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지리

감산사(鉴山寺)와 금산사(金山寺)

한부울 2010. 7. 2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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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하필기(林下筆記) 제35권  벽려신지(薜荔新志)

전라도의 행정구역 중 옛날의 순천부(順天府)는 지금의 창평(昌平)이고, 청주부(靑州府)는 낙안(樂安)이고, 여남부(汝南府)는 광주(光州)이고, 서안부(西安府)는 진안(鎭安)이고, 연평부(延平府)는 남평(南平)이고, 염주부(廉州府)는 영산(靈山)이고, 계림부(桂林府)는 전주(全州)이고, 동평부(東平府)는 제주(濟州)이고, 호주부(湖州府)는 장흥(長興)이다.

 

(생략)임하필기에서 기록한 전라도 지역의 계림부(桂林府)는 확증적으로 조선이 대륙에 있었음을 밝히는 기록 입니다. 물론 임하필기의 전라도 계림부(桂林府) 그 외의 기록도 훌륭한 기록 이지만,현재의 지나 대륙의 계림부(桂林府) 관련 자료를 보면 충격적인 사실이 있습니다. 한반도에 있는 금산사 라는 사찰이 지나 대륙에도 있는데 현재 지나 대륙의 금산사는 계림시(桂林市) 전주현(全州縣)에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유원의 "임하필기"의 기록에서는 전라도 지역의 계림부(桂林府)는 전주(全州)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참으로 놀랍고 충격적인 기록이 아닐수 없습니다.[천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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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림시

 

감산사(鉴山寺)

 

 

鑒(鉴)거울감-桂林 阳朔 鉴山寺

位于阳朔县月亮山旅游凤景区的云集山下。始建于唐开元初年(公元713年),是市最早的古寺之一,历经宋元明清等朝代,其香火旺达1200余年。据史料记载,唐代著名高僧鉴真大师第五次东渡日本未果,由海南岛返回扬州途中,乘水路从梧州抵达桂林,在桂林休整一年,期间鉴真大师常在鉴山寺讲学授戒。鉴山寺属仿唐佛教建筑,其规模之大,堪称广西最大寺院。寺名由中国著名书法家,已故中国佛教协会会长赵朴初题。由一代名僧妙湛大和尚高徒,上过三个大学的本如法师出任该寺方丈。

鉴山寺的建筑古朴典雅,雄伟壮观,仿唐代古建筑风格,总建筑面积5589平方米;建筑群体坐南向北,主要殿堂是典型古寺布置方式定位,中轴设有照壁、山门、天王殿、大雄宝殿、藏经阁;东西向设有观音殿、文殊殿、普贤殿、地藏殿、钟鼓楼、画廊、碑亭;各殿堂是供游客游览、了解佛教文化渊源、进行佛事交流活动、进香参拜的场所;山门东西两侧设有斋堂、香客楼以满足佛教信徒用餐及住宿。寺内设置亨哈二将、四大天王、弥勒佛、韦驮菩萨、释迦牟尼佛、阿弥陀佛、药师佛、观音菩萨、普贤菩萨、地藏菩萨、文殊菩萨、十八罗汉等48尊佛像;其中在18米高的大雄宝殿内供奉的“三世佛”高达7米。

鉴山寺融朝圣观光、敬香、礼佛等佛教活动为一体。它地理环境优越,与月亮山、大榕树、聚龙潭等临近景点串汇成一大旅游风景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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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州湘山寺

                                                      대륙계림시 全州湘山寺妙明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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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金堤市) 금산면(金山面) 금산리(金山里)에 있는 절. 599년(백제 법왕 1)에 창건했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고, 766년(신라 혜공왕 2)에 진표율사(眞表律師)가 중건했다. 1598년 임진왜란 때 불타고, 현재의 건물은 1626년(인조 4)에 재건된 것이다. 이 절은 935년 후백제의 신검(神劍)이 그의 아버지 견훤을 가두었던 곳으로 유명하며 신라 법상종(法相宗)의 근본도량(根本道場)이었다. 경내에는 국보 제62호로 지정된 미륵전(彌勒殿)을 비롯하여 보물로 지정된 석련대(石蓮臺)·석종(石鐘)·오층석탑(五層石塔)·육각다층석탑(六角多層石塔)·혜덕왕사진응탑비(慧德王師眞應塔碑) 등이 있다.


금산사(金山寺)

 

금산사 전경금산사(金山寺)는 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본사 이다. 모악산 도립공원 입구에 위치해 있다.

 

역사


백제 법왕 원년(599년)에 창건되었고 진표율사에 의해서 중창 되었다.

후백제 935년에 장남 신검(神劍)에 의해 견훤이 유폐되었다.

고려 문종 33년(1097년)에 혜덕왕사가 재중창하여 전성기를 이루었다.

고려 충숙왕 15년(1328년)에 원명 해원에 의해 중창 되었다.

선조 25년(1592년)에 임진왜란시에 처영 뇌묵대사가 승병의 거점지로 활용 되었다.

선조 29년(1596년)에 정유재란시에 왜군에 의해 화재로 소실되었다.

인조 13년(1635년) 수문대사에 의해서 대사구 일부를 재건하였다.

1725년에 지안대사에 의해 화엄 대법회를 개최하였다.

1863년~1907년 일제때에 용선선가 가람을 수호하다가 광산업자들에 의해 순교하였다.

1961년에 송월주 스님이 금산사 주지로 취임후에 도영, 도법, 평상, 원행 스님에 의해 대사구가 완전히 복원 되었다.


문화재

 

                                                       금산사 미륵전(국보 62호) 

 

                                                금산사 육각다층석탑(보물 제27호) 

 

 

                                                     금산사 당간지주(보물 제28호)

 

석련대(石蓮臺)(보물 제23호) 팔각석등(보물 제828호) 노주(露柱)(보물 제22호)

혜덕왕사 진응탑비(보물24호) 금산사 오층석탑(보물25호) 심원암 북강삼층석탑(보물29호)

금산사 대장전(보물827호) 금산사 방등계단(보물26호)


사건


1986년 12월 금산사 대적광전이 원인 모를 화재로 완전 소실되어 1988년 복원에 착수하여 원형 복원되었다.

2006년 금산사 미륵전 안에 있는 삼존불상 중 법화림 보살상이 장마에 의해 등판 부분의 흙이 떨어져 나가 크게 훼손 되었다.

KBS 드라마 태조 왕건 촬영지로 이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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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이전의 기록은 모두 소실되어 《삼국유사》나 《삼국사기》 등을 인용하여 사적기(事蹟記)가 만들어졌는데, 금산사의 창건은 599년(백제 법왕 1)에 왕의 자복(自福)사찰로 세워진 것이라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지금까지 전하는 바는 진표(眞表)가 762년(신라 경덕왕 21)부터 766년(신라 혜공왕 2)까지 4년에 걸쳐 중건(重建)하였으며, 1069년(문종 23) 혜덕왕사(慧德王師)가 대가람(大伽藍)으로 재청하고, 그 남쪽에 광교원(廣敎院)이라는 대사구(大寺區)를 증설하여 창건 이래 가장 큰 규모의 대도량(大道場)이 되었다.


1598년 임진왜란 때 왜병의 방화로 미륵전(彌勒殿)·대공전(大恭殿)·광교원(廣敎院) 등과 40여 개소에 달하는 산내 암자(庵子)가 소실되었다. 그러나 1601년(선조 34) 수문(守文)이 재건의 역사(役事)를 벌여 1635년(인조 13)에 낙성을 보았다. 고종(高宗) 때에 이르러 미륵전·대장전(大藏殿)·대적광전(大寂光殿) 등을 보수하고, 1934년에 다시 대적광전·금강문(金剛門)·미륵전 등을 중수하였다.


금산사와 인연이 있는 고승(高僧)은 혜덕왕사(慧德王師) 이외에도 도생승통(道生僧統)·원명(圓明)·진묵(震默)·소요(逍遙)·남악(南嶽) 등 대사가 거쳐 갔거나 죽거나 하였다.


주요 건물로는 미륵전(국보 62)·대적광전(보물 476)·대장전(보물 827)·명부전(冥府殿)·나한전(羅漢殿)·일주문(一柱門)·금강문(金剛門)·보제루(普濟樓)등과,방등계단(方等戒壇)·5층석탑(보물 215)·6각다층석탑(보물 27)·석련대(石蓮臺:보물 23)·석종(石鐘:보물 26)·당간지주(幢竿支柱:보물 28)·혜덕왕사진응탑비(慧德王師眞應塔碑:보물 24)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