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SINA-신중국

거짓의 역사를 믿는자가 바까총이다.

한부울 2009. 7. 17. 21:24

거짓의 역사(반도사, 일본서기)를 믿는자가 바까총이다.

 

천번 만번을 이야기해도 모자라지 않을 성 싶은 것은 바로 반도사관이 주는 병폐이고 그에 따른 폐단이다.

폐단이 무엇인가?

우리스스로를 왜소하게 만들어 한반도에 가두고 열등하고 자학하게 만드는 바까총이 되는 일이다.

때문에 반도사관은 우리가 마땅히 버리고 퇴치해야 할 무서운 바이러스이다.

이것은 우리스스로 허약하게 만들고 나약하게 만드는 마취제나 마찬가지고 이러한 마취기운이 우리 몸속에 잠복되어 민족역사가 주는 아픔이나 고통을 모른다는 문제이다.

이러한 현상 때문에 하루빨리 시정하고 고쳐야 할 대상인 것이다.


오늘 인터넷 한 일간지에 이런 기사가 있다.

지난 5월 한 달 동안 지식경제부 산하 우정사업본부가 주최하여 응모를 받은 2009년 '제10회 보은의 달 편지쓰기 대회'에서 경북 봉화읍에 거주하는 일본인 부인 이노세 요시미((猪瀨良美, 41세, 일본 이바라키현 출신)씨가 바까총 카메라에 관한 글로 일반부 최고의 영예인 대상을 수상한 글에서..이노세씨는 한국과 일본과의 잔혹한 옛날 역사에 대해 어머님은 항상 미소를 머금고 사신다고 말한 그는 '바보도 조선인도 쓸 수 있다'는 '바까총 카메라'란 말을 두고 일본이 한국 사람을 너무 무시하고 업신여겼다는 사실을 알고 '너무 너무 마음이 아프고 잘못된 역사가 원망스럽고, 모르는 것도 죄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는 기사가 있다.

몇 구절도 안 되는 글에서 풍기는 의미는 우리들을 순간 낮 뜨겁게 하고 있다.

아니 민족 구성원전체를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가슴을 칼로 도려내는 듯 아프게 하고 동시에 부끄럽게 하는 표현이라고 느낀다.

바까야로...일본어로 바보녀석이란 뜻이란다.

우리가 얼마나 그들에게 바보같이 굴었으면 그런 취급을 아직까지도 받고 있는가 생각하게 하는 일이다.


이것은 일본인도 지적했다시피 잘못된 역사 때문이다.

잘못된 역사에서 일본은 일본서기가 있고 한국에는 반도사가 있다.

반도역사를 고치지 않고 이대로 방치한다면 일본인들에게 지속적인 바까총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반도사관이 태동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은 우리가 충분하게 알고 있다.

그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우리역사만이 무사하리라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고 더군다나 우리민족자존을 내세우기엔 우리스스로가 너무 약했으며 힘이 없었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 나라가 부강하고 볼일이다.

나라가 힘이 없어 이리저리 치이고 그것도 모라라 타겟이나 희생물로 존재할 때 그 구성원인 민족이나 백성은 천대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고 서럽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불행하게도 조선 말기엔 그랬다.

아시아고려, 대륙조선사관으로 하는 관점에서 보면 힘이 없었다고 하기 보다는 너무 강하고 거대했기 때문에 주 표적된 것이라고 해야 맞다.

그것에 시대적 발단은 서양세력과 동양세력이 충돌한 문화전쟁이기에 하는 말이다.

하지만 서세의 빠른 변화를 읽지 못하고 문화적 구태에 벗어나지 못하고 안주하고 방심하다가 19세기 유럽에서 동서아시아대륙 즉 유라시아 침탈 야욕이 유행병처럼 번져가던 시점에서 東走하던 유럽서세 大小제국들에 의해 타깃(target)이 된 조선이 결국 그들의 집요한 공격으로 도저히 지탱할 수가 없어 마침내 무너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대륙조선이 지금 동양사에는 완전히 사라지고 존재자체가 없다.

그런 식으로 타깃이 된 대륙조선은 결국 이리저리 갈기갈기 찢겨 서세와 일제에 의하여 농단 되었고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어지고 만 것이다.

이제 와서 막상 찾으려 해도 싶지 않다.

결국 대륙조선의 한 지파를 강제로 몰아 한반도에 가두고 그것을 근원으로 하는 반도역사가 탄생되었던 것이다.

반도사는 대륙조선의 일부를 한반도에 집어넣고 왜소하게 줄인 역사라고 보면 타당하다.

이와 같은 짓은 19세기말 20세기 초에 일어난 엄청난 역사 음모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주체는 서세의 사주 받은 일제이다.

일제는 대륙조선이 동방의 대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존재하지도 않았던 명, 청을 대국으로 삼아놓고 그러한 명, 청에게 사대하는 속국이란 딱지까지 붙여 조선을 폄하했다.

또한 동양사에 진정한 대륙정복왕조로서의 가치가 대륙조선에 분명하게 있었음에도 그러한 사실을 숨기고 통째로 왜곡하여 나쁜 점만 몰아 당파분쟁만 일삼던 한심한 나라로 만들어 놓고 일제가 보호명목으로 짓밟는 동기까지 부여했다.

그러한 혼란스러운 상황을 이용하고 기회로 삼아 그들에게 유리한 역사를 재창조하고 그것을 디딤돌로 하여 일어선 것이 바로 동양신흥세력인 일제이고 일제가 만든 역사 바로 신일본역사인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일본서기(日本書紀)라고 한다.

일제는 왜구무사정치집단이다.

그러한 일제에 음모가 주도되었다고 하는 점에서 불운이며 뼈아픈 회한이 아닐 수 없다.

그들에게 존재하는 역사는 두말 할 것도 없이 무도한 왜구역사이다.

왜구역사는 침탈의 역사이며 노략질의 역사이며 도둑질의 역사 말고는 특별하게 내세울 것이 없는 참으로 부끄러운 역사이다.

이러한 왜구역사의 대한 열등감으로 인하여 내면적인 부끄러움은 우리가 상상 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고 그것이 집념으로 변해 우리의 역사를 무지막지하게 찬탈하고 철저하게 파괴한 것이라고 보아지는 대목이다.

동양신흥세력으로 등장한 일제는 이러한 부끄러운 역사에 대한 열등의식이 국제정치적인 부담으로 작용하여 역사 탈바꿈을 궁리하였을 것이고 마침내 실행에 옮긴 것이라고 해야 한다.

그 때부터 일제는 동양사전체를 자의적으로 해석 조작하고 곧 멸망할 대륙조선을 동양 대륙역사에서 완전히 삭제하는 것은 물론이고 존재자체를 말살하고자 작심했을 것이다.

대륙조선 대신에 한반도내에 식민지 조선을 만들어 놓고 대륙조선이 아닌 한반도조선으로 둔갑시켜 버렸던 것이다.

19세기 말 대륙조선의 멸망은 그들의 역사탈바꿈을 촉진시키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고 반도역사를 조작 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빌미가 되었음은 두말 할 것도 없다.

이러한 상황을 지금 읽을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일제의 강압통치시대가 끝난 후 지금까지 잘못된 역사를 바로 고치지 못한 우리의 고매한 역사학자들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조금만 역사를 안다면 눈에 보이는 이치도 숨기려고 하고 들어나지 않게 덮어두려고만 한 사실이 지금 역사학자들을 온전하게 볼 수 없는 문제이다.

최소한 그들이 양심적으로 잘못된 역사라고 인지했다면 만사를 제쳐두고 즉시 고치거나 수정코자 노력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그러한 거짓의 역사, 조작의 역사를 고집하고 지키고자 하면서 신봉하기에 바빴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작태가 바로 바까총이란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그들도 인간이기에 두려움이 없을 수 없고 생명을 보존하려는 마음은 본성이 있었기에 일제 강압통치, 무력통치가 두렵고 무서울 수 있고 가식적으로 피할 수 있었다면 해방 후 일제가 물러가고 난 후에 그들이 나서 마땅히 고치고 잘못된 점을 수정하려고 애를 써야 했다.

반도사란 자체를 화구통에 집어넣어버리고 폐기하려고 노력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수수방관 오히려 권력을 만들고 기득권을 차지하여 빼앗기지 않으려고 빠둥거리며 자리에 연연하였다.

친일 할 때 민족을 팔아 호의호식하면서 일제권력으로부터의 보호받고 특권과 무한의 혜택을 누리고서도 어쩔 수 없는 피해자인 척하는 것은 가당찮은 이야기다.

뻔뻔함이라 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지키고자하는 역사는 일제가 만들어 준 거짓의 역사이다.

그것을 보존하고 지키려는 것은 또 다시 일제 하수인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역사학자들이 어떻게 반도사관이란 틀을 벗어던질 수가 있겠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바까총이라고 일본인들이 조롱하는 것이다.

다 알다시피 찬란한 우리삼한 역사에서 언제나 꼽사리낀 왜구역사는 서기400년부터 시작하였고 해적, 해구의 신분으로 강탈, 강도, 살인, 강간의 극악무도한 피해역사만 우리에게 안겼다.

왜구역사는 인류역사에서 처음부터 기생하지 않아야 할 역사이다.

일찍이 무도하기 짝이 없는 분별력조차 없는 그들에게 문화적인 혜택과 가르침을 준 부모 같은 조선의 은덕을 배반하고 조선말엽 득세하는 서세에 빌일 붙어 배반하고 은덕을 내팽개친 배반의 역사일 뿐이다.

지금의 일본인들은 스스로를 왜구라고 인정하길 싫어 할 것이다.

왜냐 하면 한없이 부끄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19세기까지 해적 해구신분으로 동남아 등지에서 활동하면서 서세비호아래 무사정치집단으로 변신하였고 마침내 조선의 쇠락을 기회삼아 신흥정치세력으로 등장한 그들은 왜구란 이미지를 떼고 싶어도 땔 수가 없다.

인간답고 사람이 존재한 역사가 아닌 도적과 살인, 살육의 역사만이 존재한 역사를 그들의 역사로 남기고 싶은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방법을 찾았으며 그들의 추악한 역사를 감추며 미화하고자 총력을 기우린 것이다.

지금의 일본인들은 왜구역사의 근원이다.

일본역사가 왜구역사가 되는 것은 근세역사에서 꿰맞춘 것이다.

일본역사를 차용하여 탈바꿈 한 것이 바로 그들의 근세역사이다.

왜구가 일본이 된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선 엄청난 변신이 아닐 수 없다.

한마디로 유리 구두(열도)를 신은 신데렐라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역사가 신데렐라로 변신한 것과는 반비례적으로 우리민족역사는 졸지에 거지신세가 되어 누더기가 되 버렸다.

소설처럼 처지가 180도로 뒤 바뀌어 버린 역사?

거짓의 신데렐라 역사가 일본역사라고 감히 正史라고 할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들에게 잠재된 열등의식을 감추고자 한 거짓역사 일 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우리의 역사를 멸시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들은 100년간 무서운 집념아래 철저하게 역사 조작하였고 그들의 박복한 처지의 역사를 감쪽같이 뒤 바꿔놓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의 일본인들은 뒤집히고 뒤틀리고 정의가 사라진 그들의 역사를 마치 사실처럼 여기며 진실처럼 받아들인다.

웃기는 것은 우리역사학자들 마저 그러한 엉터리 같은 역사를 정사로 취급하는 것은 물론이고  중요자료로 활용하면서 이젠 떠받들기 까지 한다.

그러기에 우리들을 일본인들이 바까총이라고 조롱하는 것이다.

이제 친일역사학자들이 자의적으로 반도역사를 고치고 되돌려놓기엔 그들의 머리는 굳어지고 말았다.


바까총

바보라고 멸시하고 조롱하는 말이다.

일본인들이야 이러한 심사를 겉으론 숨기면서 속으로 부듯해 하겠지만 한국인인 우리입장에서는 한마디로 창피스럽고 죽을 맛이다.

일본인을 미화하고 문화민족으로 둔갑하게 한 거짓의 역사를 어릴 때부터 지속적으로 가르치고 사실처럼 믿도록 만든 결과가 이렇듯 엄청난 것이었음을 미처 깨닫지 못하였다고 하는 것은 또다시 바까총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대륙조선의 역사를 당당하게 이어받은 한국이라면 그들의 거짓 역사 속에 나약한 식민지조선 한국인(조센징)아닌 대륙조선의 당당한 한국인으로서 오히려 그들을 나무라고 훈계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일제가 반도조선을 병탄하고 거짓으로 역사 조작할 때 100년 후에 벌어질 현상을 미리 예상하고 기획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 만큼 치밀하고 철저했다.

그들의 열등한 역사를 100 년이 지난 지금 비로소 거짓 역사를 완성한 것이다.

19세기말까지 멸시받고 천시 당하던 열등한 왜구의 이미지를 불과 100년 만에 이렇듯 바꾸어놓고 말았다.

바까총

일제가 망령이 된 지금까지 우리를 업신여기며 멸시하도록 기획한 반도역사를 사실에 입각한 둘도 없는 正史처럼 믿으며 신주 모시듯 하는 우리의 얼빠진 역사학자들 때문에 우리 민족 전체가 바까총이란 바보소리를 들어야 하니 어찌 한탄스럽지 않겠는가?

x할 바까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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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도 조선인도 쓸 수 있는 카메라?

[오마이뉴스]09.07.17 14:39

 

편지쓰기 '대상' 일본인 며느리 "조선인 비하 너무 마음이 아파요"


바까총 카메라


일본어를 공부하다 보면 참 놀랍고도 화가 나는 표현이 있다. '일회용 카메라'를 뜻하는 '바까총 카메라'라는 말이다. 요즘은 '츠카이스테 카메라'라는 말로 '한번 쓰고 버리는 카메라'라는 의미의 단어를 많이 쓰지만, 아직도 나이든 사람들은 일회용 카메라를 바까총 카메라라고 흔히 말한다.


일본어의 바까총은 '바보 조선인'의 준말이다. 다시 말해 '바보도 조선인도 쓸 수 있는 카메라'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단어이다. 동경에서 근무할 때 같은 사무실에 일하던 게이오대학을 나온 재원이었던 코즈카타씨에게 나는 "바까총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의 대답은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김상, 저는 부모님에게 그 말은 절대 입에 담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고 배웠습니다. 특히 한국(조선)사람 앞에서는 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사실 나는 그 의미를 알고 있었지만, 전혀 모르는 기색을 하고 넌지시 다시 물었다. "아니 왜요? 나는 상관 없으니까, 대답해 주세요." 그는 한참을 망설이더니 나에게 머뭇 머뭇거리는 말투로 "바까총이란 바보 조선인이라는 표현으로, 흔히 말하는 바까 조센징의 준말입니다. 따라서 아주 나쁜 말이고, 의미를 잘 모르고 쓰는 바까총 카메라라는 말 역시도 절대로 써서는 안 되는 말입니다"라고 대답을 했다.


그의 부모님에게 어린 시절부터 가정교육을 철저히 받아서인지 그는 나에게 너무 조심스럽게 대답을 했다. "그래서 저는 그냥 일회용 카메라를 츠카이스테 카메라라고 말하고 반드시 그렇게 써야 한다고 배웠습니다"라고 말을 정리했다.


갑자기 일본인들의 조선(인) 비하에 관한 단어를 서두에 꺼낸 이유는 지난 5월 한 달 동안 지식경제부 산하 우정사업본부가 주최하여 응모를 받은 2009년 '제10회 보은의 달 편지쓰기 대회'에서 경북 봉화읍에 거주하는 일본인 부인 이노세 요시미((猪瀨良美, 41세, 일본 이바라키현 출신)씨가 바까총 카메라에 관한 글로 일반부 최고의 영예인 대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 일본인 우체국 편지쓰기 대회 ⓒ 김수종 


일본인들의 조선인 비하를 시어머님께 사과 

 

우정사업본부는 국민정서 함양과 청소년들에게 편지쓰기 문화 보급은 물론, 보은의 달을 맞아 평소 사랑하고 존경하는 분들에게 그동안의 노고와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며 국민의 편지쓰기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하여 지난 5월 한 달 동안 전 국민을 대상으로 편지글을 공모했다.


주최측 관계자에 따르면 "이노세씨의 '우리 오까상께'라는 제목으로 쓴 보은의 편지가 대회 최고의 영예인 대상(지식경제부 장관상, 트로피, 부상)을 차지하는 영광을 안았다"고 한다. 이노세씨는 지난 2000년 경북 봉화군에 사는 남편 이동수(46)씨를 신앙의 인연으로 만나 결혼했다. 그는 평소 지극 정성으로 자신을 친딸 이상으로 자상하고 살갑게 대해주는 시어머니께 그동안 열심히 익혀온 한글로 처음 편지를 썼다.


한국과 일본과의 잔혹한 옛날 역사에 대해 어머님은 항상 미소를 머금고 사신다고 말한 그는 '바보도 조선인도 쓸 수 있다'는 '바까총 카메라'란 말을 두고 일본이 한국 사람을 너무 무시하고 업신여겼다는 사실을 알고 '너무 너무 마음이 아프고 잘못된 역사가 원망스럽고, 모르는 것도 죄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일본시대 어머님의 친정아버님은 일본사람이 만든 철도에서 일을 했는데 일본이 철수하고 퇴사한 후 갖은 고생 끝에 병들어 돌아가시고, 어머님은 초등학교 4학년을 끝으로 학교를 못 다니고, 남은 가족들은 일본사람들의 지배 때문에 고생고생 하신 일들이 가슴에 미어온다'고도 썼다.


한국에 와서 첫아이 유산의 슬픔이 채 가시기 전 둘째 셋째 아이를 출산하였을 때 단숨에 달려와 "친정어머니라 생각하고 사양치 말고 뭐든지 말하라!"라며 "머리에서 발끝까지 몸을 닦아주고 꼼꼼히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주셨다"며 그 애틋한 정성과 고마움에 대해 편지글로 옮겼다.


일본 친정에 전화라도 한 번 할라치면 다른 사람들은 전화요금 때문에 이 눈치 저 눈치 눈치를 살피지만 이노세씨는 그런 근심 걱정 하나 없이 살도록 해주시는 시어머니의 배려가 너무 너무 고맙단다.


또한 그는 '손자들에게 할머니께서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잘 들려주셨으면 좋겠다면서, 어머님의 건강과 행복을 빌고 또 빈다'며 끝을 맺었다. "처음 결혼하고는 일본에도 자주 건너가고 정이 들지 않아 많이 힘들었으나, 지금은 아이도 두 명이나 생기고 많이 적응하고 이웃들과 정도 많이 들어 행복하게 산다"며, 뜻밖의 큰 영광스런 수상소식에 "정말 기쁘다"라며 "상금은 아픈 남편의 병원비에 보태 쓰겠다"고 말했다.


한편, 시상식은 지난 16일(목) 서울 중앙우체국에서 열렸다.


다음은 이노세 요시미씨의 편지 전문이다.


우리 '오까아상'(어머님)께


따뜻한 봄이 왔다는 소식을 전해주는 목련이나 벚꽃들은 언제 사라졌는지 벌써 새잎들이 우거진 계절이네요. 어머님, 다리는 어떠세요? 속은 괜찮으시고 잘 잡숫고 계시는지? 우리는 덕분에 잘 지내고 있어요. 9년 전에 제가 일본에서 시집 와서 한번 일본말로 쓴 편지를 드렸지만, 이렇게 한국말로 어머님께 편지를 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죄송한 마음이 들어요.


어머님, 저는 지금도 어머님이 어떻게 일본사람을 며느리로 받아들이셨는지 신기해요. 9년 전에 어머님이 처음 저를 보시고 '요꾸 기마시다네!(잘 왔네)"라고 일본말로 인사 해주셨어요. 생각이 나세요? 제가 예상치 못했던 어머님의 입에서 나온 일본말... 정말 반가웠습니다. 그때 저는 한국말이라고 하면 '안녕하세요'밖에 몰랐으니까요. 그 배경에 한국과 일본 사이의 잔혹한 역사가 있다는 것을 어머님의 미소 덕분에 잊고 지냈습니다.


어머님, 셔터만 누르면 자동으로 필름을 감아주는 카메라가 있잖아요. 옛날에 그 카메라는 일본말로 '바까총 카메라'라고 불렀어요. 그 카메라의 이름이니까 저도 당연히 '바까총 카메라'라고 불렀지요. 근데 나중에 교회언니한테 놀라운 사실을 들었어요. '바까총 카메라'의 뜻은 '바보도 조선 사람도 쓸 줄 아는 카메라'래요. 그 사실을 알고 너무 마음이 아프고, 잘못한 역사가 원망스러웠고, '모른다'는 것도 죄라고 알았습니다. 모른다고 해도 한민족을 업신여긴 말을 썼는 것은 사실이니까 왠지 무서웠어요.


어머님의 친정 어버님은 일제 시대 때 일본사람이 만들었다는 철도국에 다니셨다고 하셨지요? 집도 '다다미'가 있는 일본식으로 지었는 집에 사셨고, 구두도 신고 다닐 수 있을 정도 유복한 생활을 하셨지요. 그래도 전쟁이 끝나자 일본사람들이 다 일본에 철수하고 아버님은 실업자가 되셨고, 그 후 여러 가지 일을 하시고 노력하셨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졌답니다. 공부를 좋아하는 소녀였지만 어머님은 결국 국민학교 4학년까지 다니고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얼마 후 어머님의 아버님은 병들고 하늘나라에 떠나셨다고...


혹시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지 않았더라면 어머님의 가족은 행복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럴 때마다 가슴이 아파요. 그래도 일본말을 썼던 시절을 가끔 그리워하시는 어머님... 정말 감사합니다. 어머님, 어머님은 결혼하시고 나서도 마음고생을 많이 하셨네요. 아기가 태어나서 기쁨도 잠깐 사이, 남편이 전쟁터의 이슬로 사라졌다고 들었어요. 그때 어떻게 그 슬픔을 견디셨을까?


제가 첫아이를 유산하고 너무 슬퍼서 힘들었을 때, 어머님의 젊은 시대의 아픔을 생각해봤습니다. (그래도 하느님이 데리고 갔는 사람이 제 남편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아이는 또 갖을 수 있잖아)라고 자기 자신을 달래고 또 달랬어요. 뭐 보다 승목이 아빠가(당신의 아들이) 그런 저를 슬픔 속에서 구해주었어요. 그래도 어머님은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을까? 얼마나 우셨을까?


어머님, 그렇게 한이 많은데도 어떻게 그렇게 밝게 웃으시고 남을 배려하는 넓은 마음을 갖고 계시는지...? 제가 처음 분만실에 들어갔을 때 한숨에 달려와 주셨잖아요. 수술로 아이를 낳고 입원하는 동안에도 "친정엄마라고 생각하고, 사양치 말고 뭐든지 말해"라고 다정하게 말씀해주시고, 정성껏 우리 母子를 돌봐주셨지요. 특히 열이 나서 땀으로 젖었던 제 몸을 따뜻한 물수건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꼼꼼하게 잘 닦아주셨던 것을 잊을 수 없습니다. 어머님, 요즈음 전화를 드리면 마지막에 "전화 고맙다"라고 말씀해주시는 어머님, 전에는 용건만 들으시고 전화비가 아깝다고 끊는 것이 바쁘셨는데...


어머님의 건강보다 저의 류마티스 관절염을 걱정해주시는 어머님. 어머님, 정말 친정 엄마 같습니다. 효도 못해드리고 죄송하지만, 어머님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는 우리니까 어머님께 걱정 시키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어머님, 태어났을 때부터 한 달 동안 어머님 품속에서 자란 손자들... 아직 막내가 6살이에요. 나중에 커서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어머님이 옛날이야기를 잘 들려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님 건강하셔야 해요! 그리고 이제부터는 보다 더 많은 행운이 찾아들기를 빌고 또 빕니다.


2009. 5. 20


일본며느리 이노세 요시미(猪瀨 良美) 드림


오마이뉴스  김수종 (kimdaisu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