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사사의 오해
(한민족은 과거에 전 세계 인류를 통솔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민족이다)
1) 중국(지나)과 지나인
중국(지나)의 진현창(陳顯昌)은 신라와 발해가 당나라의 지방국가였다고 하고, 일본의 하다다기요시(旗田巍)와 이노우에(井上秀雄)는 "단군전설은 13세기 말 항몽 투쟁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라고 했으며, 영국의 토인비는 한국 문명을 중국 문명에 곁가지로 분류했는가 하면, 미국의 남가주 클레어몬드 대학원의 식물원에서는「1천 년 동안 중국이 지배하던 한국을 일본이 서기 665년에 해방시켰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경도(京都)대학의 우에다(上田)는 "지금까지의 동양사를 새로 써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으며, 가시마노보루는 "일본의 천황가가 백제에서 나왔다."고 논증하고 있다.
중국(지나)은 한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한국을 침략하고 한국의 영토를 앗아갔으며, 한국의 사료를 탈취하여 자기 것으로 위장하고 날조한 장본인이다. 일본은 한국으로부터 독립하여 한국을 침략하고 동양의 정통국가가 되겠다는 야심을 실현하려고 했다.
지나인들은 자기들의 나라를 세계의 중심이라 하여 '중화(中華)'라고 부른다. 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민족들은 모두가 야만이라 하여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들의 이러한 생각은 분명 잘못된 것이며, 사실과는 완전히 다른 왜곡된 주장이다.
중국(지나)에 중국인다운 지나인이 세운 나라는 한(漢)나라가 처음이었다. 지나 신화에 등장하는 반고(盤固)는 우리 한족(桓族)의 일파였으며, 그들이 말하는 삼황(三皇) 즉, 복희(伏犧)와 여와와 신농(神農)도 우리 한족(桓族)이었다.
중국(지나)인은 인류학적으로 볼 때 이질적인 민족이다. 그들은 체질상으로는 몽고인종에 속하나 말은 몽고인종과는 달리 지나어를 사용한다. 중국인이 말하는 삼황오제의 나라들은 모두 우리 배달국의 군소국들이었다.
한국(桓國)에 배반하여 정치적 독립을 얻어내려고 끝까지 싸우다가 실패한 사람이 있었다. 그가 바로 지나인들이 그들의 시조로 받드는 황제(黃帝)이다. 황제는 우리 배달국의 14대 치우천왕에 대항하여 싸웠으나 마침내 실패했다. 황제는 고시씨(高矢氏)의 후손 소전(少典)의 다른 유파로 짐승을 잘 기르지 못하여 헌구(軒丘)에 유배된 공손(公孫)의 후손이었으며, 황제 또한 한족(桓族)이었다.
<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 고신(高辛)'에 의하면,「요(堯)는 제곡 고신(高辛)의 아들이다.」라고 했고, <한단고기>는「치우천황이 오장군(吳將軍)을 보내 서쪽의 고신을 쳐서 공을 세우도록 했다.」라고 했다.
박제상의 <부도지>에 의하면, 요(堯)는 처음으로 마고성을 나간 지소씨의 후예로, 배달국의 제시(祭市)의 모임에 왕래하고 서쪽 보(堡)의 간(干)에게서 도를 배웠으며, 단군이 순행하는 틈을 이용해 부도를 습격하여 당도(唐都)를 세우고, 구주(九州)를 설치하여 부도에 대립하다가, 순(舜)의 아우 유상(有象)에게 패하여 갇혀 있던 중 살해당한 사람이었다.
순은 단군의 신하인 유호씨(有戶氏)의 장남이었다. 부친의 명을 거역하고 단군을 배신한 후 요의 왕위를 계승하였으나, 동생인 유상의 공격을 받고 창오(蒼梧)의 들에서 우(禹)에게 죽임을 당했다. 이보다 먼저 순은 우(禹)의 아버지인 곤을 죽인 일이 있었다.
순 당시의 중국(지나)는 지금의 하북성 천진 남쪽에 있는 조그마한 나라로 단군의 군소 제후국에 불과했으며, 순은 단군을 찾아뵙고 조공을 바쳤다. 그런데도 지나인은 자신들을 미화하여 자기네 나라를 '중화'라고 부르고 있다.
이와 같은 지나인의 화이사상(華夷思想)보다 더욱 이기적이고 독선적이며 자기 중심적인 사상이 오늘날 서양인의 백인 중심주의 사상이다. 이스라엘의 선민(選民) 사상과 전쟁 전 독일의 광적 민족주의 사상으로 대표되는 백인 중심주의 사상은 지금도 전 세계를 무대로 활보하고 있다.
2) 서양 문화의 특성
서양의 백인 중심주의 사상은 그 근원을 고대 그리스와 이스라엘에 두고 있다. 그리스 문화는 신과 신, 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아내 사이의 대결이 그 특징이었으며, 이스라엘 문화는 자기들만이 신에게 선택된 인간이라는 생각에서 싹이 튼 것이었다.
이와 같은 대결과 배타적인 선민사상은 폭력과 독선을 가져왔으며, 수직적인 지배와 복종의 종속 문화를 발전시켰다. 결국 그들은 밀림의 법칙을 만들어낸 것이다.
런던의 북서쪽에 동인도회사의 대학이 있었다. 이 대학에서는 지구의 표면상에 관한 모든 정보를 수집했다. 이 대학의 교수인 로버트 T. 맬더스는 인류의 대부분은 결핍과 곤궁한 생활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될 것이며, 기도밖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외쳤다.
이로부터 35년 후에 다윈은 적자생존, 우승열패의 약육강식론을 내놓았으며, 그 후 모오건이나 마르크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전통적·고전적인 사람들은 맬더스와 다윈의 충실한 제자가 되었다.
맬더스와 다윈의 이론은 지금까지 비교적 잔잔하던 지구상의 인류의 바다에 태풍을 몰고 왔으며,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그리고 광적 민족주의의 숨가쁜 물결과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약육강식론과 백인 중심주의 사상은 동인이명(同人異名)이다. 그들은 다같이 대결과 차별, 선민이라는 뿌리깊은 서양문화의 한 산물에 불과하다. 아직도 서양문화는 무서울 만큼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이미 지중해 문화는 대서양으로 옮겨지고, 그 대서양 문화라는 것도 차츰 풀이 죽어가고 있다.
서양문화는 차별의 문화였다. 근원적으로 자유와 평등과 협동 정신이 부족한 제한된 지역의 한정된 사람들만의 극히 협량한 사상에서 우러나온 대단히 편협한 문화였다.
그리스 동북쪽, 해발 2,918m의 올림푸스산을 중심으로 지브랄터 해협을 벗어나면 낭떠러지가 되어버린다는 좁은 세계관 속에서 자라온 서양의 문화는 처음부터 인류를 구원할만한 큰 이상을 품을 환경이나 식견을 가질 수 없었다.
면적이 9만 3천㎢나 되고 높이가 5천 미터나 되는 중앙아시아의 대고원인 파미르고원의 문화와는 그 발상부터 비교가 안 되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홍익인간의 사상은 제한과 차별이 없는 사상이다. 홍익인간의 사상 속에는 흑인이든 백인이든 차별이 없다. 전체 인류를 대상으로 우주의 섭리를 회통(會通)한 이 절대 평등의 화합회복사상은 전 세계를 한 눈에 내려다보는 파미르고원에서부터 자라온 한민족의 이상이었다.
그리스의 신화는 처음부터 부부간, 또는 부자간의 불신과 살육으로 시작되고 있다. 대지의 신 가이아는 별이 총총한 천공의 신인 우라노스를 낳아 웅대하게 만든 다음, 그와 결혼하여 티탄 열두 명을 낳았다.
가이아는 다시 퀴클롭스 삼 형제를 낳았으며, 끝으로 또 괴물 세 명을 낳았다. 이 괴물 삼 형제는 몸집이 엄청나게 크고 기운이 비할 데 없이 세며, 저마다 팔이 100개, 머리가 50개나 달린 괴물이라 '백수거인'이라고 불렀다. 이들을 본 형님이자 아버지인 우라노스는 치가 떨려서 자식들을 모조리 묶어서 무한지옥 속에 가두어 버렸다.
이에 화가 난 어머니이자 아내인 가이아는 아들 가운데 말을 잘 듣는 크로노스를 시켜 아버지인 우라노스의 생식기를 잘라버렸다.
아버지를 감옥에 가두고 그 자리를 빼앗은 크로노스는 더 잔인했다. 그는 아들을 낳을 때마다 옆에 지켜 서 있다가 낳는 족족 꿀컥 삼켜버렸다. 그러나 크로노스도 결국 아버지 우라노스처럼 그의 아들 제우스에게 제거 당하여 캄캄한 땅속으로 쫓겨났다.
그리스 신화에는 또 제법 세력이 강한 디오니소스라는 신이 있다. 이 신은 어찌나 잔악한지 자기를 섬기지 않는 사람들은 모조리 죽여버렸다.
서기 전 880년경에 생존했던 앗시리아의 왕 님누드·앗수르·나시르팔 2세는 잔인하기로 이름난 임금이었다. 그는 그를 배반하는 사람들이나 전쟁 포로의 살가죽을 벗겨 그가 지은 궁전의 기둥에 감아놓거나 말뚝에 감아서 기둥 위에 세우기도 했다고, 궁전의 벽면에 자랑삼아 새겨놓았다.
<구약성서> '창세기'는 생명나무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불꽃을 내뿜는 칼을 돌려가며 인간에게 은혜 베풀기를 거부했다고 한다. 농사꾼인 카인의 제물은 거두어들이지 않고 양치기인 아벨의 것만을 받아들이는 차별을 보임으로써, 형이 동생을 죽이는 불륜의 죄악을 저지르도록 유도했다.
여호와는 하늘 높이 솟는 대를 쌓으려는 인간의 능력을 시기하여 그 의지를 뭉개버렸으며, 그것을 영원히 방해하기 위하여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통하지 못하도록 했다.
출애굽기는 아래와 같이 쓰고 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우물 속에 있는 것이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려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여호와의 이 말은 여호와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다음 노예 신분에서 해방시켜주는 대가로 주문한, 협박으로 이루어진 요구사항이다. 다른 신의 존재는 인정하면서 신앙은 용납하지 못하는 편협과 차별 정신에서 우리는 독선에 가득 찬 이질감을 깊이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서양사람들이 믿는 신들 가운데 대부분 중요한 신들은 한국이나 중국(지나), 마야나 잉카, 고(古)시베리아족들의 신화에 등장하는 악신(惡神)들보다 훨씬 악독하다. 반면 아시아나 아메리카 인디안 계통 신화의 주신들은 대부분 선하다.
오늘날 지구상의 어느 한 쪽 구석에도 백인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은 없다. 그들은 이르는 곳마다 십자가와 과학을 내세워 그 민족 고유의 신앙과 민속을 몰아내며, 토착민들에게 탈민족, 탈전통의 노예가 될 것을 강요하고 그것을 복음이라고 전하고 있다.
서양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자기 중심적 배타주의와 선민주의는 결코 사라질 수 없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지금도 아메리카 대륙은 콜럼부스가 발견했다고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주장을 하고 있다.
마더스 교수는 미국의 브론쿤 산에 있는 산타마리아 계곡에서 지금부터 백만 년 전에 살았던 혈거인의 유적을 발견했다. 혈거인들은 돌막대기라든가 살촉이 달린 화살을 사용했으며, 동물을 사육하고 밭을 갈아 농사를 지었으며, 시체는 미이라로 만들어 천으로 감싸서 돌로 된 관속에 넣어 안치했다. 니이벤씨는 멕시코시에서 약 7km 떨어진 알레판토라 근방의 샌미겔 아만톨라에서 지금으로부터 2만∼5만 년 전의 몽고인 유적을 발견했다.
볼리비아의 잉카문명은 그 기원을 1만 6천년 전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그 당시 티아와나코인들은 이미 청동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들은 놀라운 솜씨로 청동을 가공했는데, 그곳에서 출토된 유물은 그 당시 금속의 융해, 주조, 단조, 금속조각, 도금, 상감 그리고 용접 등의 기술이 발달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기술의 일부는 오늘날에도 터득하지 못할 정도이다.
마야에도 세 종류의 문자가 있었으며, 천문학이나 수학에 대한 지식은 당시의 유럽을 능가할 정도였다. 유럽보다 뒤떨어진다고 지적되는 것은 건축술에서 돔형(궁륭형) 양식을 개발하지 못한 것뿐이었다.
콜럼부스가 아메리카를 처음으로 발견했다는 서양사람들의 주장은, 역사를 완전히 자기 중심으로 기술하는, 어느 민족이나 저지르기 쉬운, 평범한 역사 기술상의 차원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다. 이런 경우를 통해 서양인들의 사고 속에 감추어진 지극히 위험한 불평등과 차별 의식이 은연중에 폭로된다. 그것은 바로 콜럼부스보다 먼저 아메리카로 건너간 사람들은 사람들이 아니라는 논리를 성립시키기 때문이다.
서양사람들의 이와 같은, 백인이 아니면 사람이 아니라는 사고방식에 따르면, 그들이 내세우는 자유·평등·사랑은 모두 백인들만의 것이며, 여타 유색 인종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평등을 누릴 권리도, 사랑을 하고 받을 자격도 없으며, 심지어는 생존권마저도 가질 수 없게 된다.
맬더스나 다윈이 말한 '적자(適者)'는 바로 백인들이며, 유색인종은 '약자'로서 먹이가 되지 않을 수가 없다는 생각과 사상을 직접 현실 정치에 옮겨 실천한 사람이 바로 독일의 히틀러였다. 히틀러는 게르만 민족이 살기 위해서라면 다른 민족이 살해되는 것쯤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한 때 백인들은 아메리카 원주민이 사람이냐 아닌지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 이 논란은 선교사들이 새로 발견한 지역의 사람들에게 전도를 해야 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문제였다. 만약 그들이 사람이 아니라면 그들은 영혼이 없을 것이며, 따라서 전도를 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었다.
이 논란은 결국 로마 교황이 아메리카 인디언은 사람이라고 말함으로써 일단 해결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은 교황의 권한 밖이었으며, 당시 서양사람들의 정신상태를 점검할 수 있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서양문화의 특질에서 그들의 과학문화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서양의 과학문명은 서기 전 3∼4천 년 전의 수메르에서 기원하여 이집트와 그리스를 거치는 발달과정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집트나 그리스 시대의 과학적 전통이 오늘날의 서양과학 발전에 직접 영향을 준 것은 아니다.
현대과학이 싹트기 시작한 시기는 문예부흥 이후인데, 우리는 흔히 문예부흥의 고향을 이탈리아로 잘못 알고 있다. 문예부흥이라는 개념을 엄밀하게 생각하면 그 고향은 12세기의 스페인이라고 해야 한다. 서양은 중세 암흑시대에 그리스의 고전을 잃어버렸다.
스페인의 중부, 마드리드의 남쪽, 타호강 근처에 있는 역사의 도시 톨레도는 아랍인이 그리스와 중동, 그리고 아시아에서 가져오는 모든 지식을 유럽으로 나르는 지식의 항구였다. 톨레도의 번역사들은 아랍어나 히브리어로 번역되어 내려오던 그리스 고전을 다시 유럽으로 가져와서 라틴어로 옮겼다. 이 때 아르키메데스, 히포크라테스, 유크리트 등이 저술한 그리스 과학서와 아랍 과학의 정수인 <알자한>을 번역했다.
로마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유주의에 휩싸였던 사람들은 호기심이 발동하는 대로 실험을 통하여 자연 속의 비밀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얻어진 새로운 지식은 아무나 이용할 수 있도록 공개되었다.
현대의 생활은 과학을 제외하고는 생각할 수 조차 없을 만큼 과학은 우리의 생활과 사고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고 있다. 예술의 사조도 과학의 이론에 흔들리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그 과학의 생사권은 인간이 쥐고 있다. 과학을 어떻게 다루어 나갈 것인가 하는 이 심각한 문제는 오늘날 인류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서양의 문명은 수메르가 마련한 인간이 지켜야 할 윤리, 도덕, 철학, 사회구조, 종교 등 인간에게 있어서 꼭 필요한 것들을 과학을 빼놓고는 조금도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학자들이 있다.
서양문화는 새로운 관리자를 찾고 있다. 균형을 잃은 상태를 야만이라고 할 때, 서양의 현대문명은 지나치게 균형을 잃고 있으며, 그들은 그들의 말라버린 정신과 비만한 과학의 불균형 상태를 조화시켜 균형을 유지하는 능력을 상실한 지 매우 오래된 것 같다.
현대는 좀더 나은 세계를 이룩할 진정한 정신을 필요로 한다. 과학은 수단일 뿐 결코 목적이 아니다. 현대는 먼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자유의 구가자, 평화의 제창자, 분쟁의 조절자, 발전의 선구자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인류가 자동화된 기계적 낙원에 빠져들어 인간끼리의 마음의 통합을 잃고 정신적 지옥에 떨어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이러한 일은 집일(執一)과 귀일(歸一)의 진정한 해원(解寃)·화합 사상과 다물회복(多勿恢復)의 발전·창조 사상, 그리고 영원한 생명의 장생·장수 사상을 가지고 있는 우리 한국 사람만이 담당할 능력이 있는 것이다.
한민족은 과거에 전 세계 인류를 통솔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민족이다. 우리는 과거에 인류문화 담당자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으며, 미래 사회를 구원할 이상과 방법을 가지고 있다. <한단고기>와 <부도지>가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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