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SINA-신중국

남산(南山) 목멱산(木覓山)·종남산(終南山)·인경산(仁慶山)

한부울 2009. 1. 1. 22:36
 

바보들의 합창

여기 게시된 산수화를 한번 자세히 보니...

한반도에 남산이라고 하는데 아무리 뜯어봐도 남산이 아닌 것 같고

강원도 강릉에 있는 낙산사라고 하는데 눈을 찢어 봐도 낙산사가 아니다.

왜 그런가요?

물으니

그림소장 미술관 실장이라는 사람이 "겸재는 낙산사와 동해 풍경을 상상 속 시선으로 그렸다""단원 그림 속 각도가 비슷한 이유는 아마 단원이 겸재의 그림을 봤기 때문일 것“라고 했단다.

즉 다시 말해 겸재는 낙산사도 그렇고 남산도 있지도 않는 풍경을 상상해서 그렸고 단원은 겸재가 상상하여 그린 그림을 보고 소위 베꼈다고 하고 있다.

미술관 실장이라는 이양반 당대에 최고의 화가를 아주 우습게 말한다.

상상만 그리는 화가

남의 그림을 보고 베껴 그리는 화가

조선시대 화가들은 왜 다 그 모양인가?

정말 이렇게 인식하도록 거짓을 말하면 되겠는가?

왜 한반도 풍경이 아니라고 떳떳하게 말하지 못하는가?

거짓은 또 다른 거짓을 부르는 법

겸재, 단원께서 지하에서 벌떡 일어날 일이 아닐 수 없다.

미술에 전혀 문외한인 보통사람들 눈에도 한반도 풍경이 아니라고 단번에 느껴지는데 왜 그들은 보이질 않는지 알 수가 없다.

또 엉터리 같은 상상화, 베낀 것을 고화라고 무슨 가치가 있다고 소장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말하라. 

그분들이 그린 곳은 지금의 한반도가 아니라 대륙에 있는 남산, 즉 목멱산, 종남산이고 대륙에 있는 낙산사라고..왜 말하지 못하는가?


태조이성계는 나라를 세움에 있어

태조 6권, 3년(1394 갑술 / 명 홍무(洪武) 27년) 12월 3일(무진) 1번째기사

왕도 공사의 시작에 앞서 황천후토와 산천의 신에게 고한 고유문에 보면

 

...華山 之陽, 形勝而協吉, 宜就是處, 庸建新都.

화산(華山) 의 남쪽은 지세(地勢)가 좋고 모든 술법에 맞으니, 이곳에 나가서 새 도읍을 정하라


王若曰, 咨爾 白岳 ㆍ 木覓 之神、諸山之神、 漢江 ㆍ 楊津 之神、諸水之神! 蓋聞古之定都者, 必封山以爲鎭, 表水以爲紀。

그대 백악(白岳) 과 목멱산(木覓山) 의 신령과 한강 과 양진(楊津) 신령이며 여러 물귀신이여! 대개 옛날부터 도읍을 정하는 자는 반드시 산(山)을 봉하여 진(鎭)이라 하고, 물[水]을 표(表)하여 기(紀)라 하였다


화산의 남쪽이라 함은 지금의 서안이고 서안에서 남산이라 함은 지금의 종남산이다.

무엇을 더 숨기고자 하는가?

여기 대륙 장안성 남쪽 종남산 사진을 올린다.

겸재가 그린 남산과 비교해보자

 

 

모두 바보가 될 수야 없지 않는가?

 

무슨 놈에 장난이 이렇듯 판에 박힌 것인지

좀 확인하려하면 모두가 하나같이 소실되고 전쟁에 부서지고 탈취당하여 남아 있는 것이 없다고 하니...어찌 미칠일이 아닌가?

정말 반도역사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어쩔 수 없이 소실되거나 없어진 것이 아니다.

반도역사를 존재시키기 위하여 짜여진 음모의 장난 일뿐이지 그러한 일 조차 없는 조작한 사실만 있을 뿐이다.

반도역사에 의한 거짓의 역사를 억지로 숨기려고 하는 짓인 줄 알면서도 딱히 확실하게 밝힐 수 없음은 민족이 가져야 할 또 하나의 자괴스러운 고통이 아닐 수 없다.

거짓은 더 큰 거짓을 낳는 법 언제까지 거짓을 따르려는가?

이제 어거지 같은 구태에서 벗어나 비로소 깨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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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맞이는 겸재·단원의 발길 따라…

[조선일보] 2008년 12월 31일(수) 오전 03:17


우리의 옛 그림책을 들여다 본 적이 있으신지. 풍경화에서 하늘에 둥그렇게 뜬 건 대부분 달이다. "해돋이 그린 그림은 왜 많이 안 그린 건가요"라는 질문에 간송미술관 최완수 학예연구실장은 "안 그린 게 아니라 못 그렸을 것"이라고 답했다. "새벽에 일어나 해돋이 보려면 굉장한 의지가 필요합니다. 생각해보세요. 올 한 해 달은 종종 봤지만 일출 보신 적은 거의 없으시죠. 정신력이 강하고 부지런했던 겸재 정선 정도가 해돋이를 즐겨 그렸죠."


정시 출근하기도 버거웠던 한 해를 돌아보면 해돋이 그림 좀 안 그렸다고 옛 화가들 탓하기 민망해진다. 그래도 한 해 첫날 하루쯤 새벽같이 일어나 부지런했던 겸재와 시선을 겹쳐보며 한 해의 포부를 다져보고 싶은 욕심이 난다.


 

겸재는 해돋이와 어울리지 않을 듯한 서울의 기막힌 일출 풍경을 그린 그림 '목멱조돈(木覓朝暾·목멱산 아침 해·간송미술관 소장)'을 남겼다. 목멱산은 남산의 옛 이름으로 겸재는 영조 16년(1740년) 65세의 나이로 양천현령에 부임했고 이듬해 이 그림을 그렸다. 왼쪽 봉우리가 더 높게 보이는 지금의 강서구 쪽에서 바라본 남산과 그 옆으로 수줍은 듯 솟는 일출 풍경이 포근하다.


겸재의 시선은 강서구 가양동 궁산공원에 있는 소악루(小岳樓)와 가장 가깝다. 1700년대 당시 만들어져 당대 명사들이 즐겨 찾았던 한강변 정자 악양루(岳陽樓) 자리에 세운 이 정자에 오르면 올림픽대로를 달리는 자동차와 강 건너 월드컵공원이 약 170년 사이 완전히 변해버린 서울의 '차림새'를 드러낸다. 궁산은 해발 약 76m 정도로 산이라기 보단 언덕에 가깝지만 맑은 날이면 남산은 물론 북한산까지 보일 정도로 탁 트인 전망을 자랑한다.


 

5호선 마곡역·발산역에서 6642번 버스를 타고 '가양사거리·휴먼빌아파트' 정류장에서 내려 '양천향교지' 표지를 따라 가면 궁산공원이다. 문의 강서구청 공원녹지과 (02)2600-6398.


2005년 화재로 무너진 후 복원 작업이 한창인 강원도 속초시 양양군 낙산사 일출은 겸재와 단원 김홍도의 작품 속에 비슷한 모습으로 각각 등장한다. 일출 그림이 드문데도 두 거장의 그림에 동시에 등장한다는 건 낙산사 일출이 그만큼 빼어나다는 증거가 아닐까.


겸재의 그림 '낙산사(간송미술관 소장)'와 단원의 그림 '낙산사'를 본 양양군청 문화관광과 최대영씨는 "이런 각도는 비행기에서 봐야 가능할 듯하다"고 했다. 겸재와 단원의 시선이 머문 위치에 그만큼 높은 봉우리가 없다는 것이다. 간송미술관 최완수 실장은 "겸재는 낙산사와 동해 풍경을 상상 속 시선으로 그렸다"며 "단원 그림 속 각도가 비슷한 이유는 아마 단원이 겸재의 그림을 봤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비행기를 타지 않는 한 그림과 똑같은 풍경을 감상할 수 없다고 아쉬워하며 겸재의 그림을 다시 봤더니 절 앞 바위에 모여 앉아 해돋이를 즐기는 선비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바위는 의상대사가 낙산사를 창건할 때 앉아서 좌선했던 이화대(梨花臺)가 있던 자리라고 전해진다. 낙산사에서 동쪽으로 100m 정도 떨어진 이 자리엔 현재 의상대사를 기리기 위한 정자 의상대가 자리 잡고 있다. 화가의 '눈높이'엔 못 미쳐도 그림 속 선비들의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다니 위안이 된다.


'이화는 벌써 지고, 접동새 슬피울 제/ 낙산동반(洛山東畔)으로, 의상대(義湘臺) 올라앉아/ 일출을 보리라, 밤중만 일어하니…천지간 장한 기별, 자세히도 할셔이고.' 송강 정철이 읊은 '관동별곡' 한 구절을 외워가면 '선비 해돋이 놀음'을 만끽할 수 있겠다.


낙산사는 1월 3일 오후 2시~4일 오후 1시 '해돋이 사찰체험 프로그램(3만원·선착순 30명)'을 진행한다. 양양터미널에서 속초행 시내버스를 타고 5분 정도 가면 '낙산사' 정류소다.


김신영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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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산(南山) 목멱산(木覓山)·종남산(終南山)·인경산(仁慶山)·열경산(列慶山)·

 


남산(南山)은 서울특별시 중구와 용산구에 걸쳐있는 산이다. 본래 목멱산(木覓山)이라고 불리던 곳이었다. 정상 부근까지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으며, 남산 1·2·3호 터널이 뚫려 있다.


역사


남산은 조선 도읍 초기부터 신성한 영산으로 여겨져 왔다. 목멱산(木覓山)·종남산(終南山)·인경산(仁慶山)·열경산(列慶山)·마뫼 등으로도 불렸다. 북악산, 낙산, 인왕산과 더불어 한양의 내륙분지를 형성하던 곳이고, 조선 도읍 초기에는 이들 산군들의 능선을 따라 성곽이 쌓였다. 정상에는 조선 중기까지 봄과 가을에 초제(醮祭)를 지내던 국사당(國祀堂)과, 통신제도의 하나인 봉수제(烽燧制)의 종점인 봉수대(烽燧臺)가 있었다. 또한 성벽 일부가 남아 당시의 흔적을 보여 준다.


일제는 일제강점기에 황국신민화 교육을 위해 사대문 안 어디에서든 보일 수 있도록 남산에 신사를 세웠다. 당시 신궁은 일본 본토를 통틀어도 15개 밖에 없는 실정이었으나 식민지의 수도에 신사중에서 가장 격이 놓은 신궁 중의 하나로 조선신궁을 세워 중요한 의미를 부여했다. 조선신궁에서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와 메이지 천황을 제신으로 삼아 숭배하게 했다. 지금의 힐튼호텔 맞은편 어린이 놀이터에서 안중근의사기념관과 남산식물원 터를 아우르는 43만 제곱미터의 넓은 면적을 자랑했다.


탑골공원에 이어 남산도 시민공원으로 개발되어 한양공원이라 불렀다. 당시 공원묘지로 세웠던 '漢陽公園(한양공원)'이라는 고종 친필의 석비가 지금도 구 통일원 청사 옆에 보존되어 있다.


산의 지리


높이 262m이며 대부분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북쪽의 북악산(北嶽山), 동쪽의 낙산(駱山), 서쪽의 인왕산(仁旺山)과 함께 서울의 중앙부를 둘러싸고 있다.

 

                                                               [조선-인왕산]

 

중국사이트 백과사전에 나오는 종남산(終南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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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낙산사


낙산사 (洛山寺)는 대한민국 강원도 양양군 오봉산에 있는 절이다.


671년(신라 문무왕 11년) 의상(義湘)이 처음 세웠다고 한다. 858년을 비롯해 여러 번 고쳐 짓기를 거듭했다. 지금 건물은 한국 전쟁 때 없어진 것을 1953년에 다시 지은 것인데, 2005년 4월 5일 산불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었다.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되었다. 낙산사 경내에 있는 문화재는 다음과 같다.


낙산사 범종 (보물 제479호)

낙산사칠층석탑 (보물 제499호)

낙산사 건칠 관음보살 좌상 (보물 제1362호)

낙산사 홍예문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3호)

낙산 사원장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4호)

의상대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48호)

낙산사 사리탑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5호)

낙산사 홍련암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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