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SINA-신중국

漢民族(華人) 이란 개념?

한부울 2009. 5. 4. 00:29

한(漢)도 동이(東夷)이고 조선이다.  http://blog.daum.net/han0114/17048297 

화교(華僑)  http://blog.daum.net/han0114/17047604

객가(客家) Hakka- 지나유태인 http://blog.daum.net/han0114/17047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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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한(漢)이라는 단어에서 더 이상 혼돈스러워 하지 않고 제대로 정립할 필요성이 있어 여기에 일본측 위키자료를 제시한다. 특히 일본측 자료이니 오죽하겠는가 마는 명청(明・清王朝)은 대륙조선의 중앙정부 명칭이라는 사실을 먼저 인식하여야 한다.

 

한(韓)은 전통적으로 정복이란 넓은 의미로 쓰여진 문자이다.

때문에 몽고시대에는 테무진 티무르 징스기 칸이라고 빌여쓰게 되었다.

그러자 19세기 말엽 서세동점시기에 객가 지나유태인들이 신해혁명의 기운을 업고 국민당을 만들고 정치적인 집단으로 발전하면서 중화라는 단어와 어울리는 한(韓)의 대칭적 의미에 글자를 찾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한(漢)이라는 단어이다. 여기서도 지적했듯이 19세기말엽에 만들어진 신조어라고 하고 있듯이 전통성없는 정치성이 농후한 단어 일뿐이다.

 

韓(khan, 汗)을 漢이라고 하면서 발생하는 오류 속에 숨겨져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는 중화패권야욕인데 중화라는 단어는 아시아고려 대륙조선이 지양해온 정치적 단어이다. 韓(khan, 汗)을 漢이라고  바꿔부르며 그것을 대륙역사의 표본처럼 만들고 그들이 마치 승계 한것처럼 꾸며 실체화한 것은 전통성을 부여받고자 한 것이며 시기적으로 따진다면 자의던 타의던 大韓帝國 건립 이후부터라고 볼 수 있다. 그러한 당위성을 바탕으로 신해혁명이 발발되었다고 보아야 하며 그것을 계기로 태동한 국민당(지나유태인, 客家(廣東)人 정치집단)에 의하여 본격적으로 24 史가 집필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온당하다 할 것이다.(24 史가 현재 대륙역사 전통사서로 취급되고 있지만 元史, 淸史를 보태어 26史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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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民族(華人) 이란 개념?


한민족(漢民族)은 중국(中華人民共和國), 대만(中華民國)에서 대다수를 차지하는 민족. 약 13억명, 전 인류의 19. 73%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의 민족 집단이다.


중국에서는 한족(汉族, hanzu)로 불려 중화인민 공화국의 전인구의 94 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 한인(漢人)이라고도 하여 화교(華僑)로서 중국을 떠나 이주 정착한 사람들은 화인(華人)이라고 하면서 스스로 한인(漢族)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한민족의 형성(華人:漢民族 形成)


이 말이 이용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이후로, 청조를 세운 만주인과 원래의 거주자를 구별하기 위해서인데 한족이라고 하는 용어는 인종적 분류는 아니고 문화적인 민족분류이며 그 실체는 중국의 역사로 반복적인 한족의 주변의 이민족과의 혼효(淆:뒤썩이다)의 결과이다. 이민족이라도 한족의 문화 전통을 받아들이면, 한족과 간주해진다는 논리이다. 실제 한민족은 성립으로부터 현대에 이를 때까지의 긴 역사사이에 5호, 위구르, 契丹, 満州, 몽고, 조선 그 외 많은 민족과의 혼효(淆:뒤썩이다)의 역사를 거쳐 성립되고 있다. 그 때문에, 현대의 한족과 고대의 한족은 실태로서 완전히 달라 시대마다 그 민족요소는 큰 변화를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동일한 민족의식을 공유하는 집단으로서의 공통성도 또 많이 계승하고 있다. 이것은 현대의 이탈리아 민족이 다양한 민족과의 혼효(淆:뒤썩이다)의 역사를 거치고 있지만  고대의 로마(라틴) 민족과 전혀 동일한 존재는 아니기는 마찬가지지만 그 사이에 일정한 공통성이 계승되고 있다는 점과 닮아 있다.


물론 여기에는, 중국의 문화 전통이 무엇을 가리키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현재의 중국 통치 지역에서는 풍속·언어·사상, 모두에게 유럽 이상의 범위가 있어, 그것은 즉 고대 중국 문명으로부터의 거리를 충분히 나타내고 있다. 다만 현재의 추세에서 중국 문화는 중화 인민 공화국의 북방 北方方言(北京官話:Mandarine)를 기본으로 하는 문화로서 수렴되고 있어, 한족의 정의 여하보다 한족 개념 자체가 한족을 형성하고 있다. 즉 고대 중세 근대의 한민족 개념과 현대의 그것과는 구별된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梁啓超가 新民説로 자신이 중국인이라고 반사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중국인의 범위이다, 라는 말을 남기고 있는 것은 가장 대표적이다.


중국의 역사는 끊임없는 민족·인종의 혼합이었다. 옛날에는 은주교대(殷周交代)에까지 그 경향을 볼 수가 있다. 당시 中原에 살아, 보다 동방 기원과 추정되는 殷족과 서방으로부터 온  周족이 혼합하여, 지금에 말하는 한민족의 모태가 완성되었지만, 그 모태는 곧바로 秦族에 교란되었다. 또 춘추전국시대의 국가인 楚、越도 中原와는 다른 민족이었다고 생각되고 있다.


또 중국은 4 세기 무렵부터 북방의 유목민족(遊牧民族)에 북부가 지배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북방민족의 피가 섞였다. 일본의 학계에서는 唐王朝의 황제의 일족도 선비계의 북방민족에 가까운 것으로 있다고 생각되고 있다. 한편 기마민족에 밀려 남하해 간 한족(漢族)등도, 타이족(Tai peoples)의 원주민과 混交결과라고 생각된다.


한민족(漢民族:華人) 대팽창


이른바 한민족과 현재 관심사라고 할 수 있는 인구는, 唐代까지 현재의 중국内地까지 확장해, 그 후는 국가의 번영과 戦乱에 수반해 同領域内에서 크게 증감을 반복하는 것에 머물렀다. 이것은 清代中期까지는 강남(江南)・호광(湖広)의 생산력에 아직도 인구를 지지하는 여력이 있던 것, 明・清王朝은 오랫동안 海禁政策을 사용한 것을 큰 이유로 들 수 있다. 더욱이 이민족 왕조인 청조는 만주(현재의 중국 동북부)·내몽고·新疆등에의 한족의 이동까지 금지하고 법으로 정하여 한민족의 팽창을 억제하려고 했다.


19 세기 이후의 한민족(漢民族:華人)


그런데 清代中期 이후 상황이 크게 변화한다. 영역내의 평온과 안정된 경제에 의해 계속 증가하고 있던 인구는, 영국 등의 정책 전환에 의한 은(銀)의 유입의 감소(아편 전쟁 참조), 18 세기 후반 이후의 전 지구 단위의 한랭화(寒冷化:이설도 있다)에 수반하는 생산력의 저하, 그리고 태평천국의 민란등의 清末의 일련의 반란에 의해 인구증가가 지속되지 않았다. 마침내 19 세기 후반에는 인구 폭발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사태가 발생, 대량의 한민족의 주변지역에의 확산 이동이 시작되었다.


河北・山東 등 華北의 인구는 내몽고·만주에 이동하였고, 華南의 인구는 동남아시아 각지를 중심으로 일부는 일본·조선, 또 미국·오스트레일리아 등에 이동하였다. 이 중 내몽고·만주는 중국 内地와의 인접 구역이며, 압도적인 한민족의 인구팽창에 의해 사실상 내지화했다. 예외적으로, 한국차이나타운은 20 세기 중반부터 후반기에 걸쳐 쇠퇴하여 소멸하게 되었다. 이유로서 박정희 시대에 강한 민족주의 정책 등을 줄 수 있지만, 지극히 특이한 예로 주목받는다.


동남아시아의 한민족(漢民族:華人)


동남아시아 등으로는 화교·화인이 되어 스스로의 居住区로서 차이나타운을 만드는 등 하대(何代)에도 건너 한족의 동질성(Identity)를 계속 확보 유지하고 있다. 싱가포르에서는 화인이 최다종족이다. 말레이지아·인도네시아에서는, 일찌기 경제의 주도권을 쥐어, 말레이인 등 재래 원주민족과의 마찰이 있었다.


타이의 華人은 타이인에 동화하는 경향이 강하고, 또 타이인 내에도 중국 유래의 문화가 받아들여져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완전하게 타이인과 일체화하고 있다. 정부의 요직을 차지하는 華人도 적지 않다.


필리핀에서도 華人은 필리핀인에 동화하는 경향에 있었다. 명·청시대부터의 옛 華人들이 대부분, 현지화나 혼혈이 진행되었다. 현재에도 중국어를 하고, 중국의 습관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60만명에서 100만명 정도와 추정되고 있다.


미얀마(버마)의 한민족은 주로 3개의 출신지로 나누어진다. 우선 이민으로서 유입한 화인과 육지가 연결되어 있음으로 雲南省으로부터의 그룹과 다른 동남아시아 제국과 같이 화남에서 바다를 건너 온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雲南省으로부터의 유입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다음에는 토착의 한민족의 그룹이 있다. 그들은 미얀마 중앙정부로부터 先住少数民族이라고 인정되어 코칸족이라고 칭해지고 있다. 코칸족의 주된 거주지는 살주북부의 雲南省과의 국경 지대이며 코칸지구라고 칭해지고 있다.


한민족(漢民族:華人) 대팽창


이 문제는 현대의 중화 인민 공화국 시대에 이를 때까지 계속되고 있어 정부는 계속 증가하는 한민족 인구를 新疆나 티벳에 이주시키고 있다. 다만 이 정책이, 소수민족에 대한 동화 정책의 일환이 아닌가라는 비판도 있어, 新疆등에서 가끔 발생하는 테러의 한 요인이 되고 있다. 일본 내의 미디어에서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지만 이 동화정책의 가열에 대해서는 날카롭고 풍자 되고 있다.  또 중국 동북부로부터 러시아령 극동이나 시베리아에 다수의 중국인이 이주해, 장래 러시아 연해 지방이 중국인으로 다수파가 될 것이라고 예견되고 있다.

[요점 출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