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문제

한부울 2009. 5. 26. 14:19
LONG %EA%B8%80%EC%9D%98%20%EB%82%98%EB%A8%B8%EC%A7%80%20%EB%B6%80%EB%B6%84%EC%9D%84%20%EC%93%B0%EC%8B%9C%EB%A9%B4%20%EB%90%A9%EB%8B%88%EB%8B%A4. ARTICLE 풍계리 핵실험장서 수상한 연기…北 4곳 ‘이상동향’

http://blog.daum.net/han0114/17048090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문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문제(North Korea and weapons of mass destruction)는 북한이 주로 핵무기를 개발하면서 야기된 국제 문제이다. 북한은 핵무기의 보유를 주장한다. 대한민국에서는 보통 북핵문제(北核問題)라고 약칭한다. 그리고 미국 중앙정보국은 북한이 상당량의 비소를 화학무기로서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 화학무기는 대포로 운반된다.)


북한은 핵 확산 금지 조약에 1985년 가입했다. 그러나 완전한 사찰을 막아 핵개발의혹이 생겼다. 1993년 북조선은 핵 확산 금지 조약을 탈퇴할 것이라 위협한다. 이때가 1차 북핵 위기이다. 이때의 위기는 1994년 북미 간에 제네바 합의가 체결되어 해소된다. 그러나 북한이 2003년 핵 확산 금지 조약에서 탈퇴함으로써 한반도와 주변국가에 중대한 안보문제를 야기 시키고 있다.


탈퇴이유는 미국이 제네바 합의(Agreed Framework betwee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를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흔히 2차 북핵 위기라고 한다. 제네바 합의란 미국과 북한이 1994년 합의한 것으로 북한의 핵 야망을 제한하고, 북미수교와 경수로제공 등 에너지 지원을 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2006년 10월 9일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에서의 핵 실험이 성공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미국 지질조사국과 일본 지진 당국은 리히터 규모 4.2의 지진을 검출하여 북의 주장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2007년 2월 13일 6자회담이 진행되어 '2.13합의'가 맺어졌다. 합의의 주 내용은 북한의 핵시설 폐쇄와 불능화, 핵사찰 수용, 중유지원 100만톤 상당의 경제적 지원 등이다.


핵무기


2차 대전후 일본에게 강제로 지배당했다가 해방된 한국은 1948년 분단되었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시작되었다 휴전으로 끝났다. 그러나 그 이후 남북은 아직 공식적으로 평화상태를 이루지 못하였다. 엄격히 말해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이다.


1953년 이후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 긴장이 고조되었다. 미 보병 2사단의 한반도 배치와 비무장 지대의 미군배치에 대해 북한은 점령군이라고 간주한다. 몇몇 지역에서 북한군과 미군-남한군은 매우 근접하여 작전 수행 중이며 긴장을 높인다. 이는 1976년 판문점 도끼 살인사건(Axe Murder Incident)을 봐도 알 수 있다.


시간순 사건


1989~2001


1989 : 소련의 동유럽 공산국가들에 대한 지배력이 약화되기 시작하고 냉전이 막을 내린다. 소련의 약화로 조선은 국가 안보 보장과 45년간 지속된 경제지원을 잃게 되었다.


위성사진을 통해 미국은 영변 근처에 새로운 핵시설의 건설을 알게 된다. 미국의 정보 분석가들은 이를 핵무기 개발의 초기단계로 생각했다. 핵확산 금지 조약에 1985년 가입한 북한은 계속 핵시설에 대한 사찰을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이에 대응하여 미국은 북한에 대해, 핵확산 금지조약을 조선이 완전히 응낙하면 북미수교 등 여러 외교 쟁점이 해결될 것이라는 전략을 추구한다.


1991 : 1991년 미국은 남한에 있던 마지막 핵무기를 철수시킨다. 확실한 긍정이 없었기에 핵무기가 남한에 남아있다는 소문이 생겼다. 미국은 핵무기를 1958년 1월에 남한에 배치시켰고, 1967년이 핵탄두 950개로 최고조였다.


1992 : 이해 5월 처음에 조선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한스 브릭스(Hans Blix)가 이끄는 사찰팀이 영변 시설을 방문하는 것을 허용했다. 블릭스와 미국은, 북한이 비밀리에 영변의 5메가와트급 원자로와 재처리 시설을 이용하여 사용 후 연료를 핵무기 급의 플루토늄으로 바꾸고 있다고 의심했다. 조선을 떠나기 전 블릭스는 완전한 장비를 갖춘 사찰팀을 조선에 배치해두고 왔다.


사찰은 잘 진행되지 않았다. 몇 개월간 북한은 반복적으로 사찰팀이 영변의 의심스런 두 곳의 핵폐기물시설을 방문하는 것을 막았다. 국제원자력기구 사찰팀은 조선이 플루토늄 생산을 완전히 보여주지 않고 있음을 알게 된다. '존 스튜와의 일일 쇼'와 진행된 인터뷰에서 제임스 베이커 전 미 국무 장관은 내가 장관시절에 북한은 초보적 수준의 핵무기를 가지고 있었고 지금은 더 발전된 핵무기임이 분명하다는 말을 흘렸다. 그는 1989년에서 92년 사이에 국무 장관이었다.


생물무기와 화학무기


북한의 핵무기 문제


운반체계


대한민국 군 당국은 북한이 다음과 같이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사정거리 53km의 170mm 장사정포 - 10kt급 이하의 핵탄두

사정거리 55km의 FROG-5 지대지 로켓 - 25kt급 이하의 핵탄두

사정거리 70km의 FROG-7 지대지 로켓 - 25kt급 이하의 핵탄두

사정거리 300km의 SCUD-B (화성 5호) 미사일 - 메가톤급 이하의 핵탄두

사정거리 500km의 SCUD-C (화성 6호) 미사일 - 메가톤급 이하의 핵탄두


핵폭탄 제조에 필요한 원료의 양


The Amount of Plutonium and Highly Enriched Uranium Needed for Pure Fission Nuclear Weapons


구분

무기급 플루토늄

농축 우라늄

폭발력

기술적 능력

기술적 능력

kt

저급
기술

중급
기술

고급
기술

저급
기술

중급
기술

고급
기술

1

3

1.5

1

8

4

2.5

5

4

2.5

1.5

11

6

3.5

10

5

3

2

13

7

4

20

6

3.5

3

16

9

5


미국이나 남한의 언론에서 북한핵문제를 보도할 때 사용되는 기준량은 플루토늄 6 kg에 핵폭탄 1발 제조가능의 공식을 대입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이 2007년 현재 무기급 플루토늄 50 kg 정도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세계 최초로 실전사용되어 일본의 히로시마 시에 투하된 리틀 보이는 농축 우라늄으로 제작되었으며, 폭발력은 20 kt 이었고 대략의 사망자는 14만 명이었다. 다른 핵폭탄의 위력을 비교할 때 리틀 보이의 20 kt급 핵폭탄이 자주 비교에 사용된다.


플루토늄탄 보유여부


플루토늄 핵폭탄이란, 나가사키 핵폭탄인 팻 맨을 말한다. 미국에서 상당한 공신력이 있는 핵비확산연구센터(CNS)의 2005년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최고 9기까지의 핵무기를 보유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2003년 2월부터 가동 중인 영변의 5㎿급 원자로에서는 연간 핵무기 1기를 생산할 수 있는 만큼의 플루토늄이 생산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북한은 200㎿ 및 50㎿짜리 원자로를 건설하다가 제네바 합의로 중단했는데, 이 두 시설이 완공되면 연간 37∼50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양의 플루토늄을 생산가능하다고 한다.


농축우라늄탄의 보유여부


농축우라늄 핵폭탄이란, 히로시마 핵폭탄인 리틀 보이를 말한다. 2009년 현재, 북한은 무기급플로투늄 40 kg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무기급 농축우라늄은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파키스탄의 핵개발의 아버지인 압둘 카다르 칸 박사는 북한에 농축우라늄 핵폭탄을 제작할 수 있는 설비와 기술 등을 제공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우라늄 농축기술은 한국이나 일본 등도 모두 보유한 기술이나, 핵폭발이 가능한 정도로의 농축은 IAEA에 의해 철저하게 감시 통제되고 있고 원자력 발전소에 사용하는 정도의 5% 정도의 농축만이 허용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나 이란은 이런 통제가 없어서, 90% 이상으로 우라늄을 농축할 수 있다.


플루토늄은 자연상에 존재하지 않는 물질이며, 반드시 원자로를 가동해야만 얻을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의 플루토늄 생산에 필수적인 영변 원자로는 파괴하거나 봉인하였지만, 우라늄을 농축하는데 원자로가 필요 없다. 우라늄 광산에서 원석을 캐내어 계속 농축하면 핵무기급 농축우라늄이 완성된다.


일부에서는 최소한 20여개의 원심분리기가 파키스탄을 통해 북한으로 유입됐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30%가량 농축된 우라늄 30㎏ 정도만 있으면 원심분리기 25개를 1년 가동해 핵탄두 1개 분량의 HEU(농축우라늄)를 생산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핵무기 1기 분량에 해당하는 양이란 우라늄235 90% 농축도의 고농축우라늄(HEU) 25kg을 의미한다. 플루토늄은 239 농도가 90% 이상, 우라늄은 농도가 80 ~ 90% 여야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다.


북한이 2009년 현재 얼마나 많은 농축우라늄 핵폭탄을 완성하였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소형화기술 보유여부


미국 국방정보국(DIA) 국장은, 핵무기를 500㎏ 이하로 소형화하여 북한의 대포동 2호 미사일에 핵탄두를 탑재할 능력을 갖춰 미국 본토에까지 이르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03년 리비아가 비핵화를 선언하면서, 중국어로 된 소형 핵탄두 설계도가 발견되었다. 북한은 이 중국산 소형 핵탄두 설계도를 입수했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리비아 관리들은 미국 조사관들에게 국제 핵무기 암시장의 일원인 중개상으로부터 5,000만 달러를 주고 이 중국어로 된 소형 핵탄두 설계도를 구입했다고 밝혔다.

 

 

예상피해


1 Mt 급


대한민국의 국방연구원에서는 1메가톤급 핵폭탄이 서울 종로구 세종로 사거리 상공에서 터질 경우, 폭발지점으로 부터 반경 7km 이내의 모든 사람이 사망하고, 따라서 업무 시간대에 반경 3km 내에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300만 명이 전원 사망할 것으로 예상한다.


20 Kt 급


대한민국의 국방연구원에서는 20kt급 핵폭탄이 터질 경우에는, 폭발지점으로 부터 반경 1.2 km 이내의 모든 사람이 사망할 것으로 보고 있다. 1945년 8월 6일, 일본의 히로시마 시에 투하된 미군의 리틀 보이가 20kt급으로서, 보통 핵폭탄의 위력이 히로시마 원폭의 몇 배나 되는가 하는식으로, 그 폭발력을 표시하는 한 기준으로 사용되고 있다. 히로시마의 경우, 20kt급 핵폭발 이후 5개월이 정도 지나기 까지 대략 14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5 Kt 급


미국의 국제천연자원보호협회(NRCD)가 2004년 미 국방부에 제출한 한반도 가상 핵전쟁 시나리오에 따르면, 15kt의 핵탄두 1개가 대한민국 국방부와 미국 제8군이 있는 서울시 용산구 삼각지 500m 상공에서 폭발할 경우 반경 4.5km는 잿더미로 변하고 서울 중심부는 물론 경기도 고양시 일산, 성남시 분당, 수원시까지 핵폭풍과 충격파, 낙진으로 파괴돼 60만∼120만 명의 인명 피해가 날 것으로 분석됐다.


10 Kt 급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위협감소국(DTRA)에서는, 북조선이 10kt급 핵폭탄을 서울에 투하할 경우 최소 34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최소 18만 명의 사망자와 16만 명의 부상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18만 명의 사망자 중 10만 명은 핵폭발 당시 즉사, 8만 명은 낙진 피해로 사망할 것으로 본다.


주요일지


1953년 3월 소련과 원자력 평화적 이용 협정 체결

1962년 영변 원자력 연구소 설치

1963년 6월 소형 연구용 원자로(IRT-2000)를 소련에서 도입

1974년 9월 국제원자력기구(IAEA) 가입

1985년 핵무기 확산방지 조약(NPT)에 가입

1991년 12월 31일 남북한이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에 합의

1992년 국제 원자력 기구 (IAEA)와 원자력 설비시설의 감찰에 관한 특별조약 체결

1993년 IAEA의 영변 원자력 발전소 감찰 요구 북한 측으로 부터 거부

1993년 3월 12일 NPT 탈퇴 선언

1994년 제네바 합의(북한과 미국 간에 핵무기 개발에 관한 특별계약)

1995년 국제 원자력 기구 측에서 북한과 협정 재시도

1997년 국제 원자력 기구는 북한의 협조부실에 비판

2000년 미국의 핵무기 전문가 북한의 지하 원자력 시설 감찰 결과 핵무기 생산에 필요한 시설이 없음 보고

2002년 핵무기 개발 계획을 추진하고 있음을 공개적으로 인정. 이에 따라 미국은 북한에 석유원조 중지시킴

2003년 NPT에서 일방적 탈퇴

2004년 중국의 중재로 6개국 (대한민국, 북한, 중국, 미국, 러시아, 일본) 핵무기 분쟁 회담.

2005년 2월 10일 핵무기 보유 선언

2006년 7월 5일 대포동 2호 미사일 발사

2006년 10월 9일 조선중앙통신사 보도를 통해 풍계리 핵 실험장에서 핵실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이날 오전 10시35분께 함경북도 화대리 지역에서 진도 3.58에서 3.7 규모의 지진파를 감지했다고 밝혔다. 핵개발 완성

****************************

풍계리 핵실험장


풍계리 핵실험장은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 위치한 북한의 핵실험장이다. 이곳에서 2006년과 2009년 2회의 지하 핵실험을 하였다.


1차 핵실험


북한은 2006년 10월 9일 1차 핵실험을 하였다. 대한민국 지질자원 연구원이 2006년 10월 9일 오전 10시 35분 북한 함경북도 화대군에서 리히터 규모 3.58의 지진파를 감지하였다.


세르게이 이바노프 러시아 부총리겸 국방장관은 2006년 10월 9일 각료회의에서 최대 15kt급 핵실험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방과 대한민국에서는 1kt급 핵실험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영국의 핵 전문가인 존 라지 박사는 수평 갱도에서 이뤄지는 이벅 북한의 핵실험은 과거 러시아가 개발한 방식으로서 핵실험의 규모, 장소를 추정하는 데 사용하는 지진파(P파)를 교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핵실험 2시간 전에 러시아에 알리고, 중국에 20분전쯤 알려주었으며, 중국이 이를 한국과 미국 등에 알려 주었다.


2차 핵실험


북한은 2009년 5월 25일 2차 핵실험을 하였다. 대한민국 기상청은 2009년 5월 25일 오전 9시45분 함경북도 길주군 인근인 진앙지 위치 129° 13′ N 41° 28′ E에서 리히터 규모 4.5의 지진이 감지됐다고 밝혔다.


1차 핵실험은 TNT 1kt의 폭발 규모였으나 이번에는 2kt ~ 3kt 규모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는 대한민국 국방부 전문가의 분석이 보도되었다.[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