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깨달음

태몽과 역사(胎夢과 歷史)

한부울 2009. 2. 1. 18:08
 

태몽과 역사(胎夢과 歷史)  


韓國敎員大學校 敎育大學院

歷 史 敎 育 專 攻 千 美 羅


李智冠의 歷代高僧碑文(高麗篇1-4) 에 실린 塔碑文 중에서 고려시대에 활동한 고승의 비문은 44개이다. 이 중에서 태몽이 기록된 비문은 28개, 비문의 결락으로 태몽을 확인하기 어려운 비문은 5개, 태몽의 기록이 보이지 않는 경우는 11개이다. 이렇듯 고승의 비문에는 대부분 고승의 출생과 관련된 태몽이 기록되어 있다.

태몽이 기록된 비문에는 태몽을 꾸는 주체가 대부분 母이나 法印國師 坦文의 경우는 父母 모두 태몽을 꾸었고, 慈眞圓悟國師 天英의 경우는 마을 사람들이 다 같이 태몽을 꾸었다. 일반적으로 태몽은 제일 먼저 夢者인 어머니로부터 알려진다. 光宗元年(954년)에 建立된 「奉化 太子寺 朗空大師 白月栖雲塔碑文」에는 朗空大師行寂의 어머니가, 꿈을 깬 후 그 靈瑞를 감득하고는 그 일을 所天에게 낱낱이 여쭈었다.25)는 기록이 있다. 어머니는 祥瑞로운 태몽임을 感得한 후 가장 먼저 가까운 남편에게 알리고 있다.

위대한 인물의 탄생을 豫告하는 吉夢일수록 일반적으로 그 꿈은 집안사람, 주변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게 된다. 이 후 부모는 태몽의 예시를 생각하며 양육과 교육을 하고, 성장과정에서 나타나는 남다른 행동도 태몽과 관련하여 해석 했을 것이다. 그리고 태몽의 내용을 본인에게도 알렸을 것이다.

고승의 제자들은 스승의 行蹟을 行狀에 기록하였다. 스승의 태몽이 운명적이고 神異할수록 꿈은 강조되어 행장에 기록되고, 행장에 기록 된 태몽은 비문과 함께 세상에 공개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태몽의 내용은 일반적으로 夢者에서 본인에게로 그리고 제자에게,

그리고 행장을 통해 撰者에게 전해져 비문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현재 남아 있는 李穡이 撰한 禪覺王師 懶翁의 碑文과 懶翁의 門人인 각굉이 기록한 行狀을 비교하면, 비문에 기록된 태몽의 내용이 撰者에 의해 다소 미화되었을 가능성은 있으나 내용은 행장을 토대로 기록하였음을 보여준다.

먼저 「楊洲 檜巖寺 禪覺王師 碑文」에는 어머니 鄭氏가 꿈에 金色 새가 날아와 그의 머리를 쪼다가 五色이 찬란한 알을 떨어뜨려 가슴으로 들어오는 胎夢을 꾸고, 임신하여 延祐 庚申年 1월 15일 탄생하였다.26)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편 각굉이 기록한 「懶翁和尙의 行狀」에는 정씨가 꿈에 금빛 새매가 날아와 그 머리를 쪼다가 떨어뜨린 알이 품안에 드는 것을 보고 이내 아기를 배어, 연우 경신 1월 15일에 스승을 낳았다.27)라고 기록되어 있다.

「楊洲 檜巖寺 禪覺王師 碑文」과 「懶翁和尙의 行狀」의 태몽을 비교했을 때, 비문에 기록된 출생 시기나 태몽의 상징은 행장의 내용 그대로이다. 다만‘알’이 아니라‘五色이 찬란한 알’로 표현되어 있다. 비문을 撰하면서 고승의 출생을 先驗的이고 神秘的으로 보이기 위하여 어느 정도 미화했을 가능성은 있지만 행장에 나타난 상징적 원형은 그대로 유지되었음을 알 수 있다.

태몽의 내용은 고승의 입적 후 당대에 쓰여진 탑비의 비문에 의해 사회구성원들에게 공개되었다. 비문은 고려시대에 撰하여졌고 세상에 공개되었던 만큼 태몽의 내용과 상징 의미는 당시 고려인이 보편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내용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현재 남아있는 고려시대 고승의 비문에서 태몽을 모두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비록 태몽이 기록되었다 하더라도 「延豊 覺淵寺 通一大師塔碑文」이나 「楊州 寧國寺 慧炬國師碑文」처럼 탑비가 마모되어 비문의 缺落이 심하여 태몽을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또한 撰者의 선택에 따라 행장에는 기록되어 있어도 비문에 기록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동일한 행장을 토대로 작성된 大覺國師 義天의 塔碑文 중 「開城 靈通寺 大覺國師塔碑文」에는 태몽이 기록되어 있으나, 「仁同 僊鳳寺 大覺國師塔碑文」에는 태몽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28) 이는 행장의 내용을 비문에 옮기는 과정에서 撰者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 외 태몽이 비문에 기록되지 않은 경우는 행장의 기록에 없기 때문일 것이라 여겨진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고려시대 王師나 國師로 책봉된 고승들의 塔碑가 王命에 의해 건립되었다. 탑비는 門徒들의 요청, 왕의 재가, 諡號와 塔名의 追贈, 撰者에 의한 비문의 서술을 거쳐 건립되었다. 고승의 行蹟을 기록한 비문은 문도들이 작성한 行狀을 토대로 하여 撰述되었다. 탑비를 세워 고승의 偉業을 영원히 宣揚하고자 했던 비문에는 고승의 위대함과 비범성을 강조하기 위해 출생 과정에서의 신비적인 태몽을 기록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미래 예시적이고 祥瑞로운 고승의 태몽은 夢者로부터 비문의 撰者에게까지 전해져 고승의 존재를 보다 신비적이고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僧이나 超越的 存在의 豫告夢


고승의 胎夢 類型을 꿈의 內容과 象徵物을 중심으로 분류하였을 때 크게‘僧이나 超越的 存在의 豫告夢’, ‘佛敎 象徵物 關聯 胎夢’, ‘天上的 屬性을 지닌 象徵物과의 接觸 胎夢’, ‘神聖․高貴物과의 接觸 胎夢’으로 대별할 수 있다.29)

이 중에서 僧이나 超越的 存在의 豫告夢은 僧이나 超越的 存在가 예고의 주체자 또는 상징물을 전달하는 주체자로 등장한다.

僧이나 超越的 存在의 豫告夢은 還生을 豫言하는 還生 豫告夢과 象徵物을 전달함으로써 태어날 이를 상징적으로 암시하는 豫告夢으로 다시 분류할 수 있다. 還生 豫告夢은 예고자가 직접 환생할 것임을 알리거나 환생할 이를 간접적으로 소개하는 경우이다. 象徵物을 傳達하는 豫告夢은 승이나 초월적 존재가 전달하는 상징물을 통해 고귀한 아들이나 僧이 탄생할 것임을 암시하는 경우이다.


還生 豫告夢에 해당하는 태몽을 정리하면 [표 2]와 같다.


[표 2] 僧의 還生을 豫告하는 豫告夢

僧       名生  存年代建    立年代         豫告主體    豫告內容 還生者

法鏡大師 玄暉 879∼941   태조26년(943)   不明       아들로 환생 예고자 본인

元宗大師 瓚幽 869∼958   광종26년(975)   神人       부처님의 弟子로 환생 예고자 본인

寂然國師 英俊 932∼1014  현종14년(1023)  異人       浮石寺 太大德이 환생 타인

圓空國師 智宗 930∼1018  현종16년(1025)  庬眉僧     大威德明王이 환생 타인


法鏡大師 玄暉와 元宗大師 瓚幽의 태몽은 꿈에 나타난 예고자 자신이 직접 還生할 것임을 豫告하고 있다.


(玄暉) 어머니에게 아들이 되게 母子의 인연을 맺게 해달라 간청한 것은 鶴勒那尊者에게 나타내 보인 祥瑞와 같았으니…30)


(瓚幽) 어느 날 밤 꿈에 神人이 나타나 告하기를 “원컨대 어머님을 삼아 아들 되어서 出家하여 부처님의 弟子가 되고자 하므로 妙緣에 의탁하여 공경히 자비하신 교화를 펴려 합니다.”라는 수승한 胎夢을 꿈으로 인하여 임신하게 되었다.31)


玄暉의 태몽은 내용만으로는 예고의 주체가 명확하지 않으나 어머니와 아들의 인연 맺기를 간청했다는 것으로 보아 예고자 자신이 직접 아들로 환생할 것임을 예고하는 태몽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의 태몽은 鶴勒那尊者32)에게 나타내 보인 것과 같은 상서로운 태몽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瓚幽의 태몽은 그가 전생에 神人이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초월적 존재인 神人이 현세에 승려로 태어남을 예고하고 있으며 인연에 의해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로 다시 환생할 것임을 직접 알려주고 있다. 寂然國師 英俊과 圓空國師 智宗의 태몽은 僧이나 神異한 존재가 환생할 이에 대한 정보를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안내자로 등장하고 있다.


(英俊) 어느 날 밤 魂交에 홀연히 이상한 사람을 보았으니 그 모습이 매우 儼然하였다. 紫色 가사를 입은 스님과 함께 침실 안으로 들어와서 말하기를 “이 스님은 浮石寺 太大德 스님으로 당신의 태중에 入胎코자 하니, 마땅히 음식 중에 고기와 五辛菜 등은 금하여 달라.”는 胎夢을 꾸고 임신하였다.33)


(智宗) 어느 날 밤 金刹의 한 竿柱의 끝 아득히 높은 하늘 구름 속에 白雲과 같은 흰 눈썹을 가진 스님이 손을 들어 가리키며, “이는 大威德明王이니 너는 이를 몸에 잘 모시라.”고 하는 꿈을 꾸고서 그로 말미암아 곧 임신하였다.34)


英俊의 태몽에서는 神人的 존재인 異人이 등장하여 스님의 출생을 알리는 안내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異人은 浮石寺 太大德 스님이 다시 환생할 것임을 알려준다.

智宗의 태몽 내용은 사원의 幢竿 끝 높은 하늘 구름 속에서 神異한 모습을 지닌스님이 나타나 출생하게 될 인물이 護身佛35)임을 알려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智宗은 전생에 大尉와 大德을 가진 성자, 즉 악을 다스리고 선을 보호하는 護身佛인 것이다.

이와 같이 玄暉, 瓚幽, 英俊과 智宗의 태몽은 공통적으로 僧이나 超越的 存在가 등장하여 아들이나 부처님의 제자로 환생할 것임을 예언하는 豫告夢이라 할 수 있다. 초월적 존재가 예고하는 종류의 꿈은 神異한 존재에 대한 畏敬心으로 인해 예언의 내용에 强한 說得力을 지니게 된다.


한편 [표 3]은 僧이나 超越的 存在가 전달하는 象徵物을 통해 僧이나 고귀한 아들이 誕生할 것임을 豫告하는 태몽이다.


[표 3] 僧이나 超越的 存在의 傳達物에 의한 豫告夢

諡號와   法名 生存年代  建立年代        傳達主體傳達物

眞澈大師 利嚴 876∼936 태조20년(937)   神僧 푸른 연꽃

郞圓大師 開淸 854∼930 태조23년(940)   神僧 金 印

弘法國師 △△ ∼930∼ 현종8년(1017)    胡僧 連城璧


[표 3]에서 僧은 초월적 존재인 神僧이나 이색적인 胡僧으로 나타나고 있다. 眞澈大師 利嚴과 郞圓大師 開淸의 태몽은 神僧이 나타나 상징물을 전해주는 경우이다.


(利嚴) 어느 날 밤 꿈에 神僧이 와서 푸른 연꽃을 전해 주고는 “이것으로서 영원히 徵信을 삼는다.”고 하였다. 이것은 곧 世間의 塵勞를 끊고 진리와 계합함을 상징함이니 懷妊할 때 푸른 연꽃을 받은 것이 곧 이 뜻이라 하겠다.36)


(開淸) 어느 날 밤 혼교에 홀연히 아름다운 상서를 얻었으니 갑자기 神僧이 허공으로부터 내려와서 뜰아래에 서서 품 안에서 金과 나무로 만든 도장 2개를 꺼내 보이면서 하는 말이 “둘 중에 어느 것이 필요한가.”하였다. 어머니는 脈脈히 말없이 바라만 보고 있으니, 스님이 곧 金印만 남겨 두고 간 꿈을 깬 후 비로소 임신한 것을 알았다.37)


利嚴의 태몽은 神僧이 푸른 연꽃을 전해주고 있다. 연꽃은 불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보통 불상은 연꽃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또한 연꽃은 진흙과 흙탕물 속에서 맑고 깨끗한 꽃을 피워내기에 오랜 수행 끝에 번뇌의 바다에서 벗어나 깨달음에 이른 수행자의 모습에 비유되었다. 따라서 푸른 연꽃을 전해주는 의미를 “번뇌를 끊고 진리와 계합함을 상징한다.”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자나 승려의 출생을 예시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開淸의 태몽은 神僧이 내려와 金印을 전해 주고 있다. 도장은 신분이나 지위를 나타내는 신표로 권위와 권능, 합법적 소유를 상징한다.38)

金은 지위의 상승이나 명예의 획득과 결부되며 金과 관련되는 사물은 모두 신성, 명예, 위엄을 나타낸다.39) 金印은 큰 권한을 행사할 인물의 탄생을 예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弘法國師의 태몽은 胡僧이 출현하여 상징물을 전달하고 있다.

魂交에 홀연히 침실 들보 위에 한 胡僧이 僧伽의 모자를 쓰고 “어머니!”하고 부르며 말하기를 내가 連城璧으로써 당신께 드립니다.” 하면서 배 위로 던졌는데 문득 가슴속으로 들어가는 胎夢…40)

弘法國師의 태몽은 胡僧으로부터 連城璧이라는 寶玉을 받고 있다. 귀중한 구슬을 받은 것은 고귀한 아들의 출생을 예시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태몽은 僧이나 超越的 存在가 나타나 예언이나 전달하는 象徵物의 의미를 통해 僧이나 귀한 아들이 태어날 것임을 豫告하는 내용들이다. 이렇듯 僧이나 超越的 存在의 豫告夢에는 僧이나 神人이 주체가 되어 환생을 예고하는 태몽과 神僧이나 胡僧이 상징물을 전달함으로써 태어날 이를 상징적으로 암시하는 태몽이 있다.


2. 佛敎 象徵物 關聯 胎夢


佛敎 象徵物 關聯 胎夢은 僧이나 超越的 存在가 예언이나 상징물을 전달하는 예고몽과는 달리 태몽의 재료와 배경으로 불교적 상징물이 나타나는 태몽이다.41) 꿈은 과거와 현재의 관심사가 재료로 등장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불교 중심의 신앙생활과 관련하여 사원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상징물들이 고승의 태몽에 나타나고 있다.


佛敎 象徵物 關聯 胎夢이 나타나는 경우는 [표 4]와 같다.


[표 4] 佛敎 象徵物 關聯 胎夢

諡號와 法名      生存年代     建立年代             象徵物

眞空大師 △運    855∼937     태조22년(939)       廘尾

法印國師 坦文    900∼975     경종3년 (978)       梵僧/금빛 寄菓/法幢/梵旆

慈眞圓悟國師 天英 1215∼1286  충렬왕12년(1286)    동주읍 사람/黃色袈裟를 입은 스님

眞覺國師 千熙    1307∼1382   우왕12년(1386)     배/스님들이 梵唄/물/白鶴/靑帖袈裟를 입은 스님


[표 4]에서 보는 바와 같이 眞空大師 △運, 法印國師 坦文, 慈眞圓悟國師 天英과 眞覺國師 千熙의 태몽에는 대부분 사원이나 불교의식에서 흔히 볼수 있는 象徵物들이 나타나고 있다.

(△運) 훌륭한 아들 낳기를 발원하여 그윽히 麈尾를 엿보고 곧 특별한 상서를 얻어서…42)


(坦文) 꿈에 한 梵僧이 나타나 금 빛나는 寄菓를 건네주었다. 그로 인해 임신하고 만삭이 되어 탄생하였으며 아버지 또한 꿈을 꾸었으니 法幢이 뜰 가운데 세워져 있거늘, 梵旆가 그 위에 걸려있어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나부꼈고 많은 사람들이 그 밑에 모인 것이 마치 둥근 담장 같았다.43)


(天英) 어머니는 김씨이니 출생하는 날 동주읍 사람들이 다같이 黃色袈裟를 입은 스님이 그들의 집에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44)


(千熙) 최씨가 꿈에 큰 배를 보았는데 많은 스님들이 梵唄를 하고 있었고, 그 물이 대문 앞에까지 이르러 오는 胎夢을 꾸고 임신하였다. 만삭이 됨에 또 白鶴이 그의 복부를 쪼아 靑帖袈裟를 입은 한 스님이 뛰어나오는 꿈을 꾸기도 하였다.45)


△運의 胎夢에는 麈尾가 등장한다. 麈尾는 고승들이 가지고 있는 拂子이다. 拂子는 고승이 경을 강의하고 설법을 하거나 중생을 교화할 때 고승들이 휘두르는 法具46)이다. 麈尾는 원래 사슴 꼬리털을 묶어 자루 끝에 맨 총채의 일종이며, 수행자가 마음의 티끌과 번뇌를 털어낸다는 불교적 상징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한다. 따라서 태몽으로 麈尾가 등장함은 불교적 의미로 중생을 교화할 고승의 출현을 상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坦文의 태몽은 부모 모두에게서 나타난다. 어머니의 태몽은 梵僧이 금 빛나는 기이한 과일을 전해주는 것이다.47) 과일은 미래에 이룩할 성과의 결실을 상징한다. 따라서 업적이나 지위가 매우 클 인물의 탄생을 예시하고 있다.


아버지의 태몽에는 사원에 세워진 法幢에 梵旆가 휘날리고 있다. 사찰에서는 기도나 법회 등 의식이 있을 때 당간에 幢을 달아 부처나 보살의 위신과 공덕을 표시하였다.48)


梵旆는 梵書로 五方幡이나 천수다라니 등을 단 깃발이다.49) 당간에 범패가 휘날리고 있고, 그 아래 사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둥근 담장을 이루고 있다는 것은 많은 대중들이 추종할 고승이 탄생할 것임을 예시하고 있는 꿈이라 할 수 있다.


天英의 경우는 出生하는 날 마을사람들의 꿈에 黃色袈裟 입은 스님이 그들의 집으로 들어오는 태몽이다. 이는 미래에 黃色袈裟를 입게 될 고승의 탄생을 예시하고 있는 꿈이라 할 수 있다.


千熙의 태몽은 큰 배에 스님들이 불교 의식 음악인 梵唄를 하고 그 물이 대문까지 닿고 있다. 梵唄는 사찰에서 재를 올릴 때 부르는 불교 음악이다.


주로 죽은 사람의 영을 달래거나 국가의 안녕을 비는 불교 의례시에 사용되었다. 만삭이 되어서는 靑帖袈裟를 입은 스님이 뛰어나온 태몽이 있다. 梵唄를 하는 스님들의 출현과 袈裟를 입은 승려가 나오는 태몽은 태어날 이가 승려일 것이라는 예시를 보여준다. 이와 같이 고승의 태몽에 등장하는 꿈의 재료 가운데는 불교적인 색채가 강한 것들이 많다. 麈尾, 法幢, 梵唄, 梵旆, 袈裟를 입은 僧이 나타나고 있는 태몽은 불교와 관련 있는 승려가 출생할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3. 天上的 屬性을 지닌 象徵物과의 接觸 胎夢


하늘은 그 자체에 부여된 神格으로 인해 우주를 창조한 초월적 존재로 간주되며, 신들이 거처하는 신성한 공간50)으로 여겨졌다. 하늘은 해, 달, 별 등의 천체들의 운행과 변화를 주관하는 신비스러운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하늘은 인간의 힘이 미치지 않는 절대적 권능과 신성성을 갖고 있다.


天上的 屬性을 지닌 象徵物과 接觸하는 胎夢51)은 [표 5]와 같다


[표 5] 天上的 屬性을 지닌 象徵物과의 接觸 胎夢

諡號와   法名 生存年代   建立年代    象徵物

精眞大師 兢讓  878∼956 광종16년(965) 별

眞觀禪師 釋超  912∼964 경종6년 (981) 七星

慧炤國師 鼎賢  972∼1054 문종14년(1060) 밝은 달

普覺國尊 見明 1206∼1289 충렬왕21년(1295) 태양/ 빛

圓證國師 普愚 1301∼1382 우왕11년(1385) 태양

眞覺國師 惠諶 1178∼1224 고종37년(1250) 天門 / 벼락


[표 5]의 태몽에는 인간의 삶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별, 달, 태양, 벼락 등의 천상적 속성을 지닌 상징물이 나타나고 있다.


별과 관련된 태몽으로는 精眞大師 兢讓과 眞觀禪師 釋超를 들 수 있다.


(兢讓) 어머니는 별이 흘러와서 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는데, 그 크기가 독만하고 빛은 황금색으로 매우 윤택하였다. 이 같은 胎夢으로 인하여 임신하였다.52)


(釋超) 어머니는 유씨이니, 七星의 상서가 날아 입으로 들어오는 胎夢을 꾸고 잉태하여…53)


별은 해와 달과 함께 우주의 운행과 관련이 있다. 고대에는 사람의 운명은 그 사람의 운명을 맡은 별이 주관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별의 움직임에 따라 왕조와 시대의 흥망성쇠를

예측하였다. 별이 떨어지거나 혜성의 출몰, 별자리의 급변은 왕조의 흥망이 달린 큰 일이 일어나거나, 병란의 발생 등으로 해석하였다.54) 별의 變異는 하늘의 啓示, 즉 징조를 상징한다. 태몽에서 별은 위대한 인물의 탄생을 상징한다.55)


兢讓의 태몽에서 황금빛으로 빛나는 아주 큰 별이 가슴으로 들어왔다는 것은 사회적 신분과 지위가 출중한 인물의 탄생을 예시하고 있는 것이다.


釋超의 태몽은 七星의 祥瑞가 날아 들어오는 것이다. 북두칠성은 일곱 개의 별이 한 성좌를 이루어 주걱 모양으로 북극성 주변을 돌고 있는 별이다.


고구려 고분 장천 1호분의 널방 천정에는 해와 달과 함께 북두칠성, 남두육성이, 각저총의 별자리 배치에는 해와 달, 북두칠성과 남두육성이 보인다.56)

칠성은 수명장수․소원성취․자녀성장․평안무사를 비는 신앙의 대상이었다.57) 태몽에 나타난 칠성의 祥瑞는 위대한 업적을 남길 인물의 탄생을 예시하고 있다.

달과 관련된 태몽으로는 慧炤國師 鼎賢의 경우를 들 수 있다.

밝은 달이 방안에 들어오는 胎夢을 꿈으로 말미암아 곧 임신하였다.58)달은 차서 기울고, 기울었다가 다시 찬다. 그것이 주기적, 항구적으로 되풀이되기 때문에 영생과 재생을 상징한다.59) 또 달은 농사의 풍요와 생산력의 근원을 상징한다. 뿐만 아니라 시간의 질서와 시절의 운행, 섭리까지도 아울러 상징하고 있다.60) 밀물과 썰물에 영향을 끼치므로 潮水의 주관자로 생각되어 왔고, 나아가 우주적인 힘의 주관자라는 상징성까지 지니고 있다.

태양과 관련된 태몽에는 普覺國尊 見明과 圓證國師 普愚가 해당된다.


(見明) 어느 날 어머니의 꿈에 태양이 방안에 들어와 그 빛이 복부에 비추기를 사흘 밤을 계속하는 胎夢을 꾸고 임신하여 …61)


(普愚) 夫人이 어느 날 밤 태양이 가슴으로 들어오는 胎夢을 꾸고 임신하여…62)見明은 태양 빛이 복부를 비추는63) 태몽이며, 普愚는 태양이 가슴으로 들어오는 태몽이다. 태양은 하늘의 제왕이다. 동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며, 그 열과 빛은 만물을 생육하게 하는 자양분이며, 어둠을 몰아내고 온 세상을 밝혀주는 唯一無二한 존재다. 신화에서는 왕이 곧 태양이었고, 왕도 스스로 태양의 아들이라 하여 절대적 권능과 신성함을 나타내었다.64) 따라서 태양이 방안이나 가슴으로 들어오는 태몽은 왕과 비견될 만큼의 커다란 지위에 오르거나 그에 상응한 업적을 이룰 인물이나 귀한 아들을 낳을 징조를 보여주는 것이다.


고대에 해와 달은 우주를 운행하고 인간 세상에 풍요와 생명을 가져다주는 절대적 존재로서 일찍이 일월신으로 신격화되어 섬겨져 왔었다. 고구려벽화 고분인 오회분 5호묘와 4호묘 벽화에는 해와 달을 머리 위로 받쳐든 해신과 달신이 그려져 있다. 고구려 전통적인 해신과 달신 신앙과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65) 해와 달이 방안으로 들어오는 태몽은 신성성을 갖춘 비범한 인물의 출생을 예시한다고 할 수 있다.


벼락과 관련된 것으로는 眞覺國師 惠諶의 태몽을 들 수 있다.


어머니 裵氏는 天門이 활짝 열리는 꿈을 꾸고 또 세 번이나 벼락을 맞는 胎夢을 꾼 다음 임신하였다.66)


천문이 열리는 꿈은 국가나 사회적으로 최고의 명예와 권력을 얻고 진리 탐구의 일을 하게 됨을 의미한다.67) 벼락은 비, 바람, 구름과 함께 천문 기상에 있어 중요한 우주적 현상으로 하늘이 인간에게 내리는 뜻, 계시를 상징한다. 또는 자연이 인간에게 드러내는 시대와 나라의 운명에 관한 예언과 점괘로서의 상징성도 지닌다.68) 하늘의 신은 벼락 형상으로 인간에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벼락은 사악함을 분쇄하는 신성한 힘의 상징으로,69) 벼락을 맞는 태몽은 하늘의 신성성을 타고난 인물의 출생을 예시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태몽은 천상적 속성을 갖는 달, 별, 칠성, 태양, 벼락과 같은 상징물이 품속으로 들어오기도 하고, 복부에 비치거나 몸에 접촉함으로써 非凡한 인물의 탄생을 예시하고 있는 것이다.


4. 神聖․高貴物과의 接觸 胎夢


動物은 신화 속에서 인간과 더불어 살고, 사람과 어울려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神聖의 구체적인 顯示로 龍이 형상화되기도 하고, 신의 뜻이나 상징물을 인간에게 전달하는 매개자70)로 등장하기도 한다.71) 神聖한 動物이나 이들이 전달하는 高貴物과 接觸하는 태몽은


[표 6]과 같다.


[표 6] 神聖한 動物이나 高貴物과의 接觸 胎夢

諡號와   法名 生存年代    建立年代    象徵物

大覺國師 義天 1055∼1101 인종3년(1125) 용

圓應國師 學一 1053∼1144 의종원년(1147) 용

洞眞大師 慶甫  869∼947  광종9년(958) 흰쥐/ 푸른 유리구슬

禪覺王師 懶翁 1321∼1376 우왕3년(1377) 金色 새/ 五色이 찬란한 알


大覺國師 義天과 圓應國師 學一의 태몽에는 神聖性을 갖춘 동물의 象徵으로 용이 등장한다.


(義天) 어느 날 밤 꿈에 龍이 품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임신하였다.72)


(學一) 어느 날 밤 龍이 집에 들어오는 꿈을 꾸고 곧 임신하였다.73)


龍은 낙타의 머리에 사슴의 뿔, 토끼 눈, 암소의 귀, 뱀의 목, 개구리 배, 잉어 비늘, 매의 발톱, 범 발바닥으로 이루어진 상상의 동물이다.74) 용은 대체로 짙은 안개와 비를 동반하면서 구름에 싸여 움직인다. 바다․강․샘․못 등의 물속에 살면서, 땅과 하늘에서도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초월적 존재이다. 龍은 풍농을 기원하는 농경 사회에서 지상계의 비를 관장하는 영험한 존재로서 水神을 상징하기도 한다. 또한 천지조화를 마음대로 부리는 존재인 龍은 군왕을 상징하기도 한다.75) 고구려 고분벽화 수렵총에 등장하는 靑龍은 실재하지 않는 상상의 동물이지만 오래 전부터 상서로운 동물의 상징이었음을 알 수 있다.


불교 수용 이후 용은 佛法을 수호하고 佛事를 돕는 護法의 용,76) 나라를 지키고 백성의 평안을 이루기 위한 護國의 용77)이 되었다. 용은 불법을 수호하는 八部神衆의 하나로 수용되었으며, 불법을 옹호하고 善神으로 존경받는 팔대용왕으로 분류되기까지 하였다. 따라서 태몽에 나타나는 용은 초자연적이고 절대적 권위를 지닌 존재, 佛法을 수호할 인물의 탄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洞眞大師 慶甫와 禪覺王師 懶翁의 태몽에는 고귀함을 상징하는 구슬이나 알이 나타나고 있다.


(慶甫) 흰쥐가 푸른 유리구슬 1개를 물고 와서 사람의 말을 하되,“이 물건은 희대의 진기한 보물이니, 바로 玄門의 上寶이다. 가슴에 품고 護念하면 반드시 빛나는 광명이 나올 것입

니다.”라고 하는 胎夢으로 인해 임신하였다.78)


(懶翁) 어머니 鄭氏가 꿈에 金色 새가 날아와 그의 머리를 쪼다가 五色이 찬란한 알을 떨어뜨려 가슴으로 들어오는 胎夢을 꾸고 임신하여…79)


慶甫의 태몽은 흰 쥐가 푸른 유리구슬을 전달하는 꿈이다. 쥐는 사람에게 미래를 예지하는 신통력을 갖고 있는 동물80)로 여겨졌다. 또한 재물과 재복을 가져다주는 동물로, 번식력이 강하다는 점에서 풍요의 상징으로 여겨졌다.81) 아름다운 구슬은 몸치장을 위한 장신구로 많이 사용되었으며, 지배층의 무덤에서 부장품으로 흔히 발견된다. 고구려의 일부 고분 벽화에서는 寶珠化生82)을 볼 수 있다. 寶珠는 불꽃에 휩싸이거나 化生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寶珠는 摩尼珠 또는 如意珠라고 한다. 여의주는 영묘한 구슬로, 이 구슬을 얻으면 모든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또한 중생을 번뇌와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功德과 신통력을 상징하기도 한다.83) 용의 여의주는 사람이 상상하는 구슬 중에서 효험과 권능이 완벽한 것으로 여겨졌다. 구슬은 불교에서는 불법의 수호자로서 용이 지닌 권능을, 유교에서는 왕의 무소불능의 권력을 각각 상징하였다.84) 따라서 珠는 보물, 아름다움, 빛, 불법, 권력의 상징85)으로 고귀한 인물 또는 출중한 인물의 출생과 관련된 상징 의미를 갖고 있다. 이러한 상징성과 관련하여 慶甫의 태몽은 절대적 권능을 지닌 귀한 아들의 탄생 징조를 보여준다.


懶翁의 태몽에는 金色 새가 오색찬란한 알을 떨어뜨려 가슴으로 들어오고 있다. 신화적으로 하늘을 오르내리는 새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매개자로, 육신과 영혼을 하늘로 인도하는 안내자로 상징된다.86) 건국 신화에서 건국 시조는 성스러운 빛과 더불어 알에서 태어났다. 역사상 등장하는 난생설화는 영웅이나 성인의 탄생에 초인적인 권위를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금빛새가 전달하는 오색찬란한 알은 영웅이나 聖人이 태어남을 예시하고 있다.


이상에서 분류한 태몽의 네 가지 유형 이외에도 [표 7]과 같이 상서로운 꿈임을 감득하는 감각적 표상이나, 물, 軒盖가 나타나는 태몽이 있다.


[표 7] 異瑞를 느끼거나 感得하는 胎夢

諡號와   法名   生存年代   建立年代           胎夢 象徵

了悟和尙 順之  893∼      태조20년(937) 길상한 胎夢/ 異瑞

眞空大師 忠湛  859∼940   태조23년(940) 靈寄로운 胎夢

慈寂禪師 洪俊  882∼939   태조24년(941) 그윽한 영감을 받은 胎夢

法鏡大師 慶猷  879∼921   혜종원년(944) 상서로운 꿈

智光國師 海麟  984∼1067  선종2년 (1085) 물

圓覺國師 德素 1108∼1174  명종10년(1180) 軒盖


[표 7]에서 了悟和尙 順之, 眞空大師 忠湛, 慈寂禪師 洪俊과 法鏡大師 慶猷의 태몽은 상서로운 분위기만을 감득하는 감각적 표상이 나타나고 있다.


(順之) 스님을 잉태할 때에는 여러 차례 길상한 태몽을 꾸었고, 분만하는 날에는 많은 異瑞가 나타났다.87)


(忠湛) 靈寄로운 태몽을 감득하고 훌륭한 스님이 될 아들 낳기를 희망하던 중…88)

(洪俊) 어머니는 비몽사몽간에 그윽한 영감을 받은 胎夢을 꾸었고…89)

(慶猷) 어느 날 비몽사몽간에 홀연히 상서로운 꿈을 꾸고 깨어난 후부터 스스로 임신한 것을 알고…90)


이들의 태몽은 공통적으로 구체적인 상징물은 나타나지 않지만 상서로운 태몽이었음을 감득하는 태몽으로 신이함을 강조하고 있는 내용이다.


智光國師 海麟의 태몽은 물과 관련된 것이다.

河海의 물이 맑게 泛斂하고 井泉에서는 물이 솟아올랐다.91)

河海는 큰 강과 바다를 나타낸다. 농경사회에서 강물은 곧 농사의 豊凶과 직결되는 문제였으므로, 풍부한 물은 풍요를 상징한다.92) 바다는 파도의 일어남으로 인해 동적이고 율동적이고 역동적이면서도, 항구적이고 영원하다.


바다는 생명력과 풍요로움을 상징한다. 또한 광막함과 수평의 최극단으로서 彼岸의 세계, 신들의 세계를 상징한다.93)


한편 井泉의 원초적 상징은 소생과 정화의 의미를 갖는다.94) 신라의 건국신화에서 박혁거세는 蘿井 가의 알에서 태어나, 東泉에서 몸을 씻었다.95) 이는 井泉이 중요한 생활원이고 생사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보여준다.96)河海가 넘치고 井泉이 솟아나는 태몽은 위인이 탄생할 길몽을 상징한다.


圓覺國師 德素의 태몽은 軒盖가 길게 이어지는 것이다.


어느 날 밤 京洛으로부터 州界에 이르기까지 軒盖가 길을 가득히 이어져 있는 꿈을 꾸었는데 스님은 그 날 밤에 태어났다.97)


軒盖는 사대부나 귀인들이 타고 다니는 수레가 화려하게 장식된 日傘이다.

軒盖가 길게 이어져 있음은 높은 지위에 오를 인물의 탄생을 예시하는 태몽이라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이 고려시대 고승의 태몽을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僧이나 超越的 存在가 등장하는 豫告夢, 袈裟입은 僧, 梵旆, 法幢, 梵唄등의 佛敎 象徵物 關聯 胎夢, 天上的 屬性을 갖는 해, 달, 별, 빛, 벼락과의 接觸 胎夢, 神聖한 동물이나 高貴한 것과의 接觸 胎夢이다.


이 외에도 상서로운 꿈임을 감득하거나 물, 軒盖가 나타나는 태몽이 있다.


Ⅳ. 胎夢의 受容態度와 文化的 背景


1.胎夢의 受容態度


고려인들은 偉人의 탄생에는 상서로운 태몽이 나타난다고 인식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고승들의 태몽을 수용한 태도에서 살펴볼 수 있다. 비문에 의하면 고승의 태몽을 옛 賢人들이 탄생할 때에 나타나는 신성한 출생의 징조와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태조 20년(937)에 건립한 「開豊 瑞雲寺 了悟和尙 眞原塔碑文」에 의하면, 스님을 잉태할 때 여러 차례 吉祥한 태몽을 꾸었고, 분만하는 날에는 많은 異瑞가 나타났다. 옛 현인들의 이와 같은 예는 익히 알고 있었으나 지금도 그와 같은 吉兆를 징험할 수 있다 하겠다.98)

라 하여 상서로운 태몽과 異瑞가 나타남을 옛 賢人들이 태어날 때 나타나는 징조와 동일시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선종 2년(1085)에 건립한 「原州 法泉寺 智光國師 玄妙塔碑文」에서도 알 수 있다. 碑文에 의하면, 어릴 때의 이름은 水夢이었다. 옛날 중국에서 周나라 明王 24년에 江河와 泉池가 홀연히 汎濫하였으니, 이것이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祥瑞였는데, 이것을 우리

국사의 탄생과 비교하면 그 始終의 징조가 하나도 다름이 없다.99)라고 하였다.

智光國師 海麟의 태몽을 부처가 탄생할 때의 상서로운 징조와 같은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와 같이 고승의 태몽을 賢人들의 상서로운 탄생의 징조로 해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태몽의 내용과 상징 의미를 구체적인 현실이나 사건과 결부하여 해석하려 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정성스런 胎敎, 出生時의 모습, 성장 과정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행동, 승려로의 출가 과정에서 알 수 있다.


圓空國師 智宗과 郞圓大師 開淸의 어머니는 태몽을 꾸고 임신한 것을 안 다음부터 태교에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智宗의 어머니는 金刹의 한 竿柱의 끝 아득히 높은 하늘 구름 속에 연로한 스님이 大威德明王100)을 몸에 잘 모시라는 꿈을 꾸고서 곧 임신하였다. 그 후 해산할 때까지 불전에 부지런히 기도하였을 뿐 아니라 五辛菜와 고기는 일체 먹지 않으면서 胎敎를 하였으며 산기가 되어 탄생하였으니 그 姿態는 岐嶷함을 드러냈고 성품 또한 영특함을 타고났다.101)

태몽 이후 智宗의 어머니는 불교에서 금기시하는 五辛采102)와 비린내 나는 魚肉과 같은 음식을 금하는 불교적 태교를 행하고 있다.

開淸의 어머니는 神僧이 金印을 남겨두고 간 태몽을 꾸었다.

어머니는 꿈을 깬 후 비로소 임신한 것을 알았다. 그로부터 五辛菜와 魚肉은 모두 끊고,

엄숙하게 仁祠를 시설하고 佛事를 닦는데 정성을 다 하였다.103)라고 하였듯이 태몽 이후부터 五辛菜와 魚肉은 모두 끊고 寺院을 세우고 佛事를 닦는 데 정성을 다하는 태교를 행하고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태몽을 통해 임신한 사실을 안 이후부터 불교 계율을 더욱 엄격히 지키고 음식을 금하는 신앙생활에 충실한 태교를 행하였다.


出生時의 모습도 태몽과 관련하여 받아들이고 있다. 法印國師 坦文의 아버지는 법당에 梵旆가 휘날리고 군중이 모여 있는 태몽을 꾸었다. 坦文이 태어날 때, 胎가 목을 감아 드리운 것이 마치 方袍를 입은 것과 같았다.104)고 한다. 出生時의 모습도 승려가 가사를 입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성장과정에서 나타나는 남다른 모습과 행동도 태몽과 관련하여 수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승은 성장 과정에 있어서도 일반 아이들과 다른 모습과 행동을 보여준다.


法印國師 坦文은 어려서부터 말을 함부로 하지 않았고, 佛像인 金像을 보면 마음을 敬虔히 하였으며 桑門인 스님을 대하여 반드시 合掌 …105)하였다고 한다.


法鏡大師 玄暉는 어려서부터 아이들이 하는 장난을 하지 않았으며, 佛像이나 어른을 보면 合掌하고, 앉을 때는 跏趺坐를 맺고 앉으며, 땅과 담벽 등에는 佛像과 塔形을 그렸다. 고기에 물을 먹여 살리고 벌레들에게는 먹이를 주어 구제하기도 하였다.106)고 한다. 坦文과 玄暉는 성장 과정에서 佛像에 대한 경건한 마음을 갖고 스님을 대할 때는 합장하는 등의 승려다운 행동을 보이고 있다. 태몽은 현실에서 나타나는 남다른 행동도 승려로의 예정된 운명으로 수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태몽은 出家하는 과정에서도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출가는 승려가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되는 통과의례이다. 僧은 원칙적으로 결혼할 수 없었으며, 아주 어린 10세 미만에 출가하는 경우도 있었다.107) 편안했던 현실 세계를 떠나 어린 나이에 부모와 이별하여 출가하기란 본인이나 부모에게 그리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法印國師 坦文의 출가 과정은 출가가 본인의 자발적 행위에 의해 이루어지며, 부모도 태몽을 생각하고 출가를 허락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法印國師 坦文의 출가 과정을 보면, 善根의 싹이 前世에 이미 자랐으므로 5살 때 벌써 출가하려는 마음이 돈독하여 뜻은 世間塵勞를 여의는 데 있었으니 자취를 緇門에 의탁하고 마음을 金界에 의거할 것을 발원하였다. 그리하여 아버지보다 어머니에게 먼저 여쭈었더니, 어머니는 전일의 胎夢을 생각하고는 울면서 허락하였으니 …108)라 하여 출가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특히 坦文의 출가는 어린 나이에 이루어졌기에 부모는 이별의 슬픔이 매우 컸던 것 같다. 그러나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출가에 대한 본인의 결심은 확고하며 부모 또한 僧의 출생을 예시하는 태몽을 생각하며 출가를 결국 허락하고 있다.


弘法國師의 출가 또한 부모가 태몽과 관련하여 허락하고 있다.


兩親父母에게 “출가 수도하여 거짓인 속을 버리고 진리의 세계로 나아가려 한다.”면서 허락해 주실 것을 간청하였다. 어머니께서 前年의 상서로운 胎夢을 생각하고 …109)


弘法國師의 부모는 前年의 태몽110)을 생각하여 출가를 허락한다는 내용이다. 고승의 생애에서 入門, 즉 出家는 현실 세계와 단절한다는 의미에서 고통과 괴로움을 함께 부여하는 세계로의 출발일 것이다. 그러나 弘法國師는 본인 스스로 출가하고자 하는 결심이 확고하며, 부모 또한 태몽을 생각하고 출가를 예시된 운명의 당위적인 절차로 현실에서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고려인은 고승의 태몽을 위인의 탄생에서 보이는 상서로운 태몽의 징조로 받아들였으며, 태몽의 내용을 구체적인 현실에 비추어 해석하고 구체적인 사건과 관련하여 그 예시적 측면을 강조하려는 경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태몽 이후 행해지고 있는 태교, 출생하고 성장하면서 나타나는 凡人과는 다른 특이한 모습과 행동, 승려가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출가과정에서도 태몽을 승려와 관련하여 현실에서 의미있게 해석하고 수용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2. 胎夢의 文化的 背景


고려인은 태몽의 미래 예시적인 측면을 중요시했으며, 그것을 현실과 부합하여 해석하려는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태몽에 나타나는 상징의 의미는 미래 예시와 관련하여 크게 두 가지 공통점을 보인다. 하나는 고승으로의 출생을 운명적으로 예시하고 있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위대하고 비범한 인물이 태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상징은 문화의 산물이며 두 사람 이상이 공유하는 인식의 표시로써 보편적 속성을 갖는다.111) 그러므로 상징은 동일한 문화적 환경에서 생활하는 집단 구성원들 사이에서 普遍的 意味로 공유될 수 있다. 따라서 고려시대 고승들의 태몽에 나타난 상징을 통해 고려인의 무의식에 반영된 문화적 배경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고승의 태몽에 나타나는 상징에는 佛敎 文化와 神話的 世界가 나타나 있다. 태몽의 상징에 나타난 요소를 상징물에 따라 분류하면 [표 8]과 같다.


[표 8]에 의하면 佛敎的 要素가 반영된 태몽으로 僧의 啓示, 輪廻還生과 因緣說, 佛敎 關聯 象徵物 등이 나타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태몽에 등장하는 僧은 상서로운 출생을 예고하거나 상징물을 전달하는 주체이다. 예고자로 현몽하는 僧은 일반적인 僧보다 神僧, 庬眉僧 또는 胡僧이라는 이색적이고 신비스러운 僧의 이미지로 표현되어 있다.


[표 8] 胎夢의 文化的 背景에 따른 分類


요소 연번 시호와 법명 생존년대 건립년대 예고전달주체 태몽에 나타난 상징물


불교적요소


1 법경대사 현휘 879∼941 태조26년(943) 不明 아들로(환생, 인연)

2 원종대사 찬유 869∼958 광종26년(975) 神人

부처님의 弟子로

(환생, 인연)

3 적연국사 영준 932∼1014 현종14년(1023) 異人 浮石寺 太大德(환생)

4 원공국사 지종 930∼1018 현종16년(1025) 庬眉僧 大威德明王(환생)

5 진철대사 이엄 876∼936 태조20년(937) 神僧 푸른 연꽃

6 진공대사 △운 855∼937 태조22년(939) 廘尾

7 낭원대사 개청 854∼930 태조23년(940) 神僧 金印

8 법인국사 탄문 900∼975 경종3년 (978) 梵僧 금빛 寄菓, 法幢 / 梵旆

9 홍법국사 △△ ∼930∼ 현종8년(1017) 胡僧 連城璧

10자진원오국사천영1215∼1286 충렬왕12년 (1286)동주읍 사람/황색 가사를입은 스님

11 진각국사 천희 1307∼1382 우왕12년(1386)배/ 스님들이 梵唄/물/白鶴/靑帖袈裟를 입은스님


신화적요소


12 통진대사 경보 869∼947 광종9년(958) 흰쥐 푸른 유리 구슬

13 정진대사 긍양 878∼956 광종16년(965) 별

14 진관선사 석초 912∼964 경종6년 (981) 七星

15 혜조국사 정현 972∼1054 문종14년(1060) 밝은 달

16 지광국사 해린 984∼1067 선종2년 (1085) 물

17 원응국사 학일 1053∼1144 의종원년(1147) 용

18 대각국사 의천 1055∼1101 인종3년(1125) 용

19 진각국사 혜심 1178∼1224 고종37년(1250) 天門 / 벼락

20 보각국존 견명 1206∼1289 충렬왕21년(1295) 태양 / 빛

21 원증국사 보우 1301∼1382 우왕11년(1385) 태양

22 선각왕사 나옹 1321∼1376 우왕3년(1377) 金色새 五色이 찬란한 알


기타


23 원각국사 덕소 1108∼1174 명종10년(1180) 軒盖

24 진공대사 충담 859∼940 태조23년(940) 靈寄로운 胎夢

25 대경대사 여엄 861∼929 태조22년(939) 이상한 꿈

26 법경대사 경유 879∼921 혜종원년(944) 상서로운 꿈

27 자적선사 홍준 882∼939 태조24년(941) 그윽한 영감을 받은 胎夢

28 요오화상 순지 ∼893∼ 태조20년(937) 길상한 胎夢/ 異瑞


고려시대의 고승은 신이한 능력을 지닌 존재로, 살아있는 보살112)로 추앙되었다. 따라서 태몽에 나타난 僧이 일반적인 僧보다 신격화된 僧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은 고려사회에서 고승에 대해 갖고 있던 畏敬心이나 그들의 높은 사회적 위상이 태몽에 반영된 것이라 여겨진다.


[표 8]에서 玄暉, 瓚幽, 智宗, 英俊의 태몽에는 불교의 輪廻思想113)이 반영되어 있다. 이들의 태몽에서 고승은 전생에 僧, 佛, 神人이었다. 그러나 태몽에 나타난 윤회사상은 業에 의해 生死世界를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원래적의미의 윤회사상과는 달리 오늘의 僧이 내일의 僧으로 환생한다는 의미의 낙관적으로 변형된 윤회환생이다.114) 고려시대 고승에 대한 절대적 숭배는 苦의 수레바퀴로의 윤회를 뛰어넘어 僧의 출생을 僧이나 佛 또는 초월적 神人의 환생으로 받아들였음을 알 수 있다.


윤회사상이 반영된 玄暉, 瓚幽의 태몽에는 인연설이 포함되어 있다. 불교는 삼라만상의 관계를 인연에 의해 설명하고 있다. 고려 사회는 부모와 아들의 관계, 왕과 고승의 관계, 승려로의 출가도 예정된 운명에 의한 인연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法鏡大師 玄暉의 태몽에 “母子의 因緣을 맺게 해 달라 간청했다”115)는 것은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를 불교적 인연설에 바탕을 두고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승려가 출가하는 것도 예정된 佛家와의 因緣으로 수용하고 있다. 法鏡大師 玄暉가 출가하기 위해 부모에게 허락을 구하자, 어버이는 창자를 자르는 듯 한 아픔을 참고서 말하기를 “前日의 꿈을 생각하니 참으로 부처님과의 인연이 부합하는구나. 이미 宿世부터 깊은 인연이었다고 생각하며 前世 佛緣으로 나 또한 제도될 터이니, 갈 길을 맡기나 속히 佛位에 올라 三界의 導師와 四生의 慈父가 되도록 하라”고 하였다.116)고 한다. 이는 法鏡大師 玄暉의 출가를 전생에 이미 불교적 인연이 있었음을 들어 부모가 수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불교적 인연설은 왕과 고승의 관계에 있어서도 나타난다. 精眞大師 兢讓을 국사로 책봉하는 자리에서 光宗은 師資의 禮를 갖추면서, 多生의 因緣으로 今生에 서로 만나게 되었으니, 감히 지극한 마음으로 우러러 맑은 도덕을 듣고, 스승으로 모시는 禮를 펴고자 합니다.117)라고 하고 있다. 光宗은 精眞大師 兢讓의 관계를 現生의 因緣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고려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공유되고 있었던 불교적 윤회환생과 인연설은 고려인의 무의식에 잠재되어 태몽의 배경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이와 더불어 고승의 태몽에 나타나는 불교적 요소로 麈尾, 法幢, 梵旆, 梵 唄,黃色 袈裟나 靑帖袈裟를 들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은 사원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상징물이다. 고려시대 사원은 국가적 불교 의례를 행하기도 하고, 승려들의 수행공간으로서, 신앙의 장소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교통의 요지에서 때로는 일반민들의 휴식처가 되기도 했으며, 아들을 낳기 위한 기도처가 되기도 하고, 죽은 이를 천도해 주는 안식처요산자의 위안처이기도 했다. 사원은 夢者의 현실세계에서 삶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삶의 공간이었다.118) 불교 중심의 생활환경에서 접하는 사원의 당간, 휘날리는 梵旆, 불교 의례에 사용되는 梵唄, 僧의 袈裟와 佛具들은 고려인의 무의식에 잠재되어 僧의 출생을 알리는 象徵的 表象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태몽에 나타나는 불교문화는 僧의 啓示, 輪廻思想과 因緣說 그리고 佛敎 關聯 象徵物들이었다. 불교 사상인 윤회환생과 인연설, 그리고 불교 중심의 생활환경은 고려인의 무의식에 잠재되어 태몽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이렇듯 불교문화와 관련하여 나타나는 태몽은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불교적 상징성으로 인하여 태어날 이가 佛緣的 人物, 즉 승려가 출생할 것이라는 보편적 의미로 수용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 [표 8]에서 神話的 要素를 담고 있는 태몽을 볼 수 있다. 신화는 ‘神聖視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119) 신화의 신성성은 위대하거나 숭고한 행위로써 성립되며 위대하거나 숭고한 행위는 반드시 특이하고, 일상생활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태몽에 나타나는 신화적 상징성은 建國神話와 유사하다. 부여, 고구려, 신라, 가야의 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해모수, 주몽, 박혁거세, 김알지, 김수로는 하늘에서 내려왔거나 하늘이 낳은 신성한 존재이다. 이들은 일반 사람들에게는 나타나지 않는 특이하고 신이한 탄생으로 인하여 하늘에서 降臨한 天神으로서 절대적 권위를 가진다. 건국신화에는 용, 하늘, 빛, 구름, 알, 물, 瑞獸등이 등장한다. 이와 더불어 고승의 태몽에는 天上的 屬性 또는 高貴함과 神聖함의 상징 의미를 갖는 해, 달, 별, 칠성, 용, 새, 구슬, 알 등 신화적 상징물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상징물들은 고려시대 고승의 존재를 凡人과는 다른 비범한 존재로 수용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을 것이다.


신화적 상징성을 담고 있는 태몽은 역사적으로 비범한 인물의 탄생을 암시해 왔다. 三國史記나 三國遺事에는 신화적인 주제를 담고 있는 偉人의 태몽이 기록되어 있다. 三國史記 强首傳에는 “어머니가 꿈에 뿔 달린 사람을 보고 강수를 낳았다.”고 하였다.120)


三國遺事에 의하면 慈藏은 “어머니가 꿈에 별이 품으로 안기는 것을 보고 낳았다”고 하였다.121)


高麗史에는 용, 별, 해, 바람, 구름, 하늘 등 신화적 상징물이 태몽 상징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獻貞王后 皇甫氏가 鵠嶺에 올라가 소변을 누니 천지가 銀海로 변하는 꿈을 꾸고 현종을 낳았다고 한다.122)

金方慶의 태몽은 구름과 안개를 들여 마시는 꿈이다.123)

趙仁規, 金怡, 金台鉉의 태몽에는 해와 별과 같은 천체물들이 나온다.124)


인물의 비범성을 부각시키는 신화적 요소가 역사문헌에 태몽의 일반적인 유형으로 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신화적 요소를 주제로 하는 꿈은 인물을 신성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건국신화나 偉人의 태몽 설화에는 신화적 세계가 나타나 있다.


신화의 신성성은 민족적 범위에서 진실성과 신성성이 인정되는 것이며, 집단에 전승되는 것이다.125) 신화적 상징물이 갖는 신성성은 민족 집단 내에 전승되어 태몽에 나타나는 신화적 요소를 神聖性을 가진 비범한 인물의 탄생 의미로 수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고승의 태몽 상징에 나타나는 불교적 요소나 신화적 요소는 자연스럽게 서로 융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의 태몽 안에서 불교 관련 상징들이 신화적 세계를 토대로 나타나기도 하고, 신화적 상징물이 승려의 출생을 神聖化하는 상징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璨幽, 英俊, 智宗과 千熙의 태몽에 나타나는 상징물은 불교적인 요소에 신화적인 요소가 함께 나타나고 있다. 璨幽, 英俊과 智宗의 불교적 윤회환생몽에는 神人, 神僧, 庬尾僧과 같은 초월적 존재의 啓示가 나타나고 있다. 千熙의 태몽에는 梵唄, 물, 白鶴, 僧과 같이 불교적 상징물과 신화적 상징물이 함께 나타나고 있다. 한편 해, 달, 별, 칠성, 용, 물, 구슬 또는 알과 같은 신화적 상징물이 불교 신앙의 숭배대상인 고승의 태몽 상징으로 나타나기도 한다.126)


또한 고려시대에 건립된 佛敎建築, 梵鐘 그리고 佛敎儀禮에서도 신화적 세계가 불교문화와 조화롭게 융합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元宗大師 惠眞塔에는 용이 中臺石에, 先覺大師 遍光塔碑의 이수에는 구름과 엉킨 형식으로 아홉 마리 용이, 龍頭幢頭에는 如意寶珠를 물고 있는 용이 조각되어 있다. 또한 演福寺 범종의 종 고리 용장식과 비천상, 成佛寺 應眞殿의 대들보에 있는 別枝畵,127) 燕灘 心源寺 普光殿 앞면의 문살에 조각된 투각128) 등에서도 신화적인 상징물이 불교문화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고유 신앙과 불교신앙이 합쳐진 八關會가 순수한 불교적인 행사인 연등회 못지않게 국가적인 정기 행사로 중요시되었다129)는 점도 이와 관련하여 주목할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고려시대 高僧의 胎夢이나 塔과 塔碑, 幢頭,梵鐘, 八關會 등에서 불교적 요소와 신화적 요소가 함께 등장한다는 것은 고려인들의 의식 속에 불교문화와 신화적인 세계가 별 거부감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적 토대가 형성되어 있었음을 의미한다.


삼국시대 이래 불교가 점차 대중 불교로 신앙화하는 과정에서 불교는 우리민족의 신화나 민간 신앙을 점차 수용하면서 발전하여 왔다. 불교 이전의 신화적 세계가 불교문화와 조화롭게 융합된 형태130)로 고려시대까지 전승되어온 문화 기반은 고려인의 무의식에까지 잠재되어 고승의 태몽 상징으로 나타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고려시대 고승의 태몽 상징에는 현실 세계를 반영한 불교문화와 보편적 무의식의 토대를 이룬 神話的 世界가 함께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Ⅴ. 結 論


본 연구는 人間意識 너머에 존재하는 無意識의 精神世界인 꿈을 다루었다. 특히 高僧들의 碑文을 중심으로 고려시대 태몽의 내용과 당시 고려인들이 일반적으로 受容하고 있었던 태몽에 대한 認識 態度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또한 태몽의 상징 의미를 통해 무의식의 바탕이 된 文化的 背景을 찾고자하였다.


태몽의 내용은 대부분 신성성과 비범함을 갖춘 인물의 탄생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고려인은 태몽을 미래에 일어날 豫示로 받아들였고 이를 현실에 맞게 해석하고 수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태몽에 나타난 象徵을 통해 고려인의 무의식의 바탕이 된 문화적 배경은 불교 중심의 생활환경이 반영된 불교적 세계관과 보편적 무의식의 신화적인 사고가 융합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본 논문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고려시대 국사나 왕사로 책봉된 고승의 탑비가 王命에 의해 건립되었다.

탑비의 건립은 일반적으로 門徒들의 奏請에 의해서 추진되었다. 고승이 입적한 후 왕에게 表를 올려 건립을 요청하게 되면, 왕은 고승의 諡號와 塔名을 追贈하여 주었다. 그리고 문장이 뛰어난 당대 文人學士 중에서 撰者를 정하여 碑文을 撰述하게 하였다. 撰者는 門徒들이 기록한 行狀에 의거하여 고승의 일대기를 기록한 비문을 撰하였다. 고승의 塔碑는 고승의 위업을 세상에 알리고 후손에게까지 영원히 傳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건립되었다.


비문에 기록된 태몽은 미래 예시적이고 상서로운 吉夢으로 나타난다. 고승의 태몽은 주로 꿈을 꾼 夢者에게서 본인에게 알려지고, 제자들에게 알려져 행장을 통해 비문으로까지 기록될 수 있었다.


고승의 胎夢 類型을 內容과 象徵物에 따라 네 가지로 分類하였다.


첫째, 僧이나 超越的 存在가 豫告하는 胎夢이다. 이러한 태몽에는 僧이나 神人, 異人이 現夢하여 환생하겠다고 豫告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神僧이나 胡僧이 나타나 푸른 연꽃이나 보배구슬, 金印을 전달함으로써 고귀한 아들이나 僧의 出生을 예고하는 경우도 있다.


둘째, 佛敎 象徵物이 나타나는 胎夢이다. 고려시대 사회구성원들의 신앙의 장소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寺院과 관련된 상징들이 주로 등장한다. 태몽의 재료나 배경으로 僧, 麈尾, 法幢, 梵旆, 梵唄 등 불교적 색채가 강한 상징물이 나타나고 있는 태몽이다.


셋째, 天上的 屬性을 지닌 象徵物과 接觸하는 태몽이다. 하늘의 절대성과 신성성을 상징하는 해, 달, 별, 빛, 벼락이 품속에 들어오거나 비추기도 하는 태몽이다.


넷째, 神聖性을 갖는 動物이나 高貴한 것과 接觸하는 태몽이다. 초자연적 존재인 龍이 방이나 품안으로 들어오는 태몽, 흰쥐나 금색 새가 전달하는 고귀한 구슬이나 찬란한 알과 접촉하거나 이를 삼키는 태몽이 해당된다.


고려인은 고승의 태몽을 偉人의 신성한 탄생의 징조로 받아들였으며, 태몽이 미래를 예시한다고 생각하여 태몽의 내용을 現實에서 그대로 受容하려는 태도를 갖고 있었다. 따라서 태교, 出生時의 모습, 성장과정에서의 특이한 행동 그리고 출가를 태몽과 결부하여 해석하고 받아들였다. 즉 태몽을 미래에 나타날 현실과 동일시하여 현실에서 수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려시대 고승의 태몽 상징에는 佛敎的 要素와 神話的 要素가 나타나고 있다. 佛敎的 要素로는 輪廻思想과 因緣說, 佛敎 關聯 象徵物이 있었다. 輪廻思想과 因緣說은 불교를 신앙했던 고려사회에서 사회구성원들의 정신세계를 상당히 지배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고려 사회에서 집단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던 불교 중심의 정신세계는 불교와 관련된 태몽의 상징 의미를 고승의 출생과 관련하여 예정된 운명으로 수용하도록 했을 것이다.


한편 태몽에 담긴 神話的 要素는 建國神話와 역사 문헌상에 나타나는 일반적인 위인의 태몽 설화와 類似하였다. 天上的 屬性을 지닌 상징물이나 神聖한 동물의 출현, 高貴한 것과 접촉하는 태몽은 신성성을 갖춘 비범한 존재의 출현을 의미하는 神話的 思考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이러한 상징성을 담고 있는 고승의 출생 태몽은 고려시대 고승의 존재를 훨씬 비범하고 초인적인 존재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태몽에 나타나는 상징은 개인이나 집단의 현재적인 관심사를 분명히 일정부분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고승의 태몽 상징으로 불교 관련 상징물들이 등장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불교중심의 고려사회는 불교만이 그들의 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던 것만은 아니었다. 신화적 사고가 보편적 무의식의 토대를 이루면서 불교문화와 함께 공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의식은 고려 지배층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대부분의 의식구조일 것으로 짐작된다.


이제까지 역사학에서 꿈과 관련된 연구는 그다지 활발하지 않았다. 무의식의 영역인 꿈에 대한 연구는 무의식에 잠재된 세계를 통해 그 당시 사람들의 정신세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줄 수 있을 것이다. 그 당시 사람들의 의식 또는 무의식이 지배하는 정신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은 정신세계에 투영되어 있는 현실세계를 만나는 일이며, 이를 통해 그 당시의 역사를 더욱더 풍부하게 조명할 수 있을 것이다.


韓國敎員大學校 敎育大學院 歷 史 敎 育 專 攻 千 美 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