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조선 강역이 보인다-벽려(薜荔 : Ficus pumila) http://blog.daum.net/han0114/17050234
******************************************
[平安道]
6.혜주부(惠州府)는 용천(龍川)이고,
廣東省(領十府。三直隸州。七州。八十縣)
○惠州府(名梁化。領一州九縣)歸善(西平。附府)博羅(羅陽)長寧(新豐)永安(神江)海豐(陸安)陸豐(圭山)龍川(雷鄉)河源(古雲)連平州(密峰)和平(新浰)-地輿名目(一十九省)
惠州府,中国古代行政区划名。明洪武元年(1368年)改惠州路置,治归善县(今广东惠州市)。辖境西起今广东九连山、罗浮山和潼湖,东有五华、兴宁及揭西西部地。万历六年(1578年)后府与县分治,归善县移治今惠州市东北,府治在今惠州市。清雍正十一年(1733年)割出五华、兴宁两地置嘉应州,辖境缩小。1912年废。
惠州历史沿革
秦朝为南海郡傅罗(或作博罗)县
东晋为南海郡博罗、酉平、欣乐三县
南北朝
刘宋王朝-为南海郡和东官郡的博罗、酉平、安怀、欣乐四县
南齐王朝-为南海郡和东官郡的博罗、罗阳、酉平、怀安(即安怀并改为东官郡治)、欣乐(现在的罗阳镇)五县
梁、陈王朝-梁朝时设循州(今惠州,府治惠州市区),梁化郡(辖怀安、归善县-由欣乐县改,今惠阳县地),博罗、罗阳二县
隋朝地方政区分州、县两级,后改为郡、县两级制 广东同设广州、循州两个总管府,大业年间改为南海郡、龙川郡(辖归善-郡治,现在的惠州府城、河源、博罗、兴宁、海丰五县)
唐朝地方政区分道、州、县三级 循州,隋之龙川郡,武德五年曾改循州总管府,管循、潮二州,贞观二年废府,天宝元年改为海丰郡,乾无元年复改为循州。辖归善(州治)、博罗、河源、海丰、兴宁、雷乡(今龙川地)六县。州治现惠州府城
五代十国 南汉王朝--改循州为浈州,辖归善(州治)、海丰、博罗、河源四县,州治现惠州府城
宋朝地方政区分路、州(府、军)、县三级 天禧五年(1021年)因避太子赵祯讳,改浈州为惠州。辖归善(州治)、海丰、河源、博罗四县,州治现惠州府城
元朝地方政区分省、道、路(府、州)、县四级,小省无道惠州路,辖归善(路治)、博罗、河源、海丰四县,路治现惠州府城
明朝地方政区分司、府(州)、县三级惠州府,洪武元年立,由元代之惠州路、循州合成。辖归善(府治)、博罗、长宁(今兴宁)、永安(禽紫金山)、海丰、龙川、长乐(今新丰)、兴宁、连平州、河源、和平,共一州10县。府治现惠州府城
清朝地方政区分道、府(州)、县(州、厅)三级惠州府,清初领连平州和归善、博罗、长宁、永安、海丰、龙川、长乐、兴宁、河源、和平10县。雍正九年(1731年)从海丰县分设陆丰县,十一年改长乐、兴宁二县归嘉应直妹州。共为一州9县。府治现惠州府城
民国
1912年惠州府与归善县合并改名为惠阳县
1915年-属潮循道,潮循道即为原潮州府、惠州府、嘉应直隶州,共25县,道治先设于潮州,后迁到澄海县属的汕头
1936年-改为第四行政督察区,辖惠阳(区治)、博罗、陆丰、河源、紫金、新丰、龙门、海丰8县。
区治现惠州府城1947年-改为第五专署行政督察区,辖惠阳(区治)、博罗、陆丰、河源、紫金、龙门、海丰7县。区治现惠州府城
共和国
1949年-东江专区,辖惠阳(专区驻地)、增城、紫金、连平、和平、陆丰、博罗、龙门、河源、龙川、海丰,共11县
1958年-设惠州县级市,4月设惠东县
1959年-撤销惠阳专区,并入佛山、韶关、3汕头个专区。撤销惠州市,改为惠州镇,划归惠阳县管辖,惠东县并入惠阳县;龙门县并入增城县
*********************************
세종지리지
평안도 / 의주목◎ 용천군(龍川郡)
지군사(知郡事) 1인. 의주도 중익 병마(義州道中翼兵馬)를 겸한다.
본래 고려의 안흥군(安興郡)인데, 현종(顯宗) 5년 갑인에 용주 방어사(龍州防禦使)로 칭(稱)하였다가, 뒤에 지군사(知郡事)로 고쳤고, 본조(本朝) 태종(太宗) 4년 갑신에 용주 이언(龍州伊彦)이라 하여 본군(本郡)에 붙이고, 계사년5190) 에 예(例)에 따라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용호산(龍虎山)【군(郡) 북쪽에 있는데, 군인(郡人)들이 진산(鎭山)으로 삼고 있다. 】사방 경계는 동쪽으로 정녕(定寧)에 이르기 9리, 서쪽으로 바다 어귀[海口]에 이르기 25리, 남쪽으로 철산(鐵山)에 이르기 14리, 북쪽으로 인산(麟山)에 이르기 9리이다.
호수가 3백 79호, 인구가 1천 1백 32명이며, 군정(軍丁)은 익군(翼軍)이 85명, 수성군(守城軍)이 27명, 선군(船軍)이 45명이다.
입진성(入鎭姓)이 6이니, 최(崔)【전주(全州). 】·석(石)【충주(忠州). 】·강(康)【영광(靈光). 】·서(徐)【안산(安山). 】·변(邊)【광주(廣州). 】·여(呂)【곡성(谷城). 】이며, 용주 이언(龍州伊彦)의 입진성(入鎭姓)이 8이니, 염(廉)【용담(龍潭). 】·오(吳)·최(崔)【해주(海州). 】·한(韓)【장사(長沙). 】·안(安)【수원(水原). 】·조(趙)【임주(林州). 】·오(吳)【덕안(德安). 】·장(張)【장연(長淵). 】이다.
간전(墾田)이 8천 3백 18결이다.【논이 3분의 1에 약하다. 】땅은 기름지고 메마른 것이 반반씩이며, 어염(魚鹽)의 이(利)가 있다. 토공(土貢)은 표범가죽·여우가죽·삵가죽·수달피(水獺皮)·옻·족제비털·어교(魚膠)·동(銅)·철(鐵)·지초(芝草)요, 약재(藥材)는 감출(甘朮)이며, 토의(土宜)는 오곡과 뽕나무·삼[麻]·닥나무·왕골·배·밤이요, 토산(土産)은 밴댕이[蘇魚]·조기[石首魚]·민어·준치·홍어·넙치·세린어(細鱗魚)·오징어·상어·큰새우·굴·도아조유(島阿鳥油)이었다. 염소(鹽所)가 3이요,【가마[盆]가 27인데, 현(縣) 서남쪽에 있다. 】자기소(磁器所)가 1이니, 군(郡) 동쪽 한전동(閑田洞)에 있다.【품질이 중품이다. 】
읍 석성(邑石城)【둘레가 2천 7백 72보(步)이다. 】관(館)이 1이니, 양책(良策)이다. 요해처(要害處)는 진곶(辰串)·오도곶(吾道串)·소위포(少爲浦)【모두 군(郡) 서쪽 압록강 가에 있다. 】와 석곶입소(石串立所)【군(郡) 남쪽에 있다. 】이다. 봉화가 4곳이니, 군서산(郡西山)【북쪽으로 인산(麟山) 도산(刀山)에 응하고, 남쪽으로 철산(鐵山) 웅골산(熊骨山)에 응한다. 】과 수로(水路)의 석곶입소(石串立所)【남쪽으로 철산 소곶입소(所串立所)에 응하고, 북쪽으로 소위포입소(少爲浦立所)에 응한다. 】·소위포입소(少爲浦立所)【북쪽 진곶입소(辰串立所)에 응한다. 】·진곶(辰串)【북쪽으로 오도곶(吾道串)에 응한다. 】·오도곶(吾道串)【북쪽으로 인산 우리암(亐里岩)에 응한다. 】이다. 용호사(龍虎寺)가 성내(城內)에 있다.【절 동쪽에 은행나무가 있는데, 마른 지 이미 5, 6년이 되었으나, 우리 태종(太宗) 갑오년에 성을 쌓고 인물(人物)이 다시 성(盛)하게 되니, 그 나무도 다시 살아났다. 】
신증동국여지승람 지리지
용천군(龍川郡)
동쪽은 의주(義州) 경계에 있는 양책관(良策館)까지 19리, 북쪽은 같은 주의 경계까지 19리, 남쪽은 철산군(鐵山郡) 경계까지 22리, 서쪽은 바닷가까지 40리이고, 서울에서는 1천 1백 7리 떨어졌다.
[건치연혁]본래는 고려의 안흥군(安興郡)이었는데, 현종 5년에 용주 방어사(龍州防禦使) 고을로 일컬었다가 뒤에 용만부(龍灣府)로 고쳤고, 충선왕 2년에 지군사(知郡事)로 고쳤다. 본조 태종 4년에 의주이언(義州伊彦)으로 하여 군(郡)에 붙였다가 13년에 준례에 따라 지금 이름으로 고쳤다.
[산천]용골산(龍骨山) 일명 용호산(龍虎山)이라고도 하는데, 군의 동쪽 8리에 있는 진산(鎭山)이다. 서쪽으로 큰 바다에 임하고, 북쪽으로 압록강을 바라보며, 강 밖에는 송골(松鶻) 여러 산이 책상 앞에 있는 듯하여 가장 좋은 경치이다. 용안산(龍眼山) 군의 서쪽 20리에 있다. 바다 군의 서남쪽 40리에 있다. 사위포(沙爲浦) 군의 서쪽 30리에 있다. 장천(長川) 성안에 있는 서산(西山)에서 나와서 동쪽으로 흘러 성의 동문(東門)에 이르러 다시 바뀌어서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신도(薪島) 군의 서쪽 60리에 있다. 대우도(大牛島) 군의 남쪽 80리에 있다. 삼도(蔘島) 군의 남쪽 29리에 있다. 신지도(信知島) 군의 서쪽 62리에 있다. 사자도(獅子島) 군의 서쪽 30리에 있다. 오도도(吾道島) 군의 서쪽 39리에 있다. 마도(馬島) 군의 남쪽 45리에 있는데, 어량(魚梁)이 있다. 월로도(月老島) 군의 남쪽 32리에 있다. 양량곶(梁良串) 군의 서쪽 35리에 있다. 용암(龍巖) 군의 서쪽 45리에 있다. 조수(潮水)가 왕래하는데, 바위 위에 용의 발톱 자국이 있다.
[토산]사(絲)ㆍ삼[麻]ㆍ밴댕이ㆍ조기ㆍ넙치ㆍ대하(大蝦)ㆍ숭어ㆍ홍어ㆍ굴[石花]ㆍ토화[土花]ㆍ조개ㆍ낙지ㆍ민어ㆍ준치ㆍ오징어ㆍ상어ㆍ부레[魚鰾]ㆍ제호유(鵜鶘油)ㆍ지치(紫草), 무명석(無名石) 유산(柳山)에서 나온다.
[불우]용호사(龍虎寺) 군성 안에 있다. 절 앞에 은행나무가 있는데, 한 뿌리에 두 줄기이며, 혹시 오래 말랐다가도 다시 소생하는데, 이렇게 하기를 두세 번 하였다. 불정사(佛頂寺) 성안에 있다. 원통사(元通寺)ㆍ원적사(元寂寺) 모두 용골산에 있다.
[고적]고용주(古龍州) 군의 서쪽 20리에 있다. 유등정폐현(柳等井廢縣) 군의 남쪽에 있다.
****************
'세계삼한역사 > 지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平安道]8.대동진(大同鎭)은 철산(鐵山) (0) | 2011.03.16 |
---|---|
[平安道]7.요동진(遼東鎭)은 의주(義州) (0) | 2011.03.16 |
[平安道]5.임조부(臨洮府)는 위원(渭原) (0) | 2011.03.16 |
[平安道]4.천수부(天水府)는 영원(寧遠) (0) | 2011.03.16 |
[平安道]3.운중부(雲中府)는 삭주(朔州) (0) | 2011.03.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