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

노무현 메시지의 비극

한부울 2009. 5. 28. 14:11
 

노무현 메시지의 비극

[미주한국일보] 2009년 05월 28일(목) 오전 02:57


‘바보 노무현’ -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별명이다.


그는 김영삼 총재(통일민주당)에 픽업되어 부산에서 민정당의 막강한 허삼수를 꺾고 국회의원이 되었지만 YS가 3당 통합을 선언하자 이에 응하지 않는 바람에 뼈아픈 대가를 치렀다. 부산시장과 국회의원 선거에서 잇달아 패배해 정치생명이 거의 끊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이때 부산시민들이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원칙을 고집하는 그를 ‘바보 노무현’이라고 불렀다.


넘어지지 않고 달리는 사람에게는 박수를 보내지 않는다. 넘어졌다 일어나 다시 달리는 사람에게 관중은 열광하는 법이다. 인간 노무현의 매력은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나 달리는 용기와 원칙을 고수하기 위해 불이익을 겁내지 않는 대담함이었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이 바보스러움을 참신함으로 인정한 국민들은 그를 새 시대의 기수로 믿고 대통령으로 뽑았다.


그는 역대 대통령 중 스스로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을 던져버린 사람이다. 공천권 없는 대통령은 당을 휘어잡지 못한다. 그런데도 그는 공천권을 포기하고 당과 청와대의 분리를 지향했다. 검찰과 국세청, 정보원을 주무르지 못하면 야당과 재벌이 대통령을 겁내지 않는 법이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의 통치이념인 권위 타파, 과거 타파를 위해 검찰과 국세청, 국가정보원의 독립 체제를 주장했다. 칼자루를 놓은 대통령이 자신의 이빨과 발톱까지 뽑은 셈이다.


인도의 전설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정글 속 사원 옆에 코브라가 살고 있었는데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고개를 들고 “쉬-” 소리를 무섭게 내는 바람에 신도들이 사원에 오기를 꺼려했다. 이를 안 승려가 코브라를 불러 사람을 물지 말라며 심히 꾸짖었다. 코브라는 뉘우치고 즉시 자신의 이빨을 다 뽑아 버렸다. 이빨이 없으니 공포의 “쉬”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코브라를 귀여워하기는커녕 발로 밟고 던지며 갖은 학대를 하기 시작했다. 견디다 못한 코브라가 스님을 찾아가 자신의 처량한 신세를 하소연 했더니 스님이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널보고 사람을 물지 말라고 했지 언제 이빨 빼라고 했느냐”


힘없는 대통령은 한국 정치풍토에서 말이 먹혀들지가 않는다.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결정적인 실수가 무엇이었는가를 연구한 결과 얻은 답이 ‘힘없는 대통령’과 이로 인한 ‘리더십 부재’였다. 그래서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박근혜의 반대를 무릅쓰며 당청분리를 외면, 공천권을 거머쥐었다. 검찰과 국세청, 정보원도 대통령이 다시 모두 장악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소외계층의 지지로 집권한 정치인이다. 그런데 노무현을 지지하는 이 소외계층이 촛불세력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탄핵을 비롯해 그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이들은 노무현 지지를 촛불로 표시했다.


이 촛불데모에 너무 혼이 난 현 정권이 촛불세력의 뿌리를 없애려고 손댄 작업 중의 하나가 바로 박연차 사건이고 이를 둘러싼 검찰의 오버액션이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으로 이어졌다. 촛불은 앞으로 ‘노무현의 상징’이 될 것이며 보수 세력이 집권할 때마다 골치 아픈 숙제로 등장할 것이다. 국민장을 서울광장에서 열지 못하는 것도 이 촛불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이 남긴 분명한 메시지가 있다. 그것은 전임 대통령에 대한 정치보복 중지다. 그는 죽음으로 과거타파의 메시지를 전한 셈이다.


이철 고문 미주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