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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 좋은 중국운하, 720년 넘게 건설 미뤄진 까닭
[오마이뉴스] 2008년 01월 30일(수) 오전 09:52
▲ 여행지로 유명한 조우주왕의 수로. 강남은 도시 내부 뿐만 아니라 지역 사이도 수로로 연결되어 있다. ⓒ 조창완
중국에서 화동으로 불리는 상하이·지앙쑤·저지앙의 지형을 가장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물길이다. 지형의 고도도 파악할 수 있는 구글 어스에서 이 지역을 마우스로 휘저으면서 고도를 파악해보면 대부분 3~4m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이 지역을 다니다보면 수로가 도로망처럼 뻗어있다.
그야말로 물길을 내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사실 물길을 내서라도 흙을 확보해야만 농토나 택지를 확보할 수 있는 곳이 이 지역이다. 조우주왕이나 통리·우전·시탕 같은 수백 년 된 수향들도 이런 수로를 통해 발전해왔다.
이 때문에 크고 작은 수로는 고대부터 가장 중요한 운송수단이었다. 중국 역사상 가장 큰 공사 중 하나로 꼽히는 경항운하(베이징-항저우를 잇는 운하로 총 길이는 약 1794㎞며 위·오·촉의 삼국시대부터 만들어졌다)도 이런 천혜의 조건을 통해 가능했다. 이런 환경이었기에 운하가 중요한 물류수단으로 작용했다.
물론 창지앙(양쯔강)을 지나 화이허를 넘으면 조건이 달라진다. 화이허의 중심호수인 홍저후도 고도 12m 정도로 창지앙과 큰 차이가 있다. 이 물길은 고도 31m의 후이산후에 가면서 곤란을 겪는다. 이후에 저수지이자 물길의 역할을 하는 난양후에서는 다시 12m로 낮아지지만 둥핑후에서는 40m로 높아진다. 이후 경항운하는 황허를 만나고 어렵게 이어져 베이징의 루거우치아오에 다다른다.
화려했던 과거... 그러나 내륙 수운 시대는 이미 지났다
중국에서 운하의 공식 역사는 고난 그 자체다. 운하가 최초로 착공된 건 춘추전국시대 노나라의 애공 9년(기원전 486년)이었다. 이후 수 양제 때와 원나라 때 대규모 공사를 거쳐 운하를 완성했다. 수나라 때는 홍저후에서 정저우로 우회하는 길을 택한 반면 원나라 때는 산둥성 서쪽 도시인 지닝 등을 거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택한 것이다.
운하는 당송 때도 비교적 번성해 중국 문화의 근간이 됐다. <서유기>의 시작점도 운하로 번성한 양저우 인근이고, <수호지>의 배경인 양산박도 산둥 동쪽 물길인 둥핑후 인근이다. 실제로 이 도시들은 과거에 번성하면서 물류의 근간 노릇을 했다. 청나라 건륭제도 5차례의 강남 순행 때 운하를 이용했다. 하지만 여러 차례 수해가 반복돼 제방이 터지면서 운하는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이후 중국 역사는 격변기에 들어섰고, 운하의 기능은 정지됐다.
▲ 경항대운하의 갑문에서 나갈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 ⓒ 양광여행망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운하는 과거에 물류에서 중요한 기능을 했다. 물자가 풍부한 강남에서 베이징으로 향하는 육로가 도둑이나 도로망 부실로 인해 제 기능을 못했기 때문에 경항대운하가 물자운수의 상당 부분을 담당했다. 역대 왕조는 이를 위해 화이안에 조운총독부를 두었다.
경항운하의 베이징 주요 기착점인 빠이허의 경우 한 해 물동량은 최소 1만5000톤에서 4만5000톤에 이르렀는데, 이는 당시 필요 운수량이 6만5000톤의 절반이 넘는 양이다. 때문에 중국인들은 경항대운하를 만리장성에 버금가는 중국의 인공 공사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중국 내부에서조차 앞으로 운하가 물류에서 의미있는 비중을 차지하리라고 믿는 이를 찾아보기 어렵다.
중국과학원이 발행하는 <중궈궈지아디리>에서는 2006년 5월호에서 경항대운하를 깊이 있게 다뤘다. 하지만 여기서도 초점은 문화적 측면이었으며, 물류기능 재현 부분은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이 잡지는 2005년 3월에 남수북조(南水北調)를 다뤘지만 이 때도 물류를 다루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당대 운하가 중국에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사실 중국에서는 운하라는 개념 자체가 이미 상당 부분 소멸했다. 경항대운하는 이제 이름만 남아있을 뿐 물류 기능 자체는 포기한 상태다.
그 말을 대체한 것은 남수북조다. 남쪽의 물을 북쪽에 끌어대는 게 운하의 운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남수북조와 운하는 출발부터 완전히 다르다. 남수북조의 주요 목적은 수자원 이동인 데 반해, 과거에 운하의 중심 기능은 물류였기 때문이다.
운하로 가면 보름, 기차로 가면 9시간
11월 말이 지나면 물이 고갈되어 흐름이 없는 황허의 수자원을 활용하는 베이징·톈진의 물 부족 사태는 이제 코앞에 다가와 있다. 베이징의 경우 이미 수자원이 고갈돼 도시 발전에 치명적인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 비교적 물이 풍부한 창지앙의 물을 황허, 나아가 베이징·톈진·스좌좡 등 화베이 지역에 공급하는 계획이다. 실제로 중국에서 남수북조를 물류로 보는 의견은 거의 없다. 물길이 물류의 기능을 하리라고 예상하는 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곳이 항저우와 쑤저우 간이다. 이 두 곳은 육지의 고도 차이 1~2m에 지나지 않은 곳으로 운하 조성이나 관리에 최적지다. 거기에 두 도시 자체가 큰 규모이기에 물동량이 상당 수준이다. 하지만 이 두 도시 사이의 물류에서 물길이 담당하는 양은 이제 거의 의미가 없는 수준이다.
움직인다고 해봤자 석탄이나 모래 등 속도를 다투기보다는 저렴한 비용 및 생산지와 소비지가 가까워야 하는 점이 더 중요한 품목을 실어 나르는 정도다. 그밖에 항저우-쑤저우 사이에서는 여행의 낭만을 느낄 수 있는 밤배가 오가는 정도다. 고속도로로 달릴 경우 3시간 정도면 닿을 수 있는 거리이기 때문에, 시간이 생명인 현대 물류의 속성상 이 곳의 물길은 거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 경항대운하의 중북단인 후이산후. ⓒ 조창완
실제로 <중궈궈지아디리> 취재진을 만난 운하배의 선장들은 경항대운하의 중북단인 지닝에서 상하이까지 소요시간을 반 달로 보고 있었다. 이 구간의 거리는 약 850㎞ 정도여서, 기차로 이동할 경우 9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현대 중국이 건설된 후에도 경항대운하가 물류 차원에서 거론되지 않았던 것은 철도나 고속도로 등 다른 교통인프라를 이용했을 때 걸리는 시간이 훨씬 줄어들었고, 바다에서 해적으로 인한 피해가 사라지면서 해로를 이용해 물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궈궈지아디리> 2006년 5월호 경항대운하 특집에는 경항대운하 전체의 고도가 나와 있다. 경항대운하의 경우 바닥이 가장 높은 산둥성 동쪽 후이통허 구간도 강바닥이 40m를 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운하의 효용이 줄어든 후 수로가 완전히 말라버린 곳이 대부분이다.
기자는 2005년 8월 창지앙과 대운하 지역을 취재하며 남수북조 문제를 살펴본 적이 있다. 당시 후이통허 중심부인 둥핑후는 거의 말라 저수지 기능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또 둥핑후로 이어지는 수로엔 이미 수 미터의 나무들이 자라고 있어, 현지인 인터뷰를 통해서야 원래 물길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
또한 건립 목적 중 하나가 물류 개선인 싼샤댐이 있는 창지앙에서도 최근에는 수량 감소와 상하이 인근의 적체로 인해 수로운송일 경우 창지앙 입구에서 대기하는 데만 3~4일이 소모되면서 물류대란이 진행되고 있다.
중국 운하의 중심은 남수북조 기능
이처럼 1만리에 달하는 최고의 수운 자원을 보유한 중국조차 강이나 운하를 통한 물류에는 손을 드는 게 현실이다. 고도차가 크지 않은 이 지역의 갑문에서 대기하는 배들의 상황이 이 정도인데, 고도차가 중국의 2~5배에 달하는 한국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질 지는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이 대목에서 한반도 대운하 예정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낙동강 중류인 구미의 경우 고도가 40m가량이고, 문경에 오면 150m에 달한다. 문경에서 충주호까지 직선거리 20㎞ 구간은 해발고도 300m 이상인 지역이 태반이다. 상식적으로 여기는 지하수로를 만들 수밖에 없는 구간이다. 지하 20㎞의 수로터널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만든다고 치더라도 엄청난 대공사인데다 안전성을 보장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또한 이미 중부내륙고속도로가 뚫려있는 이 구간의 물류에서 운하가 어떤 기능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아울러 짚어봐야 할 문제는 이 구간이 개통됐을 때 어떤 물자가 운하로 움직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중국의 경우 경항대운하나 창지앙의 수운이 그동안 물류에서 일정한 기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식량이나 나무·모래·철광석 등의 원자재처럼 물류 시간 제약을 적게 받는 자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월수입이 100달러 미만이더라도 대대로 그 배를 타온 집안 출신 선장들이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운송비용을 감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 수준의 임금을 받고 일주일 동안 운하를 떠돌 사람이 한국에 있을지는 의문이다.
▲ 경항대운하의 중심 기점인 둥핑후는 수위가 낮아 오염 우려도 높다. 멀리 보이는 것이 2005년 남수북조를 위해 만든 빠리완자(八里灣閘). ⓒ 조창완
중국에서도 물류 문제 해결을 위해 운하를 만들자는 논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산둥반도의 아래쪽 칭다오에서 농업도시인 까오미·창이를 지나 보하이완의 라이저우항으로 이어지는 자오라이운하 건설 논의가 그것이다. 이 운하 건설 논의는 남방의 물자를 바닷길을 통해 북방으로 이동시킬 필요성이 높았던 원 세조(1280년) 때부터 다양하게 진행되어 왔다.
관통 길이는 100㎞에 달하지만, 이 곳은 이미 대부분 수로가 갖춰져 있고 고도도 10m를 넘는 곳이 거의 없다. 실제로 이 길이 완성될 경우 상하이 등 남방이나 칭다오 등지에서 베이징, 톈진 등 수도권으로 가는 배의 바다길이 600㎞ 정도 단축될 수 있다.
왕스청 산둥성 해양 및 어업청 부청장이 2004년 8월 이 운하 건설 필요성을 다시 제기했다. 공사를 구상한 왕스청 부청장은 이 공사를 위해 1000억 위안(한화 약 14조 원) 정도를 들여야 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의 구상은 물류 기능뿐 아니라, 이 길을 통해 보하이만과 황해의 물이 쉽게 이동함으로써 해수 순환 기능도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다른 안에 비해 실현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이 계획조차 중국 정부는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또한 관련 학계 등에서도 왕스청 부청장의 제안에 선뜻 동의하기보다는 물류 문제 해결을 위해 운하를 건설하는 것이 적절한 방안인지를 두고 논쟁을 거듭하고 있다.
2006년 10월 12일 칭다오)에서 열린 관련 세미나에서는 운하의 실효성, 수질오염 문제, 운하 주변지역 토양 염화, 화물 이동을 위한 동력 문제, 운하 입구의 모래 적체 문제, 자금 마련 문제 등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이와 관련, "현대에 1000억 위안을 들여 운하를 건설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기사도 나오는 등 비판적인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
지오라이운하 건설, 1280년부터 논의됐지만
이 논의에서 주목할 대목이 있다. 왕스청 부청장이 제시한 예상 공사비가 한반도대운하의 공사비와 같은 14조원이라는 점이다.
칭다오와 라이저우항은 거리상으로도 100km 정도이고 고도도 10m를 넘지 않음에도 예상공사비는 그렇게 책정됐다. 자오라이운하가 시공될 경우 공사지로 구상된 부분이 이미 상당 부분 강줄기가 형성되어 있는 구간이라는 점에서 낙동강과 충주호 수계를 재활용하겠다는 한반도 대운하와 큰 차이가 나지 않음에도 이 정도 공사비를 책정한 것이다.
그럼에도 한반도 대운하와 예상 공사비가 같게 나왔다는 점은 한반도 대운하의 실제 소요 비용이 축소된 것 아닌지 의문이 들게 하는 부분이다.
한반도 대운하의 또 다른 기능은 관광 진흥을 통한 지역발전이다. 사실 중국에는 10000리가 넘는 창지앙에 싼샤를 비롯한 무한한 여행자원이 있지만, 싼샤댐 건설과 같은 개발이 여행객 증가로 이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반도 대운하가 개발된다 해도, 운하가 해외 관광객들이 해당 지역을 찾게 하기 위해 어떤 유인 요소를 제시할 수 있을지 세밀하게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중국전문가인 강효백 경희대 교수는 중국 전체 물동량에서 내륙 수운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강 교수는 인터뷰에서 "1985년까지만 해도 21%였던 내륙 수운의 물동량이 1995년에는 14%, 2005년에는 5%로 떨어져 사실상 기능을 상실했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에선 상하이나 베이징 등이 세계적인 전시컨벤션 도시로 부흥하고 있다, 대운하보다는 전시컨벤션 기능의 부활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싼샤댐으로 인해 수몰되는 지역의 정비작업을 하다가 쉬는 여인. 싼샤 중류 펑지에(奉節). ⓒ 조창완
[오마이뉴스 조창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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