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

설날-음력 정월 초하룻날

한부울 2009. 1. 24. 14:09
 

설날-음력 정월 초하룻날

 


원단(元旦), 세수(歲首), 연수(年首)라고도 하며, 일반적으로 설이라고 한다. 설은 한자로는 신일(愼日)이라고 쓰기도 하는데 "근신하여 경거망동을 삼가한다"는 뜻이다. 묵은 1년은 지나가고 설날을 기점으로 새로운 1년이 시작되는데 1년의 운수는 그 첫날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던 탓이다.


설날의 세시풍속은 매우 다양하다. 설날이 다가오면 섣달 그믐날 자정이 지나자마자 복조리장사들이 복조리를 한 짐 메고 골목을 다니면서 이것을 사라고 외쳐댄다. 각 가정에서는 1년 동안 필요한 수량만큼의 복조리를 사는데, 일찍 살수록 좋으며 집안에 걸어두면 복이 담긴다고 믿는다. 새벽에는 거리에 나가 처음 듣는 소리로 한 해 운수를 점치는 청참(聽讖)을 행하기도 한다.


설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미리 마련해둔 새 옷으로 갈아입는데 이 새 옷을 설빔이라 한다. 아침에는 가족 및 친척들이 모여들어 정초의 차례를 지낸다. 차례는 모처럼 자손들이 모두 모여 오붓하게 지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차례가 끝나면 어른들께 순서를 따져 세배를 올린다.


떡국으로 마련한 세찬(歲饌)을 먹고 어른들은 세주(歲酒)를 마신다. 세찬이 끝난 후에는 차례상에서 물린 여러 명절음식들을 나누어 먹는 음복(飮福)이 마련된다. 아이들에게는 세뱃돈을 주며 덕담을 나누고 한해의 운수대통을 축원해준다. 이웃 및 친인척을 찾아서 세배를 다니는 일도 중요한 풍습이다.


중류 이상의 가정에서는 부녀자의 외출이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에 문안비(問安婢)라 하여 여자종을 성장시켜 일가친척에 보내어 신년문안을 드리게 했다.


정초에 어른이나 친구를 만나게 되면 말로써 새해인사를 교환하는데 이를 덕담이라 한다. "과세 안녕하셨습니까?" 또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하는 식으로 설날인사를 한다.


벼슬을 하는 집에서는 옻칠을 한 책상을 대청에 비치해둔다. 그러면 밑에 거느린 아전들이 종이를 접어 이름을 써서 책상 위에 놓아두고 간다. 이는 새해 문안드린다는 뜻이며, 각 관청의 서리와 영문(營門)의 교졸(校卒)들도 종이에 이름을 적어 관청이나 선생의 집에 드리는데 이를 세함(歲銜)이라 했다.


이날 조상의 무덤을 찾아나서는 성묘도 행한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했다는 인사를 조상의 묘에 고하는 것이다. 정초에는 여러 가지 제액을 물리치는 속신이 있는데, 삼재(三災)를 물리치는 부적이나 문에 걸어두는 세화(歲畵), 귀신이 신을 신고 가면 불길하다고 신을 감추는 야광귀(夜光鬼) 쫓기, 각 간지(干支)마다 금기할 사항과 해야 할 일을 정해두는 속신이 있다.


이 날은 윷놀이·종정도놀이·널뛰기·연날리기 같은 세시 민속놀이가 시작되는 날이기도 하다.

[엠파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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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의 설날은 추석과 더불어 한국의 2대 명절 중의 하나로 음력 1월 1일이다. 일제 강점기 양력을 시행하면서 양력 1월 1일인 신정 (新正)에 빗대어 구정(舊正)이라고 부르기도 하나, 모두 일본식 한자어이며 '설날'이 바른 표현이다.


또한 설을 지내는 것을 '설을 쇠다'라고 표현한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음력을 기준으로 설을 쇠지만, 양력으로 설을 쇠는 가정도 있다.


설날에는 차례도 지내고 세배를 하여 세뱃돈도 얻는 등 많은 풍속들이 있다. 그믐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샌다고 하여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설날부터 정월 대보름까지의 15일 동안을 정초라 하며, 이 기간 동안 행하여지는 여러 풍습이 전해진다.


대한민국에서는 섣달그믐(음력 12월 30일)부터 음력 1월 2일까지 3일 연휴로 쉰다. 그러나 연휴에 일요일이 포함되어도 공휴일이 연장되지 않는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에서는 1967년부터 설날을 공휴일로 만들었고 2003년부터 3일 연휴로 쉬는데, 1월 1일부터 3일까지 쉰다. 대한민국에서 설날은 대개 겨울 방학에서 봄 방학 사이인 1월 21일 에서 2월 19일이 설날이 된다.


차례와 떡국

차례에 올릴 전설날 아침에는 종교나 가풍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전통적으로 차례를 지내고, 떡국을 먹는다. 설날 차례에는 밥과 국 대신 떡국을 올린다. 떡국을 먹는 것은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웃어른에 세배를 한다. 세배는 웃어른에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어른들은 답례로 세뱃돈을 주거나, 덕담을 해준다. 세뱃돈은 대체로 나이가 많을수록 많이 주고 적을수록 적게 준다.


놀이


한국인의 생활방식이 도시를 중심으로 옮겨가면서 전통 놀이 문화는 점차 사라지거나 바뀌고 있다. 일부 가정에서는 화투를 하기도 하며, 현대적인 놀이문화를 즐기거나 여행을 가기도 한다. 전통적인 설날의 놀이는 다음과 같다.


윷놀이: 남녀노소, 빈부귀천 없이 즐기는 놀이이다. 윷을 던져 나온 수대로 여러 개의 말을 움직여 정해진 길을 돌아오는 놀이이다.

말판놀이: 관직 등을 단계적으로 그려 놓고 윷이나 주사위를 던져 목적한 칸까지 도달하는 놀이이다. 길 중간에는 다양한 함정이 있다.

널뛰기: 짚단이나 가마니 위에 두꺼운 판자를 놓고 양쪽에서 번갈아 발을 굴러 높이 뛰는 놀이이다.

연날리기: 연을 만들어 연줄에 묶고 바람에 날려 높이 띄운다. 상대방의 줄을 끊는 연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연에는 '액(厄)'자를 써서 날려 보낸다.

제기차기: 엽전이나 주화를 한지나 비단에 싸고 끝을 찢어 만든 제기를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차는 놀이이다.

팽이치기: 팽이를 실로 쳐 회전이 멈추지 않도록 돌리는 놀이이다.

투호: 화살을 던져 단지에 많이 넣는 놀이이다.


설빔


설날에 새 옷을 해 입는데, 이것을 설빔이라고 하며, '세장'이라고도 한다. 설빔은 섣달그믐 이전에, 색깔이 있는 화려한 옷으로 마련한다.


점복


설날에는 1년의 운수를 점친다.

토정비결: 토정 이지함이 주역을 참조하여 만든 것으로, 생년월일을 따져 한해의 운수를 본다.

청참: 새해 첫새벽에 사람 소리나 짐승 소리 등 그날 처음 듣는 소리로 점을 치는데 그걸 청참이라고 한다. 청참은 자기의 신수를 점친다.

오행점: 나무판이나 엽전에 오행(금, 나무, 물, 불, 흙)의 글자를 새겨 점을 본다.

윷점: 윷을 던져 점을 본다.


이 외에, 설날 또는 그 수일 간의 날씨를 살펴 한 해의 운수를 점치는 풍습이 각 지방에 남아 있다.


복의 기원과 액막이


복조리

설날 이른 아침 또는 섣달 그믐날 밤 자정이 지나서,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어 엮어서 만든 조리를 사서 벽에 걸어 두는 풍습이 있는데, 이것을 복조리라고 한다. 전국에서 조리 장사가 이것을 팔기 위하여 초하루 전날 밤부터 밤새도록 인가 골목을 돌아다닌다. 이러한 풍속은 조리가 쌀을 이는 기구이므로 그해의 행운을 조리로 일어 취한다는 뜻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설날에 1년 동안 사용할 조리를 그 수량대로 사서 방 한쪽 구석이나 대청 한 귀퉁이에 걸어 두고 하나씩 사용하면 1년 동안 복이 많이 들어온다는 민간 신앙도 있다.


야광귀

설 날 밤에는 야광귀가 찾아와 자기 발에 맞는 신발을 훔쳐 간다고 해서 신발을 감추고 구멍이 많은 체를 벽이나 장대에 걸어 두고 잔다. 야광귀에게 신발을 뺏기면 1년 동안 운수가 나쁘다고 생각한다. 체를 걸어 두는 이유는 야광귀가 신발을 훔치러 왔다가 체의 구멍을 세다가 해가 뜨면 달아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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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설날, 그 수난의 100년


명절의 지존, 설이다. 설이 이런 영광을 누리기까지는 숱한 시련과 핍박의 역사가 있었다.


조상 대대로 이어오던 우리의 설은 1896년 서양 달력이 벽에 걸리면서부터 질곡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일제 강점기 시절엔 족보에도 없는 '구식 설날'이란 뜻의 '구정'으로 강제 개명을 당했다. 이후 해방을 맞았어도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이중과세(양력설과 음력설을 함께 쇠는 것)가 실시되면서 양력설에 밀려 여전히 '뒷방 늙은이' 취급을 당한 것. 굴욕의 절정기는 박정희 정권 시절이다. 음력설을 없애기 위해 호적 파내 듯 아예 공휴일에서 빼버리는 설움을 겪었다.


그러다 1985년 끈질긴 생명력에 백기를 든 정부는 음력설을 '민속의 날'로 부활시켰고, 4년 뒤 설날이란 옛 이름을 찾아 주고 추석과 더불어 사흘 황금연휴가 실시됐다. 1999년을 기점으로 신정 휴일이 하루로 줄어들면서 음력설은 민족의 최대 명절로 완전 복권됐다.


#설날 그때그때 달라요


설은 중국(지나)에서도 춘절(春節)이라 해서 최대 명절로 꼽는다. 음력 정월 초하루인 설날은 한국이나 중국(지나)이나 날짜는 동일하다. 그렇지만 아주 드물게 두 나라의 설날이 달라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음력 초하룻날 계산법과 중국(지나)과 한국의 시차(1시간)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매달 음력 초하룻날은 태양-달-지구가 일직선상에 놓이는 합삭이 생기는 날을 기준으로 한다. 이때 합삭이 발생하는 날이 음력 1월 1일 설날이 된다. 문제는 합삭이 자정 부근(밤 11~12시 사이)에서 일어나면 두 나라의 시차 때문에 중국(지나)의 설날이 한국보다 하루 앞서게 된다. 실제 1997년 중국(지나)은 한국보다 하루 앞서 설을 맞았다. 2028년에도 같은 현상이 발생해 중국(지나)(1월 26일)이 한국(1월 27일)보다 하루 앞서 설을 쇠게 된다.


올해 설날 합삭시간은 2월 18일 새벽 1시 14분. 4분 차이로 중국(지나)과 한국의 설이 같다. 하지만 한국과 2시간의 시차가 있는 베트남은 '역법'상 한국·중국(지나)보다 하루 빠른 17일(토요일)이 설날이다.


우리와 같이 음력설을 지내는 아시아 국가는 중국(지나), 베트남, 홍콩, 대만, 싱가포르 등이 있다. 음력 문화가 거의 사라진 일본은 신정만 쇠며, 북한 역시 신정을 지내며 음력설은 단순한 휴일에 그친다.


# 우리 고유의 달력 칠정산


역법은 원체 복잡해 오늘날 컴퓨터를 동원해도 산출해 내기가 쉽지 않다. 통신이 발달하지 못했던 과거, 마을마다 날짜와 절기를 일치시키기 위해 정부는 동짓날 부근 중국(중국이라 함은 중앙정부를 지칭한 것이다. 곧 조선이 중국이다. 19세말 일제와 지나가 공모, 역사 바꾸기 하면서 대륙조선을 변방국으로 소국화한 반도사관에 의한 것이고 중국의 실체가 곧 대륙에서 살았던 우리민족임을 알아야 한다) 특사를 파견, 다음해의 책력(달력)을 받아와 공표했다.


세종 때 비로소 우리 고유의 달력인 칠정산이 만들어지고, 이후 일시 월식 계절의 변화 등을 자체적으로 예측할 수 있게 됐다.


# 21세기 가장 늦은 설은 2월 19일


올해 설은 신정(양력 1월1일)과 무려 48일의 날짜 차이가 난다. 양·음력설의 일수차는 양력은 1년이 365일인데 반해 음력은 354일밖에 안돼 생기는 문제다. 올해처럼 큰 일수차는 윤달이 끼었기 때문.


향후 2100년내 신정과 설날의 최대 일수차는 49일(2015년, 2034년), 최소는 20일(2099년)이다. 달리 말하면 21세기 가장 늦은 설날은 2월 19일이고 가장 빠른 설날은 1월 21일이다. 이렇게 늦은 설 때문에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세배가 조금 민망스럽다.


# 세배는 말없이 절만 해야


설날 세배는 기혼자라면 쑥스러워도 부모보다 부부끼리 먼저 해야 한다. 세배는 가까운 사람부터 하는 것이므로 일심동체인 부부가 1순위이다. 그러나 직계존속 간의 세배는 '가까운 사람'이 아닌 '윗사람 순'이다. 따라서 부부→조부모→부모의 순서로 세배를 한다. 윗사람에게 세배할 때는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절만 한다. 세배를 받은 윗사람이 덕담을 하고 나면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정도의 축원을 올린다. 그리고 세배는 원래 한 명씩 따로 따로 하는 것이 원칙이다.


# 중국(조선)에서 건너온 세뱃돈


세배를 하고 나면 으레 받는 세뱃돈. 아이들이 일년 내내 설날을 기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세뱃돈은 우리 고유의 풍속은 아니다. 중국(조선)에서 유입됐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중국(조선)사람들은 설날 아침 빳빳한 새 돈을 빨간 봉투에 넣어 덕담과 함께 자녀들에게 건네던 풍습이 일본으로 건너가 다시 우리나라로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설 아침 아이들 호주머니로 들어가는 세뱃돈이 2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세배는 차례를 끝내고 식사 전후에 하는 것이 좋다.


# 술 대신 차(茶)를 올려 차례상


명절 차례는 엄밀히 말하면 제사가 아니다. 차례는 돌아가신 조상을 살아있는 사람처럼 공경하는 전통예법으로 사자(死者)에게 음식을 바치는 제사와는 다르다. 설 차례상에는 밥 대신 떡국을 올리는 등 차림법 절차 등에서 제사와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차례(茶禮)는 원래 술이 아닌 야생차를 다려 공양한 데서 유래된 말이다. 그러다 민간에서 차례를 제사와 혼동하면서 차 대신 술을 올리게 됐다.


제사는 자시(밤11~새벽 1시)에만 지내지만 차례는 혼령과 무관하기 때문에 오전· 오후 아무 때고 설날 중에만 지내면 된다. 명절 차례 등 우리의 세시풍속은 6세기 중국(조선)의 역법이 건너오면서 정착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