[조선일보 유석재기자, 객원기자]
‘동북공정’을 통한 중국의 고대사 왜곡은 이제 시작이다. 냉정히 따져보면 지난 2003년 처음 이 문제가 폭발했을 때에 비해 중국은 달라진 게 없다. 최근에는 금(金)·청(淸)에 한국사를 포함시켜야 한다는 ‘위험한’ 시각까지 나왔다. 그러나 이제는 중국측 왜곡에 대한 대증적 반박을 넘어서서 보다 근본적으로 중국의 ‘신(新)중화주의’에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다. 오늘부터 연쇄 인터뷰를 시작한다.
“’황하문명(黃河文明) 중심주의’를 직접 공격해서 해체해야 합니다.”
정재서(鄭在書·54)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신화학)는 요즘 들어 유난히 답답하다. 그가 10년 전에 낸 저서 ‘동양적인 것의 슬픔’(살림)에서 고구려·발해에 대한 중국의 역사 침탈을 경고했을 때만 해도 주변의 반응은 냉담했다. “이상한 소리를 한다” “중국을 이렇게까지 폄하할 수 있느냐”는 사람들도 있었다. 수천 년 동안 우리가 간직하고 있었던 ‘내재적 사대주의’가 여전히 잠재해 있고, 1980년대 이후 사회주의 중국을 미화한 책들이 쏟아지면서 일종의 ‘유토피아적 환상’이 지식인들에게 주입됐기 때문일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중국이 획책하고 있는 ‘신화(神話)의 역사화’에 주목한다. “중국의 역사 왜곡은 최근에 생겨난 게 아닙니다. 신화를 의도적으로 체계화하려는 바탕에는 중국 지식계층이 전통적으로 지녀 온 ‘중국문명에 대한 자기동일성의 확신’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작업은 이미 신화의 세계인 삼황(三皇)과 오제(五帝)를 역사의 세계인 ‘사기(史記)’ 본기에 포함한 사마천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도대체 ‘중국’의 실체는 무엇인가? 신화의 시대에 중국이란 개념이 있기나 했던가? 중국문명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중국인에 의해 독점적으로 형성된 일관된 문화 전통을 중심으로 전개됐다는 착각은 ‘현재의 영토 안에 있었던 역사는 모두 중국’이라는 배타적 속지주의(屬地主義)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고구려 벽화에서 ‘중국 신화’의 인물로 알려진 복희(伏羲)와 여와(女?)가 나타난다고 해서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복희·여와·치우·축융 등이 원래 한족(漢族) 계통이 아니라 동이족 계통의 신화라는 것은 신화학의 정설이기 때문이다. 여와는 동아시아 공통의 지모신(地母神)으로 봐야 하며, 한족 계통의 황제·염제 등은 고구려 벽화에 전혀 보이지 않는다. ‘산해경(山海經)’에 나타나는 신화의 세계 역시 중원 문화의 것이 아니다. 상고시대의 동아시아 문명이란 다양한 지역 문화의 상호구성체였던 것이다. 요하 유역의 홍산문화나 양쯔강 이남의 묘만(苗蠻) 계통 문화가 어떻게 한족의 문화라고 할 수 있겠는가? ‘현재’의 중국이 그 모든 것을 독점하는 것은 부당하다.
정 교수는 “그렇기 때문에 ‘동아시아 문명이 황하 유역을 중심으로 가장 일찍 성립됐고, 계속 주도권을 행사하면서 주변의 미개 지역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쳤다’는 ‘황하문명 중심론’의 허구를 지적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미 중국 고고학계에서조차 수정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 통설은 곧바로 화이론(華夷論)과 중화사상, 지금의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으로 연결되면서 주변 문화에 대한 패권주의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글=유석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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