半島朝鮮과 李氏朝鮮?
半島朝鮮과 李氏朝鮮이라고 하는 역사가 과연 眞史이고 正史일까?
왜 日本史家와 한국半島史家들은 朝鮮時代를 朝鮮半島, 半島朝鮮, 李氏朝鮮이라고 칭하길 좋아할까?
그들 史家들이 歷史적인 문제에서 설명이나 주장이 필요할 때 朝鮮이라고 간단하게 摘示하면 될 것을 굳이 半島란 명칭이나 李氏란 副稱을 添加하여 혼용하려고 애를 쓰는 이유를 알 수가 없어 하는 말이다.
꼭 그렇게 구분 할 필요성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우리역사를 왜소하게 만들려고 하는 의도 때문만 일까?
그런 이유도 없지 않겠지만 그것보다 더 큰 그 무엇이 분명히 내포되거나 숨겨있을 것 같고 즉시 밝혀지면 안 될 것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여겨지는 것들이다.
더 큰 그 무엇, 숨기고 싶은 그 무엇이 과연 무엇일까?
추측하건데 대륙, 더 나아가 아시아조선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대륙, 아시아조선이었기 때문에 한반도조선과 구별하고자 하는 것이고 대륙조선, 아시아조선을 숨기려고 하는 강박관념에서 나온 조바심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들 주장이나 기록처럼 조선은 반도에 일어난 왕조라고 하면 그만이다.
그럼에도 무엇 부족하여 반도라고 부칭하고 그것도 모자라 이씨조선이라고 불러야 하며 그러한 부칭에 집착하고 그처럼 애를 쓰는 것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것들이 아닐 수 없다.
역으로 생각하고 이해가 될 법한 것은 그들이 주장하고 모든 역사기록물에서 주창하는 반도조선도 아니고 또한 이씨조선도 아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반도조선이 아니란 것은 이미 밝혀지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씨조선이 아니란 것은 여기서 처음 거론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씨조선이 아니라는 것에서 보다 신중하여야 하며 다시금 재고해야 할 문제임에 틀림이 없다.
그렇지만 워낙 일본사가들이나 반도사가들이 반도조선도 모자라 이씨조선이라고 입에 달고 다니니 역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들이다.
李氏만의 조선이 아닌 다원화된 역사 포괄적인 대륙역사를 주장하면서도 무엇인가 걸려 있는 듯한 걸림돌인데 그것을 단번에 제거하는 것 같은 그래서 풀리지 않는 모든 것을 일시에 다 수용할 수 있을 것 같은 지금 우리가 알 수 없는 중요한 요체가 아닌가 여겨지는 면도 없지 않다.
어쨌거나 반도역사나 이씨조선역사가 맞다면 구태여 그런 부칭은 쓸 필요가 없다.
우리가 언제까지고 그들이 만든 역사를 진실처럼 알고 거부하지 못하도록 애를 쓰는 것이다.
그것을 그들의 특별한 조바심이라고 하고 싶고 불필요한 강박관념이라고 말하고 싶다.
때문에 반도역사, 이씨조선역사는 처음부터 다시 재고하고 재검할 필요성이 있다는 말이다.
반도조선도 아니고 이씨조선도 아닌 그냥 아시아조선, 대륙朝鮮이란 참歷史를 밝혀 세우기 위하여 우리 모두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점이기도 하다.
티무르(첩목아帖木兒)는 테무진이라고 해석되고 쇠(鐵)이라고 상징되어진다.
티무르를 현대 우즈베크어로는 Temur 로서 “테무르”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말의 뜻은 "쇠"(鐵, iron)을 의미하며 이 이름을 가진 투르크계, 몽골계의 인물은 상당히 많았다.
징기스칸의 아명이 테무친(鐵木眞)이었다.
테무진에 쇠 철字가 들어간다.
티무르와 테무친은 같다.
이성계조부 이행리(李行里)의 몽골식이름 발안첩목아(孛顔帖木兒)이다.
이자춘(李子春), 몽골식 이름은 우루티무르(吾魯岾木兒) 이다.
이성계 어릴때 몽골식 이름이 분명치 않다.
다시 말해 몽골명이 티무르(岾木兒)라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숨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건주여진 몽케티무르(猛哥帖木兒) 후금시조도 여진출신이다.
후금(後金)은 누르하치가 여진 여러 부를 통일하여 1616년에 건설한 나라이다.
여진의 선조는 5대(五代)·송(宋)의 무렵 여진(女眞)이라 불리었고, 그 중 한 부족에서 금이 나와 요(遼)를 멸하고 다시 송을 남방으로 쫓아버린 후 몽골에 의해 멸망되기까지 대륙 북부를 점거하고 있었다. 이를 계승하고 부흥시킨 의미에서 후금이라 이름을 붙인 것이었으나 1636년 대청(大淸)이라 고쳤다.
티무르제국은 1507년 북방 우즈베크족에게 망한다.
우즈베크족은 투르크와 연계된다.
우즈베크라는 명칭은 원래 킵차크 한국(汗國)의 이슬람교도 지배자였던 외즈 베그(우즈베크)의 이름에서 나온 것으로 고대부터 이미 이 지역에 정착해 있던 이란계의 종족과 11~15세기에 이 지역을 자주 침입했던 몽골계·투르크계의 다양한 유목민들과의 혼혈종족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때문에 투르크족인 몽골족이라고 보아야 하고 이슬람화한 종족이다.
조선태조 이성계가 여진족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원나라 말엽이라고 하지만 엄격하게 들여다보면 고려연방국 말엽이다.
대륙고려말엽에 고려가 몽고를 패퇴시키면서 발생한 사회공백을 이용 백련교도(불교에서기원한민간토속종교)들이 1351년에 홍건적의 난을 일으키자 반란은 순식간에 대륙으로 널리 퍼져나가 고려를 흔들었다.
난이다.
난이라는 것은 그 영역에서 벌어진 반란이다.
홍건적은 고려에서 발생한 난이다.
홍건적은 1361년 고려수도에 20만의 반란군으로 몰아부쳐 수도를 점령하였지만 이성계는 고려인과 여진족으로 구성된 강력한 친병 조직 2,000명을 거느리고 수도 탈환 작전에 참가하였고 1362년 선봉으로 나서 말을 탄 채 활로 장수만 골라 쏘는 맹공을 펼쳐 홍건적의 괴수 사유(沙劉)와 잔당들을 참살하고 수도에 제일 먼저 입성한 전공이 있다.
명나라 건국이 1368년이다.
명의 수도가 남경이다.
그렇다면 명은 고려에 쫓겨 나라를 세운 곳이 대륙 남부이다.
명나라 시조라고 하는 주원장은 그 때 당시 홍건적의 일원이었다.
그런데 이성계가 그들의 수장을 목을 치고 참살하였는데 그 졸병이고 하수인 주원장이 괴수노릇을 하면서 명을 건국했다고 하는 것 자체도 모순이 있으며 그런 주원장을 명황제라 칭하며 머릴 조아렸다는 것은 이치적으로도 맞지 않는 꿰맞추기 내용이다.
때문에 명은 조선의 상국이 될 수 없다.
조선 초기는 티무르제국과 겹친다.
그렇게 보면 나라만 갈라놓았지 근본은 다 같은 것이다.
여기서부터 혼란이 발생한다.
반도조선과 이씨조선이 생긴다.
고려연방국 범주에 있었음에도 조선을 가르고 강역을 찢어 새로 만든 것에 불과하다.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역사는 일제와 지나가 공동으로 아시아역사를 재편할 때 우선적으로 일본을 만들고 난 후 고려연방체를 하나하나 따로 떼어 갈라놓은 결과물로 봄이 합당할 것이다.
좀 더 아시아조선, 대륙조선이란 사실에 접근 할 수 있도록 여러사례를 들어 개진[開陳]하겠다.
天明[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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