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불교 성지탐방

한부울 2009. 3. 3. 11:41
 

<불교 성지탐방> ①탄생지 룸비니

[연합뉴스] 2009년 02월 24일(화) 오후 07:22

 

                                              <마야데비 사원과 아쇼카 석주>


2천500년 지나도 부처 향기 짙어


부처님이 태어난 곳인 네팔의 룸비니는 다가갈수록 부처의 향기가 짙어졌다.


불교 조계종의 후원으로 탐방길에 오른 취재진은 만발한 유채꽃이 지평선까지 가득찬 북인도 평원을 온종일 달려 14일 밤(현지시간) 룸비니에 도착했다. 12일 인천에서 출발해 항공편과 기차를 갈아타며 모두 30시간이 걸리는 이틀 여정이었다.


지난 1967년 유엔 사무총장 우탄트가 주창한 '룸비니 개발계획'에 따라 룸비니에는 여러 불교국이 사찰을 건립하고 있다.


룸비니가 부처가 탄생한 곳이라는 역사적 사실은 1896년 독일의 고고학자 휘러가 이 지역에서 아쇼카왕 석주(石柱)를 발굴함으로써 확인됐다. 석주에는 기원전 250년 부처의 탄생지에 경의를 표하려고 아쇼카왕이 방문했고, 이 지역 주민의 조세를 낮춘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인도를 처음 통일한 아쇼카왕은 불교를 신봉해 그가 가는 곳곳에 석주를 세웠고 특히 부처가 처음 설법한 바라나시의 석주에는 네 마리 사자 상(像)을 올렸다. 추후 이 사자 상은 인도의 국장(國章)으로 쓰이고 있다.


부처의 어머니 마야데비는 친정을 다녀오다 산통을 느껴 룸비니 동산의 사라수(樹) 가지를 잡고 출산했으며 부처는 마야데비 부인의 오른쪽 옆구리를 뚫고 나와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삼계개고 아당안지(三界皆苦 我當安之)'라고 외쳤다고 전한다. 부처가 태생적으로 걸출했다는 뜻이라기 보다 인간의 실존을 천명하고 그 고통을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는 게 불교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인 장적 스님의 해석이다.


이 동산에는 마야데비 사원이 조성돼 있고 발굴이 계속 진행 중이다. 1976년부터 2년여간 진행된 발굴에서는 아쇼카왕 석주에 얹힌 마상(馬像) 일부가 발굴되기도 했다.


15일 오전 6시50분 짙게 내려앉은 아침 안개가 채 걷히지 않았는데도 사원에는 티베트와 미얀마에서 온 불교 신자들이 100m 가량 길게 줄을 서서 사원을 참배하면서 가져온 금박을 사원과 아쇼카왕 석주에 입히고 있었다. 부처의 생전에 한 제자가 부처에게 건물을 지어 바치려 하자 땅 주인은 땅을 덮을 만큼의 금을 가져오면 팔겠다고 한데서 유래해 부처의 유적지에는 태국인과 미얀마인, 티베트인들이 찾아와 곳곳에 금박을 입혀 놓았다.


사원 안에는 옛 사원의 기초로 추정되는 터가 남아 있고, 벽으로 추정되는 곳에는 11세기 네팔 카르날리 지방의 나가 왕조 때 부처님의 탄생 모습을 새긴 부조가 있다. 부조에는 광배(光背)를 한 아기가 연꽃대 위에 서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사원 밖 남쪽에는 출산후 마야데비 부인이 몸을 씻은 '싯다르타 연못'이라고 부르는 연못이 최근 콘크리트로 새로 조성됐다. 사원 서쪽에 세운 아쇼카왕 석주는 등불과 향불로 둘러싸였고, 우리나라 포항의 한 사찰에서 온 신자 20여명은 그 앞에서 반야심경을 외우며 108배를 올렸다.


불교가 네팔에서 탄생해 인도 북동부와 북으로는 중국, 남으로는 미얀마 등지로 퍼져갔지만 이후 인도에서는 토착 종교인 힌두교가 그대로 있고, 이슬람의 지배를 받은 탓에 불교는 명맥이 끊기다시피한 실정이다.


게다가 부처의 가르침은 사후 600년까지 모두 4차례에 걸쳐 제자들의 기억에 의존한 결집으로 전해졌던 만큼 2천500여년이 지난 현재 부처가 직접 전한 흔적을 그의 탄생지인 룸비니에서 발견하기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하지만 많은 서양인을 포함해 미얀마와 태국, 중국, 티베트 지역에서 온 순례객과 한국 신도들이 뒤섞여 함께 절하고, 대화는 아니더라도 웃음으로 소통하는 모습은 그의 실존은 물론 가르침의 위대함을 뚜렷하게 보여줬다.


(룸비니<네팔>=연합뉴스) 양태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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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성지탐방> ②열반지 쿠시나가르

[연합뉴스] 2009년 02월 24일(화) 오후 07:22

 

                                                     <열반사 내 열반상>


"내가 없어도 계율과 가르침 지키면 돼"


부처의 생애 가운데 가장 극적인 대목 중 하나가 열반하는 장면이다.


부처는 석 달 전에 자신의 죽음을 예언했고, 숨을 거두고 10여 일이 지나 제자들이 모두 모인 다음에는 관 밖으로 발을 내보였다고 기록돼 있다. 또 부처의 다비 후 나온 사리는 3등분해 천신과 용왕, 인간계로 나눴고 인간계에서는 8명의 왕이 가져갔다고 전해진다.


부처가 두 그루의 사라 나무 사이에 비스듬히 누워 열반했다고 전해지는 쿠시나가르 현지에는 그의 열반을 기리는 '열반사(涅槃寺)'가 조성돼 있다.


부처는 바이샬리에서 마지막 안거를 보낸 뒤 "내 나이 80세에 들어 썩은 수레와 같으니 (중략) 세상에 난 사람은 반드시 죽지 않을 수 없다. 아난다(수제자)야, 너는 네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신을 집으로 삼아라. 법으로써 등불로 삼고 법으로써 집을 삼아라"라고 당부한다.


부처는 이어 사라수 사이에서 열반할 것이라고 아난다에게 예언하고 쿠시나가르로 가던 중 대장장이 아들이자 그를 따르는 춘다가 올린 돼지고기를 먹고 붉은 피를 쏟고 극심한 통증 속에 쿠시나가르에 도착해 죽음을 맞는다.


부처는 "모든 현상은 변천한다(諸行無常). 게으름 없이 정진하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당시의 인도력으로 2월15일 열반에 든다.


부처의 사후 쿠시나가르에는 스투파(탑)와 많은 절이 세워졌다고 기록에 남아 있지만, 그 이후 이 지역이 이슬람교도의 지배를 받으며 부처의 유적은 1천여 년간 기억에서 사라진다. 하지만, 그 흔적은 1861년 영국인 고고학자인 알렉산더 커닝햄의 대대적인 발굴에 의해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인도 고고학국이 1900년대 초 두 차례에 걸쳐 발굴 작업을 체계적으로 실시한 덕분에 열반지는 현재 모습으로 복원됐다.


열반사에는 부처의 열반 당시 옆으로 누운 모습으로 만든 길이 6.1m의 열반상이 만들어졌다. 11세기 당시 모래와 진흙으로 만들어졌다고 전해지는 이 열반상은 발굴 당시 심하게 훼손돼 있었으나 지금은 거의 복원됐다. 열반상 기단에는 슬픔에 젖은 말리카 여인과 열반상을 기부한 하리발라 스님, 수제자 아난다의 모습이 각각 손바닥 만한 크기로 새겨져 있다.


열반상을 보려면 신발을 벗고 열반당에 들어가 긴 줄에 서야 하는데 동양인은 물론 약 10%에 이르는 서양인들도 기꺼이 신을 벗는다. 열반사에서 버스를 타고 약 2시간가량 가야 하는 바이샬리에는 부처의 다비장으로 알려진 곳에 둘레가 약 30m가량인 스투파 유적이 남아 있다.


또 사후 결집(結集)이 이뤄진 것으로 추정되는 대림정사의 집터 흔적과 원형이 거의 완벽하게 보존된 것으로 평가받는 아쇼카왕 석탑, 원숭이들이 부처에게 꿀을 모아 바쳤다고 전해지는 '원왕봉밀지(猿王奉蜜池)'가 남아 각국의 불교도가 찾고 있다.


특히 보살 자비심의 극치라고 할 수 있는 "일체 중생에게 병이 있으므로 나도 병이 있다"는 언급을 남기고, 대승불교의 핵심 사상인 '반야사상'을 설파한 부처 생존 때 인물인 유마 거사의 집터로 알려진 흔적도 전해지고 있다. 열반사는 일몰 때까지 문을 열어 오후 6시가 다 됐는데도 교복 차림의 인도의 여중학생들이 길게 줄을 서 열반당에 입장하고 있었다.


대부분 힌두교도임에도 불교 성지인 열반사에 온 이유를 묻자 인솔 교사는 "종교 차원에서 온 것이 아니라 문화재 학습 차원에서 나온 것"이라며 "인도가 다종교 국가인 만큼 학생들의 탐방은 특정 종교와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부처는 열반 직전 제자들에게 "내가 열반에 든 것을 보고 정법이 끊겼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나는 너희를 위해 계율을 정하고 법을 설파했다. 이제 그것이 네 스승이 될 것이다. 그러니 내가 열반한 다음에도 계율 존중하기를 어둠 속에서 빛을 만난 듯이 귀히 여겨라"라고 당부했다.


계율과 가르침을 따르면 충분할 뿐 부처 자신을 신화로 만들지 말라는 뜻도 배어있다.


순례에 동행한 조계사 부주지 토진 스님은 "2천500여년이 지날 때까지 부처의 신격화보다는 그 가르침과 깨달음을 추구했던 불교의 전통 덕분에 불교가 세계의 종교가 될 수 있었다"며 "이번 순례는 부처의 흔적을 살피고 그 가르침을 곰곰이 생각할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열반사 전경>

 

(쿠시나가르<인도>=연합뉴스) 양태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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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성지탐방> ③네팔서 만난 법신스님(끝)

[연합뉴스] 2009년 02월 24일(화) 오후 07:22


"부처님 탄생지에 한국 사찰 완공 눈앞"


"한국 사찰이 내년 11월 부처님 탄생지에 예정대로 준공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곳이 네팔인과 외국인 순례객에 부처님 가피를 전하는 터전이 됐으면 합니다"

2천553년 전 부처가 태어난 네팔의 룸비니 동산의 북쪽에 네팔 정부가 조성한 국제 사원 구역의 중심에는 한국 스님이 주지로 있으면서 불사를 진행하는 '대성 석가사'(이하 석가사)가 골조 공사를 마치고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 절의 주지인 법신(56) 스님은 지난 16일 불교 조계종의 후원으로 불교 성지탐방에 나선 취재진을 반갑게 맞이하며 이같이 소감을 밝혔다.


법신 스님은 부처의 탄생지에 한국불교의 위상에 맞는 절을 지으라는 3대 스승 용성(1863-1940) 스님의 유지에 따라 1995년 4월 룸비니에서 불사를 시작했다. 네팔 정부에 매년 400달러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2만5천600㎡의 부지를 99년간 임대받았다.


석가사는 1999년 100개의 방을 갖춘 요사채를 준공, 현재 룸비니를 찾는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숙식을 제공하고 손님이 떠날 때 성의에 따라 시주금을 받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물인 대웅전은 2006년 3층 크기(높이 44m)에 연건평 6천385㎡ 규모로 골조 공사를 마쳤고 현재 지붕 공사와 내장 공사를 남겨뒀다.


"착공 전에는 몇 년간 이어진 흉년으로 아사자가 속출했는데, 그 이후 많은 네팔인이 일거리가 생기며 호구를 이을 수 있었습니다. 이들이 그때를 생각하며 지금을 '극락'이라고 부르는 것을 듣자면 보람을 느낍니다."


석가사는 네팔인을 포함해 외국 순례자들에게 '무료 숙식 제공' 사찰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날도 약 30명의 외국인이 머물고 있었으며 한국식 배추김치와 깍두기 등으로 식사를 제공했다. 이들이 절을 떠날 때 인근 호텔에 머문 것보다 많은 시주금을 내거나 나중에 기부금을 보내는 경우도 많다고 법신 스님은 전했다.


"부처님을 찾는 이들에게 먹고 자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만큼 보람있는 일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이들을 늘 귀빈으로 대하니 더욱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석가사 바로 앞에는 중국이 지은 '중화사'가 금빛 페인트로 지붕을 칠해 건립돼 있다. 법신 스님은 "내부는 도색 공사를 했지만, 외부는 한번 칠해 놓으면 5년이 채 안가 다 벗겨지니 천천히 단장해도 늦지 않다"면서 "요긴하고 시급한 대목에 예산을 쓰다 보니 추가 투자를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신 스님은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인근의 미국 사찰과 독일 사찰을 가리키며 네팔 정부가 더 많은 투자액을 제시한 나라에 땅을 내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주변의 빈 땅을 더 확보해 여유 공간을 두고 그곳에 숲을 조성해야 절집 분위기가 살아난다"며 "한국의 여러 사찰이 후원하고, 개인이 적게는 100달러에서 1천 달러까지 시주해준 덕분에 지금까지는 오가는 사람이 다 즐거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법신 스님은 그러나 "여태까지 절 주변의 땅만 확보해두고 15년간 착공하지 않았는데, 네팔 정부가 공사할 것을 재촉하고 있어 더 버티기 어렵다"며 "대웅전 마감 공사와 주변 부지 확보를 위한 최소한의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는 "네팔 정부가 한국과 외교 관계를 고려해 실력 행사를 하지 않겠지만, 앞으로 요사채를 더 짓고 종각 등을 완비하려면 추가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대성 석가사와 법신 스님>

 

                          <대웅전 3층에서 중국 사찰 '중화사'를 가리키는 법신 스님>

 

(룸비니<네팔>=연합뉴스) 양태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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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성지탐방> 열반사

[연합포토] 2009년 02월 24일(화) 오후 10:33


(룸비니<네팔>, 쿠시나가르<인도>=연합뉴스) 양태삼 기자 = 불교 4대 성지 가운데 부처가 열반한 인도 쿠시나가르의 '열반사'. 2009.2.24


(룸비니<네팔> = 연합뉴스) 양태삼 기자 = 불교 4대 성지 가운데 부처가 탄생한 네팔 룸비니의 마야데비 사원.2009.2.24/2009-02-24 22:3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