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티벳 불교 (Tibetan Buddhism)

한부울 2009. 5. 18. 19:42

 

티베트 불교(Tibetan Buddhism) 역사

 

 

 

티베트가 남쪽에 히말라야, 북쪽에 곤륜산맥, 서쪽에 파미르, 동쪽에 중국의 사천성이 둘러싼 해발평균 3천m의 고원지대다. 기후는 전형적인 내륙성으로 자연환경이 험하다. 주민은 수도 라사를 중심으로 창포강 유역에 가장 많고 그 밖에 캄(동티베트), 암도(청해지방), 찬탄고원 등지에서 농경과 유목생활을 하고 있다.


티베트란 말은 중국에서 이 지방을 토번이라고 부른데서 유래한 것이다.


중국에서는 이 지방을 토번 외에도 <서쪽의 보물창고>라는 뜻으로 <서장>이라고도 불렀다. 이곳에서는 오래 전부터 여러 부족이 탕창강. 등지. 백란. 당항. 강. 백랑. 다미. 아란. 여국 등의 부족국가를 형성하고 있다가, 7세기초 송첸캄포왕 시대에 통일국가가 형성됐다. 송첸캄포는 중국의 사천에까지 진격하여 문성공주를 항가(降嫁)시켰으며, 또 네팔에도 세력을 뻗쳐 네팔왕 앙슈바르만의 왕녀와도 결혼하였고, 톤미삼포타를 인도에 파견하여 불교와 인도문화를 배워서 티베트문자와 문법책을 짓게 하였다.

 

                                         (Songtsan Gampo 松干布581-649)

 

                                                         송첸캄포의 좌상

 

         Emperor Songtsan Gampo with Princesses Wen Cheng and Bhrikuti Devi


8세기 후반 티송데첸왕 시대에 티베트에서는 인도계 불교인 점오설(漸悟說)과 중국계 선종의 돈오설(頓悟說)의 대립이 점차 심하여져 토론이 수차례 행하여졌다.

 

                                                          Trisong Detsen


760년경 티송데첸의 초청으로 인도에서 온 날란다의 유명한 학승 산타라크시타, 파드마삼바바에 의하여 중국계 불교는 탄압되었다. 이후 티베트불교는 완전히 인도불교의 영향아래 놓이게 되었다. 또 티송데첸은 마가다(인도)의 오단타푸리사(寺)를 모방하여, 수도인 라사 동남쪽 삼예에 불교사원을 건립하였고, 이 시기에 최초로 티베트인의 출가가 이루어 졌다.

 

                                             상야사(桑耶寺)Samye Gompa

 

                                                             상야사 방벽

 

                                               조캉사원(大昭寺, Jokhang) 
 

                     사리푸타의 불(사리)탑 Nalanda는 인도 비하르 주의 고대 대학이다.

 

티베트에는 원래 신령을 숭배하는 샤먼적 본교(本敎)가 있어서 불교가 들어가기 전까지 압도적인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파드마삼바바밀교를 들여와 본교와 투쟁하는 동안 이들은 서로 혼융하여 라마교라고 하는 독특한 불교가 만들어졌다. 원시불교로부터 분파된 밀교의 주문이나 진언은 냉철한 이론보다도 자연숭배의 신앙을 가진 티베트인들에게는 매우 합당한 것이었다. 파드마삼바바로부터 비롯된 티베트 초기 불교를 닝마파라 한다. 9세기 전반, 티송데첸과 그의 아들 르파찬티베트불교를 가장 보호하던 왕이다. 이 시대에 티베트어로 번역된 불전의 용어를 통일하고, 사전도 편찬됐으며, 많은 경전을 번역하여 불교교의를 순화시겼다.

 

                               파드마산바바(Padmasambhava:蓮華生)의 상(像)

 

티베트어 불전은 산스크리트어 원전의 자구(字句)의 원뜻에 충실하는 축자역이 특징인데, 이것은 이 시대에 확립된 전통이다. 그러나 르파찬 841년에 암살되고 본교도인 그의 동생 란다르가 즉위하여 불교를 크게 탄압하였다. 이 때문에 불교는 큰 타격을 입었고, 란다르마 자신도 격분한 불교도에게 암살되고 말았다. 이때부터 티베트왕가는 분열되고 군웅할거시대로 들어갔다. 11세기가 되어 불교개혁을 바라는 서티베트왕 예세헤의 초청을 받아 1042년 비크라마시라사의 학두(學頭) 아티샤가 티베트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의 교학은 밀교의 금강승이었기 때문에 과연 닝마파의 입장이 어느 정도 개혁되는지는 의문이다.


아티샤 계통카담파라고 부른다. 또한 1073년에 코촉게포사카사(寺)를 건립하고 사카파를 성립시켰다. 11세기 중엽에는 마르파가 인도의 비크라마시라사에 들어가 나로파에게 금강승을 배우고 귀국하여 새로 카규파를 열었다. 이로써 티베트불교는 토번시대의 닝마파와 함께 4개의 종파가 분립케 됐다.


13세기 중엽, 사카파는 중국 원조(元祖)와 깊은 관계를 가지며 티베트의 정치. 종교 양권을 장악하였다. 원조의 광적인 티베트의 불교 숭배는 타락한 티베트불교를 더욱 타락시켰다. 이에 14세기 후반에 쫑카파라는 걸출한 인물이 등장하여 타락한 티베트불교를 개혁시켰다. 그는 라마승의 독신생활과 계율주의를 주장하면서, 불교개혁을 지도했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황색 모자를 쓰고 흑색 모자를 쓰는 본교와 구별했다. 이들을 [황모파]라 하며 쫑카파의 법통을 잇는 승정(僧正)달라이라마라고 한다. 제5대 달라이라마는 티베트를 재통일하는 데 성공하여 정교양권(政敎兩權)을 다시 장악했으며, 7대 때인 1750년에는 청조(淸祖)의 보호에 들어갔다가 최근에 이르기까지 달라이 법왕국(法王國)의 전통이 계승되고 있다.


1957년 중공은 티베트를 강제 합병했다. 이에 항거하여 달라이라마 14세는 인도로 망명했다. 이후 티베트불교는 중공에 의해 철저히 파괴됐다. 특히 1960년대 후반부터 중공을 휩쓴 문화혁명으로 3천 700개나 되던 사찰은 13개만 남고 몽땅 파괴되었다. 어떤 사찰은 지방정부에서 나무가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뜯겨지기도 했다. 또 한때 40만 명에 이르던 라마승들은 무참히 처형되나 투옥되었다.


그러나 1965년 9월 티베트가 중공의 자치구로 발족하고, 사인방(四人幇)이 물러간 후 티베트의 불교는 다시 소생하고 있다. 최근 이 지역을 방문한 여행자들에 따르면 라마승은 1천 300여 명이 있으며, 중공당국이 관광목적이기는 하지만 문화혁명 기간 중 파괴된 사원의 복구에 힘쓰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로 말미암아 티베트불교는 어느 정도 소생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그 좋은 예가 1986년 2월 18일부터 열흘간 라사(티베트의 수도)의 대소사에서 열린 [불교대법회]다. 대소사의 불교대법회는 500년의 전통을 가진 티베트불교 최대의 행사다. 1986년 법회는 티베트가 중공에 합병된 지 20년 만에 재현됐는데, 여기에는 많은 외국인 관광객과 티베트 사람들이 참가했으며, 이 법회의 법주(法主) 판첸라마는 연일 수천 명의 참가자들에게 [면재증복(免災增福)]의 축복을 내렸다. 이 법회에는 중공의 티베트위원회 오정화 제1서기도 참가해 판첸라마에게 보시를 전했으며, 또 법회에 필요한 우양육(牛羊肉). 다엽(茶葉). 연료. 종교용구 등 일체를 정부가 지원했다. 증공의 관영 [인민일보]는 이 사실과 함께 법회가 열리는 열흘간의 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 중공의 종교정책이 변화했음을 대내외적으로 선전했다. 또 법회에 참가하고 있던 영국. 미국. 일본 등의 외국인 여행자에 대해서는 중공불교협회 서장분회(西藏分會)에서 중공의 종교정책과 대법회의 내용, 역사 등을 설명했다. 이에 대해 홍콩의 신문들은 [법회를 이용해 북경당국은 중공이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한편, 이 법회는 1959년 중공이 티베트를 침공하자 달라이라마를 따라 국외로 탈출했던 10명의 라마승들이 참가해 주목을 모았다. 이 법회는 원래 달라이라마도 귀국하게 되어 있었으나 그가 귀국하는데 대해 북경측이 도중에 조건을 변경함으로써 실현되지 않았다. 달라이라마의 귀국여행이 실현되지 않자, 곤경에 빠진 북경 당국은 친공적(親共的)인 판첸라마를 티베트에 오게 하여 대 법회를 주관케 했다. 그러나 판첸라마는 [공산당에의 협력]을 호소할 것이라는 당초의 예상과는 달리 [우리의 고향을 복구하는데 동참하자]는 호소를 하는데 그쳤다. 서방의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판첸라마가 중공의 부탁을 거부한 것으로 해석했다. 그렇지만, 달라이라마를 추종하던 라마승의 귀국과 함께 이 대법회에는 연일 티베트 전역(全域)과 중공의 청해. 감숙. 운남. 사천 등 여러 곳에 거주하는 수천의 티베트인들이 이 법회에 참가한 것은 티베트불교의 앞날을 예상케 하는 [상서로운 징조]라고 할 수 있다.


인민일보는 이러한 선전재료를 놓치지 않고 [이 법회에는 매일 4천명 이상이 참가했으며, 하루 동안 모이는 보시금은 12만원(원: 한화로 약 3억원)이 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라사의 대법회가 끝난 뒤 1986년 5월 판첸라마는 최초로 해외나들이를 해 주목을 모았다. 이 여행 기간 중 판첸라마는 [전국인민대표자대회(全人代)대표단]의 부단장 자격으로 오스트레일리아를 방문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그 동안 망명중인 달라이라마에 대해 동정적이었으며, 티베트인(달라이라마 추종자)을 받아들이고 있는 나라다. 1982년 달라이라마가 방문했을 때,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국가원수로서 대우했다. 이에 대해 북경당국은 강력한 항의를 했지만,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묵살하고 말았다. 판첸라마의 오스크레일리아 방문은 이 같은 배경에서 달라이라마 추종자 또는 지지자의 기반을 무너뜨리기 위한 것으로 분석됐다.


판첸라마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에 사는 테베트인에 대한 축복(祝福)의식을 접전하고, [티베트의 최근변화]와 [중국공산당의 종교정책의 공정함]을 강조하는 연설을 오스트레일리아 종교지도자를 대상으로 했다.


그러나 판첸라마의 호주발언은 극히 미묘한 뉘앙스를 지닌 것이었다. 표면상으로는 중공의 티베트정책을 찬양하는 듯하면서도, 내면적으로는 통렬한 비판이 담겨 있었다는 평이다. 예를 들어 티베트의 최근 정세에 대해 [진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변화]라고 표현했으며 [근래 2년]이라고 표현함으로써 그 이전의 상황은 아주 나빴음을 암시했다.


이 무렵 중공의 실력자 호요방은 티베트의 장기망명지도자 달라이라마가 [통치자로서가 아닌 개인자격으로, 그리고 우선 중공에 일시 체류한 다음 티베트를 방문하려 한다면]이라는 단서를 붙여 티베트 방문을 허용하겠다고 말했다. 호요방은 이때 영국을 방문하고 있었는데, 티베트의 인권상황을 묻는 기자들에게 [그가 떠나 있는 27년 동안 새로운 세대가 지도자로 부상하는 등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에 상황인식을 돕기 위한 배려]에서 라고 설명했다.

달라이라마는 티베트에서 절대적인 정치 및 종교지도자로 중공이 티베트를 점령한 1957년 고국을 탈출, 주로 인도와 유럽지역에서 망명생활을 해 왔다. 어째거나 티베트는 중공과의 합병 이후 심한 억압을 받았으나, 최근의 완화된 종교정책으로 어느 정도 생기를 되찾고 있는 것만은 사실로 보인다. 하지만, 이를 가지고 마치 티베트에서 불교가 재흥되는 것으로 보는 것은 지나치게 성급한 기대다. 아직은 더 관망이 필요하다.


티베트불교의 최대의 자랑은 흔히 서장대장경으로 불리우는 티베트대장경이다. 티베트대장경은 크게 칸주르와 탄주르러 나누는데, 칸주르는 계율부 등 7종, 탄주르는 주석부등 15종류로 세분된다. 칸주르는 약 100질에 800부, 탄주르는 224질에 3천 400부로 구성돼 있다.

 

여기에는 한역경전에도 남아있는 경론이 약500부 정도 있으며, 특히 밀교부의 방대한 문헌은 티베트대장경에만 보이는 것이다. 이 대장경을 번역하는 일은 7세기 송첸캄포왕 때부터 16세기 무렵까지 약 900년간 계속되었는데, 9세기 중엽 란다르마왕의 파불을 경계로 전전과 후전으로 나누어진다.


전전시대에서 역경이 가장 왕성한 때는 티송데첸과 르파찬왕 시대다. 이때 인도인인 실렌드라보디와 티베트인인 예세헤 등 유명한 번역가가 활약하였고, 유부율과 현교경전의 대부분, 그리고 순밀경전등이 역출됐으며, 또한 대승론서도 그 반수 이상이 이 시대에 번역됐다.


후전시대의 유명한 번역가는 린첸삼포로 10세기말의 인물이다. 후전시대에는 동인도 벵갈 지방의 금강승. 시륜승의 영향을 받았고, 특히 이슬람의 침입을 받은 비크라마시라사 조직이나 많은 전적등이 티베트에 전해져 티베트대장경의 근간을 이루는 탄트라부를 형성했다. 티베트대장경은 14세기초 나르탄사에서 개판되고부터 10종 가량의 판본이 전해지고 있다.

 

티베트의 불교예술은 그리 뛰어난 것은 없으나, 탕카류는 주목할 만하다. 탕카란 베 또는 종이로 만든 족자 비슷한 것으로, 그림을 걸어 놓고 사람들에게 보이면서 설교하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이에는 일축으로 된 것과 여러 축으로 된 것이 있다. 원래는 만다라와는 별개의 것이었으나, 후에는 혼동되어 만다라양식으로 그려진 것도 있다. 그림의 소재는 부처님의 생애나 전생담. 제불보살. 16나한. 쫑카파를 비롯한 고승 등을 그린 것이 많다.


티베트 불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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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전래


불교는 송쩬 감포 왕(581-649)의 만년에 중국과 네팔에서 티베트로 최초로 전해졌다고 한다. 송쩬 감포 왕은 티베트의 문자를 창제하기 위해서 그의 신하 톤미 삼보타를 인도에 파견하였다. 이러한 티베트어의 창제를 통해서, 불교의 전적의 번역이 가능해졌다. 정치적으로, 송쩬 감포는 처음으로 티베트의 전체를 통일하였고, 라싸를 티베트의 수도로 정했다. 그는 또한 주위의 네팔과 중국과 정략결혼을 하였다. 티베트인은 그를 관세음 보살의 화신으로 간주한다.


티베트 불교의 토대 형성


티베트 불교는 설일체유부의 계율과 금강승의 신앙적 방법론에 기초하고 있다. 이 티베트의 불교는 티베트, 몽고, 그리고 히말라야 산맥 주위의 국가들에서 믿어지고 있다. 이 티베트의 불교는 인도 불교학자 샨타락시타와 파드마삼브하바에 의해서 8세기 티송데첸(742-97)의 후원 아래 정초되었다.


티송데첸왕은 티데 쭉텐 왕(703-754)과 중국의 금성 공주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불교를 티베트의 국가불교로 만들었고, 샨타락시타와 파드마삼브하바를 초청하였고, 삼예 대사원을 건립하였다. 나란다의 산타락시타는 중관불교의 전문가이고, 삼예 대사원의 건축의 책임자였다. 이 삼예 대사원은 마가다 왕국의 오단타푸리 사원을 모델로 건축되었다. 산타락시타는 설일체유부의 율장을 소개하였고, 그 설일체유부의 계율 전통에 의해서, 티베트의 초기 불교의 교단이 성립되었다. 파드마삼브하바, 티송데첸, 산타락시타, 이 트리오는 티베트의 초기 불교의 성립에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오디야나의 파드마삼브하바는 악신들과 불교에 적대적인 신들을 진무하였고, 그의 족적을 특히 닝마파에 많이 남기고 있고, 그의 추종자들은 그를 제 2의 붇다로 존경하였다. 현재에도 히말라야 지역의 국가들에서 그는 구루 린포체로 불리어지고 있고 대단히 존경을 받고 있다.


인도불교와 중국 선종의 논전(論戰)


중국불교와 인도불교의 관계는 인도의 학승 카마라시라와 중국의 선승 마하연의 돈점 논쟁에서 대변된다. 카마라시라는 산타락시타의 제자로 티송데첸왕의 초대로 인도에서 티베트에 왔다. 티송데첸왕은 인도의 점수 사상과 중국 선종의 돈오 사상의 차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792년에서 794년 초에 소위 돈점 논쟁을 주재하였다. 카마라시라는 방편과 지혜의 겸수에 의해서 깨달음이 획득된다는 점수불교를 주창하였다. 이 논쟁은 삼예 대사원에서 행해졌다. 카마라시라는 그 돈점논쟁에서 돈오의 주창자인 중국의 선종의 마하연 스님을 논파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논쟁 이후에, 인도불교의 영향력은 절대적으로 된다. 카마라시라의 논지는 그의 저서 브하바나크라마(수행단계론)에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닝마파(古波)


닝마파는 티베트어로 (가장) "오래된 종파"를 의미하고, 티베트의 4대 종파 가운데 가장 최초에 성립되었다. 닝마파는 파드마삼브하바, 비마라미트라, 바이로짜나의 가르침에 기초했다. 닝마파는 족첸(Dzogchen; Mah sandhi; Atiyoga; 위대한 완성)을 최고 수승한 가르침으로 간주하였고, 론첸파(1308-64)는 그 족첸의 가르침을 체계화하였다. 초기 닝마파는 재가신도와 승려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은 랑다르마 왕(836-42)의 억불정책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전통을 계승하였다. 11세기부터 불교는 다시 부활되었고, 그 새로운 불교의 전통과 구별하기 위해서, 닝마파 추종자들은 자기의 전통을 닝마파(오래된 종파)로 부르기 시작하였다.


랑다르마왕의 불교 탄압


초기의 티베트의 불교는 랑다르마 왕의 억불정책으로 탄압을 받고, 토착종교인 본(Bon)교의 가르침이 판을 친다. 이 랑다르마 왕은 승려들을 정가에서 추방하고, 불교교단에 대한 국가적인 원조를 전면적으로 중단했다. 이것을 랑다르마의 불교의 탄압이라고 한다. 티베트의 불교는 이 랑다르마의 불교 탄압을 기점으로 구역 불교와 신역 불교로 통상 구분된다. 그 후, 11세기에는 불교가 다시 부흥된다. 이 불교탄압이후의 불교를 신역 불교라고 부른다. 이 때, 카규파와 사키아파가 발전하고, 인도불교의 주요 텍스트들이 티베트어로 번역된다. 이 텍스트들이 티베트 대장경에 편입된다. 이 티베트 대장경은 칸규르 부분과 텐규르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칸규르 부분은 한역 대장경의 경장과 율장에 상응하고, 텐규르 부분은 한역 대장경의 논장 부분에 상응한다.


카규파


카규파는 티베트어로 "부처님의 가르침의 (구전) 전통"을 의미한다. 이 종파의 핵심적 가르침은 마하무드라(大手印)와 나로파(1016-1100)의 여섯가지 교리이다. 이 여섯가지 교리는 여섯 가지의 명상을 설명하고 있다. 이 가르침은 나로파의 제자 마르파(1012-97)에 의해서 인도에서 티베트로 전승되었다. 밀라레파(1025-1135)의 제자인 감뽀파(1079-1153)는 그 가르침을 카규파의 전통 속에서 조직하였다. 이 전통으로부터, 카르마 카규파와 다른 분파들이 생겨났다. 이 종파는 사자상승에 특별히 무게를 두고 있다. 카규파의 전통은 법신의 화신인 바즈라드하라(金剛持)에서 시작되고, 틸로파(989-1069)를 거쳐서 나로파에게 전승되었다고 한다. 위대한 번역사 마르파는 나로파의 제자로 이 사자상승의 전통을 티베트에 전승하였고, 그의 제자 밀라레파는 이 전통을 계승하고, 그의 제자 감뽀파에게 전승하였고, 감뽀파는 카규파의 가르침을 집대성하였고, 그에 의해서 카규파가 독립된 종파로 성립된다.


사키야파


사키아파는 사키야 사원의 이름에서 기인한다. 이 사키아는 티베트어로 "회색의 대지"를 의미한다. 콘 콘촉 걀포는 11세기에 이 사키아 사원을 서 티베트에 창건하였고, 그 사원은 회색의 바위 표면 위에 건축되었다. 아티샤(980/90-1055)의 예언에 의해서, 그 사키아 사원은 1073년에 건립되고, 그 사원의 주지와 콘 가(家)의 멤버들은 "방법과 결과"(Lamdre; M rghaphala)라는 금강승의 핵심 가르침을 전승하였다. 사키아파는 밀교의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불교 논리학의 문제점도 지적하였다. 13세기와 14세기에, 사키아파는 티베트에서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사키아파는 1092-1280년 사이에 독립된 종파로 아래의 다섯 명의 구루에 의해서 발전하였다. 이 다섯 명의 구루는 사첸 쿵가 닝포(1092-1158), 그의 두 아들인 소남 쩨모(1142-82)와 드락파 겔쩬(1147-1216), 그의 손자 사키아 판디타(1182-1251), 그리고 사키아 판디타의 조카 초겔 팍파 (1235-80)이다. 이 가운데, 사키아 판디타의 영향이 가장 컸고, 그의 학문적 평판이 인도에도 널리 퍼졌고, 그는 원나라로 초청되었고, 초겔 팍파는 쿠빌라이 칸(r. 1260-1294)의 왕사가 되었다. 원 나라는 중앙아시아의 통치권을 이 사키아파에게 1249년에 수여하였다.


겔룩파(黃帽波)


14세기 말에, 겔룩파가 쫑카파(1357-1419)와 그의 두 명의 핵심적인 제자인 겔짭(1364-1432)과 케드룹(1385-1483)에 의해서 티베트의 4대 종파 가운데 가장 마지막으로 성립되었다. 겔룩은 티베트어로 "덕행의 길을 따르는 사람들"을 의미하고, 1409년 쫑카파에 의해서 창건된 간덴사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문수보살로부터 영감을 얻은 후, 쫑카파는 그의 수많은 주석서에서 찬드라키르티(月稱)의 귀류논증파의 중관학파의 가르침을 자기의 사상체계에서 핵심으로 간주했다. 그는 또한 불교의 수행론을 대단히 강조하였다. 그는 발보리심을 그의 수행론에서 대단히 강조하였고, 수행론의 체계에서 지관(止觀)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또한 밀교의 가르침이 이러한 평정심의 회복을 위한 특별한 테크닉으로 간주되었다.


이 겔룩파는 아티샤의 카담파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추종하였고, 계율의 준수와 논서의 체계적인 연구에 강조점을 두었다. 그 가운데, 람림(Lamrim: 불교의 수행론)과 다양한 불교의 교리적 견해들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이 종파의 핵심적인 과제였다. 이 겔룩파는 티베트의 극서 지방에서 참도, 다르쩨도와 동쪽의 암도 지방에서 영향력을 확대하였다. 제 3대 달라이 라마 소남 강쪼(1543-1588)가 몽고를 방문한 후, 몽고의 후원으로, 겔룩파는 몽고와 러시아 연합의 부리아트 지역에서 국가 종교가 되었다. 17세기에 이 겔룩파는 중앙 티베트에서 지배적인 정치세력이 되었다. 그 때 제 5대 달라이 라마 카왕 로상 강쪼(1617-1682)는 몽고군의 도움으로 티베트의 종교계와 정치계를 평정하였다. 이러한 겔룩파의 절대적인 위치는 티베트의 정치와 종교의 영역에서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타시델레~


2001년 8월 저희 혜초와 함께 티벳의 Kailash에 다녀오신 성원스님께서  우리나라에서 아직 많은 이들에게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고 있는 티벳불교에 대한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이 글이 티벳을 이해하려고 하는 분들께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성원 (동경대학 객원 연구원)무정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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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불교(Tibetan Buddhism:라마교) 교리

티베트에서 7세기로부터 전개되어온 독특한 형태의 불교.


라마교라고도 불리나 이는 정확하지 않은 명칭이다. 티베트 불교는 주로 중관학파와 유가행파 철학의 철저한 지적 훈련에 그 기반을 두고 있으면서 탄트라 불교인 금강승 불교의 상징적 의례 행위를 받아들이고 있다. 티베트 불교는 또한 초기 상좌부 불교의 승가 계율 및 티베트의 재래 종교인 본교의 무속적 특색들을 포용하고 있다. 티베트 불교의 특징으로서는 다음의 4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적극적으로 종교적인 길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다. 1950년대에 중국 공산당이 티베트를 점령할 때까지 티베트 사람들의 1/4 가량이 종교적인 일에 종사하고 있었다. 둘째, 티베트 불교에서는 라마, 즉 스승이 죽으면 다시 어린아이로 환생(還生)하여 자신의 역할을 계속 수행한다고 믿는다. 셋째, 종교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가 세속적 통치권을 함께 지니는 전통이 있다. 넷째, 각자 가족과 배우자를 거느리고 온화한 측면과 사나운 측면을 지니는 신격들이 많이 있어서 전문적인 종교인들은 그 신격들을 심리적 과정의 상징적 표상으로 간주하지만 일반 신자들은 실재하는 존재로 받아들이고 있다.


불교는 대략 7세기로부터 10세기에 티베트에 전파되었다. 초기의 뛰어난 포교사로서는 8세기에 활약한 탄트라 불교의 대가 파드마삼하바 및 보다 정통적인 대승불교의 위대한 스승으로 꼽히는 샨타락시타 등이 있다. 1042년 인도로부터 위대한 스승 아티샤가 도래하여 개혁운동을 시작했으며, 그 뒤 1세기가 채 못 되어 티베트 불교를 대표하는 주요종파들이 형성되었다. 황모파(黃帽派)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달라이 라마와 펜첸 라마(Paṇchen blama)에 의해 영도되는 게룩파(Dge-lugs-pa:덕망이 있는)는 15세기 초엽 총카파가 창시했으며, 17세기부터 195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침략으로 달라이 라마의 신성 정권이 붕괴되기까지 티베트에서 정치적 주도권을 행사해왔다. 14세기경 티베트인들은 인도와 티베트에서 구입할 수 있는 모든 불교 문헌들을 티베트어로 번역하기 시작했는데, 오늘날 산스크리트를 원어로 한 많은 경전들이 원본은 일실되고 티베트어 번역본으로만 전해지고 있다. 티베트 불교 대장경은 정통적인 경전들로 구성된 '카규르'(Bka-'gyur:말씀의 번역)이라고 불리는 부분과, 인도의 위대한 학자들의 주석 문헌으로 구성된 '텐규르'(Bstan-'gyur:교설들의 번역)이라고 불리는 부분으로 크게 양분된다. 20세기 후반에 티베트 불교는 서구에 널리 전파되었는데, 여기에는 티베트가 중국 공산당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면서 다른 나라로 망명한 많은 티베트인들, 특히 본국에서 높은 존경을 받아온 튈쿠 라마 부처나 보살 및 옛 성인 등의 화현으로 인정되는 스승들의 활동이 컸다. 서구에서 형성된 티베트 불교 공동체로는 티베트로부터 망명한 사람들로 구성된 공동체와 티베트 불교 전통에 매력을 느끼는 서양인을 위주로 한 공동체가 있다.[네이트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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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 불교 (Tibetan Buddhism)

2004.10.07 13:01


이 글을 쓴 스티븐 베춸러는 영국 태생으로 인도에서 티벳의 게셰 랍텐 스님을 스승으로 계를 받고 8년간 티벳 불교를 공부하였다. 1981년 송광사에 와서 구산 스님 아래에서 5년 간 참선 수행을 하고 돌아가 현재 영국에서 선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 법명은 법천(法泉). 이 글은 불일출판사에서 발행한 <연꽃 속의 보석이여>(심재룡역)에서 티벳 불교를 설명한 부분이다. 티벳불교를 좀 더 깊이 알고 싶은 사람에게 일독을 권한다.


티벳 불교의 전래


티벳 불교를 바르게 이해하고 평가하는데 주된 장애의 하나는 아무래도 아직까지 티벳을 둘러싸고 있는 신비스러운 영기(靈氣)일 것이다. '티벳'이라는 낱말에서 우선 느끼는, 멀리 중앙아시아 어딘가에 있는 눈 덮인 나라, 그리고 그곳의 영적인 생활에 접근하는 일은 국경을 넘으려는 시도만큼이나 어렵다는 이미지, 황폐하나 기묘하고 매혹적인 불모의 평원, 그리고 우뚝한 산봉우리들이 솟아 있는 풍경 속에서 신비스러운 의식에 참가하는 붉은 승복을 입은 작은 라마승들, 타오르는 후광 속에 삼켜지는 무서운 악마, 환희에 넘쳐 미소 짓고 있는 수많은 팔을 가진 신들, 바위 자체에서 솟아 나온 듯이 보이는 위압적인 조형들, 야크와 무시무시한 눈사람, 달라이 라마, 깊이 있게 울리는 징과 뿔피리 소리, 꽹과리와 의식 등등을 떠올리게 된다.


사진 속에서 우리에게 인사하고 있는 사람들조차 세련되지 못한 표정으로 우리를 빤히 쳐다보거나, 공들여 꾸민 화려한 비단이나 상징물들 속으로 물러난다. 여기서 우리는 거칠고 거의 길들지 않은 열정에 매우 이질적인 세련미가 독특하게 섞여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티벳의 표면적 인상은 많은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통속적인 상상에 의해 거의 있을 법하지 않은 환상적인 사건의 배경이 되어 버렸다. 진지하건 않건 간에, 많은 책들이 신비스러운 일화를 제공하고, 진기한 교리나 의식의 예를 기록함으로써 이러한 인상을 강화시켰다. 그러나 티벳에 대한 이 같은 일반적 관념이 아무리 매혹적이고 또 실제로 그런 점이 있다 하더라도, 진실로서 드러나는 부분보다는 모호하게 왜곡된 측면이 많았다.


티벳에서 수행하는 불교의 형태에 관해서는 특히 더 그러하다. 우리가 티벳 불교를 생각할 때 마음을 혼란시키는 저 현란하고 이국적인 이미지 모두는 어떤 점에서 그 영적인 전통의 외면적 모습일 따름이다. 그 전통의 또 다른 모습은 냉정하고 합리적이며, 정확하고 체계적이다. 이러한 외면적인 모습은 인류가 지켜온 가장 심원하고 광대한 종교체계의 하나를 그 밑에 감추고 있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그래서 티벳불교의 가르침에 접근할 때에는,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에 현혹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렇다고 이 종교가 주는 신비하고도 사람을 매혹하는 이미지가, 산에 사는 이 경건한 종족의 상상력을 자극시키는 정도 이상의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잔인한 신과 엄숙한 의식은 매우 제한된 의미만을 지니며, 외적으로 이같이 표현된 이 종교의 내면적 활력을 이해함으로써만이 비로소 그 참된 의미를 완전히 알 수 있다.


티벳불교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앞서 말한 티벳에 관한 통속적인 이미지로부터 시작하지 말고, 이 종교의 내면세계부터 고찰한 다음 차차 외부로 눈을 돌려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이처럼 티벳불교도들의 내면세계를 이해하고 난 다음에야 그들의 영적 생활과 가치가 스스로 노출된 외면적 세계를 점차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티벳불교는 인도불교의 전통에서 유래한다. 비록 많은 부분이 나중에 티벳에서 단독으로 발전된 소산물이긴 하지만 그 주류는 인도라는 원천에서 흘러나온 것임은 너무도 자명하다. 따라서 티벳불교도의 의식세계에 대해 알고자 한다면 붓다와 그 제자들의 가르침에서 나타나는 인생관에서 찾아야 한다. 또한 티벳불교의 기본적인 세계관은 고대 인도불교도의 관점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티벳불교의 기본 틀을 이해하려면 12세기 이전 인도 불교도들의 내면적, 그리고 외면적인 정신세계를 이해해야 한다.


인도에서 티벳으로 불교가 공식적으로 전래된 것은 7세기 송첸 감포 왕(617∼698) 때이다. 이미 433년에 일련의 불경과 종교의식, 용구들이 전래되었으나 송첸 감포 왕 때에 와서야 비로소 불교를 국교로 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사원을 건립하였으며, 역경작업이 이루어졌다. 10세기 초엽 잠시 반불교적 군주인 랑달마 왕에 의해 심한 박해를 받은 시기를 제외하고 티벳에서 불교는 끊임없이 그 힘이 강화되었다. 초기에 가장 두드러지게 발달한 시기는 티송 데첸 왕(790∼844) 때이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많은 인도 승려들이 초빙되었고, 최초의 티벳인 승려가 탄생했으며, 티벳 학자와 인도 학자의 공동작업으로 유례없이 많은 역경사업이 이루어졌다.


불교가 전파되기 이전의 티벳 문화의 발전 단계는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지배적인 종교는 애니미즘과 샤머니즘이 혼합된 것으로, 뭉뚱그려서 '뵌'이라 불리는 것이었다. 언어기술법이 없었으므로 기록된 문학작품이나 역사문헌도 없었다.


기원전 2세기까지 이 나라는 통일되지 못한 상태로 다수의 경쟁적 봉건국가와 부족연맹으로 분할되어 있었다. 인구 또한 적었으며 외부와의 접촉이 거의 없었다. 많은 티벳인들은 유목생활을 했고 고정된 부락이나 교역 중심지는 몇몇에 지나지 않았다.


일찍부터 이 나라의 남쪽과 동쪽은 아시아에서 가장 발달된 인도와 중국이라는 두 문명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험준한 지리적 고립성으로 인해 대륙의 문화발달을 공유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처음 전해졌을 당시 전법승(傳法僧)들은 티벳을 우회해 가버렸다. 티벳 영토 내의 산맥을 직선으로 넘는 통로를 택하기 보다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과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거쳐 티벳 북쪽으로 우회하는 길로 인도와 중국을 오가는 편이 여행자들에게 용이했던 것이다. 따라서 티벳인들은 인접한 국가의 문화와 종교적 발전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을 만 했는데도 불구하고, 불교가 공식적으로 전래되기 이전에는 어느 것도 확고히 뿌리내릴 수 없었다.


티벳은 불교의 도입과 더불어 비로소 고도의 문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다. 중국이 불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할 때 이미 자체 내에 세련된 문화와 문명을 지니고 있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티벳은 앞으로 나아갈 모든 문화발전의 기초로서 불교를 수입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불경을 번역하기 위해 티벳인들은 우선 그들의 말에 맞는 문자를 만들고 문법체계를 구성하는 작업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작업은 송첸 감포 왕의 재상이었던 삼보타 라는 천재에 의해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그는 인도에 가서 북인도의 산스크리트(Sanskrit)어를 모델로 하여 문자를 만들었다. 또한 그는 티벳 문법에 대한 최초의 책을 편찬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문법 학습의 기초교재로 쓰인다.


이리하여 티벳어로 된 번역문들은, 기존 전통 속에서 잡다한 여러 철학적 함축성이 뒤섞여 오염된 단어들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새로이 만들어진 언어체계를 사용한 것이므로 기존 개념으로부터 혼동을 피할 수 있었다.


따라서 산스크리트어로부터 번역한 글은 원문의 용어가 갖는 불교적 함축만을 그대로 옮길 수 있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뛰어난 명증성(明證性)과 직접성을 지닌 불경 번역본을 이룩했다. 고도로 발달된 한 종교가 집성했던 거의 모두를, 새로이 발명한 기술(記述) 언어로 번역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랠파젠 왕(866∼901) 때에 이르러서 번역 방식이 표준화되었고 그때까지 이룩한 번역은 모두가 수정되어야만 했다. 많은 경전들이 수차례씩 번역되었는데, 여러 세대에 걸쳐서 학자와 번역자들이 수정하고 검토한 끝에 최종적인 형태가 완성되었다.


불교가 티벳에 뿌리를 내리는데는 약 400년(700∼1100)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 기간에 많은 티벳인이 가르침을 받거나 수행을 쌓기 위해, 또는 역경사업을 계속하기 위한 산스크리트어 학습을 위해 인도에 유학했으며 또한 많은 인도인 스승들도 티벳으로 와서 가르침을 널리 전했다. 번역된 많은 불경을 모아 공식적인 '경전'으로 편찬하였을 때 그 수는 약 220권의 분량에 이르렀다(여기에 대한 정확한 숫자는 편집방식에 따라 다르다.). 이 중에서 100권 이상이,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붓다의 설법을 담고 있다.


이것들을 총칭하여 경장<강규(經藏)>라 한다. 그 나머지 역경들은 인도의 대가들이 붓다 시대부터 써왔던 400여종의 주석으로서〈뗀쥬르(論藏)〉즉 '논(論)의 번역'이라고 불린다. 거기에 덧붙여 티벳인 자신들에 의해서도 많은 주석 작업이 이루어졌는데 여타의 언어로 된 불교전적보다 더욱 방대하였다.


물론 인도 불교 전통 속에서의 가르침 자체가 워낙 방대하고 다양하기 때문에, 경전에 기록된 모든 사항에 대해 티벳인들이 명료하게 총괄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웠다. 인도불교는 붓다의 가르침에 대해 철학적 관점에서나 실천 수행에 있어서나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했다. 따라서 초기 티벳의 불교학자들에게는 다양한 교의(敎義)와 수행을 티벳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통합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였다.


그리하여 티벳인들이 불교에 대해 체계적으로 기술된 내용의 대부분은 이미 인도 문헌에서 나타났던 통합성의 선구적인 시도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특히 경전에 나타나는 일반적 교리와 밀교(密敎)를 조화시키고자 하는 경우에 있어서 불교의 교리와 수행관 전체를 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종합 모델을 만들어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티벳불교의 서술은 그 교리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인도의 불교와 대동소이하나, 깨달음에 이르는 체계적인 단계를 이룩하는 방식에 있어서 상이점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티벳 불교에서 독특한 것은 어떤 특정 교리의 내용이나 통찰이 아니라 그 자신의 빛 아래에서 이들을 배열하는, 깨달음에 이르는 논리 바로 그것이다. 그 독자적인 특이한 색채는 티벳불교 고유의 특정 요소 때문이 아니라, 불교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요소들을 티벳적인 심성과 결합시키는 방식 때문인 것이다.


티벳불교의 가르침


티벳불교의 가르침은 깨달음에 이르는 길의 단계를 밝히는 것에 맨 먼저 관심을 두고 있다. 그 내용에는 대부분 전통적인 인도의 우주관에서 유래한 전체적 세계관과 그 속에서의 인간의 위치 등도 포함된다. 불교의 가르침이 이러한 우주관을 기반으로 하여 설명되었기 때문에 티벳인들도 이 점을 자신의 사고방식에 편입시켰던 것이다.


이 우주론에 그려지는 세계는 여러 상이한 존재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메루'(sumeru, 須彌山) 라는 높고 장엄한 산이 있으며 그 남쪽의 바다 한 가운데에 사람이 사는 삼각형의 큰 대륙이 위치해 있다. 수메루산은 거대하고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사면체의 피라미드같이 생겼으며, 구름 위의 천공(天空)에 까지 닿는다.


수메루산의 층에는 많은 상이한 천인(天人)의 영역이 있다. 맨 밑의 영역에 아수라(阿修羅)가 있다. 아수라는 자신보다 높은 천인의 속성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그 천인들에 대한 질투로 고통 받는다. 따라서 자주 그들과 갈등을 일으킨다. 아수라 바로 위에 머무르는 천인은 장수하고 만족스런 삶을 살며, 살아있는 동안 물질적,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받지 않지만 죽음이 다가와 그 행복한 상태가 상실되리라는 예상을 하게 되면, 그들은 큰 슬픔을 겪는다. 이러한 감각적인 천(慾界天)의 평면 위에 두 가지 또 다른 천계가 있다. 순수 형상계(色界天)무형계(無色界天)가 그것이다. 여기에는 그 정신의 집중 정도에 따라 여러 계층의 천인이 산다. 그들은 욕계천의 존재보다는 수명이 훨씬 길고 유복하지만 그들도 또한 끊임없이 죽고 윤회하는 괴로움을 받는다.


땅위와 아래에는 그 고통의 정도에 따라 구별되는 세 가지 영역이 있다. 그것은 육생 동물과 조류 어류를 포함하는 짐승의 영역(畜生界)과 어둡고도 불행한 존재로서 살아야 하는 여러 유령과 영혼들을 포함하는 프레타계(餓鬼界), 그리고 끊임없이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시달려야 하는 존재들의 세계인 여러 지옥계이다. 이 우주에 있는 대부분의 감각이 있는 존재(有情物)는 위의 세 세계에 살고 있으며, 인간계, 아수라계, 천계의 세 가지 상급 세계에 태어나는 축복은 소수만이 누릴 수 있다.


전통적인 불교의 관점에서 보면 이들 영역은 전혀 별개의 존재 영역이 아니다. 어떤 삶의 형태에서 죽은 후에는 자신의 행위가 누적된 힘(karma, 業)에 따라 같은 혹은 다른 계에 태어난다. 한 삶에서 다음 삶으로 이어지는 것은 시작도 끝도 없는 의식의 미묘한 흐름이다. 따라서 인간으로서의 현생은, 감각을 지닌 존재로서 계속 윤회하는 맥락에서 보면 극히 단명한 사건이다. 마찬가지로 현재의 세계도 무한히 큰 우주의 작은 부분일 뿐이다.


티벳불교도의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우주관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자연과학에 기초한 세계관에 익숙해 있는 사람일지라도, 티벳불교도들에게는 확고한 실재성을 갖는 이런 우주관에 주의를 기울여서 그것을 일종의 정신에 대한 상징적인 도해(圖解)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는 근대 과학의 우주관이 여타 사람들에게 실재적인 것만큼이나 이것이 실재적이다. 티벳인들의 세계관의 원천인 불교의 가르침은, 근대인에게 우주에 대한 과학적 묘사가 권위적인 만큼이나 권위 있다. 티벳인들이 불교를 받아들일 때, 그들은 단지 종교만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전 우주를 받아들인 것이다.


전통적으로 티벳의 스승들이 제시하고 있는 불도(佛道)는 시종여일하게 이 기본적 세계관을 함축한다. 이러한 길로 나아가는 첫 번째 단계에서는, 다른 영역에 비해 인간 존재가 얼마나 많은 영적 가치를 지니는가를 자각(自覺)하라고 일깨운다. 인간으로 태어나게 된 무한히 큰 행운에 대해 거듭 생각해 보라고 한다.


모든 다양한 삶의 형태 가운데서 붓다의 가르침으로 최상의 은총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인간뿐이다. 이런 기회란 극히 드물 뿐 아니라 만약 이 기회를 잘 활용치 못한다면 무수한 생에서 다시는 이런 기회를 맞이하기 힘들다. 이같이 숙고해야만 하는 이유는 인간으로서의 삶의 가치와 희소성을 자각함으로써 그 정신적 능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토록 인간을 고무하는데 있다.


다음 단계에서는 인생의 가치에 대한 자각에 덧붙여서,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게 한다. 죽음을 피할 수 없으며 그 불가피한 죽음이 언제 닥칠지 모른다는 것, 그리고 진리(Dharma, 法)만이 사후의 자기 운명을 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되풀이하여 생각하게 한다. 이 관법의 목적은 그가 현재는 인간이지만 죽음이 닥쳐와 우주 내의 다른 생명형태의 소용돌이 속으로 던져지지 않으려면 수행을 해야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려는 데 있다.


인간으로서의 삶이 귀중하면서도 동시에 덧없음을 확고히 의식하게 되면, 관법의 다음 단계에서는 세 가지 존재영역(地獄界, 餓鬼界, 畜生界)의 비참한 특성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이러한 영역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알고 또한 누구든지 그 영역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자각한다면 무슨 방법으로든 그런 운명을 피하겠다는 강렬한 열망을 가지게 된다. 이렇게 해서 그의 마음은 내생에 계속 사람으로 태어나거나 천계에 환생할 수 있도록 보장되는 길을 찾는다.


따라서 이 우주에 사는 것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업의 법칙에 대해 보다 깊이 숙고하게 되는 것이다. 티벳인들이 배우는 불교전적에는 업의 작용을 일으키는 심리적인 구조, 어떤 행위가 초래하는 여러 상이한 결과들 그리고 특정 행위를 윤리적으로 평가할 방법들이 세부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윤리적인 인과과정을 세세한 데까지 잘 알게 되면, 좀 더 바람직한 존재 형태로 환생해서 불행한 세계에 떨어질 위험을 면할 수 있는 여러 행동을 취하는 데에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이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불교의 가르침은 이 우주 내에서의 인간의 위치와 운명을 보다 잘 인식하고, 아울러 그 운명을 조정하는 법에 대한 통찰력을 갖는 것에 그 목표를 둔다. 앞서 말한 숙고를 통해 어떤 이의 삶에 일단 기본적인 윤리적 지표가 주어지면, 붓다(Buddha, 佛 : '깨달은 자'라는 뜻), 다르마(Dharma, 法 : '붓다의 말씀 또는 진리' 라는 뜻), 상가(Samgha, 僧 : '불교교단 또는 수행승' 이라는 뜻)라는 세 가지 의지처에 귀의하게 된다. 이 세 가지 '보물'(三寶)을 믿음으로써 영적인 관심이 궁극적으로 성취할 수 있는 확실한 지주를 갖게 되는 것이다.


붓다를 믿음으로써 우주와 우주를 초월한 것에 대한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한 사람의 권위를 받아들이게 되며. 다르마를 수행함으로써 깨달은 사람(覺者 즉 붓다)의 가르침에 나타난 사고와 행위 원칙을 받아들이며, 상가에 귀의함으로써 다르마의 길에 굳건히 서있는 남녀들의 보살핌과 지도를 받게 되는 것이다.


티벳불교 특유의 의지처의 개념에 대해 더욱 주목해야 할 점은, 모든 불교 전통에서 귀의의 원천으로 삼는 삼보(三寶) 외에 라마(Lama)라는 제4의 귀의처가 덧붙여진다는 것이다. '라마'는 심각한 혼란을 야기해 왔던 개념으로 티벳 승려에 대한 일반적인 호칭이다. 실제로 이것은 '영적인 스승'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의 '구루'(guru)와 동의어이다. 따라서 '라마'는 불교의 이론과 수행의 면에 있어서 남을 이끌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수련한 사람에 대한 칭호이다. 심지어 라마는 꼭 승려일 필요는 없으며 실제 티벳 불교의 역사에서 몇몇 유명한 라마는 출가하지 않은 평신도였다.


티벳 불교의 수행에 있어서 라마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불도에 대한 지식과 그것을 수행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는 스승은 붓다와 똑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이 길을 따라 가면서 어떠한 진보를 이룬다면 그것은 모두 처음 그에게 이 길을 가르쳐 준 스승의 자비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스승의 또 스승으로 해서, 결국은 붓다에게까지 이어지는 스승의 계보를 통하여 가르침을 받아온 자신의 영적 스승이 없이는 불교전통의 지혜에 생생히 접촉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라마는 종종 붓다에 비견되며, 어떤 수행자의 실제적인 영적 수행에 있어서는 역사상의 석가모니(Sakya-muni, 釋迦牟尼 : 샤키야族 출신의 聖者 라는 뜻) 보다도 여러 면에서 더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티벳 불교도는 귀의처에 대해 맹세할 때, 붓다, 다르마, 상가에 앞서, 라마에 대해 귀의한다고 먼저 말한다.


귀의의 대상에 헌신하는 행위를 통해 특별히 불교적인 인생관을 받아들임으로써 붓다의 눈으로 이 우주를 바라보게 된다. 다른 존재계 어디에 태어나건 그것이 고통으로부터의 최종적인 해방이 아니라는 것은 명백하다. 최상의 무색계에 환생하더라도 결국 다른 곳에 다시 태어나야 한다. 따라서 붓다는 이 우주에 살고 있는 자들의 운명을 '순환'(輪廻)으로 본다. 선행 혹은 악행의 힘에 이끌려 한 계(界)에서 다른 계로 계속 돌아다니는 것이다.


깨달음으로 이르는 길의 다음 단계는 욕망을 포기하는 단계이다. 여기서는 존재의 속성으로서의 고통 뿐 아니라 이 같은 고통의 원인에 대한 인식이 함께 수반된다. 가장 뚜렷한 원인은 업 자체의 힘이며 이것이 어떤 존재를 한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사정없이 몰아치는 것이다. 그런데 이업의 근원에는 의지가 있으며, 이 의지력의 뿌리는 바로 쾌락은 따르고 싫은 것은 피하려는 힘이다.


또한 더 깊이 살펴보면, 이 욕구하고 피하려는 힘은 존재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욕망을 끊는 것에서 비롯하여 삶에 대해 전혀 새로운 태도를 지니게 된다. 즉 무지와 욕구 및 회피를 동시에 뿌리 뽑기 위해 인내한다면 끊임없이 움직이는 사악한 행위의 고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의 나머지 단계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이제까지 기술한 의식의 상태를 계발하기 위한 티벳의 수행법인 관법(觀法)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수도의 각 단계에는 각각에 해당하는 통찰이 있다. 즉 인간생활의 소중함에 대한 통찰, 낮은 계의 지독한 비참함에 대한 통찰, 욕망에서 떠나야 할 필요성에 대한 통찰 등이 그것이다. 이 통찰들은 처음에는 분석적인 방법으로 얻어진다. 수행자는 이러한 통찰을 뒷받침하는 근거와 이 통찰을 흐리게 하는 일상적인 그릇된 관념에 대해 정연한 설명을 듣는다. 수행자는 이 설명의 요체를 기억하고 그 의미에 대해 체계적으로 명상해야 한다.


매일 가부좌를 틀고 앉아 일종의 정규적인 명상을 한다. 이 요체에 대해 숙고하고 여러 가지 다른 각도에서 검토해 볼수록 그것은 내면에 스며들어 자신의 삶이나 세계를 보는 시각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명상이 진전되면 여기서 계발시키고자 하는 통찰이 애써 끌어낸 관념으로서가 아니라 평상시의 마음가짐으로 되는 단계에 이른다. 여기에 이르면 이 주제를 더 이상 지적으로 분석할 필요는 없다. 이제부터는 자신의 주의력 전체를 오로지 각성 그 자체가 시작되는 바로 그 점에 집중시켜야 한다. 주의력의 정도가 떨어지면 다시 명상의 요체를 간단히 훑어서 내면에서 길러지고 있는 각성을 다시 확고히 한다. 집중력에 의해 통찰은 점차 새로워지고 강력한 힘을 얻게 되어 마침내 의식 내에 확고히 뿌리 내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티벳의 라마들은 명상으로 감성을 계발시키는 두 가지 수련단계에 대해 자주 언급한다. 첫 번째 단계는〈분석적 명상(觀修行)〉으로, 수행자는 명상의 대상에 대해 반복해서 숙고하며 논의와 추론으로써 그것을 확고히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집중적인 명상(止修行)〉의 단계로, 여기서는 대상에 대해 개념적으로 사고하기를 멈추고 대신 전력을 다해 분석하고 숙고를 통해 이룬 각성 자체의 상태에 주의력을 모은다. 이와 같이 각성의 집중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우선 기초적으로 사유하는 과정을 진행시키는데, 마침내 집중된 각성 상태에서는 사고의 산만한 기능은 스스로 사라져 버린다.


① 자비(慈悲)


근본적으로 티벳에서 우세한 불교 형태는 마하야나(Mahayana),'大乘'(큰수레)이다. 이 전통에서는 자비 즉 자애로움이라는 특성과 다른 사람을 위해 깨달음을 실현하고자 하는 이타적인 결단(Bodhicitta, 菩提心)을 강조하는 것이 그 핵심이다. 또한 대승불교도는 역사적인 실존 인물로서의 석가모니에서 벗어나 불타관을 발전시켰다. 그리고 붓다의 깨달음의 여러 측면을 상징하는 수많은 붓다와 보살(菩薩)들을 인정한다. 대중적인 수준에서는 이들 붓다와 보살들을 단지 숭배와 기도의 대상으로 삼으나 좀 더 깊은 단계에서는 명상을 통한 의식의 특정 상태를 의인화한 것으로 이해한다. 수행자들은 이것에서 자신의 내면에 있는 이러한 특성을 계발시키는 데 도움을 받는다.


티벳의 천불전(千佛殿)에는 문자 그대로 수천의 붓다와 보살들이 있다. 이들 가운데 티벳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것은 자비의 보살인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Avalokitesvara)이다. 티벳인에게 '첸라지'(Chenrazee)로 불리는 관세음보살은 다양한 형태와 모습으로 나타난다. 주로 네 개의 팔을 갖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그 몸체는 빛나는 흰색이고 왼쪽 어깨에 사슴가죽을 댄 법의를 늘어뜨려 입었다. 보석을 쥔 두 손은 가슴께에 모으고 두 손은 어깨 높이로 들어 올렸으며 오른손에는 수정 염주를, 왼손에는 연꽃을 들고 있다. 머리에는 다섯 가지 보배로 장식된 관을 쓰고 있으며 온몸이 후광에 싸여 연화좌로 받쳐진 하얀 달 모양의 쟁반에 앉아 있다. 붓다의 자비의 화신으로서 모든 존재(衆生)에게 은은하고 온화한 미소를 보낸다.


티벳인들이 관세음보살에게 품고 있는 특별한 애정은 선사시대 신화에도 잘 나타난다. 전설에 의하면 관세음보살이 원숭이의 왕으로 이 세상에 온 적이 있었다 한다. 그 원숭이의 왕은 독실한 재가불자로 수행을 하기 위해 티벳의 산으로 갔다. 그런데 동굴 속에서 명상을 하고 있는 그를 보고 그 곳의 마녀가 사랑에 빠졌다. 그에게 애정을 불러일으키려고 어느 날 마녀가 미녀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처음에 그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으나 자기와 결혼하지 않으면 나라 안의 생명을 모두 잡아먹겠다고 마녀가 위협하는 바람에 결국 그는 결혼하기로 했고 각기 다른 여섯 존재계에서 환생해 온 여섯 아이를 낳았다.


처음에 그 가족은 여기저기 가까운 곳에서 따온 야생과일을 먹고 살았으나 그것이 곧 동이 났다. 자식들이 굶주리는 것을 보고 원숭이의 왕은 관세음보살에게 도움을 요청하기에 이르렀고 그의 애원에 응해 관세음보살은 땅에서 자라는 많은 곡물들을 가져다주었다. 이것을 먹고 살게 되자 원숭이와 마녀 사이의 자식들은 털가죽이 벗겨지고 꼬리가 없어졌다. 마침내 그들은 인간처럼 직립하게 되었으며 여기에서 티벳 종족이 유래했다는 것이다.


이 종족의 기질은 두 선조-원숭이 왕과 마녀-와 관련되어서 원숭이 왕으로부터는 근면과 친절, 종교에의 열정이라는 자질을 물려받았고, 마녀에게서는 무뚝뚝함, 질투, 격정을 물려받았다고 한다.


관세음보살과 영적 교류를 이루려면 여러 가지 방법이 있으며 그 중 한 가지를 택하여 관세음보살이 대표하는 마음의 특성에 초점을 맞춰 수행해야 한다. 티벳인들에게 가장 보편적인 것은 '옴 마니 밧메 훔'(Om mani padme hum ; 아아, 연꽃 속의 보석이여, 란 뜻)이라는 만트라(Mantra, 眞言)를 음송하는 것이다. 순박한 농부에서부터 세련된 형이상학 박사에 이르기까지 많은 티벳인들이 만트라를 왼다. 호흡에 맞춰 끊임없이 외며 종종 염주를 짤깍거리며 함께 외기도 한다. 보통 개개의 음절은 들리지 않고 율동적인 콧노래같이 들린다. 이 소리가 일터와 가정, 사람이 다니는 길과 금욕적인 수도원을 가득 채우고 있다.


어원을 보면〈만트라〉라는 의미는 '마음을 보호함'이라는 뜻이다. 만트라를 되풀이 외움으로써 특정한 영적 주제에 주의력을 집중시킬 수 있다. '옴 마니 밧메 훔'의 경우는 관세음보살이라는 형태로 의인화된 붓다의 자비가 그 주제이다. 이러한 방법으로써 사람을 혼란시키는 유해한 생각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마음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호되어 어느 정도 내적인 고요를 얻으면, 수행자는 마음을 보다 각성되고 집중된 상태로 유지 할 수 있다.


개인의 능력에 따라 '옴 마니 밧메 훔'이라는 만트라의 기능은 여러 다른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가장 기초단계에서는 다만 멀리 극락에 있는 외부의 신에 대한 기원일 뿐이다. 만트라를 계속 욈으로써 관세음보살이 그를 물질적인 고난이나 병으로부터 지켜주며 사후에 관세음보살의 정토에 환생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보다 깊은 단계로 접어들면 만트라란 사람의 마음을 자비의 수행에로 이끄는 수단이다. 최종적으로 보면 관세음보살은 자비 그 자체이며, 이 품성은 모든 생명체 속에 완벽하게 드러나게 되기를 기대하면서 잠재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관세음보살과 연관된 보다 고차원적인 수행에 있어서는 관세음보살을 외부적인 힘이나 존재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수행자 자신과 동일한 천인(天人)으로 생각한다.


만트라의 개개 단어나 음절에도 역시 의미가 부여된다. 어떤 수행에서는 '옴·마·니·밧·메·훔'의 여섯 음절 각각이 여섯 가지 존재계와 상응하며, 각 음절에는 각 계를 상징하는 특정한 색깔이 대응한다. 만트라를 음송할 때 수행자는 각 음절에서 뻗어 나와 그 음절과 관련된 특정 계의 존재들을 비추는 무수한 광선을 상상한다. 이렇게 해서 만트라 수행을 모든 존재영역에 대한 자각으로까지 확장시키며 동시에 만트라를 음송할 때 지녔던 자기중심적인 생각들을 약화시킨다.


더욱이 이 빛은 고통받는 일체 중생에 대한 관세음보살의 가없는 자비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긴다. 이와 같이 만트라를 외는 것은 기도자의 경건한 반복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자기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해 통합된 영적 통찰을 발전시키려는 상징적이고도 복합적인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만트라를 해석하는 또 다른 방법은 각 단어가 지니는 상징적 의미를 살피는 것이다. ''은 먼저 붓다의 완전하게 통일된 몸과 말과 마음을 상기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두 번째 단어 '마니'는 '보석'이라는 산스크리트어이고 세 번째 '밧메'는 '연꽃'이라는 뜻이다. 보석과 연꽃의 상징적 의미도 여러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다. 대승 불교 체계 내에서 이 두 가지는 무엇보다도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두 가지 주제 즉,〈방편(方便)〉과 〈반야(般若)〉를 가리킨다.


방편은 보석으로 상징되며, 타인에 대한 자비로운 마음에 뿌리를 두는 수행하는 과정에서의 모든 측면을 말한다. 관용, 도덕적 행위, 인내, 자비 그 자체, 자애 등이 이에 포함된다. 연꽃으로 상징되는 지혜 즉, 반야는 지(止)와 관(觀)이라는 내적 특질을 의미하며. 그것을 통해 실재(實在)의 참 본성을 깨닫게 된다. 마지막 음절 '훔'오온(五蘊, Panca-skandha)을 상징한다. 불교에서 전통적으로 인간의 기본 구성요소로 생각해 온 것이다. 그런데 깨달음의 상태에서는 이 오온이 현재의 오염된 상태로부터 다섯 디야니 붓다(Dhyani buddha, 五方勝佛)로 전환한다. 즉 깨달음의 청정한 측면과 각각 상응하는 것이다.


이상의 해석에 따르면 '옴 마니 밧메 훔'이라는 만트라는 깨달음에 이르는 전 과정을 상징적이고도 아주 축약적인 형태로 표현한 것이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이 길이 하나의 과정이며 또한 전환이라는 것을 일깨운다. 방편과 반야를 수행함으로써 생사의 윤회에 속박된 존재에서 붓다로 전환하게 된다. 붓다의 마음은 윤회로부터 자유로우며, 그 말과 행위는 타인에 대한 자비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만트라는 관세음보살의 특성과 또한 그 상태에 이를 수 있는 수행의 본질에 마음을 집중시키는 수단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능을 효과적으로 달성하는 것은 수행자가 그 수행을 얼마나 철저히 내면화시키느냐에 달려있다. 단지 만트라만 외운다고 해서 방편과 반야가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일정한 사유와 명상을 통해 이들 특질을 체계적으로 계발해 나가야만 얻어지는 것이다.


자비는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 즉 방편일 뿐 아니라 대승불교의 전체적인 기반이다. 그러므로 관세음보살은 붓다의 마음 중 한 가지 특질을 인격화시킨 것으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승불교 수행의 원동력을 구체화한 것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실제적으로 개인의 이러한 특질을 발전시키기 위해 티벳의 스승들은 여러 가지 관법을 가르친다. 자비심을 계발하기 위한 예비적인 기반으로 무엇보다도 먼저 아주 거친 집착하는 마음과 타인을 혐오하는 마음을 제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타인과의 관계를 해치는 습관적인 편견과 선입관이 사라진 평정한 상태가 되도록 수행해야 한다.


이렇게 균형 있는 마음의 태도를 발전시키려고 자기 앞에 있는 세 종류의 사람-친구, 개인적인 적, 자기와 무관한 사람-을 상상하도록 가르친다. 이 사람들을 차례로, 그들을 향한 자기감정의 성격을 집중적으로 검토한다. 각각의 경우에서 자기에게 비친 세 종류의 사람이란, 그들의 내적인 특질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바라보는 자신의 주관적이 태도에 따라 결정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사람은 '친구', 저 사람은 '적', 또 하나는 '남' 이라고 뚜렷이 구별 지음으로써 그들을 한데 묶을 수 있는 근본적인 인간성을 자각하지 못하고 스스로 장벽을 만든 것이다. 자신이 덧씌운 분별의 장벽을 넘어 일체중생이 근본적으로는 동질이라는 것을 유념하도록 훈련함으로써 마음의 평정상태는 성숙하게 된다.


관법의 다음 단계에서는, 모든 존재란 본래 동등할 뿐 아니라 또한 본질적으로 자신에게 친절하다는 것을 인식한다. 무수한 과거의 생애 동안 우리를 낳고 길러주신 어머니의 자애로움에 항상 의지해왔다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그 통찰은 시작된다. 우리의 과거 생애란 헤아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유정(有情)들도 모두 어느 때인가 한 번은 우리의 어머니였을 것이다. 현생에서의 어머니를 보면 전생의 어머니가 우리를 위해 치렀을 자기희생과 인간적인 고초를 자세히 생각해 낼 수 있다. 마음속에서 어머니의 자애를 확실히 깨닫는다면, 모든 존재들이 한 번은 이렇게 헌신적인 관심을 우리에게 베풀었었다는 것도 아울러 떠올리게 된다. 이 관법을 수행해 가는 동안 이생에서의 자기 어머니 같이 타인이 자신에게 친절하다는 느낌이 점차 강렬해지면, 마침내 혐오나 무관심 같은 감정도 다스릴 수 있게 된다.


타인들이 본질적으로 친절하다는 인식이 마음속에 확고히 자리잡으면, 그들이 우리를 위해 베푼 만큼 우리가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그들 모두가 오염된 충동과 행위에 의해 현재 비참한 상태에 처해 있음을 생각한다면 마치 우리의 어머니가 고통에 처했을 때 우리가 느끼게 될 똑같은 감정을 그들에게도 느낄 것이다. 이러한 감정에서 출발하여 그들을 고통에서 자유롭게 하여 행복하게 만들고 싶은 열망을 갖는, 그런 과정을 통해 자비심 즉 타인을 고통에서 구하려는 의지, 자애로운 온정, 행복을 선사하려는 욕구가 마음속에 뿌리내리게 된다.


이 관법의 다음 단계에서는 자비와 자애로운 온정이라는 목적을 실제로 달성하기 위한 수단을 찾아내고자 한다. 우선 고통의 본질과 근원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자비가 지향하는 목적과 수단이 모두 달라질 수 있음을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육체적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 질병을 치유시키는 것이 목적이며, 병의 원인에 대한 적절한 처방이 수단이 되리라. 그런데 불교의 인생관에 비추어 보면 고통의 범위는 이생에서 경험하는 육체적 혹은 정신적인 병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고통이란 윤회하는 존재가 갖는 기본적인 속성이고, 따라서 되풀이되는 생과 사의 수레바퀴에 개인을 묶어 놓는 업의 세력과 뿌리 깊은 심리적 충동들을 근절시키지 않는 한 고통은 제거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윤회의 원인을 완전히 제거해야만 자비와 자애로운 온정이라는 불교도의 목표가 완전히 달성될 수 있다.


앞의 단계에서 자비로운 관심이 벗과 적 또는 남을 가리지 않고 모든 유정에게로 확대되었다. 티벳인은 타인에게 느끼는 감사와 은혜의 느낌을 강조할 때 '모든 어머니 같은 유정물(有情物)들' 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렇게 모든 존재의 고통에 대해 자비로워질수록, 존재계에서 겪는 고통에 대해 점점 더 넓게 그리고 깊이 알게 된다. 따라서 이런 고통의 일부만을 덜어 보겠다는 생각은 죄악이다. 그 가슴속에서 저절로 자라나는 자비심과 자애로운 온정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고통을 모두 근절하도록 노력한다는 일견 불가능한 생각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결단의 태도를 '증상승의락'(增上勝意樂)이라 하는데, 수행자는 이 '뛰어난 의지'를 가지고서 모든 존재를 모든 형태의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 영원한 평화를 얻게 하려는 자비의 궁극적 목표를 달성하게 된다.


이제 이런 고원한 포부를 실현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일지 살펴보자. 다른 사람들을 고통에서 구하는 위치에 있으려면 먼저 자기 자신이 고통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점은 명백하다. 자신의 혼란한 마음의 매듭을 풀지 못한 사람이 이웃의 매듭을 풀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자비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선행조건은 다른 사람에게서 제거해 주려는 바로 그것을 자신에게서 먼저 제거하는 것이다. 불교의 관점에서 이것은 도덕적인 행동과 집중력, 그리고 지혜를 체계적으로 응용하여 모든 오염된 심리적 충동과 업의 흔적을 없애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수행자가 다만 이런 것들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고 해서 타인에게서도 그것을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윤회하는 존재라는 속박 속에서 스스로가 벗어나도록 노력해야 하는 동시에 타인의 행복을 위해 일하고 남과 의사소통하는 솜씨를 익히는 것도 필요하다.


해탈하는 지혜와 해탈하는 방법, 이 두 가지 능력이 최고도로 발달되는 것은 붓다의 지위에서이다. 왜냐하면 붓다는 실재(實在)의 본질에 대한 지혜를 통해 고통으로부터 해탈한 자이면서 동시에 아직도 존재계에서 다른 이들의 해탈을 위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증상승의락을 실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불위(佛位)를 얻고자 열망하고 그 목표에 이르는 길을 따르는 것이다. 이러한 열망이 가득 찬 마음 상태를 보리심이라고 한다. 일단 이런 태도가 꾸밈없고 자연스럽게 되면 수행자는 보살의 길에 들었다고 할 수 있는데, 보살은 자신의 삶을 다른 이들이 깨달음을 얻는데 바친다.


② 지혜(智慧)


지혜의 목표는 생과 사의 윤회를 끊고 자유롭게 되는 것이다. 지혜가 이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까닭은 되풀이되는 존재의 순환 속에 우리를 얽어매는 것이 바로 지혜와 반대되는 무명(無明)이기 때문이다. 무명이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실제와 다른 모습으로 경험하도록 만든다. 무명에 뒤덮인 마음을 지닌 사람은 어두운 방에서 한 토막의 새끼줄을 뱀으로 알고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과 같다. 무명 때문에 마음의 청정함이 흐려지고 우리는 혼란과 잘못으로 빠져들며 혼란스러운 감정의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뱀인 줄 알고 공포에 질린 사람이 갖가지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명 때문에 지적, 정서적으로 혼란된 사람은 비현실적이며 충동적으로 행동한다. 이것이 윤회가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혼란 때문에 비합리적인 행동이 유발되며 비합리적인 행동 때문에 불쾌한 좌절을 경험하게 되며, 그런 경험으로 인해 다시 마음이 어지러이 혼란해진다. 이것이 생과 사 그리고 다시 태어남(還生)이라는 체계로 확장되면, 이러한 순환적인 움직임으로 인해 우리는 한 존재계에서 다른 존재계로 끊임없이 내몰린다.


이 혼란을 풀고 비합리적인 행동과 고통을 낳는 연쇄반응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지혜를 통해 자아(自我)와 세계(世界)의 실제적인 모습을 확실히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이해 과정은 여러 수준에서 또 다양한 강도로 일어날 수 있다. 어떤 점에서 보면 수행해 나가는 모든 단계란 지혜를 길러나가는 과정이다. 실재에 대한 오해가 사라지면 지혜가 그 자리를 채우게 된다.


지혜란 상대적인 진리(俗諦)와 궁극적인 진리(眞諦) 모두를 그 대상으로 한다. 여하튼 윤회하는 존재의 뿌리에 박혀 있는 혼란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자신과 세계에 관한 궁극적인 진리인 진제(眞諦)를 파악해야 한다. 인도에서 티벳으로 전파된 모든 교파는, 이 진제를 구성하는 내용에 대해, 또한 그것이 속제(俗諦)와는 어떻게 다른가에 대해 각기 독특한 견해들을 발전시켰다. 비록 이 견해들은 붓다가 설한 경전에서 유래한 것이지만 교파에 따라 매우 다르다.


더욱이 자신의 입장을 지키고 다른 교파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벌인 토론과 논쟁에 대한 방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따라서 티벳인들은 잘 정비된 몇 가지 불교철학의 체계와 더불어 각 교파를 옹호하는 다량의 논쟁 문헌을 상속받았다. 결국 티벳에서는 자체적으로 불교철학을 더욱 발전시키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대부분 인도의 선구자들이 확립시켜 놓은 철학적 사유와 이론의 테두리 안에 머물렀다.


전통적으로 티벳인들은, 주요한 불교철학의 학파로 비파사사(毘婆沙師), 경량부(輕量部), 유식학파(唯識學派 또는 唯心學派), 중관학파(中觀學派)의 넷을 꼽는다. 이 중 전자 둘은 소승불교(小乘佛敎) 전통의 대표로, 후자 둘은 대승불교(大乘佛敎)의 전형으로 여긴다. 티벳인들은 이 네 가지 사상체계를 모두 배우지만 실천적인 목적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은 경량부, 유식, 중관의 철학이다.


티벳 승려들은 철학적·교리적 훈련의 기초로 먼저 경량부의 이론을 배운다. 용어를 신중하게 정의하고, 논리학과 토론법을 학습하며, 인식론의 주된 이론에 대한 설명들을 배우는 것이다. 비록 경량부라는 틀에 의거하여 배우기는 하지만, 경량부 철학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불교 체계에로 확장된다. 논리학이나 토론법 및 인식론에 있어서 훈련은 이후의 철학적인 연구에 대한 기초로서도 아주 중요하다. 그러므로 어린 학생이 이 과제를 확실히 파악하도록 하는 데에 여러 해가 걸리기도 한다. 실제로 학생들은 철학적 연구에 필요한〈도구〉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하는 기술을 배웠으므로 이후에 난해한 대승불교 사상을 연구할 때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경량부의 이론 자체도 상당히 중요하므로, 유식과 중관을 배우기 전에 면밀하게 배울 필요가 있다. 경량부의 입장은 일종의 '현상론적 실재론'(現象論的 實在論)이라고 할 수 있다. 경량부 철학자들은, 궁극적인 진리란 개념을 통하지 않고 직접적인 인식을 통해 바로 지각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형태, 소리, 냄새, 맛, 감촉같이 감각적인 지각으로 분명히 느낄 수 있는 것뿐 아니라 여러 수준의 직접적인 정신적 지각을 통해 인식되는 것을 포함한다. 이렇게 궁극적으로 진실한 형상(法, Dharma) 개개는 무상하며, 원인(因)과 조건(緣)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며, 파괴될 운명을 지니고 있으며, 또한 필연적으로 다른 것의 원인이 된다. 그것들은 자체의 실체성을 지니고 있고 주관적이거나 개념적인 어떤 조건과도 독립하여 존재한다고 여겨진다.


경량부에 따르면 상대적인 진리(속제)직접적인 인식을 통해 곧바로 지각될 수 있는 궁극적인 실재에 사람들이 덧씌운 심리적 구조물일 따름이다. 관념이나 추상적인 개념, 일반론 따위의 심리적 구조물은 무상과 연기(緣起)라는 역동적인 과정 속에 포함되지 않는 영속적인 현상이다. 속제의 전형적인 예로는 '막히는 장애물의 부재(不在)'라고 단순히 정의할 수 있는 공간(空間)을 들 수 있다. 이러한 공간 개념은 감각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라기보다는 감각적 지각에 기초하여 마음이 구성해서 직접 경험세계에 끼워 넣은 것이다. 이런 공간은 형태나 소리처럼 궁극적으로 실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는 실재한다. 형태나 소리가 공간 내의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고서 그 움직임을 막는 장애물이 없다고 추론하는 것은 옳다. 따라서 추상적 공간은 상대적인 진리인 것이다.


비록 궁극적 진리라는 다듬지 않은 원재료에 우리가 투영시키고 있는 이 상대적 진리가, 궁극적 진리에 대한 직접적 순수인식을 모호하게 하지만 그들이 실제적으로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서 궁극적 진리를 은폐하는 것은 우리가 궁극적 진리에 덧붙인 그릇된 정신적 구조물들이며 이것들이 궁극적 진리와 모순되는 것이다. 우리의 실재인식(實在認識)을 왜곡하고 따라서 세계와 우리 자신을 실제 모습과 다른 것으로 보이게 하는 그릇된 정신적 구조물에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가 있다.


이 중 첫째 것은 영원이라는 관념인데 실재로는 무상한 대상 세계에 잘못 적용하게 된다(常). 두 번째는 즐겁지 않은 것에 적용하는 즐거움의 관념이다(樂). 세 번째는 무아인 것에 우리가 적용하는 자아라는 관념이다(我). 이 세 가지 뿌리 깊은 관념은 기본적으로 무상(無常)하고 고통스러우며(苦), 무아(無我)인 궁극적 진리와 완전히 반대되는 허구이다 .


그러므로 궁극적 진리를 직접적으로 명료하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실재의 무상·고·무아라는 본성을 왜곡하고 가리우는 상·락·아(常·樂·我)의 그릇된 관념을 마음속에서 제거해야 한다. 이것은 경량부뿐만 아니라 모든 불교 교파의 목표인 것이다. 그런데 경량부가 다른 교파와 구별되는 것은 궁극적 진리의 내용에 대한 그들의 견해에서다. 경량부에서는 무상하고 고통스러우며 무아인 무수한 현상(法)들 그 자체가 궁극적 진리라고 하는데 반해, 중관과 유식에서는 이런 현상들을 상대적 진리라고 여길 뿐이다.


대승학파인 유식(唯識)의 기본적 교리는 '세상 만물은 오로지 마음 뿐'이라는 것이다. 존재의 물질적·정신적 요소들이 고유한 독립적 실체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경량부와는 달리 이유식에서는 마음과 분리되어 존재하는 물질적 실체는 없다. 즉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마음속에 근원이 있는 것이다. 마음과 물질을 주관과 객관이라는 두 가지의 분리되고 무관계한 현상으로 보는 태도에서 모든 혼란이 야기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재의 본질에 대한 무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상·락·아 라는 커다란 오해를 버리는 것과 더불어, 외적으로 현상세계가 존재한다는 뿌리 깊은 오해도 아울러 제거해야 한다. 마음과 물질이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한 다른 모든 오해가 발생할 수 있는 소지가 남아 있는 것이다.


유식에서는 궁극적 진리란 주관과 객관의 이원론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이원론적 인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마음과 그 대상이 두 개의 독립된 실체라는 오해를 버려야 한다. 이 교파에서는 물질-형태·소리·냄새 등 비정신적 현상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고, 그것이 마음이라는 실체로부터 독립하여 존재한다는 것을 부인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책상을 볼 때 책상이라고 생각하는 지각작용과 책상 자체는 완전히 구별되고 무관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 '책상'과 '책상이라는 지각'은 마음속의 한 가지 원천에서 나온 불가분의 것으로 양자 모두 실재적인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그것을 두 개의 독립된 것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명(無明)이라는 습관적인 힘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대적인 진리란, 외부세계나 모든 정식적 상태와 같은 무상한 현상들 그리고 이런 현상들에 덧씌워져 대응하여 구성되는 관념과 개념 모두를 포함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와 우리 자신은 상대적 진리의 범주로 떨어진다. 이런 현상들은 바로 마음이라는 원천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고 주객분리에서 벗어난 상태를 궁극적인 진리라고 판단한다. 자아와 우주의 본질에 대한 습관적 개념들을 근본적으로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즉 모든 존재계가 그것을 경험하는 주체의 마음을 떠나 외적, 물리적으로 실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유식철학에서는 마음의 '외부'와 '내부'사이의 구별은 완전히 상대적인 것이며 그들을 분리시키는 것은 궁극적으로 없다. 마음의 본질만 이해하면 우주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대승교파의 두 번째는 중관파(中觀派, 또는 中道派)이다. 중관파라는 이름에서 나타나듯이 이 철학의 목적은 극단적 입장을 떠나 중도적인 관점에서 사물의 실재를 인식하는 데에 있다. 이 학파에 따르면, 경량부와 유식철학의 관점은 모두 극단적인 것이어서 분석적인 비판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낼 수 없다.


경량부의 실체관은 그 체계의 정당성마저 의심케 하는 몇 가지 약점을 지니고 있다. 우선 중관학파에서 지적하는 첫 번째 약점은 존재의 개별적이고 현상적인 요소들을 궁극적인 것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만약 형태라든가 소리 또는 심리상태 등이 이런 궁극성을 갖는다면, 이 현상들을 보다 가까이에서 고찰함으로써 궁극적인 실체를 보다 뚜렷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번 이렇게 분석해 보면 물질적이거나 정신적인 모든 단일체는 수많은 부분으로 나눌 수 있고 어떤 궁극적인 주체도 의미가 점점 희박해진다 나아가 이 부분들도 다시 원자와 같은 요소들로 나뉠 수 있으며 그것조차 머리속에서는 무한히 분석될 수 있는 것이다.


량부의 두 번째 큰 결점은 존재가 드러나는 데 마음이 기여하는 역할을 무시하는 점이다. 예를 들면 우리 마음속에 형성된 책상이라는 관념이 없이도 책상을 인식할 수 있을까?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나 개념이라는 도구와 전혀 무관하게 어떤 존재를 설명 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추구함으로써 중관부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여러 독립된 요소들에 의해 구성되는 경량부의 실체관이 납득할 수 없는 것임을 드러내려고 한다.


중관 철학자들은 유식학파의 교리에 대해서도 역시 비판적으로 분석하여 몇 가지 의문점을 제시한다. 유식철학은 존재를 창출하는 데 마음이 맡은 역할을 알고는 있으나 그 중요성을 너무 과장한다고 비판한다. 그들에게는 마음이야말로 다른 모든 현상이 궁극적으로 수렴될 수 있는 유일한 실재이다. 따라서 경량부에서 존재요소를 그렇게 생각하듯이, 유식에서는 마음을 독립된 궁극적 실재로 간주한다. 그런데 마음이, 마음에 나타나는 어떤 대상과도 무관하게 존재한다는 주장은 의심스러운 것이다. 이것은 '어떤 것에 대한 의식'이라는 마음의 필연적인 속성과는 상치된다. 그래서 의식 상태를 어떤 것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다.


이같이 중관부에서는 중도적인 입장에 도달하기 위해 극단적인 경향을 보이는 모든 입장에 대해 체계적으로 비판을 가한다. 극단주의는 모두 자신이 믿는 바가 다른 조건들과는 전혀 관계없이 궁극적인 타당성과 실재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중관부에서 보는 바로는, 이제까지 궁극성을 주장해 온 어떤 것도 실은 궁극적이고도 내재적인 자기 동일성을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궁극적인 실체가 없다는 것을 공(空, Sunyata)이라고 한다. 나아가 '공'조차도 어떤 독립된 고유의 실체(自性)를 갖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중관에서는 '공'을 궁극적 진리라고 여기지만, 그것을 궁극성이라는 고정적 특질을 지닌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공'과 별개의 모든 현상들을 중관부에서는 단지 상대적으로 또는 편의적으로 진실한 것으로 여긴다. 다시 말하자면 세상에서 진실한 것을 통하는 것을 상대적 진리라고 말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떠어떠한 특성을 지닌 대상은 책상이다.' 라고 믿는다. 그러나 실제의 책상은 마음속에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므로 이런 표현은 상대적으로만 진실하다. 실제로 이런 경우를 살펴보려고 보다 심층적으로 분석해 보면, 우리의 상식적인 판단기준이 부당하다는 것을 곧 알 수 있다. 우리가 책상의 각 부분에서 '실제'의 책상을 찾으려 한다든가, 책상이 의식과는 무관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해 보려고 하면 곧 우리는 세계를 떠받치고 있는 가설의 틀이 와해되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결국 궁극적이고 불멸한 핵심으로서의 자성(自性)을 지닌 것은 없으며 대상을 지각하는 의식과 무관하여 존재하는 책상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불교 철학에 대해 이상과 같이 간략한 개관은 여러 논의들 중에서 뚜렷한 일부분만을 다룬 것이다. 교리 연구에 뜻을 둔 티벳 승려는 난해한 불교 사상 전체에 정통하기 위해서 20년 이상을 정진해야 한다. 교리라든가 각 학파의 주된 관점을 배우는 외에도, 깨달음으로 가는 여러 수행법과 일종의 불교현상론이라 할 수 있는 아비달마 논서들, 승단의 계와 율과 같은 과목도 광범하게 공부해야 한다.


티벳인들이 이런 연구를 하는 데는 각 국의 학자들이 편찬한 주석서(論, Sastra)를 일차적인 기초로 삼는다. 인도의 주석서도 참고하지만 경전(經, Sutra)자체에 대해서 세부적으로 연구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들은 붓다가 설법을 행한 의도는 주석들 속에 가장 확실히 표현되어 있으며, 처음부터 복잡하고도 일견 모순되는 듯이 보이는 경전 내용을 읽기 시작하면 초보자들은 점점 더 혼란에 빠지게 되리뿐이라고 생각한다. 주석은 경전 속에 감춰져 있는 보물을 여는 열쇠이다. 따라서 교리학습을 할 때 맨 처음 해야 할 일은 이 열쇠를 얻는 것이다 한번 이것을 얻으면 경전의 난해함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


그러나 불교의 최종 목표가 교리적인 연구나 철학적 탐구만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훈련과정은 연구와 논리적 탐구로부터 얻어지는 분석적 지혜를 계발하도록 기여할 수는 있으나 가장 뿌리 깊은 윤회의 속박에서 자유롭게 해 주지는 못한다. 이 일은 명상으로부터 얻어지는 지혜가 해야 하는 일이다. 연구하고 탐구한다는 것은 실로 이러한 지혜에 굳건한 기초를 제공하는 것이며, 이것이 지혜를 대치할 수는 없는 것이다.


개개인의 역량과 성향에 따라 명상적 지혜를 계발시키는 두 가지 접근 방식이 있다. 지적 성향을 가진 사람에게는 먼저 불교철학에서 설명하는 바와 같은 궁극적 진리의 본질에 대해서 분석적으로 이해해보도록 권장한다. 여기서 티벳 전통은 대부분 중관부의 관점을 중시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유식적인 요소를 가미하기도 하고, 혹자는 두 사상 체계에 대해 독자적인 견해를 발전시켰다.


일단 수행자가 확고한 지적 통찰을 얻게 되면 그 다음은 정신활동을 멈추고 마음을 한 곳으로 모으는 '지'(止, samatha)를 수련하도록 가르친다. 이 때 모아진 집중력과 분석적 통찰을 결합시켜 의식의 가장 깊은 영역까지 그 통찰이 미치도록 한다. 나아가서 집중력이 지속되면 그 힘에 의해 성찰의 분석적 측면은 감쇄되어 마침내 소멸된다. 이러한 방법으로 수행자는 궁극적 진리에 대해 개념적인 것이 아닌 직접적인 깨달음을 얻게 되며 따라서 뿌리 깊은 습관적인 힘(習氣)과 무명(無明)을 근절할 수 있다.


지적 분석을 즐기지 않는 사람에게는 여러 다른 방법으로 지혜를 닦도록 가르친다. 보통 처음에는 지(止)를 수련한다. 이렇게 해서 마음이 가라앉고 확고하게 되면 이어서 간단한 일련의 추론이나 다른 방법을 사용하여 혼란된 사고와 충동의 장막 뒤에 감추어진 궁극적인 진리에 바로 이르도록 한다.


이렇게 통찰을 얻는 가장 잘 알려진 방법으로는 '마하무드라'(Maha-mudra)'최원만'(最圓滿, Tib. dzog-chen, 족첸)의 가르침을 들 수 있다. 이 두 가지는 마음의 기본적인 본질을 실현하는 매우 직접적인 방법으로 때로는 밀교 수행과 곁들여서 가르쳐진다.


③탄트라-밀교


흔히들 티벳불교는 일종의 탄트리즘일 뿐이며 인도에서 전래된 불교는 티벳의 고유한 무속신앙과 곧 습합되어 버렸다고 생각한다. 이런 견해들은 요 근래 티벳 불교에 대한 신빙성 있는 문헌이 증가함에 따라 수정되고 있지만, 불교에 있어서 탄트라 수행의 기원과 역할에 대해 아직도 상당한 혼란이 남아 있다.


앞 절에서 보았듯이 티벳불교는 그 기본적인 방향과 외형이 인도 불교의 고전적 전통에 확고히 기반을 두고 있다. 세계관과 인간의 존재 이유는 탄트라나 티벳의 토속 신앙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불교 사상에 따라 결정된다. 더군다나 탄트라 가르침 자체도 고유문화의 산물이 아니라 인도에서 전래된 것이다. 주된 탄트라 경전 대부분은 산스크리트어에서의 번역본이며 밀교 수행의 계보는 인도 스승에서부터 이어져 온다.


인도와 마찬가지로 티벳인들도 밀교의 가르침은 석가모니 자신이 처음 교시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깨달음을 얻은 존재가 많은 모습으로 동시에 현현할 수 있다는 대승불교의 교리에 따라서 석가모니가 특별한 밀교적 형태로 화현하여 선택받은 제자들에게 비전(秘傳)의 가르침을 베풀었다고 믿는다.


붓다가 가르친 밀교는 전수자들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지혜를 전함으로써 이루어졌으며, 또한 인간이 충분히 진보되어 그 땅에 널리 퍼지게 되기까지는 인간계가 아닌 영역에서 보존되어 왔다고 한다.


티벳밀교의 시조는 인도인인 빠드마삼바바라 할 수 있다. 그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빠드마삼바바는 연꽃 송이에서 출생했다고 한다. 그는 붓다가 열반한 8년 후에 지금의 북 파키스탄 지방에서 태어났다고 하며 그가 가진 탄트라 힘 때문에 천 년 이상 살았다고 한다. 또한 많은 티벳인들은 그가 아직도 랏사 지방에 살아 있어서 고도의 영적 성취를 얻은 사람들은 그를 만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9세기에 티송 데첸 왕의 초청으로 티벳에 왔다. 그에게 부과된 임무는, 최초의 주요 수도원인 삼예(Samye)사원을 짓는 데에 방해하는 악령을 굴복시키는 것이었다. 이 악령의 힘을 격파하고 나서 그는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대승불교와 탄트라의 가르침을 설파하였고 또한 불교 전파를 방해하는 그 지방의 악령을 굴복시켰다.


탄트라 수행에서 얻은 힘을 보여줌으로써 빠드마삼바바는 고유의 무속(巫俗)사제들을 굴복시킬 수 있었고, 티벳인들의 종교적인 심성 속에 깊이 뿌리 박혀 있던 영성(靈性)의 수준에 곧바로 호소할 수 있었다. 그가 반불교적인 악령의 힘을 '굴복'시키고 '개종'시킨 의미는 티벳인들에게 보다 고차원적이고 보편적인 불교의 가르침을 소개함으로써 그들의 심성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무속신을 부셔버린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불교 교리나 철학을 공부하는 학자들과는 달리 불교의 가르침을 순수 개념적 형태로 제시한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상징적 형태로 구체화시켰다.


빠드마삼바바는 탄트라의 힘이라는 매체를 통해 불교를 전래함으로써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티벳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또한 자신이 일단 굳건한 형태로 구체화하고 체험한 종교적 진리에는 쉽게 반응하는 티벳인들의 내면적인 영적 성향 때문에 탄트라는 곧이어 대중 속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불교의 가르침은 티벳인들 속에 살아있게 되고 절대적인 사상과 교의로서 머무르게 되었다. 그러나 티벳 불교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단순한 탄트라의 등장이 아니라, 비탄트라적인 것과 탄트라가 하나의 체계적인 전체로서 통일하는 방식이다. 티벳의 주요학파들은 각기 인도로부터 전래된 여러 다양한 전통들을 결합하여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 대한 총괄적인 구도를 제시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탄트라'(tantra)라는 산스크리트어는 탄트라 가르침이 수록된 문헌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따라서 티벳인들이 '탄트라'라는 말을 쓸 때 그것은 대부분 주요 경전을 가리키는 수트라(sutra)와 구별되는 일련의 불교 문헌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한다. '탄트리즘'과 '탄트라 불교'라는 말은 현대 철학자들이 만들어낸 용어로 티벳어에는 정확히 이에 대응하는 표현이 없다. 티벳인들은 탄트라 문헌들에 수록된 가르침과 수행법을 가리키는 말로 흔히 '밀주'(密呪, guhyamantra)라는 표현을 쓴다. 탄트라 문헌 속에서 가르치는 수행을 활용하여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일러 '금강승'(金剛乘, Vajrayana)이라고 한다.


탄트라 문헌에는 강규, 즉 석가모니의 말씀을 모은 경이 포함되는데 이것은 4부로 나뉜다. 각 부는 모두 탄트라를 수행하는 각 단계를 묘사하고 있는 여러 글들을 담고 있다. 그 4부란 크리야 탄트라, 챠리야 탄트라, 요가 탄트라, 그리고 아누타라요가 탄트라이다. 4가지 탄트라 문헌의 교의는 모두 티벳에 보전되어 있으나, 티벳인들은 실제 수행에서는 크리야 탄트라와 아누타라요가 탄트라를 주로한다. 닝마빠에서는 더욱이 아누타라요가 탄트라 대신 마하 요가(Maha Yoga), 아누 요가(Anu Yoga), 아티 요가(Ati Toga)의 세 가지 내면적 탄트라를 들고 있다.


이들 탄트라 가르침의 4가지(닝마빠의 경우 6가지) 부분은 일차적으로 신격(神格, deva)과 맺는 관계의 유형에 따라 계위가 나뉜다. 여기서 신격이란 말은 기독교나 힌두의 신 개념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이다. 이것은 특히 붓다로서 인격화되고 구체화된 빛나는 상징적 존재를 가리킨다. 탄트라를 수행하는 목적은 첫째로 어떤 사람을 깨달음의 상태로 들어서도록 하고 나서 점차적으로 그 상태를 자신의 의식 속으로 수렴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신격(神格)과 일치되는 상태에 도달함으로써 얻어지며 신격이 상징하는 특징에 대한 통찰이 점차 심화되어 자기 자신의 것으로 되는 것이다. 탄트라에서 깨달음을 통해 얻는 관계란 원인과 결과라는 형식이 아니며 인격 상호간의 굳건한 관계라는 형식을 취한다. 특히 탄트라 문헌의 네 부분 각각에서는 이러한 신격과의 관계 유형을 남·녀간의 성적 결합의 단계와 비교하면서 뚜렷이 설명하고 있다.


우선 크리야 탄트라를 수행할 때에는 자신과 분리되어 주체성을 갖는다고 여기는 신격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집중한다. 자기 앞에 있는 공간에 신격을 재현하여 영상화하는 법을 배우며,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자신의 마음의 성질에 대해 깊이 명상한다. 그리고는 그에 대해 여러 가지 찬미와 기도를 올리며 만트라를 음송한다. 마지막으로 그가 빛으로 해체되어 자신의 육체·언어·마음속으로 녹아 들어오는 것을 상상한다. 이 탄트라의 계위에 속하는 신격으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 觀世音菩薩도 같은 인물이다), 문수보살(文殊菩薩, Manjusri), 금강역사(金剛力士, Vajrapani), 금강살타(金剛薩 , Vajrasattva), 따라(多羅, Tara) 등이다. 그들은 각각 자비·지혜·힘·청정함·깨달음의 작용을 상징한다.


크리야 탄트라는 더럽고 오염된 인간조건과, 청정하며 더럽혀지지 않은 신격이 대조되는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신격과의 관계 정립을 통해 그들이 대표하는 특질을 흡수해 가면서 점차로 자기 자신에게서 더러움을 제거하여 결국 신격의 상태에 이르고자 한다. 그러나 아누타라요가 탄트라를 훈련하는 데에는 신격과 맺는 관계에 있어서 커다란 차이가 있다. 즉 신격과 자신을 완전히 동일시하고 자신이 사는 곳과 신격의 정토를 동일시한다. '자신이 곧 신격'이라는 자부심을 기르기 위해 신격과 다르다는 어떤 생각도 버려야 한다. 그런 수행을 통해 자신이 하는 행위를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붓다의 행위로 여기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수행 방식은 아누타라요가 탄트라에만 독특한 것으로, '붓다의 삼신(三身)을 깨달음에 이르는 길로 삼는 것'이라 부른다. 다시 말하면 깨달음을 먼 목표로 생각하지 않고 인간 현 존재의 매 국면 내에서 깨달음을 이루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탄트라 수행이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바는 신격과 진정한 합일을 이룸으로써 자신의 정신이나 말이나 몸으로 드러나는 표현이 붓다의 깨달음이 상태를 반영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한 합일을 실현하는 것은 깨달음 자체를 성취하는 것과 동등하다. 신격들과 합일하는 여러 다양한 단계는 깨달음을 실현하려는 탄트라의 독특한 접근법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티벳 불교를 돌아보면 자비와 지혜를 점진적으로 습득하는 것도, 깨달음의 최종 결과도, 대승 경전에서 묘사되는 것과 같다.


수트라와 탄트라 문헌들과는 그 목표의 본질에 있어서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이 다를 뿐이다. 티벳인들이 대개 탄트라 문헌의 가르침을 수트라의 교리보다 우위에 두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즉 탄트라 수행의 결과가 어떤 점에서 다르거나 우월해서가 아니라, 탄트라 수행의 '방법'이 비탄트라 수행법보다 짧은 시간 내에 신속히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월한 것이다. 그래서 금강승을 '신속한 길'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 신속한 방법은 단지 쉽기만 한 지름길은 아니다. 수행자에게 최고의 노력을 요하는 모진 수련이 요구된다. 신격과 합일하려면 첫 단계를 수련하기 전에 엄격한 도덕적 계율을 지킬 각오가 되어야 하며 길고 험한 예비단계를 거쳐야 한다. 출가를 위한 기본적인 자질을 배양해야 할 뿐 아니라, 이타적인 보리심 일으켜야 하고, 궁극적인 진리에 대해 일정 수준의 통찰력을 기른 후에 또 특수한 다섯 가지 예비 수련을 해야 한다.


그 예비 수련이란 첫째 오체투지(五體投地)를 오십만 번 행하고, 둘째 오백 음절로 된 금강살타 만트라를 십만 번 암송하고, 세 번째 불·법·승 삼보(三寶)에 귀의한다는 맹세를 십만 번 읊조리고, 네 번째 수행자 각각의 스승(Lama)이 내려준 만트라를 십만 번 암송하는 것이다. 이 예비수련의 목적은 탄트라 수행에 대한 수행자의 결심과 신념을 강화시키고 그 마음속에서 수행을 방해하는 성향을 제거하려는 것이다.


일단 예비 수련이 끝나면, 어느 한 신격의 만달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입문 즉 '관정(灌頂)'이란 해당 신격과 관련된 수행에 들어가기 위해 탄트라 전수자로부터 권위를 부여받는 과정이다 이것은 전수자가 그 신격의 상태를 실현했음을 수행자가 완전히 알아보아야만 가능하다. 한 신격의 만달라는 그 신격의 독특한 세계와 같은 것이다. 흔히 만달라는 대칭인 원형의 형태로 되어 있지만 실은 실제의 만달라계(界)를 2차원의 다이아그램으로 단순화시킨 것이다. 실제로 만달라는 거대한 공간이며 그 정 중앙에는 천인이 사는 궁전이 있다. 만달라 전체는 신격된 지혜의 현현(顯現)이며 그 깨달음의 상태와 분리될 수 없다. 또한 투명하고 빛나는 세계이며, 그 각 부분 부분은 모두 깨달음의 모습을 상징한다.


신격과의 합일로 나아가는 아누타라요가 탄트라의 첫 번째 기본단계는 자신과 세계에 대해 가졌던 '일상적' 관념들을 마음속에서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다. 자신을 신격으로, 그리고 이 세상을 만달라로 여기고 생각하는 것을 배움으로서 이것은 달성된다. 이렇게 일상적인 생각들을 전환시키려면 신격과 만달라의 각 부분 부분을 계속해서 영상화하고 조합해 나가야 한다. 순수하고 텅 빈 공간을 확장해 나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한 부분에서 부분으로 신격과 만달라의 형상을 현현해 내도록 수련한다. 모든 형상과 색채를 수행자가 손을 뻗어 만질 수 있다고 느낄 정도로 사실적으로 보일 때까지 마음의 눈에 확고하게 고정한다. 그리고 수행자는 이 우주를 조각조각 분해한다. 만달라의 외부계는 점차 안으로 녹아 들어오고 다시 신격 속으로 녹아 들어온다. 그러면 실격은 점차 그의 마음 정 중앙점으로 흡수되는데, 이는 최종적으로 텅 빈 공간 속으로 다시 분해되어 버린다.


자신 및 세계에 대한 일상적인 관념을 전환시키는 외에 신격과 만달라의 형태를 반복해서 영상화시키고 분해하는 수행은 집중력과 상상력을 강화시켜준다. 그런데 이 영상이 수행자에게 아무리 생생하게 느껴진다 해도 오로지 집중된 상상력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수행자가 깨달은 존재와 그의 세계의 외적 형상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이제 이 형상에 깨달음의 실질적인 힘을 불어넣어야 한다. 이렇게 신격과 만달라의 모습을 영상화하는 탄트라 수행의 첫 단계를〈생성의 단계(生起次第)〉라고 하며 이러한 위에서 깨달음이 실현되는 최종단계를〈완성의 단계(圓滿次第)〉라고 한다.


아누타라요가 탄트라의 가르침 중 가장 특징적인 것은 육체와 정신을 삼중(三重)구조로 이해한다는 점이다. 이 교리에 따르면 육체와 정신에는 거친 수준, 미세한 수준, 극히 미세한 수준이 있다. 거친 수준이란 육체로 보면 물리적 형체에 해당하며, 정신으로 보면 정상적으로 깨어있는 의식 상태를 말한다. 미세한 수준이란 생명력(prana), 혈맥(nadi), 챠크라(cakra)를 말하며, 정신에서는 꿈꾸는 상태를 말한다. 극히 미세한 수준은 심장 속의 불멸의 에너지 방울(bindu)이며, 정신적으로는 깊은 수면상태의 의식이다.


수트라에서의 불교 수행이란 대체로 물리적 존재와 깨어있는 의식인 거친 수준에 한정된다. 그러나 탄트라에서는 특히 완성의 단계 동안에는 육체와 정신 모두 미세한 내지 극히 미세한 수준에서 수행하도록 한다.


이렇게 육체와 정신을 여러 층으로 분화시킴으로써 심신(心身) 관계에 대한 전통적인 불교 이해 또한 달라진다. 육체와 정신은 단지 거친 수준에서만 서로 다르고 분리된 것이다. 그러나 미세한 수준에서는 정신을 생명력과 분리해 볼 수 없다. 정신 혹은 의식이 있는 곳에는 항상 욕망 내지 충동을 동반하는 미세한 육체적 에너지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극히 미세한 수준에서는 마음과 몸은 근본적으로 동일하다고 여긴다. 그래서 정신과 육체란 단일한 현상인데 점차 거칠어져 가는 과정을 통해서 둘 간에 분화가 생기고 서로 공존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육체와 정신에 대한 견해를 통해 죽음에서 환생하는 과정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육체 및 정신의 세 수준죽음, 죽음과 환생의 중간기, 즉 중음(中陰, Tib. bardo)의 상태, 그리고 특정 계로 환생하는 세 단계에 유비(類比)해서 이해할 수 있다. 24시간 동안에 육체와 정신은 죽음→중간기→환생의 과정과 같은 단계를 경험한다. 즉 모든 의식과 에너지가 심장으로 모여 깊은 수면에 빠지는 것은 죽음과 같고, 깊은 수면에서 빠져 나와 꿈을 꾸는 것은 중간기와 같으며, 깨어나서 외부 세상과 육체를 의식하는 것은 환생에 비견된다. 두 경우 모두 해체와 생성의 동일한 유형을 취한다. 죽음과 깊은 수면에서는 육체와 정신은 통일되고 극히 미세한 형태로 작용하며, 중간기와 꿈꾸는 동안에 몸과 마음은 미세한 수준으로 움직이며, 환생과 깨어있는 의식에서는 육체와 정신이 분리된 거친 상태로 나타난다.


인생을 이같이 기본적인 유형으로 규정하고 나서, 탄트라에서는 붓다의 삼신설(三身說)을 철저히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해 나간다. 전통적인 대승의 교리를 따르면, 이 삼신(三身, trikaya)은 붓다의 세 가지 기본적 측면을 나타낸다. 법신(法身)은 보편적이고 근본적이며 깨달음의 영적인 핵심이다. 보신(報身)은 정토에 계시는 영묘한 붓다의 모습이며 고도의 단계에 있는 보살만이 직접 접할 수 있다. 그리고 화신(化身, 혹은 應身)은 실제로 이 세상에 나타나는 물리적인 모습이다. 탄트라 가르침에서는 붓다의 삼신이 육체와 정신의 세 수준 및 죽음·중간기·환생의 세 가지 과정과도 관련된다.


대승 경전의 약간 형이상학적인 해석과는 대조적으로 탄트라의 권위자들은 깊은 수면·꿈·깨어있음의 과정과, 죽음·중간기·환생의 과정에 기반이 되는 해체와 생성의 원칙이 법신·보신·화신에서도 마찬가지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탄트라 수행의 목적은 깊은 수면·꿈·깨어있음 그리고 죽음·중간기·환생이라는 오염되고 불만족스러운 과정을 법신·보신·화신이라는 정화된 측면으로 변환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은 수트라에서 가르치듯이 먼저 삶과 죽음의 윤회로 몰고 가는 힘을 끊고서, 다음에 법신이라는 초월적 상태를 실현하며 끝으로 존재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 보신과 화신을 나타내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을 죽음과 중간기와 환생으로 이끄는 해체와 생성의 과정은 법신이 보신과 화신의 모습을 취하도록 하는 바로 그것과 본질적으로는 같기 때문이다.


심지어 수트라에서는 욕망과 증오의 힘을 극도로 제거하지만 탄트라에서는 에너지와 의식의 보다 미세한 수준이 단지 거칠게 나타난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그러한 것들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단지 그들의 중성적인 활동적 본성을 파악하여 정신의 건전한 자질로 재구성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육체와 정신의 활동에서 미세하거나 극히 미세한 수준의 움직임에 대해서 우리는 보통 의식하지 못하거나 통제하지 못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수행자는 완성의 단계에서 명상의 힘을 통해 미세한 혹은 미세한 수준의 정신과 에너지를 의식적으로 고양시키는 여러 방법을 배운다. 그러나 이런 것을 시작하기 전에〈생성의 단계〉에서 신격과 만달라의 형상을 생성·분해하면서 개발한 집중력을 완전히 습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존재의 육체적 정신적 힘을 미세한 내지 극히 미세한 수준에서 실제로 고양시키고 효율적으로 변환·재조정하는 능력은 그러한 집중력을 통해서만 습득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생성의 단계는 깨달음을 준비하기 위한 리허설과도 같다. 죽음·중간기·환생의 과정을 법신·보신·화신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세밀하고도 상징적으로 연습해 보는 것이다. 그 다음에 잇따른 완성의 단계는 실제 공연으로 비유될 수 있다.


완성의 단계로 진행한 수행자는 미세한 및 극히 미세한 수준의 의식을 활동시키기 위해 육체의 에너지 조절에 대해 여러 수행을 해야 한다. 이 수행에서는 특히 극히 미세한 수준에서 육체 및 정신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다른 육체적·정신적 기능이 발생하는 심오한 근원이다.


이것을 달성하려면 거친 내지 미세한 수준의 모든 에너지와 정신을 모아서, 심장에 있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에너지 방울로 분해시켜야 한다. 이 과정은 죽음의 과정과 유사하다. 이 수행에서 채택하는 방법의 하나는 성적 흥분을 통해 생성되는 강력한 에너지를 의식적으로 돌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성적'(性的) 수행은 절대로 난잡하게 배워서는 안되며 완성단계라는 고도의 수준에서 특정한 목적을 위해서만 사용해야 한다.


일단 극히 미세한 수준에서 육체와 정신이 활성화되고 나면 그것의 중성적인 상태에서 궁극적인 진리에 대한 집중된 자각 상태로 전환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수행자는 법신의 기초를 확립하며, 탄트라 식으로 말하면 신격의 마음 가장 깊숙한 수준과 직접적으로 결합하는 상태를 이룬다. 그리고 나서 미세한 내지 거친 수준의 육체적·정신적 활동이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미세한 수준에서 수행자는 신격과 만달라의 빛나는 모습을 다시 영상화한다. 이것은 붓다의 보신의 측면으로서, 꿈과 그리고 죽음 환생의 중간기에서 변화된 상태이다. 마지막으로 물질성과 깨어있는 상태의 거친 수준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붓다의 화신의 측면으로 깨어나서 신격의 모든 측면과 합일을 이루고 전환하는 과정을 끝맺는다.


아누타라요가 탄트라 수행에 참여하길 원하면, 먼저 자격을 갖추고 있으며 어떤 특정 신격의 만달라를 그에게 전수해 주고자 하는 스승을 찾아야 한다. 스승의 충고와 수행자의 기질에 따라 여러 가지 신격 중 하나를 선택하여 수행법을 전수 받는다. 이러한 신격들 중 흔히 택하는 것으로는 구햐사마쟈, 챠크라삼바라, 야만타카, 마하칼라, 바즈라요기니 등이다. 일단 전수 받고 나면 그 신격과 만다라를 묘사하는 짤막한 경전을 매일 참구해야 하며, 그럼으로써 그 수행의 목표와 기본 윤곽을 파악하게 된다.


그러나 생성 및 완성 단계의 수행에 전적으로 몰두하려면 엄격한 명상훈련에 돌입해야 한다. 이 명상훈련은 혼자서 혹은 동료수행자들 소집단과 함께 할 수도 있다. 수행은 삼년, 석달, 삼일 이런 식으로 진행되며, 그 동안 수행의 전 과정을 통과하게 된다. 티벳의 라마승들은 흔히 탄트라 수행의 삼년 과정을 몇 번 반복하여 이수한다.[대현약우]

 

Nyingma

Kagyu

Sakya

Gelug

Old Translation

New Translation

New Translation

New Translation

Red Hat

Red Hat

Red Hat

Yellow Hat

 

Nyingma

 

The Nyingma lineage is said to have "six mother monasteries," although the composition of the six has changed over time:

Dorje Drak

Dzogchen Monastery

Kathok

Mindroling

Palyul

Shechen

Also of note is

Samye -the first monastery in Tibet, established by Padmasambhava and Shantarakshita


Kagyu

 

Many Kagyu monasteries are in Kham, eastern Tibet. Tsurphu, one of the most important, is in central Tibet, as is Ralung.

Palpung Monastery- the seat of the Tai Situpa and Jamgon Kongtrul

Ralung Monastery -the seat of the Gyalwang Drukpa

Surmang Monastery- the seat of the Trungpa tülkus

Tsurphu Monastery - the seat of H.H. the Gyalwa Karmapa


Sakya


Sakya Monastery - the seat of H.H. the Sakya Trizin


Gelug


The three most important centers of the Gelugpa lineage are Ganden, Sera and Drepung Monasteries, near Lhasa:

Ganden Monastery - the seat of the Ganden Tripa

Drepung Monastery - the home monastery of the Dalai Lama

Sera Monastery


Three other monasteries have particularly important regional influence:

Tashilhunpo Monastery in Shigatse - founded by the first Dalai Lama, this monastery is now the seat of the Panchen Lama

Labrang Monastery in eastern Amdo

Kumbum Jampaling in central Amdo


Great spiritual and historical importance is also placed on:

Jokhang Temple in Lhasa -said to have been built by King Songtsen Gampo in 647 AD, a major pilgrimage 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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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트리즘(Tantrism : 密敎)이란 무엇인가 ?

티벳종교 2004/09/02 22:31 

 

                                                             The Sri Yantra

 

Statue of the Tantric goddess Kali from Dakshineswar, West Bengal, India; along with her Yantra.

 

티벳불교는 탄트라 불교 즉 밀교 혹은 탄트리즘(Tantrism : 密敎)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티벳불교의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파드마삼브하

 (Padmasambhava)'라는 인물이 티벳에 가져온 불교가 북부인도의 탄트라 불교이기 때문이다. 흔히 탄트라 불교를 '밀교'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비밀불교(密佛敎) 혹은 밀의(密儀)종교의 약칭으로, 종교적 용어로는 '진언(眞言)밀교'라고도 부른다. 밀교란 경전과 교리를 중심으로 한 일반불교를 '현교(顯敎)'라 하는 것에 대한 대칭어이다.

 

                                 19세기 티벳의 탕카. 황모파사원에 있는 타라 여신 


탄트라 불교는 7세기경 인도의 북동부와 북서부에서 체계화된 것으로, 대승불교사상과 민간신앙이 합쳐져 성립된 것이다. 대승불교는 수도자들만의 해탈을 목표로 하는 소승에 비해, 보다 후에 성립된 것으로 모든 대중의 해탈을 추구하는 불교의 한 종파이다. 사상적으로는 화엄(華嚴)사상·중관파(中觀派)·유가행파(瑜伽行派)사상 등에 기반하고 있다. 여하튼 이러한 대승불교와 농경에 생활의 기반을 둔 대중들의 민간신앙을 이루는 여러 다신(多神)신앙과 신비한 종교의례, 그 안에 포함된 마법과 주술적 신앙형태가 결합되어, 탄트라 불교라는 독특한 영역이 만들어졌다.


탄트라불교의 비밀스러운 수행에는 두가지 유형이 있다. 우도(右道) 탄트라와 좌도(左道)탄트라이다. 먼저 우도탄트라는 만트라, 무드라의 의례적 수행, 신비스런 원인 만달라 (Mandala)와 관련된 의례와 명상을 중심으로 한 밀교전통이다. 한편 좌도(左道)탄트라는 섹스 요가적 수행을 중시한다. 흔히 밀교라고 하면 부정적인 의미에서 섹스에 치중한 타락된 불교로 이해되어온 면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이 좌도밀교의 부정적 측면만을 부각시켰기 때문이다. 실제로 좌도탄트라의 사상자체는 힌두교로 대표되는 인도의 고대종교에서 섹스 요가적 요소를 종교적 실천으로 행한 것을 수용하여, 이것을 대승불교의 구원론과 연결시킨 것이다.


좌도탄트라에 따르면, 인간의 욕망은 욕망으로서 제거될 수 있다. 즉 성욕은 그것을 충족시키는 가운데 그 욕망위로 솟아오름으로서 극복될 수 있다. 나아가 자연의 절대적 힘은 남성적 요소와 여성적 요소의 합일을 통해 이루어졌음에 주목한다. 이런 사상은 대승불교의 구원론과 연결된다. 대승불교에서는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혜와 자비가 결합되야 한다고 본다.

 

배우자를 안고 있는 시타삼바라 몽골라마교의 대표적인 수호신령 중 하나로, 배우자를 가지고 있다


좌도 탄트라는 이것을 응용해서, 지혜는 여자로, 자비는 남자로 보았다. 따라서 좌도탄트라에서는 깨달음을 위해 여자가 필요하다. 밀교의 조각상에서 불보살들이 배우자를 껴안고 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곧 지혜와 자비의 결합을 통한 구원을 상징한다. 그래서 좌도탄트라의 신들에게는 여성배우자가 있어서 그를 보좌하며, 그 신들은 이들 배우자와 합일했을 때 가장 큰 주술적 힘을 가질 수 있다고 믿어진다. 이런 성적 합일의 순간에 남녀의 구분을 포함한 깨달음을 저해하는 모든 분별과 차별을 낳는 이원론적 사고가 극복되고, 불교적 진리의 핵심인 '空'을 체험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남녀의 성적 결합은 깨달음을 위한 수행의 일부이다.


좌도 탄트라에 따르면, 남녀의 성적 행위가 구제와 깨달음을 위한 것이라면, 결코 부도덕하지 않다. 신비한 원, 즉 만달라의 세계로 대표되는 참된 진리세계의 관점에서, 모든 외부의 현상계와 그 안에 존재하는 남녀, 선악의 구별 등은 마음이 만든 환상일 뿐이다. 참된 진리의 차원 혹은 깨달음의 세계에서 남녀의 구별은 이미 없다. 따라서 요가의 실천을 위해서 만달라의 세계에 들어간 수행자에게 성적 행위는 더 이상 부도덕한 남녀의 사랑노름이 아닌, 깨달음을 위한 성스러운 수행인 것이다.


실제로 이런 비밀스런 의식은 구루에 의해 선택된 자격있는 수행자들만이 참여할 수 있다. 보통 이런 의식은 만달라, 만트라, 무드라, 신격으로서의 남성과 지혜를 상징하는 여성의 결합 등으로 이루어진다. 호흡조절과 의지력으로 사정을 억제하고, 정액을 몸으로 되돌린다. 탄트라에서는 "여명의 언어"라는 암호를 통해 이 비밀스런 제의를 나타냈으며, 정액은 깨달음을 의미하는 보디(菩提),, 남녀의 생식기는 벼락과 연꽃으로 표시했다고 한다. 이렇게 탄트라 제의에서 남녀의 성적 결합은 감각적 쾌락을 위한 것이 아닌 깨달음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생각되었다.


본래의 불교라고 할 수 있는 원시불교에서 밀교적 요소 즉 주문, 주술적 행위나 의례를 강조하는 경향은 그리 큰 부분을 차지하지 못했다. 그런데 수도자 중심의 소승불교에 비해 수도자에 국한하지 않은 모든 대중의 구제를 목표로 했던 대승불교는 모든 사람들이 불교를 가까이 하게 하기 위해 주술적 성격이 강한 대중의 신앙을 수용하려고 애썼다. 그런 노력의 결과, 탄트라불교가 발전되게 된 것이다. 서기 200년 이후 탄트라 불교는 점점 대두하기 시작했으며, 8세기경에는 인도 북부지역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후에 이 밀의적 불교가 티벳에 전파되어 티벳불교를 형성하게 된다. [무소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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